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달이 흐르는
이승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자취하다가
엄마가 보고 싶어, 달밤에 길을 나섰지
이십 리 산길을 걸어 집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지
그 옛날 긴 담뱃대 불 반짝이며
성내에 갔던 할아버지가 걸어오셨던 바로 그 길
부싯돌 바위 근처에 이르렀을 때
꼬리 여럿 달린 여우가 흙을 퍼부었다지
도깨비 전설도 알고 있는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지
산 위에서 비취는 달빛 그림자가 무서워
고개 잔뜩 숙인 나는 엄마만 생각하며
그 길을 지나왔던 거지
허겁지겁 집 문 앞에 닿아
박꽃이 흰 연기에 눈이 매워 미끄러워 떨어질까
이엉 매듭을 꼭 잡던 것처럼
안도의 늦잠에 들었던 거지
그 옛날이 마치 오늘인 것 같은
서리 덥힌 지붕을 꿈으로 꾸고 난 뒤
손가락 마디는 시려 오고
첫댓글
오래 전, 먼 시절 이야기지만,
그런 사실은 틀림없이 있었기에
기억 창고에서 꺼내 써 본
이승권 시인의 시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달빛에 드리워진 제 그림자에 무서워하며
엄마만 생각하면서 지나온 길..........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