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5주일 강론 : 사제피정 결산/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7.16.일)
* 오늘 복음의 내용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현재 우리는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이 중에서 어떤 상태인지 되돌아보고, 좋은 열매를 맺겠다고 결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지난 한 주간, 비가 엄청 내렸지요? 장마 때문에 큰 피해 없습니까?
저는 한티성지에서 5일 피정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티성지 십자가의길기도 입구와 식당 한 켠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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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생과 사를 한 가지로 염원한 순교자의 삶과 죽음이 불사불멸의 영혼으로 살아있나니, 후대에, 이 혼돈의 시대에도 다시금 영생의 삶을 생각하라.
2004년 초겨울에. 이정우 글. 소효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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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내린 비만큼은 아니지만, 한티에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사제가 된 이후 지금까지 한티에서 그런 비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껴서 산책도 등산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운무 같았습니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았던 수요일에는 점심식사 후에, 무명 순교자 묘역 37기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이 가졌던 불굴의 신심을 배워, 우리 교우들에게 잘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각 무덤에 강복을 해드렸습니다.
사제피정 때 무엇을 공부했는지 잠깐 소개해보겠습니다.
이번 사제피정 강사는 툿징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이며, 독일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으신 임미숙 엘렉타 수녀님이셨습니다. 피정 참가인원은 50명이었는데, 보좌주교님이 피정에 동참하셨고, 최고령 참가자는 사제서품 59년 되신, 88세의 허연구(모세) 신부님이셨습니다. 31년 후에, 제가 그 연세 되었을 때, 그렇게 사제피정에 참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허 신부님을 볼 때마다 화살기도를 보내드렸습니다.
2. 우리는 5일간 루카복음서로 성서통독 피정을 했습니다.
예전에 몇 번 통독피정 했지만, 이번 피정 때는 루카복음을 통독하면서, 매일의 주제를 정해서 강의 1시간 후에 통독했습니다. 각 날의 주제는 1) 예수님의 족보, 2) 광야에서의 유혹/ 수제자 베드로를 부르심, 3)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4) 약은 집사의 비유, 5) 루카에 의한 예수님의 수난기였습니다.
비유는 누구든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표현인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시기 위해 많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비유 중의 하나인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잠깐 정리해보겠습니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율법에 뭐라고 쓰여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율법학자가 묻자,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이웃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획기적인 말씀이셨습니다.
특히 동족이던 제사장, 세리는 노상강도에게 돈을 뺏기고 두들겨 맞아 죽어가는 사람을 피해 도망갔는데, “잡종”이라며 욕하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유다인들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장면에 대해, 노상강도들은 반대쪽을 보면서 길을 지나쳐갔던 제사장, 세리들과 “은밀한 동행”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맞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유다인의 순수혈통이 아니고 혼혈이었던 사마리아인에게 “선하다.”, “착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랍게도 사마리아인에게 “선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무튼 동족이던 제사장, 세리와 달리,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이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응급조치를 한 후, 여관에 데려가서 간호해주었고,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잘 돌봐달라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부탁한 후 떠났습니다.
그 당시의 하루 숙박비는 1/32 데나리온이었는데, 2데나리온을 냈다는 말은 두 달 숙박비를 냈다는 뜻입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 마을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죽어가던 유다인은 분명히 살아났겠지만 그 사마리아인은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의 운명은 예수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어야겠습니다.
3. 사제피정 5일 중에서 화수목금 미사를 드렸습니다. 본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사제가 교우들에게 영성체 해주지만, 사제피정 때는 사제들이 제단에 올라가서 양형영성체 합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가, 자기들이 믿는 신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가? 신의 몸을 모시는 종교는 천주교 말고 뭐가 있는가? 천주교는 정말로 위대하고 최고의 종교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흔히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때 “철이 든다.”라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니까 갑작스럽게 철이 더 들었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모실 때마다 신앙의 철이 더 들고, 신심이 더 돈독해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교우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