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과 300 용사들의 활약으로 드디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 전쟁을 이끈 기드온에 대한 신뢰와 인기는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22절). 그러나 기드온은 정중히 거절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분은 오직 여호와라고 응답하는 매우 바람직한 태도를 보여줍니다(23절).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전쟁에서 탈취한 금고리들을 요청한 것입니다(24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드온에게 기꺼이 금고리를 기드온에게 주었는데 그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나 되었습니다(26절). 19.38Kg이나 되는 무게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탈취한 각종 패물과 의복까지도 기드온에게 주었습니다.
21절에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면서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을 떼어 가졌을 때부터 사실 약간 느낌이 오긴 했습니다. 초승달 장식은 그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들이 섬기는 달신(月神)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농사나 목축을 하는 이들에게는 음력 절기가 꽤 중요한데, 계절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달의 모습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였기에 오히려 태양신보다 달신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초승달 장식은 이방신을 섬기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초승달은 매달 초하루에 생기는 모양으로 새로운 한 달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도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장식을 떼어서 취했다는 것은 이방의 우상을 경계하지 못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26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탈취한 초승달 장식들을 기드온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이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 성읍에 두었습니다(27절).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27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성막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기드온의 에봇이 우상처럼 되어 성막에 가서 제사하기보다는 에봇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하였습니다(27절). 기드온이 에봇을 만들 때엔 전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깊은 통찰력 없이 만든 에봇 때문에 오히려 에봇이 우상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의도는 좋았더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방해하고,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교회들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많은 프로그램들도 오히려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프로그램이 우선시되고, 하나님보다 행사나 계획이 우선시되고,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를 위해 예배의 내용들을 고안하지만 하나님보다 예배의 순서나 의식이나 시간 등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서 진정한 예배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행위들이,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이나 의식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로 행해지고 있는지 자신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오히려 올무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드온은 많은 아내들을 두어 자녀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전쟁에 승리한 후 금 에봇을 만든 것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왜곡되게 했던 모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아들 중에서 아비멜렉은 후에 자기가 스스로 권력을 취하려고 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사사기 8장).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곧바로 돌아서서 바알을 섬기며 우상 숭배에 빠져듭니다(3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은혜도 잊고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고 공(功)을 세운 것에 대해서도 더 이상 기드온의 집안을 후대(厚待)하지도 않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속히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의 영향력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통 은혜를 베푼 것은 물에 새기고, 은혜를 받은 것은 돌에 새기라고 하는데 인간은 반대의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한량없는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 땐 여지없이 돌아서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깊이 새기고, 서운하다고 여겨질 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살펴서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온전해집니다.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신앙을 만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바른 신앙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