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空)안에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미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단 내면의 공(空)을 알면,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이미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내면의 공(空)안에서, 이미 죽음이 일어났다. 이 공(空)안에서 그대는 사라졌다. 그러니 더 이상 무엇이 두렵겠는가? 무엇이, 누가 두렵겠는가? 그리고 누가 두려울 수 있겠는가? 두려워할 자가 사라졌다. 이 공(空)안에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미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불사(不死)의 존재, 불멸의 존재이다. 그대 안에 영원이 들어왔다. 이제 그대는 안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이것이 산야신(sannyasin)이 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나 종교 등 어리석은 집단에 속할 필요가 없다.
무(無)가 되었을 때, 그대는 비로소 그대 자신일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무(無)가 되었을 때, 그대는 타협할 필요가 없다. 타협은 두려움과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그대는 혁명적으로 살 수 있다.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아무도 그대를 죽이지 못한다. 그대는 이미 스스로 죽은 상태이다. 어느 누구도 그대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대는 빼앗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버렸다. 이제 그대는 무(無) 안에 있다. 그대 자신이 곧 무(無)이다. 여기에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이 무(無) 안에서, 확고한 안전과 안정성이 탄생한다. 더 이상의 죽음은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더불어 시간이 사라진다. 그리고 죽음과 시간에 의해 야기된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순수한 하늘만이 남는다.
이 순수한 하늘이
삼매(三昧)이며 열반(涅槃)이다.
-오쇼-
[출처] 순수한 하늘 (오쇼코리아) |작성자 비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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