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가시는 하나님
신 1: 19-33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신명기란 책은 영어로 Deuteronomy라고 하며 그 뜻은 ‘두 번째의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할 때, 신은 새로운 신(新)도, 아니고 귀신(神)도 아니고 거듭 신(申)자를 씁니다.
그래서 중국어 성경에는 신명기를 재명기라 합니다.
거듭, 재차 명령하신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둔 새로운 세대, 출애굽 2세대들에게 다시 한 번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말씀입니다.
특히 신명기 1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가데스 바네아까지 행군한 출애굽 1세대들이 하
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했던 쓰라린 사건을 상기시키는 내용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망한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여러분들의 부모들이 광야에서 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불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해 몰락한 어려분의 아
버지, 어머니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32절에 보면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안타까워 하
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무슨 일을 믿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는 열 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25절입니다.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회보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
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그런데 열 정탐꾼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28절입니다.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민수기 13:33에 보면,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
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그 부정적인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까지 인도하여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
우리는 결코 가나안에 올라갈 수 없다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29-31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중점적으로 볼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
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
셨느니라.”
무서워 말라! 두려워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 30절과 33절에 두 번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애굽에서는 너희 보다 앞서 가서 싸웠다!
광야에서는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를 안아 이곳까지 왔다!
내가 계속해서 앞서 가서 싸우고 너희를 안고 갈 것이니 믿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출애굽의 1세대들은 안타깝게도 불순종 하고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수없이 약속하지만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
는 여러분은 아닙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런데 내가 조금만 어려워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낙심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나에게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절대 신앙! 절대 믿음을 가
져야 합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어떤 절대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복음 송 가운데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은혜스러워 많은 성도들이 애송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에는 하나님이 ‘나의 등 뒤에 계신 분’이 아니라 나를 ‘앞 서 가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나의 뒤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주는 정도의 소극적인 분이 아니시라 나를
앞서 가시는 적극적이시고 주도적이신 하나님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뒤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를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 보다 그냥 뒤에서 계시다가 어려울 때 도와만 주
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내가 앞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주도 할 테니 하나님은 지켜보시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만 도와주시라는 것
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이 이런 신앙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음 가는 전혀 모르는 길이라도 지도나 도로 표지판이나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길을 잘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도 해맬 때가 많습니다.
도로가 자꾸 변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업그레이 시키지 않으면 네비게이션도 해맵니다.
그런데 가장 쉽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하게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이끌어주면 더 쉽고, 안전합니다.
그래서 에레베스트와 같은 위험하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산을 잘 아는 현
지인들, 셀파를 고용해서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가장 좋을지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앞서서 나를 인도하신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이 되겠
습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사랑의 교회를 담임하셨던 옥한흠 목사님이 지난 목회 30년
그 뒤안길을 정리하여 책으로 내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고향이 거제도인데, 그 곳 가난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돈 없어도 공
부할 수 있는 해군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낙방을 했습니다.
멀쩡한 몸인데, 신체검사에서 고혈압이라는 판정이 나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어린 학생인 옥 목사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거제도를 떠나 뭍으로 나와서 공부하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필답고사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
라 젊은 청년의 몸이 고혈압이란 판정을 받아 떨어졌으니, 앞날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리는 절망만이 가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분이 그 때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오늘의 자리로 인도하시려고 앞서 가셨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심을, 앞서 가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싸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왜 우리 앞서 가십니까?
장막을 칠 곳을 찾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
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여기에 ‘찾으신다’ 라는 말은 ‘이리저리 다니다’, ‘정탐하다’, ‘자세히 조사하고 살피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맑은 앞서 가서 물과 푸른 풀밭을 이리저리 다니며 살피며 찾듯이 우리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곳,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을 찾으신다는 말
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애굽의 바로와 싸우셨습
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아무 무기도 군대도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기 위하여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퍼부으셨습
니다. 그러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어디로 인도했느냐 하면 홍해 바다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다 섬멸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유인책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바로는 군대를 총 동원을 합니다.
군대만 동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노예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홍해 바다가 놓여 있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꼼짝없이 잡혔다고 생각했
습니다.
홍해바다 앞에서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말합니다.
출 14: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군사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습
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도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어떤 단어겠습니까?
30절 ‘이제도’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거에만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시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까지도 나를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 주신 하나님이
셨습니다.
누구와 싸워 주셨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원수인 사단과 싸워주셨습니다.
신앙의 방해되는 모든 세력과 싸워 주셨습니다.
싸워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나를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싸워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도 나를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한 해 동안도 나를 앞서 가시어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은 껍데기
신앙에 불과합니다.
과거에 역사한 하나님만 추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신앙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나를 앞서 가시는 하나님! 앞서 가시어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를 찾으시는 하나님!
그곳으로 나를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곳에 원수가 있다면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전에도 나를 위해 싸워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이제도 나를 위해 싸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한 해를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30절에 보면 “광야에서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
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길을 가다가 조금만 힘들면 그냥 두 팔을 벌립니다. 안아 달라는 사인입니다.
부모들은 아이의 사인에 안아줍니다.
아이를 안아주는 아빠의 팔은 그저 단순한 두 개의 팔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안아주는 팔에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아이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팔은 아이의 인격과 삶을 형성하는 인생의 버팀목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주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아서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40년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아주셨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내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40년 내내 40년 내내 불과 구름기둥으로 이끄셨습니다.
40년을 한결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40년이 아니라 100년이라도 그 백성들을 안아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주일만 안으면 될 걸 40년이나 안으셨습니다.
여러분! 안은 사람이 더 힘듭니까? 안긴 사람이 더 힘듭니까?
안긴 사람보다 안은 사람이 훨씬 더 힘듭니다.
광야 길을 가는 백성들보다 하나님이 더 힘든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안아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힘들어 할 때, 위험할 때, 아플 때, 모른척하거나
도망가겠습니까? 악한 부모라고 할지라도 품에 안습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가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거나 모른 체하지 않고 안아주십니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신 것은 저와 여러분 모두를 다 안으시려고 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품고 구원하시려고 그렇게 팔을 벌리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력하여, 내가 고생 고생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안으시고 언덕을 넘었고 강을 건넜습니다.
내 지혜,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순간순간 안으셔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병들어 죽을 것 같을 때에도, 사업이 망하여 인생이 끝난 것 같을 때도,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외면할 것 같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시지 아니하고 그때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안아서 품어주시고 보호하시며 도와 주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위험할 때마다 나를 안아 이곳까지 오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올 한해에도 위험의 순
간 순간마다 나를 안아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앞서 가시어 안전하고 풍성한 곳을 찾으시고, 그곳으로 인도하시고, 원수가
있다면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험이 있을 때마다 순간순간 안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따르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보다 앞서 가려고 하지 말고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길인지 잘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따르는 것
입니다.
올 해 하나님 보다 앞서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앞세워 가십시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항상 하나님이 우선이 되십시오.
여기에 한 해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작년의 한 해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올 한 해는 이런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있는 한 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의 축복과 인
도하심이 있는 축복의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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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해 첫 날 그리고 첫 주일에 2012년 한 해를 내다보고 주신 말씀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나의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를 위해 싸워주시며 이제도 아들을 안음같이 나를 안으시고
광야같은 세상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내 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감사함으로 담대함으로 나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