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생태적 특성과 내건성
글·사진 _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남다른 나무다. 한국갤럽이 10여 년 전 국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다. 소나무는 한반도에 1만 년 전에 처음 들어와서 최근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했던 나무다. 지금은 그 점유 면적이 조금 줄어서 전국 산림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참나무 다음으로 많다.
적송망국론(赤松亡國論)이라는 말이 있다. 의외의 표현이지만, 적송(소나무)이 많으면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뜻이다. 조금 걱정도 되고, 이 말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이 말은 일본의 혼다(本多)라는 학자가 쓴 글에서 유래했다. 일본은 현재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을 가지고 있어 세계적인 임업국가이지만, 19세기 말 인구가 증가하고 목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관서지방에서 산림이 파괴된 적이 있었다. 혼다 씨가 산림이 황폐한 곳을 여러 군데 가 보니 토양이 척박하고 건조해져 있었다. 이런 토양에서는 양분과 수분을 많이 요구하는 활엽수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대신 척박한 땅에서 잘 견디는 소나무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즉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토양이 척박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토양이 척박해진다는 것은 결국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해석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소나무의 특성을 설명하여 설득력이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전쟁을 치르면서 산림이 극도로 황폐한 적이 있었다. 1950년대 말 산에 나무가 우거진 정도(임목 축적)는 6m³/ha로 지금 120m³/ha의 1/20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경제가 어렵고 국민 의식이 낮아 나무를 마구 잘라가고 낙엽을 모두 긁어 아궁이로 집어넣었다. 결국 토양은 점점 더 건조하고 척박해져서 소나무밖에는 자랄 수 없었다. 이렇게 소나무가 많아져 옛날 일본의 관서지방과 흡사한 상태였다.
소나무는 그늘에서 살 수 없는 양수(陽樹)로 건조한 토양에 잘 적응하는 수종이다. 햇빛만 잘 들면 건조한 토양에서도 어릴 적부터 솔방울을 많이 달고 종자를 많이 생산하면서 자란다. 땅에 떨어진 종자는 거의 모두 성공적으로 싹을 틔운다. 소나무 씨앗은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푹신한 토양보다 낙엽이 없는 건조한 맨 토양에서 싹이 더 잘 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분과 수분을 적게 요구하기 때문에 황폐한 산림에서 소나무는 성공적으로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소나무는 구불구불하고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볼품도 없고 목재 가치도 별로 없다.
1970년대 정부의 치산녹화사업에 따른 대규모 조림 이후 숲이 우거지고 있다.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는 20세기의 기적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당시 정부는 조기 녹화를 위해 생장이 느리고 경제성이 적은 소나무보다 생장이 빠른 속성수를 주로 심었다. 그 이후 전국에서 산림보호가 잘 되어 낙엽이 쌓이고 토양이 점점 비옥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소나무숲이 서서히 줄어들고 대신 참나무숲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참나무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생태적 특성 때문이다. 참나무는 매우 건조하거나 척박한 토양에서는 소나무만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숲이 우거져 토양이 비옥해지면 참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빨리 자라서 소나무를 덮어 쇠퇴하게 만든다. 적송망국론에 의하면 소나무가 점점 쇠퇴하는 지금의 현실은 나라가 더 융성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 좋은 해석이다.
이와 같이 소나무와 참나무의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수분이다. 소나무는 건조한 토양에서 성공적으로 자라는 대표적인 수종 중의 하나다. 그만큼 소나무는 적은 토양 수분으로 견디는 능력, 즉 내건성(耐乾性)을 가지고 있다. 활엽수는 잎이 넓은 만큼 광합성을 많이 하여 침엽수보다 빨리 자라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증산작용을 많이 하기 때문에 토양 내 수분이 부족하면 생장이 나빠지면서 바늘잎을 가진 소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려난다.
한국에서 자라는 소나무류에는 소나무, 곰솔, 백송,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섬잣나무, 눈잣나무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소나무는 다른 수종들보다 내건성이 뛰어나다. 남향의 건조한 땅, 산등성이, 경사가 심하고 돌이나 모래가 많은 곳, 혹은 바위 위에서도 잘 자란다.
소나무의 뛰어난 내건성은 증산작용을 억제하는 지상부의 구조와 토양 수분을 많이 확보하는 뿌리의 발달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소나무의 잎은 바늘형으로 여름철 강한 햇빛에 잎의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고, 잎의 표면이 두꺼운 왁스층으로 싸여 있다. 잎의 표면(표피) 밑에는 다른 수종에 없는 내표피(內表皮, hypodermis)가 있는데, 서너 개 층의 세포로 되어 있고 표피보다 더 두꺼운 세포벽을 가져 숨구멍을 닫을 경우 표피를 통한 수분이탈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숨구멍은 깊숙이 숨어 있고, 입구가 왁스로 막혀 있어 숨구멍이 열려 있어도 증산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눈과 가지에는 송진의 함량이 높아 탈수를 막는다. 나무껍질도 매우 두껍고 방수성 물질(수베린)을 가져 줄기에서 수분을 거의 잃어버리지 않는다.
소나무의 뿌리는 천근성의 가는 뿌리와 심근성의 굵은 뿌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는 뿌리는 산소 호흡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 않지만 수평 방향으로 넓게 퍼져 수관 폭 밖으로 뿌리를 크게 확장하여 광근성(廣根性)이라는 포현을 쓰기도 한다. 굵은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면서 지하수를 찾아 깊이 들어가는 심근성(深根性)이다. 일본의 경우 모래토양에서 소나무 뿌리가 지하 6m까지 내려간 것을 관찰하기도 했다. 결국 소나무 뿌리는 광근성이면서 심근성을 가져 뿌리의 총량(biomass)이 다른 수종들보다 더 많아 방대한 근계(根系)를 형성함으로써 토양 수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 가는 뿌리의 표면은 균근 곰팡이에 의해 둘러싸여 있어 뿌리가 쉽게 마르는 것을 방지한다. 균근(菌根)은 유용한 토양 곰팡이가 식물 뿌리와 공생하는 형태를 말한다. 소나무는 뿌리털이 없는 대신 균근의 균사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더 많은 수분과 양분을 대신 흡수해서 소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한다. 즉 소나무가 바위 꼭대기에서 자라면서 건조에 견디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균근 덕택이다.
송이버섯은 대표적인 균근 곰팡이로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데, 모래 성분이 많은 비교적 척박하고 건조한 토양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송이가 생산되는 산은 모두 척박하고 모래 성분이 많은 곳이다. 전국에서 매년 송이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산림이 우거지면서 낙엽이 쌓여 토양이 비옥해짐으로써 송이버섯이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바늘잎은 억세게 생겨 증산작용을 억제하면서 추위에도 잘 견딘다. 그러나 억센 잎은 우리가 소나무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잎이 웬만한 가뭄에도 끄떡하지 않고 변함없이 버티는 성질 때문이다.
활엽수의 잎은 넓고 부드러워서 수분이 부족하면 곧 잎이 밑으로 처진다. 나무를 관리하는 사람은 나무가 수분이 부족함을 쉽게 발견하고 물을 주어 나무를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소나무의 잎은 뻣뻣해서 수분이 부족해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초기 가뭄으로 잎이 밑으로 처지거나 변색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가뭄이 지속되면 별안간 잎이 퇴색한다. 순식간에 변하면서 나무가 죽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위와 같은 소나무의 생리는 소나무를 옮겨 심을 때 꼭 알아두어야 한다. 소나무를 옮길 때 많은 뿌리가 잘린다. 뿌리가 잘린 소나무는 건조에 견디는 힘이 약하다. 따라서 건조에 강한 소나무라도 옮겨 심은 후에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물을 주어 관리해야 한다. 특히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면 증산작용을 하기 때문에 물을 주기적으로 주어야 한다.
소나무 잎은 바늘형으로 햇빛에 비스듬히 노출되어 더운 여름철에 잎의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아 증산작용을 적게 한다.
균근을 형성한 소나무 묘목의 뿌리는 뿌리털 없이도 균근 곰팡이의 균사(뿌리의 끝 부분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가는 실 같은 균사) 덕분에 양분과 수분을 많이 흡수한다.
소나무 기공(a 사진)의 표면은 노출되어 있지 않고 왁스로 덮여 있어 수분을 적게 잃어버리면서도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 뿌리는 심근성으로 모래토양에서는 6m까지 내려가서 수분을 빨아올린다.(출처: 『수목근계도설』, 가리주미 노부로 저, 성문당, 1979)
송이버섯은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 균근 곰팡이로 소나무의 생장에 필수적이다. 소나무처럼 모래가 많고 척박한 토양에서만 자란다.
소나무 잎은 한 층으로 된 얇은 표피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밑에는 다른 수종에는 없는 서너 층의 세포로 된 내표피(內表皮)가 있어 표피를 통한 증산작용을 억제한다.
소나무의 기공은 다른 수종과 달리 깊숙이 밑으로 숨어 있어 증산작용을 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