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장
창고지기의 딸에게 열린 가나의 혼인잔치
디에고는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뻐해야 할 결혼을 앞에 두고도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자신에게는 그것을 마련할 힘이 없었다.
그때 소금창고에 들어온 봉사자가 있었다.
카타리나였다.
카타리나는 디에고의 이야기를 듣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언니, 내가 냉장고 해줄게.”
나는 깜짝 놀랐다.
“냉장고?”
“응. 딸이 원하는 브랜드랑 색상 이야기해.
내가 냉장고 하나 해주면 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도 번개처럼 한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나는 세탁기를 해주면 되겠네.’
그 순간부터였다.
막막했던 마음에
갑자기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기뻐졌다.
그리고 청담동 기도 모임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디에고 딸이 결혼을 한대요.
카타리나가 냉장고를 해주기로 했고,
나는 세탁기를 해주려고 해요.”
그런데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럼 나는 TV 해줄게.”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러면 나는 백만 원 내놓을게.”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기 일처럼 나서기 시작했다.
모두가 디에고를 알고 있었다.
디에고가 소금창고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돈을 벌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소금창고의 창고지기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창고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챙기며
나와 함께 소금창고의 시간을 만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했다.
“우리가 하나씩 맡으면 되지.”
그 말 한마디가
사랑의 물결이 되었다.
내 대녀가 말했다.
“그럼 신혼여행은 어디로 간대요?
내가 그 비용을 대줄게.”
누군가는 말했다.
“이바지 음식은 내가 해줄게.”
또 누군가는 물었다.
“그럼 예단은 어떻게 했어요?”
디에고의 대녀가 대답했다.
“양가에서 예단은 하지 않기로 했대요.”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
“그래도 갖춰줘야지요.
내가 예단비 보낼게요.”
그리고 다음 날,
내 통장에 오백만 원이 들어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숫자를 바라보았다.
오백만 원.
나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디에고의 딸이 결혼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쁜 소식에 자기 마음을 보태기 시작했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백만 원.
신혼여행.
이바지 음식.
그리고 예단비 오백만 원.
사람들이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각 사람의 마음에
자기 몫을 넣어놓은 것처럼.
그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기쁜 소식을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경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나의 혼인잔치.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개입하시자
부족했던 것이 풍성함으로 바뀌었다.
그날 디에고 딸의 혼인잔치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부족함이
사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냉장고를 내놓자
다른 사람이 세탁기를 내놓고,
또 한 사람이 TV를 내놓자
다른 사람이 돈을 보탰다.
누군가는 신혼여행을,
누군가는 이바지를,
누군가는 예단을 맡았다.
사람들은 자기 몫을 찾았고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마음을 하나로 묶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주님, 저는 기쁜 소식을 전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았다.
소금창고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디에고가 소금창고를 떠난 뒤에도
그가 뿌린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 사랑이 어느 날
디에고 딸의 혼인잔치에서
꽃처럼 피어난 것이다.
창고지기는 떠났지만
창고지기가 뿌린 사랑은 떠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알았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하느님께서는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가나의 혼인잔치 같은 기적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