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송년회 斷想
초겨울 같은 늦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계룡산 자락 한밭대 뒷켠수통골 뒷산에 올랐다. 젊음과 달리 숨은 차지만 눈에 익은 지역이라 감정은 차분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대전시는 흐린 날씨 탓에 선명한 시가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서쪽하늘을 바라보니 학창시절 한 토막 삶을 살았던 유천동 오두막집이 그립고, 동편 하늘가 대전공전 터가 있던 삼성동을 생각하니 책가방과 같이한 5년 세월이 눈가에 아련히 스친다. 대전은 무연고로 오랜만에 들려본 도시다보니 상전벽해 되어 집과 도로가 모두 옛것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을 연상하며 산등성을 걷는다. 떠나온 곳에 남겨둔 절절한 애환의 기억들, 스치고 지나쳐온 곳곳에 그립고 보고픈 잊지 못할 인연들, 그 기억과 인연 속에서 생생이 살아 숨 쉬는 그 소중한 가치들 그 추억들이 내 가슴속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오늘도 맴돌고 있다.
진작 사망한 대전공전의 영혼은 한밭대 에 영원히 안치되었고 대전공전이 낳은 수많은 학도들은 산개되어 삼성동시절의 추억을 우리들 토구회 같은 이름으로 오늘과 같이 이렇게 추억을 기억한다. 이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겠지만 인연이 닿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아련한 추억을 가슴에 그려보면서 이 나이에 저물어가는 진정한 늦가을정취에 한 잔술로 시름을 잊게 하려면 그리고 늦가을의 멋에 흠뻑 취하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늘 하루를 소중히 보내야한다. 저무는 오늘 하루 눈 비 지나간 늦가을 산을 바라본다. 농익을 대로 농익은 오색단풍이 찬란했던 단풍철은 아직 가을의 절정이 아니다. 가을의 멋은 단풍이 퇴색되는 오늘과 같은 초겨울과 늦가을이 맞닥트리는 무렵이 비로소 가을의 맛이 그윽해지고 상념이 원숙해진다. 이 같이 진정한 우정이란 것도 비로소 연륜이 무르익을 때 진정한 우의가 돈독해지는 것이다.
살 떨리는 치욕의 삶을 살아온 자도 영광의 그늘아래 축복받은 자도 삶에 고단한 세월을 억척스럽게 견뎌낸 자신들에게 이제는 박수를 보내자. 누구는 아직도 삶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이 목숨을 버리는 것 못지않게 어렵고 값진 일이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이를 악물고 쓰라린 삶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고통의 삶을 살아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우리들이 삶이 아닌가? 친구여! 굴러가는 낙엽과 눈 속에 몸을 감춘 가랑잎 속에 깃든 추억의 정취와, 그 속에 켜켜히 박힌 우리네 삶의 슬픈 진실, 그리고 그 서럽고도 아름다운 애환의 속삭임들이 미련 없이 묻혀가고 묻어가고 사라져간다. 초겨울 같은 늦가을이 낙엽 속에 깊어가는 올해 마지막 늦가을 벌판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휘몰아가자.
이제는 어제의 애잔함과 오늘의 아픔을 뒤로하고 내일의 꿈을 재촉하는 축배를 들자!
젊었을 때는 인생이 무척 긴 것으로 생각하나 늙은 뒤에야 살아온 젊은 날이 얼마나 짧았던가를 깨닫는다.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며 세월은 그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소중히 보내야하는 이유가 아닌가.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감동 있게 보내자. 수통골 참 한우집에서 2015년 송년회 단상을 이렇게 간단히 읊어본다. 멀리서 찾아준 친구에게 고맙고 같이한 부인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전공전 송년회를 보내고
2015년 11월 30일
율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