오늘은 바다 건너 섬 마을인 푼츠에 왔다.
32 가구가 살고 있는 그 마을에서 가장 취약한 집을 소개받아 여성봉사원 2명과 함께 마을 촌장님의 안내로 도착한 집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 셋은 그집 앞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넋을 잃고 말았으며 잠시 후 한 여성봉사원의 흐느낌과 동시에 셋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함께 울었다.
아! ~ ~ 과연 이곳이 인간이 사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인간은 다 같이 행복을 누릴 권리를 타고났다는데 이들은 왜 이렇게 가난해야만 되는가?
인생에 있어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 있다면 가난이 아닐까?
난 도저히 이들이 처한 그 가난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문화생활과 단절된 외딴집(우리나라의 무허가 판자촌 형태)에서 가난이란 단어를 짊어진 채 9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한없는 상실감에 치인 가슴을 부여안고 통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갑기만 했다.
진정 하나님은 왜 이들을 애써 외면한 것일까?
집사람한테 " 잘 사는 교회에 바치는 돈을 이곳에 기부하라 "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참한 모습은 그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취약했으며 온 방엔 파리와 악취의
천국이었으며 내 주요 임무인 사진촬영을 제쳐두고 두 봉사원과 함께 청소 부터 시작했다.
나무 등걸 9개로 걸쳐 그 위에다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엔 줏어 온 비닐을 덮고 바닥엔 모래와 자갈 위에 비닐과 이불을 깔아 9식구가 생활하는 구조였으며 우리의 도움이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위로가 되긴 했지만 우선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였다.
우리나라 서울역 노속자들의 거처는 감히 호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통역을 통해서 주인한테 " 지금 당장 도움을 준다면 뭣을 받고 싶은지 말해 보라 "고 했더니
1. 비가 새지않는 내 집을 마련,
2. 가축(소, 돼지, 닭, 오리)을 키우고 싶고(고기를 먹어본 지 5년이 됐다고 함),
3, 논과 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일단 우린 작은 천막을 쳐 가족들을 그곳으로 이주케 한 다음 말끔히 청소를 하고
준비해 간 식재료로 현지에서 배운 대로 그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빗물을 받아 걸러서 식수로 사용하지만 우리가 준비해 간 깨끗한 생수를 사용했다.
우린 수저로 먹었고 그들은 수저를 마다하고 씼지도 않은 손으로 맛있게 먹었다.
병원에 가는 길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11시간을 가야 하니 환경(청결)이 걱정이었다.
부엌이 따로 없길래 마당에 도마를 놓고 칼로 채소를 썰다가 아내와 함께 아무 말도 없이 괭이 하나를 들고 남의 논두렁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지만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ㅎㅎ
그것을 눈치로 알았지만 우린 애써 모른체 했답니다.
아내 볼 일을 보고 남편은 논두렁에 서서 망(?)을 보고 ..........ㅋㅋㅋㅋ
화장실이 따로 없어 우리도 똑같이 논두렁 아래에서 구덩이를 파고 볼 일(?)을 봤죠.
그 과정이 재미있고 신기했으며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여기에 글을 올리기엔 좀 그렀네요.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다면 휴지라도 줬을 건데 우린 몰랐죠.
나중 가이드가 말해 주는데 그들은 응가(?)를 한 후 뒤처리는 풀을 뜯어서 한다고요.ㅋㅋ
청소를 마치고 한국에서 준비(기업체에서 협찬품) 해 간 생활필수품을 식재료와 약간의
격려금을 드린 후 열심히 잘 살라고 인사를 하고서 오후 5시 우린 캠프로 복귀했습니다.
2024. 7. 19. 지리산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