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편종과 편경이 12율(음)형태와 16율(음)형태의 두 가지였으나 후대에 12율 형태는 없어지고, 16율 형태가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 상하 2단 틀에다 8개씩 16개의 종이나 경을 음높이의 순서대로 매달아 놓았으며 중국의 편종은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결정되는 것에 반하여, 한국의 편종은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두께에 의해 음정의 구별이 생긴다는 이야기, 편종이나 편경에서 제일 낮은 음이 황종(黃鐘)이고, 위치는 오른쪽 아랫단에 걸려 있으며 그로부터 왼쪽으로 반음씩 높은 종이 걸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편종을 연주할 때에는 아랫부분 가운데에 돌출된 수(隧)를 정확하게 쳐야 특유의 음색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예전 악사들은 눈을 감고 쳐도 16개 종의 수 부분을 정확하게 쳤다는 이야기, 얼핏 보면 편종과 편경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편종은 목사자를 받침대로 쓰는데 견주어 편경은 백아(白鵝), 곧 흰거위를 받침대로 쓴다. 이는 편종 소리가 웅장하기 때문이고, 편경은 그 소리가 청아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또 다른 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편종의 틀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쪽 양편에 용두(龍頭), 곧 용의 머리를 조각해 놓고 있다. 그러나 편경에서는 봉두(鳳頭), 곧 봉황의 머리를 조각해서 쓴다. 용과 봉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 깊이 생각지 않아도 편종은 쇳소리로 웅장하기 때문에 용을 상징하고 있는 반면, 편경은 봉황의 부드러운 소리를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위에서 편종의 연주법을 설명할 때, 각퇴로 수 부분을 정확하게 울려주어야 그 특유의 음색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편종에서의 주법처럼 편경의 경우도 나름대로 독특한 연주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편경의 끝 부분을 각퇴로 쳐야 한다는 점이다.
편경의 끝 부분이란 어느 곳을 말하는가?
편경은 “へ” 형태로 돌을 깎아 만든 경(磬) 16개를 음높이대로 2단의 틀에다 매달아 놓고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편종과 마찬가지로 へ모양의 경석 끝부분이 치는 자리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고(鼓)라고 부른다.
▲ 전통기법으로 편경을 만들고 있는 김현곤 명인
다시 말해 각각의 경은 짧은 쪽과 긴 쪽으로 구분이 가능한데, 그 중 긴 쪽의 끝 부분이 바로 고가 되는 것이다. 16개의 경돌 중에서 오른쪽의 위아래 8개는 안쪽의 고를 울려야 하고, 역시 왼 쪽 8개의 경도 연주자의 위치에서 보면 안쪽의 고를 가볍게 쳐야 맑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편종과 편경을 들여온 이후,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외국으로부터의 침략이나 내란, 또는 관리소홀 등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차츰 악기가 파손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스스로 제작하지 못했고, 명(明)나라로부터 사들여 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고려 공민왕 때에는 명나라로부터 편종과 편경 수십 틀을 들여왔고, 조선 초기 태종 때에도 명나라로부터 여러 틀을 들여왔다고 한다.
그러나 매번 이를 중국으로부터 사와야 하는 폐단을 없애고 조선시대 세종 때부터는 국내에서 직접 편종과 편경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 12년(1430), 조선의 표준 음고(音高)를 정한 뒤, 그 음에 맞는 악기 제작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편종 제작에 관한 연구와 실험도 병행되었던 것이다. 편종의 합금(含金) 방법도 처음에는 중국의 예를 따랐으나, 구리와 주석의 중량 비율이 적절하지 못하고 음률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박연(朴堧)의 제안에 따라 종을 제작하는 시설로, 주종소(鑄鐘所)를 설치해서 조선의 독자적인 합금 기술을 개발, 편종의 국내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편종 제작기술은 주로 공조(工曹)에 소속된 장인들에 의해 전승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아악기가 파손되고 악사들이 본직을 떠나 연주전통이 심하게 훼손되었을 때도, 조선 전기에 축적된 편종 제작 기술과 유장들의 솜씨에 근거해 수차례 편종을 만들 수 있었다.
▲ 김현곤 명인은 전승이 단절된 베트남의 편경을 복원해주었다. 왼쪽에서 두번째 베트남 궁궐 마지막 악사, 세번째 김현곤 명인
편종 제작방법은 《악학궤범》과 여러 권의 《악기조성청 의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편종은 구리와 주석 등의 재료를 일정 비율로 합금해서 종 모양의 주물 틀(鑄器)에 쇳물을 부어 만든다. 이 때 구리와 주석의 중량 비율이 제대로 배합되지 않으면 맑고 고른 소리를 얻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여러 악기조성청 의궤 등에는 합금 내용과 재료의 양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금속 배합물을 불에 녹여 종 모양의 주물로 떠낸 다음에 정확한 조율과정을 거쳐 종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간문화재 김현곤씨는 “편종은 주재료가 쇠붙이어서 쇳물을 적정온도까지 끓인 다음, 종 형태의 모형에 부어서 굳으면 종의 형태가 나오게 되고, 이를 가다듬어 종을 만들게 되지만, 편경의 경우에는 그 재료가 단단한 옥석이어서 그 옥석 재료를 발견하고 이를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수차례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악기연구소와 국립고궁박물관 등의 유물인 종과 경을 제작 연도에 따라 분류하여 음고(音高)를 살피고, 문양과 장식, 규격 등 여러 가지를 비교 분석하였으며지금까지 편종 23틀, 편경 24틀, 방향 6틀 등을 제작해오며 많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물상의 문제점을 해결해서 편종의 음향을 개선하겠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종의 내부 구조, 상부와 하구, 종통의 곡선, 로(爐, 작은 용광로)의 온도, 주조 시간 등을 실험을 통해 연구하겠다고 했다.
특히, 편종의 경우, 역대 유물악기의 음고를 녹취하여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틀의 악기가 전부 균일한 음향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작상의 문제점이 많은 악기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중자 크기를 다양하게 제작해서 종 주물의 두께를 달리하고 주조된 종이 정음에 근사치로 가깝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간의 다듬질만으로도 16개의 종이 완전히 동일한 음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과정을 경험으로 해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서는 그의 말에 믿음이 실리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