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을 지나자 무던하던 고향동무, 삼수가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어째 지내노?”, “몸은 좀 괜찮나?”, “보고 싶다.”, “명지로 건너올래?”, “벌써 봄 도다리가 나왔다.”는 등의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채근했습니다. 전화 목소리는 검붉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그리운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어깨동무들은 어릴 적 개구장이시절을 되살려주는 그지없이 정겹고 허물없는 사이의 모티브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무려 60년의 긴 세월을 지내고서야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우수(雨水)의 끄트머리 말후(末候)를 보내고 초목에 싹이 트고 뭇 생명이 겨울잠을 털고 일어나는 부활의 절기, 경칩(驚蟄)에 들자 봄기운이 잎보다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승대에게 연락을 해서 투병 중인 정직이의 상태부터 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봄나들이를 하기에는 무리라는 가족들의 만류였습니다. 이번에는 삼수, 승대 셋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승대와는 11시 반에 하단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출근시간을 한 순배 넘긴 지하철가 여유로워 책읽기도 좋았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느라고 내려야할 하단역을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내려보니 눈에 익은 정경입니다. 1호선 종점이자 출발역이기도 한 신평역은 옛 모습 그대로 산자락을 둘러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습니다. 내릴 역을 놓치는 일이 잦은 요즘 들어서는 약속시간을 10분쯤 미리 나서면 내릴 역을 지나쳐도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옛날 같으면 하단에서 배를 타고 을숙도를 가로지르던 뱃길에 하구언 다리가 넓혀졌습니다. 삼수에게 전화를 냈습니다. “우릴 좀 데리러 올래?” “그래, 소방서 앞에 있거라.”
그 길로 그지없이 아름다운 갈대밭이 카펫처럼 깔린 지난날 사랑의 스튜디오, 을숙도를 지나 신포나루에 가닿았습니다. 맛깔스런 봄 도다리로 점심을 나누며 회포를 푼 우리는 하구언 밑으로 난 흙길 따라 강바람을 쐬며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신포마을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끼고 신호마을과 녹산, 가덕도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낙동강 하구를 끼고 덕두, 맥도를 거쳐 김해공항과 구포로 이어지는 흙길은 남풍을 타고 오는 봄정취가 정겨웠습니다.
고향의 물이 출렁이는 봄바다와 강나루에는 수없이 많은 삶과 사랑의 기억들이 어른거렸습니다. 어제까지 만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꽃샘추위가 봄이 와도 봄같이 않은 날씨더니 오늘 따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훈훈한 강바람이 불어와 변덕을 부렸습니다. 건너편 승학산 기슭으로 봄빛이 타고내리고 강나루에는 정든 곳에 터를 잡은 오리가족이 올리브 그린의 갈대밭을 헤치며 사랑의 파문을 그려나갔습니다. 흙길을 오가며 나물케는 아낙들의 그윽한 속삭임, 승마와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훈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우리는 경칩의 햇살 아래 거닐며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하나둘 끄집어냈습니다. "훈아, 오늘 보니 니 오른쪽 어깨가 좀 내려갔다."던 삼수가 “우리 이제 고향길 드라이브나 나가자.”는 제안에 모두들 좋아라했습니다.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봄길 따라 미끄러지듯 국제신도시가 들어서는 동리와 진동마을을 지나고 을숙도대교의 구조물이 버티고 선 전등마을과 그리움을 품은 신호 솔밭공원 앞의 모랫섬, 진우도와 개펄을 비켜 갈맷길 따라 신항만과 가덕도를 마주보고 달렸습니다. 우리는 옛 생각에 겨워 차를 세우고 싱그러운 해풍을 품은 그 어린 날의 솔밭을 다시 걷기도 했습니다.
마음은 초등학생 때 소풍을 나온 동심 그대로였습니다. 돌아온 신포나루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이른 저녁으로 백합탕 한 사발씩을 마시며 진한 고향의 맛을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노을이 붉게 타는 낙동강 하구의 사무치는 스카이라인을 따라 달리는 차안에서 승대의 선창으로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로 시작하여 ”종달이 높이 떠 지저귀는 곳... 나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로 끝나는 버지니아 흑인민요와 ‘고향생각’을 끊어질 듯 이어 불렀습니다.
늙고 지친 마음에 고향과 동무는 위안입니다. 그 날도 남국의 봄을 쉼 없이 실어나르는 비행기는 꼬리를 물고 연신 고도를 낮추며 날아들었습니다. 낙동강물을 둑으로 막은 삼각주, 명지(鳴旨)는 내 동심의 텃밭이고 명지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섬 을숙도는 그리움이 메아리치는 곳입니다. 어두운 밤하늘 아득히 먼 곳에서 깜박거리는 한 점, 사랑의 별빛을 떠올립니다. 오랜 세월 가공하지 않은 채 버려둔 원석의 빛깔이 세월에 가린 무딘 가슴을 헤집고 달려왔습니다. 만보기(萬步機)에는 7천3백여 보가 넘는 추억이 새롭게 쌓였습니다.
첫댓글 정녕 봄이네요.^^
신선한 봄 도다리에 입에 침이 고이고, 바람을 맞으며 흙길을 걷는 오랜 동무들의 정겨운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저희도 가끔 친구끼리 나들이갔다가 맛있는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른적이 몇번 있기에 공감을 한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는것을. . .
정말 좋았답니다.
봄바람이 향기롭게 느껴졌구요.
꿈에서 깬 소년처럼 두 팔로 허공을 휘저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어도 흐뭇합니다.
동무는 신기루 같아요.^^*
봄냄새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신새벽이지만 말미에 있는 '고향생각'노래를 2절까지 불러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입니다.
화음을 넣으면 더욱 근사할뻔 했습니다.
서글퍼지긴 싫어요.
강화의 봄소식이 그립습니다. 전해주셔요.^^*
신선하고 아름다운 봄나들이를 하셨군요.
어릴때 추억이 되살아나요.^^*
예, 상큼했습니다.
봄이 우리 곁에 다가섰어요.
한번 느껴보십시오.^^*
한폭의 풍경화를 보고난 듯 어릴적 그시절이 그리워 지네요.
상상은 더욱 애틋할 것입니다.
아~~어린 시절 그리워라.^^*
국장님 봄나들이 잘다녀 오셨네요. 저희들도 고향 경주에서 모임을 한다고 연락이 와서 만나러 갈려고 합니다. 저는 안강 시골이라 40여명 졸업했는데요. 지금 30여명 남았는데 모이면 보통 20여명이 전부 다입니다.
시몬 형제님!
고도 신라가 고향이셨군요.
보문단지 초입의 벚나무 꽃망울들이 몰라보게 자랐겠죠?
저희들은 'ㄱ', 'ㄴ'반 두 반에 12명 정도가 졸업을 했는데
60여 년을 지나면서 절반 넘게 떠나거나 소식이 끊겼습니다.
한없이 그리운 얼굴들이죠.^^*
훈훈한 봄내음 맡으며 잘 읽었습니다..^^*
자연이 사순시기에 선사한 여유와 어릴 적 추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겨운 친구들과 봄내음 맡으며 한 나들이에 도다리, 백합탕까지 ...
함께 봄기운에 취했습니다^^*
귀국일정을 잡으셨나요?
토마스 형제님과 가끔 주고받는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부산의 봄소식을 전합니다.
어서오소서.^^*
'고향의 물이 출렁이는 봄바다와 강나루'란 표현만으로도
마치 고향에 간 듯 마음이 포근하져옵니다.
친구분들과 뜻깊은 봄나들이를 하셨네요. ^^*
오늘 아침 엘사랑 청초이부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해 늦봄 나주에서 얻어온 종균으로 만든 요거트로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말이죠.
요즘 합가 이후 소식이 궁금합니다.
모쪼록 값진 사순시기를 보내시기 기도합니다.^^*
형님
엘사형님과 두분 안녕하시지요?^^♡
정겨운 친구분들과의 봄나들이에 함께 동행해 다녀온듯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저의 어린시절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생각해봅니다.
어제는 엘사랑 대자 베드로의 입택축성식에 다녀왔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열심히 사는 대자 가정을 위해 거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봄나들이까지 다녀왔는데 중국시인이 읊었다는 싯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떠오를만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그래도 봄은 봄이죠?
부디 행복하십시오.^^*
오드리+사비노 형제님!
오늘 어머님의 선종소식을 접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세요?
멀리서나마 저희들도 어머님을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그곳~~
남녘의 봄기운과 해풍이 결코 싫지 않았습니다.
광안대교가 멀리 내다 뵈는 쌍용예가에서 그레고리안 챤트를 들으며 모카 포토의 커피맛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그 행복했던 시간들 생각들 추억하며 봄처녀처럼 부지런이 살까 합니다. 남국의 봄을 가슴으로 꼭꼭 품으며 높은 고도를 날으는 비행기에 몸을 실고 또 그렇게 훅 떠나 왔습니다.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고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뜻하게 품어줍니다.건강한 모습 뵐 수 있어서 주님께 감사합니다.오오~아름다운 남국의 봄!
잘 돌아가셨군요.
충만한 고향의 봄을 느끼셨다니 감사합니다.
보세난과 가랑코에의 꽃이 지고 '후리지아'와 '깅기아남'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봄보리밭을 나는 종달이의 아름다운 지저귐을 들으셨나요?
오늘은 '즐거운 투석'을 서둘러 마치고 'me Before you'를 읽으려고 합니다.
사도요한과 함께 알찬 사순시기 보내십시오.
기도하는 생활 속에서 항상 새로워지소서.
아멘^^*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갑니다. 60년이 지나도 그때의 그 기분...
그런데 서울은 초등학교 모임이 거의 없어서, 가끔 시골 국민학교 동창회에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순수해 보여 가끔 부러울 때가 있었어요.
저는 초등학교보다는 국민학교가 입에 익었습니다.
오늘도 초딩동창 셋이서 번개팅을 하고 왔습니다.
파킨슨병을 앓는 동무를 데리고 나와 점심을 나누고 산책을 하며 봄바람을 쐬었답니다.
몸은 늙고 병들어도 마음만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읊었습니다.
공원에는 벌써 매화는 지고 산수유가 한창이었습니다.
남국의 봄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