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1969년의 한발과 흉년, 그 참담했던 기억의 몽타주
∥개암 김동출∥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과 불볕더위가 일상생활을 짓누르는 요즘, 문득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의 뜨거웠던 1969년 여름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고 지내도 지독한 더위에 여름나기가 힘겨운 지금이지만, 그때는 타들어 가는 논밭을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우던 농부들의 마음이 더 뜨겁고 간절했다. 현재의 더위가 생활의 불편을 가져온다면, 과거의 더위는 삶의 터전을 위협하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태워버리던 시련이었다.
화자는 1955년 5월, 거제도 산골짜기 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비록 가난했으나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전형적인 시골 가정에서 어른들의 듬직한 사랑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내 성장기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모질고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이어진 ‘3년 연속 한발(旱魃)’의 기억이다.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 남부 지방과 남해안 도서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거대한 재난을 겪고 있었다. 특히 고향 거제도를 비롯한 섬 지역은 지형적 특성과 열악한 농업 기반 탓에 생활용수는 물론 농업용수마저 바짝 말라붙었다. 우물과 계곡물과 고갈되어 주민들은 물 한 모금을 구하려 수 킬로미터 떨어진 샘터를 헤맸고, 정부와 해군에서 보내오는 급수선(給水船)과 급수차에 겨우 목을 축였다. 벼 모내기 철부터 물이 부족해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작물은 피기도 전에 시들어 갔다.
다행히 고향 집은 높은 산 아래 터전을 잡으신 조상님 덕분에 청석 틈에서 사시사철 솟아나는 자그마한 ‘새미(샘)’가 있어 가뭄이지만 식수 걱정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그 모진 가뭄이 기승을 부리던 1969년,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젖조차 넉넉히 먹이지 못해 고생하며 자란 막내를 볼 때마다 화자는 아직도 그 뜨겁고 메말랐던 시절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1969년의 태양은 마치 온 세상을 푹푹 녹여버릴 듯 무섭게 내리쬐었다. 당시 큰고모님 댁에서 기숙하며 통영 T 중학교 2학년이었던 화자는 여름방학의 설렘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남동생과 함께 뙤약볕이 쏟아지는 들녘으로 나서야 했다. 우리 집의 논밭은 시루봉 아래에 펼쳐진 ‘부로매, 들판 위쪽에 있었다. 좌우로 열댓 마지기의 다랑논이 있었고, 재 너머에는 서너 마지기의 산밭이 전부였다. 농사 적기에 비만 자주 내리는 해에는 양식 떨어질 걱정은 없는 터전이었으나, 유난히 모질었던 그해 한발은 정든 들녘의 피와 살을 바짝 말려버렸다. 어린 내 어깨에 두레박은 더없이 무거웠다. 하지만 웅덩이 깊은 곳에 남은 물이라도 한 바가지 더 퍼 올리기 위해 젖 먹는 힘까지 짜내야 했다. 그러나 가득 퍼 올려 흘려보낸 물은, 신음하는 논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스며들고 말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한없이 사라지는 물길을 바라보며, 타들어 가는 농심(農心)과 함께 어린 내 마음에도 차마 말로 다 못 할 안타까움이 눈물처럼 고이곤 했다.
한 달간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통영으로 발길을 돌릴 때, 뙤약볕에 그을린 채 피골이 맞닿은 가족들을 뒤로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이라곤 삼시세끼로 어른도 아이들도 멸치액젓에 고구마 줄기를 묻혀낸 것과 온 가족이 밤을 새워 떠 모은 냉수 한 대접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 극심했던 가뭄은 1969년 7월 중·하순에 접어들며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끝났다. 가뭄과 물난리로 이어진 흉년이 휩쓸고 간 집안 사정은 어린 소년의 진로마저 흔들어 놓았다. 통영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해상교통이 편리한 부산의 명문 고교로 진학해 꿈을 펼치려 했으나, 흉년 뒤끝의 가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충무(통영)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귀향하여 고향의 인문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 뜻을 다 펼치지 못한 것을 못마땅해하셨지만 도리가 없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서 뒤돌아보니, 그 시절에 흘린 땀방울과 아픔은 내 삶의 가장 깊은 고랑마다 그리움과 스승이 되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를 키운 어르신들은 기근에 든 그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훗날 대학에 입학하여 육지의 끝없이 넓은 들녘을 비로소 처음 구경했을 때, 화자는 그 작고 험한 시골 깡촌에서 대를 이어 땅을 일구며 살아오신 조상님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또한 교직에 들어서 사량도라는 섬 학교에서 3년간 근무할 때는 청소년기의 그 기억 덕분에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오늘도 무더운 여름 햇살이 창가를 두드린다. 땀 냄새 물씬 풍기던 고향의 그 뜨거웠던 여름날, 그리고 온 가족이 한마디 불평도 없이 가뭄을 함께 견뎌내던 그 모질고도 숭고했던 인고의 시간이 뇌리를 스친다. 그 시절의 시련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함을 알기에, 타들어 가던 그해 들녘을 향한 나의 기억은 아련하고도 숙연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2026-08-01
첫댓글 =그 시절에 흘린 땀방울과 아픔은 내 삶의 가장 깊은 고랑=
마음속 괄호를 열게 합니다
숭고함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같습니다. ㅡ온 가족이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가뭄을 견뎌내던 시간
감사합니다.
지금같이 잘 사는 세상이 오리라고는 꿈도 못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