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 놀러가다
-장날 전통시장을 구경하려고 길을 나서다
1
본격적인 여름철로 들어선 걸 몰랐다.
바닷가에 캠핑족이 늘고 있는 것을 예사로 보았던 것이다. 특히 주말을 이용해 낚시나 캠핑을 즐기기 위해 바닷가로 몰려들고 있는데, 캠핑카, 텐트, 낚시대 등의 갖춘 장비들이 최근 몇 년 새 몰라보게 세련되고 실용적으로 변모했다. 색상이며 크기가 우선 달라졌다. 그러다보니 고비사막 몽골초원지대의 유목민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대난지도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대난지도로 들어가는 도로를 찾지 못해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대신 바다를 보려고 해안가로 접근하는데 근처 솔숲 일대가 은밀하게 친 텐트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우선 차들이 폐가로 변한 근처 일대의 음식점 주변에 너무 많이 주차되어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인데 저만치 파란 바다가 보이고 소나무 숲이 조금씩 드러나자 울긋불긋한 텐트와 아침을 준비하는 캠핑족들이 하나 둘 보이더니 일대가 아예 텐트촌이다.
낚시광 하나는 벌써 부지런하게 낚시 장비를 움직이며 일대 바닷가를 뒤흔들고 있다. 방파제를 따라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많다. 이들은 지난 금요일 저녁이나 어제 와서 텐트를 치고 하루 이상을 꼴딱 이곳에서 보낸 도시인들임에 틀림없다.
이른 아침부터 현지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환경운동 조끼를 입고 텐트마다 돌아다니며 떠나기 전에 쓰레기를 꼭 수거해 가기를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어머니처럼 당부하며 다니고 있다.
장고항도 캠핑족들의 활약으로 별반 다를 게 없다. 제방 주변에는 뜨거운 여름 태양을 가려 줄 어떤 자연적 혜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텐트는 제자리를 지킨 채 저마다 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2
당진의 진은 나루터를 말한다.
나루터가 있었던 만큼 많은 물건이 드나들던 곳이라 예부터 이웃한 예산과 서산에서(자체 장이 있음에도) 당진까지 장날 장을 보러 올만도 할 만큼 규모가 적잖이 크다.
오이, 노각 등을 내놓은 채소 코너부터 바나나 한 송이 삼천 원으로 시중 마트보다 훨씬 싸고 경쟁력 있는(?) 가격대로 승부하는 과일코너(수박은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어른 머리통 두 개만한 크기의 가격이 단돈 만이천원으로 주차한 곳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사지를 못해 너무 아쉬웠다), 어물전, 말린 생선코너, 견과류, 모종이 많은 꽃코너, 족발가게, 벌써 벌려놓은 테이블에서 한 잔 걸치게 만드는 옛날 닭튀김집, 실제 산 닭을 파는 코너, 닭강정, 전통과자, 뻥튀기, 호떡과 풀빵, 설탕 발라먹는 천 원 핫도그, 옷가게, 이제 막 장날에 처음 장사하러 온 듯한 새댁이 파는 마늘과 양파 코너, 집에서 사용할 잡다한 도구들을 늘어놓은 코너, 초등학교 다닐 적 보았던 사회며 국민생활 같은 교과서도 나와 있고, 떡 가게, 밑반찬, 온갖 젓갈류 가게 등이 긴 길가의 양 옆으로 포진해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아내는 이리저리 맛보기로 내놓은 잡다한 과자나, 젓갈, 밑반찬들을 장사치들이 권하는 대로 주섬주섬 얻어먹는 맛에 신이 났다. 먹으며 벙긋벙긋 웃는데 뒷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나에게도 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노각과 오이로 재미를 본 아내가 다음에 또 오자고 한다. 주차 문제로 무거운 걸 들고 한참 낑낑대며 걸었는데, 다음에는 장보기에 도가 튼 아주머니들처럼 바퀴가 달린 짐받이를 가져와야 할 듯싶다.(그러면 조만간 어른 머리통 두 개만한 수박도 살 수 있을 것이다)
3
‘당진 필경사’는 우리의 근대 초기 문학작품에 대해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소설<상록수>의 작가인 심훈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자 문학관이다.
당진에서도 외진 데라서 그런지 방문객이 하나도 없다. 덩그런 주차장을 지나 1층의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학예관실이라고 붙여놓은 연구실에서 남녀가 진지하게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 휴일임에도 대단히 학구적인 분위기다.
선생이 젊은 날 모았을 것 같은 불란서 여배우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들이 눈길을 끈다. 주권을 상실한 조국의 불운을 등에 업고 해외에서 공부를 할 때 영화가 환상을 심어준 모양이다, 선생은 귀국해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에도 뛰어든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그 흥분으로 선생은 민족의 억눌린 압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 세계 사람들아! 이래도 우리를 약한 민족이라고 하겠느냐.
다른 많은 문학자와 예술가들처럼 역사가 처한 어떤 상황들은 선생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나라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일제에 의한 억압적 일상은 선생으로 하여금 독립운동과 민족을 각성시키고자 계몽운동에 힘쓰게 함으로서 <상록수>와 같은 농촌계몽 소설이나 영화를 제작하게 만들었고 농촌 봉사활동이나 계몽교육에 투신하게 만들었는데, 그러고 보면 선생은 예술가이자 애국투사였던 것이다.
4
삽교천 해양공원은 전반적으로 뜨겁고 그래서 더웠다.
갈매기들조차 바다 수면 위로 날지 않고 제방 아래 옹기종기 모여 더위를 식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조그만 광장에서 솟아나오는 물 분수에 모여들어 놀았고 놀이기구가 비치된 놀이동산은 대신 한가했다.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인 우리는 더위에 지쳐 허기가 빨리 왔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만든 유부초밥과 준비한 과일, 삶은 감자로 더위를 식혀줄만한 파라솔 아래에서 얼른 점심을 먹는다.
아무래도 바다는 이른 아침이나 저물어가는 초저녁에 방문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얼른 떠날 채비를 하고 나온다. 나오는 길 한 모퉁이 짬뽕 집 앞에는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한참이나 서서 기다리는 도심에서나 볼만한 풍경이 모여든 사람들 속으로 보인다.
*방문코스 : 집(천안) - 대난지도 – 장고항 – 당진전통시장 – 필경사 – 삽교바다공원 – 집(천안)
(20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