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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 / 이 명 희
1. 서론
2. 반호 윤광안의 시세계
1) 정관의 흥취와 존양
2) 초탈의 경지와 자적
3) 사회적 책무
3. 결론
국 문 초 록
반호 윤광안은 소론계의 한 축으로 노성에 세거하였던 파평윤씨 가문의
후예이자 정조의 초계문신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관료생활은 소론이라는 입지로 인하여 고난의 연속이었다.
순탄치 못한 삶 속에서도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내면이 그의 시세계에잘 구현되어 있다.
본고는 반호의 시세계를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靜觀의 興趣와 存養이다. 반호는 시적 대상에 내재한 본질을
직관하여 심미적 흥취의 경험을 표현하고 그 정신적 상태를 작품 속에 투영
시켰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겼으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
하는 모습을 시로 표출하였다. 또한, 반호에게 자연은 <精衛>라는 시에서
보듯 탐미의 대상뿐만이 아니라 깨달음과 성취하고자 하는 造道의 대상이
*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mailto:audong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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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물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는 초탈의 경지와 자적이다. 반호는 속세의 삶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찾아간 맑고 깨끗한 자연의 모습에서 그는 단정하게 살고자 했던
본연의 모습을 깨우치며 청정함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소중함에 감동한다.
더하여 반호는 世運이 쇠퇴하여 순박한 풍조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을 보며
은거를 꿈꾸었으며, 비록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갈망을 시에 표
현하였다.
세 번째는 사회적 책무이다. 반호는 정조에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 영달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소론 가문이라는 처지 때
문에 정치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세속을 벗어나 자적하려
는 의지를 늘 품고 있었지만, 사회적 책무에 대한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농
가의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그 문제해결의 책임이 위정자에게 있음을 토
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곤욕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위정자의 덕
에 손상이 됨을 하소연하며 신하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반호 윤광안의 시가 18세기 한시사의 새로운 흐름과 접목되어 있
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도문일치라는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 수작들이다. 아울러 소론계 문학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특히 소론의 다른
계열보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노성지역의 파평윤씨 가문의 문학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제어
盤湖 尹光顔, 漢詩, 興趣, 靜觀, 存養, 超脫의 境地, 自適,
社會的 責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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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盤湖 尹光顔(1757~1815)은 고려 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坡平尹氏 가문
의 후예이다. 그 선대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尹烇(1575~1636)은 호가 後村
이며,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弼善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으니, 시호가 忠憲
이다. 윤전의 아들 龍西 尹元擧(1601~1672)가 반호의 고조부이다. 그는
侍講院 進善이었으며 윤전의 순절 이후 물러나 있으면서 여러 차례 조정의
호출이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가지 않았다.
1660년 服制禮訟에
서 남인 權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宋時烈 일파의 비난을 받았다.1)
반호의 증조부 尹揄(1647~1721)는 일찍이 文才와 行實이 있어 縣令, 동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는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던 尹拯(1629~1714)
과 재종형제이다. 조부 尹恕敎는 시강원 文學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되
었다. 부친 尹東美는 繕工監監役,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문학과 행
실에 있어 바름을 보여준 인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처럼 반호의 집
안은 조선조의 소론계 명문가라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소론계의 한 축이었던 노성 윤씨 가문의 문학 양상을 고구한다는
측면에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윤광안의 문집 지헌유고 2)에 수록
된 시를 통해 그의 시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현종실록 현종 1年 12月 22日 癸卯 2번째기사, “持平尹元擧在尼山, 上疏辭職,
且曰: 臣竊觀我國之治, 專尙儒術, 郁郁盛際, 莫如 中、宣二聖之朝, 而我先王崇
儒重道之誠, 不啻若二聖之勤, 招延柄用之人, 盡是學術之士, 有志於道德者也,
成周之化, 庶幾更見於東方. ……上優批答之, 使之勿辭上來, 時宋時烈等與尹
鑴、權諰議禮不合, 因相與詆排, 元擧卽宣擧再從兄也, 素與諰 鑴相親, 而又不
敢崖異於時烈諸人, 故其疏如此.”
2) 지헌유고 는 4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집으로 은과집 이 있다. 현재 유고
집 원본 4책은 후손인 윤여갑이 소장하고 있다. 지헌유고 에는 윤광안의 문학성
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수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시뿐만 아니라 산문도
당시 저자의 상황과 심경의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가 있다. 115수의 시 이외에 별
집으로 따로 구분되어 은과집 에 시들이 30여수 더 수록되어 있음을 밝혀두고, 이
논문에서는 지헌유고 에 있는 시들을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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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안의 자는 復初, 호는 盤湖, 止軒이다. 어려서부터 明敏하고 총명함
이 뛰어나 말문을 트자마자 곧바로 글자를 깨우쳤다. 8살 때 소학에 입문하
면서 어린 나이에 벌써 올곧음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드러냈으며, 9살 때
春秋左氏傳 의 19만 자를 모두 암기할 만큼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다.
반호가 이웃집에 稗說 수십 권이 있는걸 보고 그 책들을 모두 빌려 간 적이 있
는데 며칠 안 되어 돌려주자 책 주인이 그 책들을 실제로 다 읽었는지를 의
심하여 그를 시험해 보았더니 정말로 모두 외우고 설명함에 처음부터 끝까
지 빠짐이 없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다.
3) 또 당시에 장난감을 가지고 재주 부리는 자를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을 때 반호가 홀로 단정히
앉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눈은 사악한 빛을 보지 않는다.”
4) 라고 말을하여 판서공(윤동미)이 이 점을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누군가가 난해한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정확하게 대답을 하여 주변 사
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출세를 위한 과거시험 공부보다는
오로지 경서 연구에 뜻을 둔 학문을 하였다. 그러다가 부모님의 나이가 연
로해지자 어쩔 수 없이 과거에 응시해 1777년(정조
1)에 비로소 생원시에
합격하고 1786년(정조 10)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런 뒤 바로
5차 초계문신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누렸다.
5)벼슬은 교리를 거쳐 대사간, 대사성, 충청도 관찰사, 이조참의, 부호군 등
을 역임하고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6) 경상도 관찰사 재임 시절 朱子와 宋
時烈(1607~1689)을 배향한 영양의 雲谷書院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
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808년(순조 8) 암행어사 李愚在
3) 申綽, <資憲大夫慶尙道觀察使尹公墓誌銘>, 石泉遺稿 卷3, “九歲誦左氏春秋
傳十九萬言, 鄰有稗說數十卷, 固借去, 俄卽還瓻, 主人疑不看, 試問之, 且誦且說,
首尾無遺.”
4) 李裕元, <慶尙道觀察使尹公神道碑>, 嘉梧藁略 冊15, “時有持玩好過者, 羣聚
觀之, 公獨端坐不動曰, 目不視邪色.”
5) 최두진, 「정조대의 초계문신 교육제도 연구」, 부산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9.
60면 참조.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尹光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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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의 탄핵을 받아 斯文亂賊으로 몰려 함경도 무산부에 유배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를 무고하여 선동했던 이우재는 相臣들의 대질 심문 속에
이루어진 진상규명에서 하나의 허물도 찾지 못한 채 오히려 사람들을 부추
겨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영남의 길거리를 망령된 말들로 가득 차게 한 사실
들이 들통이 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7)
반호는 타고난 기질이 온화하고 순수하며 經世濟民하는 책략 속에 학문
적 역량을 갖추고 닦아 행동이 늘 엄정하였다. 申綽은 그의 이러한 면을 다
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맑은 것은 먼지 타고 하얀 것은 때가 타서 쉬파리
(靑蠅)는 더러운 것인데도 항상 흰 비단에 붙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
므로 선비 가운데 문장을 닦고 지혜를 밝혀 세상에 밝은 기운을 드러
내며 몸가짐을 조심히 하고 행실을 깨끗이 하여 세속에서 우뚝한 사
람은 온 세상이 참소하고 질시하는 대상이니, 내가 지헌 윤공에 대해
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믿는다.
8)
이 글은 申綽이 옛사람의 말을 들어, 지난날 바른 정치를 행하여 칭송을
받던 반호가 그를 거부하는 이들의 무고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난 당시의 일
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소론가의 명문에서 태어난 그는 노론과 소론의 당
쟁으로 인한 정치적 입장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뜻하지 않은 고난을 겪어
야 했다. 그의 시에는 이러한 삶 속에서 느낀 감정들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
가 잘 드러나 있다.
윤광안의 문학은 기존 학계에 보고된 바 있는 소론계 문학의 특성으로 언
7) 李裕元, <慶尙道觀察使尹公神道碑>, 嘉梧藁略 冊15, “會御史李愚在以前日堂
䟽人, 乘機吹覔, 竟不得一瘢, 相臣請寘對, 愚在懼, 嗾人追捏飛語滿嶺路, 上以問
公, 公請下道臣査, 繡言果妄, 命大臣議, 竟無以加律.”
8) 申綽, <資憲大夫慶尙道觀察使尹公墓誌銘>, 石泉遺稿 卷3, “古人有言, 淸受
塵白受垢, 靑蠅所汚, 常在練素, 故士之修文章智, 顯光氣於世, 澡身潔行, 立卓異
於俗者, 通世所讒嫉, 余於止軒尹公, 彌信其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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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된 ‘전지적 도문관념’ ‘자득’의 중시 ‘국문시가에 대한 옹호’의 테두리 안
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9) 그러한 분류의 타당성을 차치하고라도 전대 혹은
당대의 여타 시가들과 차별적 특성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론계라는 정치적 입장이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그가
마주한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헌유고 1책10)에 수록된 시들은 靜觀의 興趣와 存養, 超脫의 境地와
自適, 社會에 대한 責務가 돌출된 주제 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고는 반
호의 시세계를 살펴보기 위하여 이 주제를 중심으로 그 문학적 성취와 내면
을 검토하였다.
2. 盤湖 尹光顔의 詩世界
1) 靜觀의 興趣와 存養
시인이 바라보는 객관 세계에 미적인 태도로 중요시되는 두 가지를 추려
서 지목할때, 觀照와 靜觀을 들 수 있다. 觀照가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유
지하여 그 대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것이라면, 靜觀은 현상 자체의 직관을
넘어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을 직관하는 것이다.11) 시인은 시적 대상에
내재한 본질을 직관할 때 심미적 흥취를 경험하게 되고, 그 정신적 상태를
작품 속에 투영시킨다.
반호의 시에는 정관의 경지에서 자연을 대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 그 중
9) 김영주, 조선후기 소론계 문인의 문학론 연구 ,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4면 참조.
10) 지헌유고 의 전체 호칭은 소장자의 의견을 따라 지헌유고 라고 칭하였으나 각주
에서는 정리된 필사본의 표지 명치에 따라 止軒府君詩集 이라고 표기하였다.
11) 다께우찌도시오, 안영길 외 역, 미학예술학사전 , 미진사, 1993, 235~23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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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陽寺의 승려에게 준 시 한 수를 보기로 한다.
夕登正陽寺 저녁 무렵 정양사에 오르니
寺僧迎我宿 절간의 스님 나를 맞이해 머물게 하네
山行嫌太晩산행이 너무 늦었네요
已失楓林赤단풍 숲은 이미 붉은 모습 잃었고
不見紅錦帳 보지 못하네요, 붉은 비단 장막이
掩映千白玉수많은 백옥 뒤덮어 비추는 것을
余聞一莞爾나는 듣고 빙그레 미소지을 뿐
玆事未爲惜이 일이 애석하지 않구나
木落山氣斂나뭇잎 떨어지고 산기운 걷혔어도
眞面更無隔금강산 진면목을 볼 수 있다네
正如西子姸서자12)의 고운 모습과 같아
不待脂粉餙화장하고 꾸밈이 필요 없구나
13)
시에 소개된 정양사는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장연리 금강산 表訓寺 북
쪽에 있는 사찰이다. 저녁 무렵 늦게 산사에 도착한 반호에게 절의 승려는
산행 시기가 늦어서 단풍으로 붉게 물든 금강산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안
타까워하며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반호는 이점에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고 미소로써 응수하였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히려 비단장막 같던 단풍의 붉은 모습이 누그러져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금강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되어 더 좋았노라고 흡족해 한다. 반호가 자연을 대하는 이 자세가
바로 정관이다.
자연을 접하는 흥취는 보는 사람의 경지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반호는 금강산을 중국의 대표 미인 서시처럼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표
현하며 四時에 따라 색다른 장광을 연출하는 금강산의 정경을 연상시켜 관
12) 西子는 춘추 시대 오나라의 美人인 西施이다.
13) 尹光顔, <正陽寺贈僧>, 止軒府君詩集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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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대한 수준 높은 시인의 안목과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였다. 반호의 자
연에 대한 흥취는 외적인 면모에 연연하지 않고 내면을 살펴보는 통찰력에
있다. 그 통찰력은 비로봉 지역의 百喧潭을 읊은 시에 더욱더 잘 드러나 있
다.
백훤담은 白華潭의 다른 이름으로 안무재골에 있는 연못이다. 사선교의
동남쪽 개울 윗쪽에 위치하며, 물이 맑고 기슭에 아름다운 초목들이 우거져
있어 백화담이라고 불렀다. 또 이 못가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때 때마침 비가 내려 일명 백훤담이라고 불렸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鳴悲亂石響물소리 어지럽게 바위를 울리고
色靜幽松林깊은 소나무 숲의 경치가 고요하네
遇物自成趣경치를 볼 때마다 스스로 흥취를 이루었으니
喧寂兩無心시끄럽거나 고요하던 둘 다 좋구나
14)
반호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백훤담의 전설을 생각해 낸다.
고요한 정취 속의 소나무 숲속에 바위를 울리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더욱 부
각이 되고 이것을 아름다운 흥취로 이끌었다. 소나무숲의 고요함과 물소리
의 시끄러움이 대비되면서 이런 상대적 요소가 되려 아름다움을 배가시키
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그 상황을 無心이라는 표현으로 승화시켰다.
無心은 상관이 없다는 일반적 의미로 설명된다. 하지만, 불교적 용어로 즉 번뇌
와 망상이 소멸한 상태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
면 그만일 뿐, 그 자체의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하려는 반호의 사유를 읽을
수 있다.
다음은 천마산의 화담을 읊은 시이다.
蒼蒼天磨麓 푸르고 푸른 천마(天磨)의 산기슭
落日倦遊歷해 떨어지도록 힘들게 다니네
逶迤花谷流 굽이굽이 화담 골짜기 흘러
14) 尹光顔, <百喧潭>, 止軒府君詩集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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漾漾含白礫 넘실넘실 흰 조약돌 머금었네
入谷勞歛衿 옷소매 걷고 계곡에 들어가니
緬矣藏修跡학문을 닦던 흔적 아득하구나
下馬肅遺祠말에서 내려 남은 사당에서 경건히 하고
出門憩松石문을 나서 소나무 바위에서 쉬었네
淸輝澹未已맑은 빛 더 할 수 없이 그치지 않고
流芳遡更逖아름다운 이름 더욱 멀리 전해지네
夕氣收紫翠저녁 기운 붉고 푸르름 걷히니
新月出林薄새 달이 저 숲가에서 떠오르네
山寒集虛籟산 추운데 쓸데없는 바람소리만 모이고
風灘倍浙瀝바람에 여울 물결이 더욱 일렁이네
泓崢動幽想 깊은 못 높은 산에 그윽한 생각 일어
俛仰發深愓 굽어보고 올려다보며 깊은 두려움 생기네
養靜意徒勤고요함 기름은 다만 마음만 앞서고
末學媿冥擿 말단의 학문 어둠 속 더듬거림 부끄럽네
歸哉盍求志 돌아가련다 어찌 뜻을 구하지 않으리오
谿山足息游계곡과 산에서 쉬고 놀았으면 충분하지
15)
반호는 천마산의 화담에서 화담 서경덕의 자취를 느끼며 스스로를 자성
하는 계기로 삼는다. 자연은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는 대상만이 아니라,
때로는 자아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관조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
연이 학문을 수양하는 곳이 되는 이유인 것처럼, 반호는 관물을 통하여 사
물의 이치를 밝히고 존심양성의 계기로 삼았다. 대부분의 반호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연을 단순히 흥취에만 머물지 않고 造道의 경지에 나아가려
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자성하는 자는 늘 자신을 부족하게 혹은 부끄럽게
여기며 겸손해한다. 그렇기에 養靜(고요한 기름)의 의지를 갖고 있으나 말
단의 학문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데, 그 겸손의 자세에서
15) 尹光顔, <花潭>, 止軒府君詩集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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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학자적 풍모가 드러난다. 반호에게 자연은 탐미의 대상뿐만이 아니
라 깨달음과 성취하고자 하는 조도의 대상이다. 사물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된다. 다음은 바다를 메우려고 하는 설화 속의 精衛라는 새에 대하여 쓴 시
이다.
海鳥有精衛정위16)라는 바다새 있는데
羽翮何顇顇 날개깃 어찌 그리 여린지
傳是帝女魂전설에 염제 딸의 혼이
千年願未遂천년동안 소원을 이루지 못해
朝含西山石아침에 서산의 돌을 물어
暮投東海水저녁에 동해바다에 던지네
微功竟何施작은 힘으로 어찌 끝낼까
海水靑瀰瀰바닷물은 푸르고 넘실댄다
力薄徒勞苦힘 약해 헛수고일 뿐이라고
從古笑其愚옛부터 어리석다 비웃었지
胡爲不自量어찌 스스로 헤아리지 못해
適以殘爾軀단지 네 몸만을 해치느냐
請君且莫笑그대 비웃지 말기 바라오
彼鳥寧得已저 새가 어찌 그만두랴
積恨期一償쌓인 한 한번 갚고자 할뿐
强弱匪所揣강약은 헤아릴 일 아니오
豈不惜羽毛어찌 깃털 아깝지 않겠냐만
寸心終無悔이 마음 끝내 후회는 없네
海水雖云鉅바닷물 비록 크지만
涓涔之所匯 도랑물 괴어 모인 것일 뿐
不綴涓涔攻 이들의 힘을 합치지 않으면
16) 精衛는 炎帝의 막내딸 如娃가 동해에서 놀다가 빠져 죽어 변했다는 신화 속의 새
이름이다. 동해에 대해 원한을 품고서 복수를 하려고 늘 西山의 木石을 물어다 빠
뜨려 바다를 메우려 한다고 한다. 山海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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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水應有涯바닷물도 응당 끝이 있으리
精衛君幕笑그대들 정위새 비웃지 마소
志士固如斯지사는 진실로 이래야 하거늘
17)
반호는 천년이 지나도록 바다를 메우려고 노력하는 가련한 운명의 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한없이 미약한 힘으로 거대한 바다를 메우려는
정위새의 어리석음을 모두가 비웃지만, 그는 정위에게 자신을 모습을 발견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노력하는 정위새는 곧
반호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의지를 실
천하려는 모습을 비웃는 이들에게 외친다. 비록 광대한 바닷물도 도랑물이
고여서 이루어진 것이니 결국 끝이 있으리라는 표현은 그의 굳건한 의지의
내면을 표출한 것이다. 시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자세한 곡절은 알
기 어렵지만, 세상의 비난에도 의지를 실현하려는 모습은 그가 어떠한 사람
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내면과 지향은 부귀영화를 꿈꾸는 세
속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초탈의 경지와 자적을 보여주는 다음 장의 시
들에서 드러난다.
2) 超脫의 境地와 自適
반호의 시는 속세와 탈속의 경계에 자리한다. 은거를 온전히 실천했던 것
은 아니지만 정신적 지향은 늘 은거를 꿈꾸어 왔다. 도연명의 '날다 지친 새
가 돌아갈 줄을 알 듯'18)이라는 시구에서 보이듯, 본성을 지키기를 갈망했
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 노
력의 흔적이 묻어나는 다음의 시를 살펴보자. <산중서회> 3수 가운데 첫 번
째이다.
17) 尹光顔, <精衛>, 止軒府君詩集 一.
18) 陶淵明, <歸去來辭>, 陶淵明集 卷5, “鳥倦飛而知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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端居抱沖漠 단정히 살며 본성을 간직하고19)
緬懷同心者 같은 마음의 사람을 아득히 생각하네
矧玆芳歲暮 하물며 이 꽃다운 나이의 저녁 무렵
山水更淸暇 산수가 더욱 맑아 여유로운 시간
獨隨孤雲去 홀로 외로운 구름 좇아가
偶坐碧樹下 생각없이 푸른 나무 아래 앉네
俛仰無共語 쳐다보고 굽어보며 함께 아무 말 없고
巖泉自淸瀉 바위의 샘에서 절로 맑은 물 쏟아내네
20)
맑고 깨끗한 산수 자연을 맞이하여 그 속에서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려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주자의 말을 인용한 ‘고요하니 산수의 즐거움
은 있으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은 없다네.’
21)의 경지와 통한다고 하겠다.
속세의 삶에 지쳐 있다 잠시 찾아간 맑고 깨끗한 자연의 모습에서 그는 단
정하게 살고자 했던 본연의 모습을 깨우치며 청정함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소중함에 감동한다. 꽃다운 나이에 해가 저무는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산과 강의 맑고 깨끗함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한다. 홀로 외롭게 떠
다니는 구름을 좇아 하릴없이 거닐다 푸른 나무 아래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뻗어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감
상하며 있자니 바위틈 어딘가에서 맑은 물이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
온다.
반호는 자연 속에서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려는 자세를 보
였다. 이렇게 초탈한 마음의 자세를 놓지 않으며 살아가려는 그에게 세상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더욱더 맑고 깨끗한 자연에 위로받고 싶었다.
19) 冲漠은 冲漠無朕으로, 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본연
의 性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이 사물과 감촉하기 이전에 그 본성에는 만물의 理가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뜻한다. 近思錄 卷1.
20) 尹光顔, <山中書懷> 一, 止軒府君詩集 一.
21) 朱熹, <寄題梅川溪堂>, 朱文公文集 卷2, “静有山水樂, 而無車馬喧.”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105
다음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초탈한 경지가 느껴지는 시를 소개한다.
白雲生萬壑 흰 구름이 여러 골짜기에서 일어
徘徊意方閒 이리 저리 움직이니 마음이 한적하네
而我亦無心 나 또한 잡념없이
緩步出林端 천천히 걸어 숲가로 나간다
淸颷自何來 맑은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고
水木堪增寒 물과 나무는 더한 추위를 견디나
孤吟弄碧流 홀로 흐르는 푸른 물을 즐겁게 노래하며
萬緣從此刪 많은 인연 이제부터 끊어야지
22)
골짜기 사이로 뭉게뭉게 흰 구름이 피어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배회하
는 모습을 보니 반호의 마음이 한적해진다. 천천히 숲속 길을 거닐며, 숲속
에서 맑은 바람을 맞으며 이 바람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물과 나무는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어떻게 추위를 견딜지 생각해 본다. 외로이 흐르는
푸른 물을 즐기며, 노래하겠다는 대목에서 자연을 즐기는 동안 속세의 인연
에서 벗어나겠다는 작자의 홀가분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처럼 반호는 자
연을 통해 초탈의 경지와 자연의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어 했다.
때문에 맑고 순수한 속내를 가진 반호에게 세상은 극복해야 할 대상인 동시
에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世運日凋薄세운이 날로 쇠퇴해서
淳風久已滅순박한 풍조 이미 없어진 지 오래
誠願逝崆峒진실로 원하는 것은 공동23)산으로 가서
永與紛囂絶 영원히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과 끊고 싶네
22) 尹光顔, <山中書懷> 三, 止軒府君詩集 一.
23) 전설상의 산으로 甘肅省 또는 河南省 臨汝縣에 있다고 한다. 廣成子란 仙人이 살
고 있었고 黃帝가 道를 물은 곳이다. <莊子 外篇 在宥>
大東漢文學 (第五十七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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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谷何窈窕깊은 골짜기 얼마나 조용한가
飛泉香更冽흐르는 샘물은 향기롭고 시원하다
朝吸澗底霞아침에 골짜기 아래 맑은 공기 들이마시고
夜弄巖間月저녁이면 바위 사이 달빛을 즐기네
匪敢愛高尙감히 고상함을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適意聊自悅마음에 맞아 절로 좋구나
焉能事形役어찌 욕망을 일삼아서
風塵長蹩躠풍진 세상 오래 배회하리
24)
이 시는 <述懷>
4수 가운데 첫 번째이다. 반호는 世運이 쇠퇴하여 순박한 풍조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을 보며 은거를 꿈꾼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서인지 崆峒山으로 들어가 시끄러운 세상과 영원히 인연을 끊고 싶다고
말한다. 깊은 골짜기에서 느끼는 고요함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며 깊은
계곡에서 세차게 흐르는 샘물은 향기에 시원함까지 더한다. 아침이 되면 이
골짜기 아래를 산책하다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저녁에는 바위틈에 비
추는 달빛을 마음껏 즐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반호에게 자연은 위로와 성찰의 대상이며 나아가 지향
의 대상이다. 자신이 고상함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깨끗함이 자신의
마음과 꼭 맞아 저절로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욕망 가득한 세상을 벗
어나 자연의 품에서 자적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를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수에서는 자연이 주는 깨달음을 설파하였다.
浮雲自起滅뜬구름 저절로 나타났다 사라지니
太虛常寥廓하늘은 늘 끝없이 넓구나
榮華朝暮事부귀영화는 아침저녁의 일이니
人生貴自得인생은 자득함이 중요하지
眞性本㫟融 참된 성품은 본래 밝고 조화로우니
24) 尹光顔, <述懷 四首> 其一, 止軒府君詩集 一.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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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物何損益외물이 어찌 덜고 더하겠는가
衆愚竟難曉많은 어리석은 이들 끝내 깨닫기 어려워
滔滔枉迷惑거침없이 미혹되어 잘못되어가네
終身戀不足죽을 때까지 사랑해도 부족하니
寧復知有樂어찌 다시 즐거움을 알겠는가
邈矣陋巷子 아득하구나, 누항의 사람(顔淵)과
此意冀共繹이 뜻을 함께 풀어가길 바라네
끝없이 넓고 무한하기 그지없는 하늘에 구름이 저절로 나타났다 사라진
다. 인간의 욕망 속 부귀영화는 자연의 유구함과 비할 때 그야말로 아침저
녁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득하는 일이다. 자
신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다면 외물에 현혹됨이 적어질 것이라고 반호는 힘
주어 말한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미혹되어 만족을 모
르니 진정한 즐거움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아득한 옛날 누항에서도 즐거
움을 고치치 않았던 안연을 생각하며 그에게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였다.
반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은거하거나 세상을 등
진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가 읊은 초탈과 자적의 시들은 문집의 구성
상 창작시기를 알 수 없는 시들이 많아 세상의 오해와 비난 속에 괴로움을
토로하며 지은 시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호는 운곡서원을 철훼하여
사문난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고, 경상도 관찰사 재직 시의 부정에 대
한 문제로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았다.
그의 이러한 시가 그 당시에 창작된
것이라면 불운한 상황에 처하여 회한의 심정과 실망에서 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그가 설령 그러한 오해를 받았다 할지라도
본래부터 물욕에 연연하는 내면의 소유자는 아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3) 사회에 대한 책무
반호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관찰사를 지내며 지방행정을 살피고 목민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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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수행하여 지방 실정을 직접 체험하였다. 때문에 백성들의 고달픈 삶
을 누구보다 더 간파할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문제의식을 정확히 직시할 수
있었다. 반호의 애민을 느끼게 하는 <宿田家> 3수는 농부의 실상을 그대로
목격하고 읊은 시이다.
谷暝群鳥翔어두운 골짜기 새떼들 날아들고
驅馬緣荒岸말 몰아 거친 언덕을 따라가네
殘日射黃葉석양빛이 누런 잎새 비추고
野水鳴濺濺들 물은 콸콸 흐르네
依微數家村희미하게 보이는 몇 가구 시골 마을
草際孤煙晩풀밭가 외로운 저녁연기 피어오른다
田翁抱禾歸늙은 농부가 볏단 안고 집에 돌아와
迎客勸夕㸑손님 맞이해 저녁밥 권하며
爲言嶺路惡영동 고갯길이 험하고
昏黑未可踐날이 어두워 갈 수 없다고 말하네
今秋縱失稔올가을 비록 흉년이지만
濁醪尙堪薦 막걸리 한잔까지 권하고
欣然見衷款기쁘게 정성스런 마음보이며
野朴心所眷소박한 맘으로 대접해 주네
夜深坐土室깊은 밤 흙방에 앉아
松燈照壁穿관솔 불빛 벽 틈을 비출 때
農談共舋舋함께 농사 얘기 끊임없이 나누느라
不知行路倦여행길 피곤함도 알지 못하네
其二
生長在窮峽깊은 골짜기에서 나고 자라 그렇게
衣食寡所資옷과 식량 먹고 살기에 부족했다네
托命田疇間밭뙈기에 목숨을 의탁해
竭身徒鋤犂온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었지만
歲饑且不免올해도 흉년을 면치 못하니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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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能一日嬉단 하루도 기쁠 수 없다네
食力庶無媿힘을 다해 먹고 살아 부끄러움 없었거늘
敢怨觔骨疲 감히 온몸이 지친다고 원망하리
民業固有分백성의 일은 진실로 분수가 있는 것
聽此擭吾思 이 말을 듣는다면 내 뜻을 알겠지
嗟哉肉食人아 고기 먹는 인간들아
可以知忸怩부끄러운줄 알게나
其三
秋熟農家樂가을 수확 농가의 즐거움인데
今玆獨不贏지금 유독 남은 게 없네
積此終歲勞여기에 쌓은 한해의 수고로움
甁罌尙未盈항아리조차 채우지 못하네
往者夏秋交지난여름 가을로 바뀔 때
野田水縱橫들 논에 물이 사방을 휩쓸어서
禾黍爲沙礫곡식이 자갈밭이 되었는데
租稅還復征조세를 도리어 징수되네
公納幸盡輸공납은 다행히 전부 바칠 수 있었으나
卒歲非所營해를 마치도록 살림살이 꾸려지지 않네
長官多鞭朴관리는 매정하게 다그치고
誰當恕其情누가 그 마음을 헤아리랴
願回九重監원컨대 대궐에서 살펴봐 주시어
逃屋照光明달아난 집에도 빛을 비춰주소서
歎息聶子詩 聶子詩25)를 읊으며 탄식하노라니
使我心惸惸내 마음 근심스럽네
26)
<숙전가>의 첫 수는 우연히 농가에 머물게 된 연유를 밝히며 이야기가
25) 聶夷中의 傷田家이다.
26) 尹光顔, <宿田家> 3수, 止軒府君詩集 一.
大東漢文學 (第五十七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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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다. 반호가 영남 땅에 가던 길 날이 저물자 몇 집 안 되는 시골 마을에
서 하룻밤 유숙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의 늙은 농부는 영동의 고갯길이 험한
데다 날까지 어두워 가기 어렵다고 말하며 없는 형편에 막걸리까지 권하는
등 소박한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반호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늙은 농
부와 이런저런 농사일을 담소하며 여행의 피곤함을 달랜다.
이 평화로운 저녁 정경은 두 번째 수에서 서글픈 사연으로 급변한다. 첫
수의 서술은 이 사연의 서글픔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깊은 산속에서 먹고 살기가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농부
는 평생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온몸이 부서져라 매일같이 일을 했는데 흉
년이 든 올해 농사 때문에 기쁘지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껏 온 힘을 다
해 성실히 일하고 분수를 지키며 부끄러움 없이 남을 원망하지 않고 살아왔
다는 농부의 말을 듣고 고기 먹는 지배층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며 반호
가 일침을 놓는다.
세 번째 수에서 반호는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탄식하였다. 농사짓는
백성들의 기쁨은 바로 가을 수확이거늘 흉년으로 인해 남은 양식도 없는 데다
조세징수와 공납까지 백성들의 곤궁한 살림살이는 바닥을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지난해는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즈음에 큰 물난리를 겪어 곡식을
수확하던 밭이 자갈로 뒤덮인 재난을 겪었는데 백성들의 실정은 아랑곳하
지 않고 관리들은 매정하게 세금을 걷어가 버렸다.
빈곤과 도탄에 빠진 농촌의 현실을 무시하고 약탈까지 감행하는 잘못된 정치적 행태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다. 반호는 세금은 냈지만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농가의 현실을
누가 헤아릴 수 있느냐고 탄식하며 聶子詩를 읊는다. 그는 결국 정사를 올 바르게 펼치지 못하는 임금과 조정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며 힘없는 선비들의 안타까움을 하소연하였다. 가뭄에 읊은 <不雨>의 시에서도 “書
生徒憂慨, 爕理有巖廊 서생은 한갓 걱정하고 개탄할 뿐 섭리는 조정에 달려있네”라고 하며
관직에 있는 이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강조하였다.
반호는 임지로 가는 재종형에게 “君子恥素餐 居貧職易副 군자는 일없이
녹만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가난하게 살면 직분에 부응하기 쉽네”라고 이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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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하며 관리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모든 부정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에 가난이 답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관직에 재직 중 모함을 받아 고
난을 겪었다. 바로 이우재의 상소사건이다. <去婦辭>는 부침을 겪을 때 오
해의 답답함을 시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妾身如蒼松 이 몸은 푸른 솔과 같아서
歲寒無改易 추워져도 쉽게 바뀜이 없으리
君心比白壁 그대 마음은 흰 옥돌과 같으니
已玷尙可琢 이미 흠난 부분은 오히려 다듬을 수 있네
君心亦何愆 그대 마음 또한 무엇을 탓하랴
新寵間故昔 새로 총애 받는 이 옛 사람 이간질 했으니
陋質諒多尤 바탕이 누추하여 실로 허물 많아
理固宜放逐 이치상 쫒겨남이 마땅하니
却恨由妾故 한스러운 것은 나로 인해
反以傷君德 도리어 그대의 덕이 상하였네
不怨恩情絶 은정이 끊긴 것은 원망하지 않으나
但恐君心惑 단지 그대 마음에 의혹될까 두렵네
衷腸庶一訴 충심으로 한번 하소연하려고 하노니
不敢顧形迹 감히 형적을 돌아보지 않으시려는지
懼君不見察 두려워라 그대가 돌보지 않을까
讒口重交謫 참소하며 거듭 헐뜯는 말
願君愼令德 그대는 훌륭한 덕을 이루소서
賤妾何足惜 천한 이 몸 어찌 아끼리
27)
무고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버림을 받았지만, 반호는 자신의 변하지 않
는 마음을 밝힌다. 비록 약간의 흠결이 있더라도 고칠 수 있기에 탓할 마음
이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바탕이 누추하여 허물이 많은 것이니 오히려
쫓겨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자신 때문에 누가 되었음을 부끄러워하고
27) 尹光顔, <去婦辭>, 止軒府君詩集 一.
大東漢文學 (第五十七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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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한다. 다만 실제의 형적을 돌아보고 참소하며 헐뜯는 말을 제대로 살펴
보지 않을까 걱정하다. 반호는 <去婦辭>를 통하여 자신이 당하는 곤액보다
이 일로 임금의 덕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드러내었다.
반호의 생애를 보면 정조에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관직 생활을 하
는 중에 영달을 누리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
러나 그는 소론 가문이라는처지 때문에 정치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세속을 벗어나 맑
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며, 자적하려는 의지를 늘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잘
못된 정치로 인한 백성의 상처와 그 사회적 책무에 대한 사명감으로 인하
여, 관리로서 자신의 책무와 신하가 된 자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반호
의 시는 그의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결론
본고는 아직 학계에 공개되지 않은 반호 윤광안의 문집 지헌유고 에 수
록된 시를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반호는 소론계의 한 축으로 노성에 세거하였던 파평윤씨 가문의 후예이
자 정조의 초계문신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반호의 관료
생활은 소론이라는 입지로 인하여 고난의 연속이었다.
순탄치 못한 삶 속에서도 그는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내면이 시세계에 잘
구현되어 있다. 시세계의 주제 의식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靜觀의 興趣와 存養이다. 반호는 시적 대상에 내재한 본질을
직관하여 심미적 흥취의 경험을 표현하고 그 정신적 상태를 작품 속에 투영
시켰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겼으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
하는 모습을 시로 표출하였다.
또한, 반호에게 자연은 <精衛>라는 시에서 보듯 탐미의 대상뿐만이 아니라 깨달음과
성취하고자 하는 造道의 대상이다. 사물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 이 논문은 2018년 11월 12일(월요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8년 11월 24일(토요일)부터 12월 10일(월요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8년 12월 11일(화요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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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超脫의 境地와 自適이다. 반호는 속세의 삶에 지쳐 있었다. 그
래서 잠시 찾아간 맑고 깨끗한 자연의 모습에서 그는 단정하게 살고자 했던
본연의 모습을 깨우치며 청정함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소중함에 감동한다.
그리고 반호는 世運이 쇠퇴하여 순박한 풍조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을 보며
은거를 꿈꾸었으며, 비록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갈망을 시에 표
현하였다.
세 번째는 사회적 책무이다. 반호는 정조에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 영달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소론 가문이라는 처지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세속을 벗어나 자적하려는 의지를 늘 품고 있었지만 사회적 책무에 대한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농가의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그 문제해결의 책임이 위정자에게 있음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곤욕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위정자의
덕에 손상이 됨을 하소연하며 신하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반호 윤광안의 시는 안대회가 말한 18세기 한시의 지향점인 전통
의 규범과 질곡에서 해방, 개성의 존중과 다양성 추구, 진솔한 표현·사실적
표사와 소재의 확대라는 새로운 흐름과 접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28) 그러
나 도문일치라는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 수작들이다.
아울러 소론계문학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특히 소론의 다른 계열보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노성지역의 파평윤씨 가문의 문학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
미가 있다. 다만 아직 가문의 다른 인물들의 연구가 미진하여 전반적인 경
향성을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28) 안대회, 「18세기 한시사 서설」, 한국한시연구 6, 한국한시학회, 1998, 242~252
면 참조.
大東漢文學 (第五十七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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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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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光顔, 止軒遺稿 ,
李裕元, 嘉梧藁略
朱熹, 朱文公文集
김영주, 조선후기 소론계 문인의 문학론 연구 ,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다께우찌도시오, 안영길 외 역, 미학예술학사전 , 미진사, 1993.
안대회, 「18세기 한시사 서설」, 한국한시연구 6, 한국한시학회, 1998.
최두진, 「정조대의 초계문신 교육제도 연구」, 부산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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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Banho Yun Kwangan(盤湖 尹光顔)’s Poetry
Lee, Myoung-hee*
29)
Banho Yun Kwangan(盤湖 尹光顔, 1757~1815) was a chogyemunsin
(抄啟文臣) who was a favorite with Jeongjo as a man of soron. Due to the
difference of political standpoint, he was misunderstood, but embodied
pure and clean poetic world. This thesis examined his poetic world from
three aspects.
First is Interest(興趣) of jungkwan(靜觀) and jonyang(存養). Banho
intuited essence of poetic object, expressed experience of aesthetic
heungchi, and reflected the spiritual status on the work. He enjoyed the
nature as it was, recognized its appearance, and expressed loved
appearance by poem. In addition, as a poem <jungwi(精衛)> shows, the
nature is not only aesthetic object but also realization and illuminance to be
achieved for Banho. Goods are also an object of reflection.
Second is the stage of transcendence. and Self-adjustment(自適). Banho
realized original appearance that intended to live neatly from the
appearance of the pure and clean nature that was visited for a while after
tired by secular society and was touched by the value of nature brought by
cleanness. And, Banho did not practice, but dreamt retirement while
watching the world that sewoon(世運) is declined and naive tendency is
disappeared and expressed the longing in poem.
* Lecturer,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mailto:audong7@hanmail.net.
Key Words Banho Yun Kwangan( ), Chinese : 盤湖 尹光顔 poetry, Interest
(興趣) of jungkwan(靜觀), jonyang(存養), the stage of
transcendence, Self-adjustment(自適), social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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