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장> 겨울호
이 계절의 주목작가
시인 김 정 아
경북 상주 출생.
2014 계간 《문장》 신인상 등단.
대구시공무원문학회원, 시열림회원, 문장작가회원, 형상시문학회회원
<발표작>
나의 마들렌 외 4편
거울 속에서 울컥한 그녀
거울 밖에서도 울컥한다
고구마를 보면 목이 메여오는 이유, 그런 이유는 햇살 쏟아지는 오후에 있다. “별일 없나요?” 볼을 스쳐 동봉해 보내는 안부가 붉은 핏줄 같은 넝쿨로 마디마디 잎 흔들어댈 때 밭고랑은 뜨겁다. 발등도 뜨겁다. 터질 듯 탱탱한 살결 뒤로 채 마르지 않은 움푹한 상흔이 나를 울컥거리게 하는 것이다. 입에 넣은 고구마가 목구멍 틀어막기 전에 나는 얼른 시어버린 김치를 입 속에 밀어 넣는다. 비밀 스러이 숨은 하나의 점이 수줍은 웃음이라고 햇살은 나를 다독여주고 노을 속으로 떠나갔지만 수증기를 빠져나와 한 겹씩 벗어가던 몸뚱아리. 붉은 고구마는 내 영혼의 가장 보드라운 살점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도 몰래 손끝이 닿는다. 근질거리는 화인에
우연입니다
당신의 손이 검은 가죽 지갑을 열고 나와
내 지갑 속으로 들어옵니다
반짝이던 내 지갑이 더욱 반짝이는 걸 보니
반가운 인연인가 봅니다
당신의 직함과 이력, 전화번호, 팩스, 이메일
압착되었던 방문이 열리고
당신은 우연이라는 말로 브리핑을 마감하는군요
찢어지지 않는 특수재질의 코팅 앞에서
내 손아귀는 빠르게 절망하는 법을 배웁니다
오래두면 캄캄할 것 같은 지갑 속에서
황금빛 배경 가진 그대 이름 세 글자
내게 무슨 소용이 될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간택되어진 순간 당신의 손을
서랍 이라는 감옥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서랍이라는 감옥에서
얼마나 더 머물다가
어디로 떠날지는 나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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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축적蓄積의 시간
집어등을 켜면 손끝 주낙에
걸리어 올라오는 5, 7, 10 소식들
금박 얇게 두른 청첩장
하얀 레이스 치장한 초대장
두 개의 엽서 위에 부고장 하나 올려둔다
폭죽을 터트릴 경사이거나
안개에 젖은 왜가리의 발로 걸어들 늪의 조문에도
몇몇의 쓸쓸한 이름들은
잊지않고 꼬박꼬박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맹목(盲目)의 손끝으로 축 결혼과 부의를 번갈아 쓰고
문득 날아온 수시분 고지서에
부메랑이라 믿는 마음을 봉투 속에 채워 넣지만
이젠 더 이상 다치지 않겠다던 나는
지금 서툰 셈을 보태는 중
만기 없는 저축에 가입하셨다고
얼마 뒤 습관처럼 문자는 도착할 테고
쓸쓸한 입맛을 다시는 나는
무미無味의 주낙 바늘에 찔린 입술이
상하지나 않았는지
위 아래 입술을 번갈아 당겨 물어본다
전국노래자랑
매력 있어 보이는 생의 무게는 얼마일까요
일요일 낮 12시30분
군집을 27, 49, 75, 아니 60으로 읽는다면
내가 매긴 숫자의 얼굴들은
가늠할 수 없는 가면놀이인가요
내지르듯 악을 쓰는 이
그만의 한(恨)인양 처절한 사연을
감은 눈으로 토해내는 이 다음에 등장한
어떤 이의 마스크는 얼마나 신선할까요
음색은 그윽할까요
다만, 내가 발견한 그들의 공통분모는
제 그릇만큼 최고의 열연을 하고 있다는 것,
막이 내리고 나면
저 어색한 치장의 껍데기 훌훌 벗어던지겠지만
잠시 접어둔 속앓이로 새운 긴 밤이거나
혹은 부풀도록 끌어안았을 희망은 갈맷빛 아닐까요
몽글몽글 어지러운 물풀 헤치고 나온
작은 금붕어 한 마리, 음악조차 이내 소음이 되어버린
난해한 미스테리로 야위어가는 휴일
나의 유영은 저들 이마에 새겨진 숫자로
마감하는 일요일 그 붉음
풍선아트가 걸려 밝던 무대는
전국 어딘가로 또 이동되고
여닫는 기억
기역을 그은 손가락이 허공에서 희다
병실 작은 유리창 너머로
황달의 눈동자 파리한 얼굴
침대 옆에 휴대폰을 놓아둔 그가
기역자를 그으면 열릴 거라 한다
‘기역’을 앞 둔 그의 치아가
저리 흰 빛을 띠었던가
어떤 은밀함에서도 한 발짝 멀어진 듯한
그의 목소리는 난데없이 쟁쟁하다
“죽고 사는 건 오직 신만이 알겠지요”
라는 대목에서
그를 지키느라 잠근 그의 휴대폰은
아아아 아픈 기억자의 비명이다
병실 문이 열리고
급히 굴러 들어온 냉동 침대가
기억에 넘어진 옆 침대의 환자를 실고
열어놓은 기역의 문을 닫고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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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통한 존재 들여다보기의 애틋한 현실서정
글<박윤배. 시인>
시를 쓰고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되겠지만 근래 좋고 나쁨의 시를 분별함에 있어 시란 대게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단에서 여러 상을 받고 나름 권위와 시력을 지닌 시인들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적 능력 또한 거기서 거기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시란 언어라는 범주 안에서 언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뛰어난 비유와 묘사를 했다고 한들 그게 뭐 대수인가. 잠시의 마취제에 불과한 언어의 희열일 뿐이다.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시는 어쩌면 가장 진솔한 자기 삶의 방증에서 오는 표현일 때 감동의 깊이가 생겨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단 시를 넘어 시인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경우가 좀 달라지는데 지나치게 방만 방탕한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으로 하며 남이 피해 입지 않고 문단이라는 집단 안에서 “내가 낸데” 라는 권위적인 나쁜 행실을 보이지 않고 주변인으로부터 문인 혹은 시인답다는 얼마간의 칭송이 있다면 시인이 심혈을 기울인 시는 조금은 더 빛나게 되리라고도 생각해 본다.
2014 계간 <문장>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 입문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아 시인은 그래도 시인답다. “답다”는 말은 시를 잘 쓴다는 말이 아니라 시인다운 인간미를 갖추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인간미가 지나치면 보수적 사고에 이르러 답답한 시를 쓸 수 있을 수는 있겠으나 본인의 시에서 만큼은 자유로운 발상의 전환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걸로 보아 앞으로 얼마의 시작 활동에 익숙해지면 탄탄한 일가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대개의 시인들이 등단작 수준을 능가 하지 못하는데 비해 등단 이후 꾸준하게 발전적 변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의 마들렌> <우연입니다> 등의 발표작은 문단에서 좋은 평을 받는 등 지속적인 시적 고민이 좋은 결과물을 낳고 있어 본 <문장>지 출신 작가로 매우 주목되는 시인이다.
이번에 등재하는 그의 시편들을 보면 발표작으로의 <나의 마들렌>은 안과 밖의 동일성에 미학을 과자 굽는 행위를 바탕에 두고 고구마라는 소재의 관찰과 고구마를 통해 얻어낸 직관을 여성성의 본질적 에로티시즘에 알맞은 온도를 가하면서 마들렌으로 굽는 과정을 형상화 하고 있다. 목이 매이는 이유가 그러하고 신 김치로 다스리는 본능이 그러하고 고구마가 드디어 몸 안에 마들렌이 되어 들어가서 영혼을 어루만지고 있음에 시인의 손끝은 화인에 닿는 과정을 비교적 아름답게 “별 일 없나요” 던져진 안부에 수줍은 행위로 화답하고 있다. 또 한편의 발표작 <우연입니다>는 일상에 특히 공직에 있는 본인으로서 늘 접하는 명함, 그것도 아주 질긴 종이에 금박 글씨쯤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기록한 명함을 받고나서의 짧은 감정을 크로키 하듯 빠르게 시말로 포착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별것 아닌 명함 한 장을 놓고 그 명함을 살아있는 대상으로 의인화 하면서 내 지갑을 통과해서 서랍이라는 감옥 속까지 밀어 넣고야 만 내 자신의 결벽 혹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묻어있다. 동시에 자신을 알아 달라고 다가온 명함을 소용이나 가치로 무심코 판단하는 현대 사회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삭막한 현실을 그 현실 속에 자신을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모습으로 환치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우는 역설의 미학이 돋보인다.
그의 신작들도 알고 보면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물고 있다. <축적의 시간>은 부의금 축의금들이 5만 7만 10만으로 나누어지고 그런 초대장 부고들이 책상위에 몇 개씩 놓여있는 현실이 시가 되고 있다. 경사는 터트릴 폭죽으로 묘사되고 죽음은 안개에 젖은 왜가리의 발로 묘사된다. 보내는 금액이 부메랑이라고 그는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얼마를 보내야 할지 서툰 셈을 하는 시인의 모습이 시안에 녹아 있다. 현실이기도한 상황이 아름다운 시가 된다고 누가 생각 했겠는가. 하긴 셈이 서툴기 때문에 그는 시인이고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또한 시인이다. 무미의 주낙에 찔린 입술이 상하지나 않았는지 거울을 한번 살피는 게 시인이다. 신작<전국노래자랑> 또한 일요일 낮에 만난 티비 속에서의 엉뚱한 생각을 써내려간 시이다. 출연한 사람의 얼굴과 나이를 비교하는 시인의 면면이 일반인의 평범한 일요일 오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르는 노래의 창법, 표정 또한 그 사람의 살아온 연조를 가늠하는 주관적인 기준이 되기도 하는 노래자랑, 아마도 장수하는 이 프로그램의 특징 또한 시인의 일요일 취미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낮선 얼굴들의 생에 무게를 환치 한다. 그리고는 시인은 자신이 노래를 즐기는 동안 어항의 금붕어를 방치하고 있음에 잠시 우울해 한다. 그렇게 일요일은 마감 되고 또 다른 지명의 지역으로 옮겨갈 이동무대에 대해 생의 의미를 되짚는다. 또 다른 신작 <여닫는 기억>은 한글 모음의 “ㄱ” 을 기억하며 쓴 시이다. 지인으로 추정되는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무수한 기억을 저장해 둔 휴대폰 암호 문자가 "ㄱ“이다. 그렇게 병상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와 중환자 병동 옆 병상의 환자가 죽음을 맞아 시신을 옮겨 담는 사각의 냉동침대 뚜껑 또한 기억자로 열려서 시체 보관냉동고로 이동되는 장면을 오버랩하는 시가 결국 김정아 시인의 시 <여닫는 기억>이다. 이시는 죽음을 노래한 수작이다. 시에 삽입된 대화의 구절” 죽고 사는 건 신만이 알겠지요“ 라는 삽입구도 평범하면서 놀라운 직관인 것이고 어떤 은밀함에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대하는 쟁쟁함의 목소리 일 수도 있음에 잠근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 일인가. 기억에 넘어진다는 것 어쩌면 인간들이 삶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기억에 넘어진 하나의 현상이 아닐까. 시인은 되묻는다. 결국 마지막은 미끄러지듯이 꽁꽁 얼어서 뜨거운 불속으로 사라지거나 썩어가는 것 이라고 그는 죽음을 통찰 한다. 현실의 문을 닫아건다는 것은 슬픔임을 시 <여닫는 기억>을 통해 그는 우회적으로 암시 한다.
언어가 주는 여러 문학적 효과 가운데 모호함을 통한 미학 혹은 낯설게 하기 등의 현대적인 어법을 통원할 수도 있으나 김정아 시인은 생생한 일상의 현실을 거울을 통해 찬찬히 들여다보듯 마치 크로키 하듯 심하게 에두르지 않고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작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그에 시의 특징은 현실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면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굳이 시에서 드러낼 필요가 없음을 그의 시는 극명하게 보여 줌으로 근대 현대시가 독자를 잃어 어디로 나가야 할지 막막한 요즈음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보여서 이계절의 주목 작가로의 선정에 전혀 물의가 없다고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