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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영일 정씨) 본관(本貫): 영일(迎日) 시조(始祖): 지백호(智伯虎): 정습명(鄭襲明),정극유(鄭克儒) 유래(由來): 정씨(迎日鄭氏)는 신라(新羅)의 전신(前身)인 사로(斯盧)의 육부촌(六部村) 중 취산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가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봄 유리왕(儒理王)으로 부터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賜姓)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 받은 것이 시초가 되며, 그의 원손(遠孫) 종은(宗殷)이 신라조(新羅朝)에서 간관(諫官)으로 직언(直言)을 하다가 인동(仁同) 약목현(若木縣)에 유배된 후 후손 의경(宜卿)이 영일(迎日)로 이거(移居)하여 호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영일정씨 (迎日鄭氏)로 시적(始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 조상님 들이 남긴 가훈.
정몽주 정재두 ...........등
당신의 유명한 선조들이 남긴 주옥 같이 귀한 말씀 가운데서, 당신과 상담하여 가훈을 정해 드립니다.
당신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귀하고 아주 특별한 가훈이 될 것입니다. ◎보기 鄭齊斗(정제두)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서울에서 출생해 어려서는 이상익(李商翼)에게 수학하였다. 몇 차례 과거 시험에 실패한 뒤 24세 때부터는 과거 공부를 그만둔 다음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74세에는 사헌부대사헌 · 이조참판에 임명되고 그 뒤 성균관좨주 · 사헌부대사헌에 임명되었다. 78세 때는 이정박(李廷撲)이 조정에서 그가 양명학을 한다고 배척했으나 영조의 보호를 받았으며, 80세에 의정부우참찬, 88세에는 세자이사(世子貳師)로 임명되었다. 鄭齊斗(정제두)의 말씀 |
출처: 출처 :靑潭(청담) 서예 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 독수리 |
첫댓글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 가 저의 집 가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