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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시 국제화 추진위원회의 발족에 붙이는 작은 글~ 2013. 1. 6. 광양국제문화교류회 강석태
바야흐로 광양시가 ‘세계로! 미래로!’라는 슬로건을 표방하고서 세계화시대에 부응하여 ‘국제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하게 됨을 충심으로 환영한다. 이것은 본인이 뜻한 바 있어 (사단법인)광양국제문화교류회를 설립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에서 앞으로 이 위원회가 나아감에 있어 참고가 될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국제화란 무엇인가? 오늘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에 서 있다. 20세기 말 세계는 다가오는 21세기를 평화의 꽃송이가 온 지구상에 만발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빗나간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21세기는 인류가 걸어왔던 지난날의 모든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역사를 이뤄나갈 것인가, 아니면 멸망의 심연으로 빠지게 될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자라 할 것 같으면 우리가 새로 이뤄나갈 역사는 지구라는 행성이 하나의 마을이 되어 이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생존하는 세상을 이룩하도록 인간들이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세계화, 또는 글로벌시대를 맞은 지구인이 한 집안 식구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이 지구라는 행성에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참으로 길고 긴 인류의 몸부림이 있었다. 간략히 가까운 시대를 돌이켜 보면 다음과 같다.
‘제3의 물결’ 등 미래를 예견하는 책들을 낸 것으로 유명한 Alvin Toffler에 따르면 20세기 초반에 민주주의 사상이 정치력을 얻어 20세기 말에는 전 세계에 걸쳐 약 60% 이상의 국가들이 민주국가가 되었다. 그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생산체제가 크게 변동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한 동안 그 두 체제가 서로 우월성을 다투다가 1989년 소련의 붕괴로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아주 조용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패배를 자인하고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 냉전체제의 종언으로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이 그때까지 행하여 온 소위 ‘자비로운 헤게모니’도 종을 쳤다. 결과적으로 종래의 체제 경쟁에서 선두주자가 되어 왔던 전날의 초강대국 미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향유했던 온갖 특혜와 특권도 힘이 빠지게 되었다. 곧, 모든 나라들이 동일하게 무자비한 시장경쟁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예외가 없다.
그리하여 냉전 체제의 붕괴는 지구촌에서 전쟁과 분쟁의 위험을 잠재워 줄 세력이 없어졌다. 세계 경찰의 임무를 짊어지고 있던 초강대국 미국의 존재도 상대적으로 약회되었다. 오히려 세계 각지에서 인종. 종족. 종교. 언어. 지역에 기초한 갈등이 날로 증대하게 되었다. 이를 가리켜 Samuel Huntington은 ‘문화의 출돌’이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세계의 정치 지도와는 달리 미국은 축적된 자본과 군사력의 힘으로 세계의 경제 체제를 재편하여 세계 경제를 미국의 우산 속으로 가두려고 획책하였다. 그것이 IMF, WTO, G8 등, 미국 자본이 주축이 된 새로운 세계지배의 허구이다. 이것이 겉으로는 세계화의 표본처럼 비췬다. 허나 그것들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 특히 선진국을 자칭하는 부유한 나라들의 부유층과 지배계층이 결속하여 자기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사이비 세계화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계화는 아니라는 것은 지난날 미국의 금융가 월스트리트에서 발생한 ‘1%에 대한 99%’의 분노 시위가 잘 보여 준 바 있지 않은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화는 그와 같은 1% 부유층, 독점 자본계층들이 뭉친 세계화가 아닌, 민초들, 곧 99%의 일반 대중, 바꿔 말하면 ‘세계시민’이 손을 잡고 일으키는 세계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세계시민운동’이라 말하고자 한다.
지금 세계는 우리나라를 위시해 여러 나라들이 투자. 금융. 기술. 환경. 노동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제약 없이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는 금융. 생산. 노동. 기술. 정보. 문화. 환경. 안보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조직되고 있는 문자 그대로 지구촌 경제시대, 지구촌 문화시대, 지구촌 생태계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강변의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면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증권가격이 꿈틀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는 ‘국제경쟁력’이 모든 사람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와 같은 시대인데도 무자비한 시장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대항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국제화, ‘진실된 국제화’ 운동을 일으키려는 것이 바로 날개를 퍼덕이는 나비인 것이다.
2. 오늘 우리를 옥죄고 있는 세계화의 그물;
1) 금융의 세계화: 세계화의 영역 중 가장 선도적이고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영역이 금융계이다. 전 세계는 바로 이러한 세계화된 금융의 공격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소위 IMF 경제위기가 바로 그 금융부문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하루 외환거래 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국제증권시장의 일일 거래액은 2조 달러에 육박한다. 이제는 세계의 어떤 정부도 금융시장에서의 자본의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금융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정보통신혁명이다. 원거리 거래의 비용을 줄여주고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동시에 거래가 이뤄지는 실제 거래 시간의 일치를 가능케 하였다. 과거에 지구의 금융센터에 도달하기까지 몇 주가 걸리던 정보가 수초 만에 전달된다. 지난날에 군대와 무기에 의해 달성하려 했던 제국의 꿈이 오늘은 상호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서러 연결된 주식시장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2) 생산의 국제화: 정보통신 혁명과 극소전자에 기초한 생산기술 혁명은 인적, 물적 자원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벗어난 기업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 이윤이 나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생산활동의 이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갈수록 약화되고, 생산에 있어서 국경의 개념은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제 생산과 기술, 노동의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화된 생산과 기술, 노동을 결합하여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 졌다. 이제 다국적 기업은 생산, 투자, 판매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재배치하는 전략을 마련해야만 할 수 있게 되었다.
3) 문화의 세계화: 이렇게 국경을 넘어서는 것은 경제나 상품만이 아니다. 아이디어와 문화에서까지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고 전 세계적인 소비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상품만을 팔고 있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신호, 음향, 이미지,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다. 자본주의는 상상력을 식민화시키고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고 있다. 국제통화량의 증가, 국제케이블, 국제위성 네트워크. 인터넷의 설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보통신산업의 국제화와 세계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지배언어로 군림하면서 비즈니스, 컴퓨터, 법률, 과학, 정치 등에서 세계 공통어로 자리 잡고 있다. 언어는 인류문화를 가장 높이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 이외의 동물들도 저희들 사이에서는 의사나 감정을 통하는 소리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 독특한 보화인 언어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영어가 수천 개 언어 중 유일하게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어느 한 언어가 오늘의 영어처럼 온 지구상에 널리 보급된 예가 없다. 오늘은 세계 어느 대륙에 가도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와 같은 인구의 총수가 대략 20억에 달한다. 2001년, 과학논문의 90%가 영어로 쓰여졌다. 이와 같은 영어의 성공은 언어로서의 영어의 특징과는 관계가 없다. 모두가 산업혁명이나 통신혁명을 포함해서 몇 세기에 걸친 영국과 미국이 계속 장악해 온 세계적 패권의 산물이다. 이렇게 일단 고정화된 상황은 끝내기가 어렵다. 컴퓨터의 키보드의 알파베트 배열이 QWERTY...과 같이 매우 비효율적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오로지 하나 영어를 대신할 세계 언어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컴퓨터이다. 컴퓨터로 인한 번역능력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면서 외국어 학습이 붓으로 쓰는 습자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게 할 날이 올 것이다. 그와 더불어 초국적 미디어제국이 형성되면서 영화와 TV 프로그램의 초국적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구촌의 어느 곳의 가정 안방에서도 그때에 발생하고 있는 지구촌 다른 곳의 사건을 바로 접할 수 있는 오늘이다.
3. 국민국가의 위기: 이와 같은 추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공동생활은 개인 간, 그리고 개인과 사회 간의 여러 가지 관계를 조화시키는 사회질서를 필요하게 한다. 그와 같은 요구에 따라 국가라는 조직체가 발생하여 인류는 그것을 사회적 공동생활의 가장 높은 단계의 일반적 통치조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오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국가의 성격이나 형태는 역사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여 왔으며, 인류의 생존 방식으로써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국가의 개념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늘의 국제화, 세계화의 파도 앞에서는 국가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종전의 국가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첫걸음이 1, 2차 세계대전 후에 발생한 국제연명과 국제연합이다. 그리고 현재 지구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인 블록화 현상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오늘날 세계가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민주주의’의 숨겨진 결함이다. 실상 이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애매모호함과 헷갈림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한국을 위시해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은 물론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이 제각기 나름 민주주의정치를 내어걸고서 실정과 부정을 은폐하는 데 민주주의를 도용하고 있지 않은가. 약간 양념을 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가 아닐까? 작년 12월 19일 대선의 양태도 그러하였고, 19대 국회가 예산을 통과하지마자 예결분과위원회의 의원들이 국비로 외유를 나간 예는 우리에게 정치란, 또 민주주의 정치란 어떤 것인가,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서 있는 국가란 어떤 것인가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것이 모두가 민주주의를 빙자한 선거제도에 유인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 매스컴, 권력과 결탁한 선거의 혼란상을 이제 관례화되었으며 주권자인 국민들도 그것에 마비된 모습이다. 그와 같은 정치생활에서 오염되고 왜곡된 선거나 법치를 치유할 길이 있다면, 그것은 공공심이다. 곧 민초의 정의감이다. 선거를 해 봤자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게 그것이고, 재판은 돈과 시간만 잡아먹는 하마인데다 편파적이며, 사회의 목탁을 자인하는 매스컴이 정부 권력이나 부유층의 개가 되어서 부정과 부패를 보아도 짖거나 물지도 않으니, 일반 민중으로선 어디에 기대야 할 것인가. 부정한 정부에 맞서고, 부패한 언론에 맞서서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세력이 일어선다. 그것이 앞에 언급한 1%에 대항하는 99%의 반항이며, 사회시민 단체의 활동이다. 21세기와 그 다음 세기는 공공심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와 부패한 국가정부의 싸움이 되 것이다. 그런데 요점은 공공심, 곧 정의와 도덕이 빠진 민주주의는 멸망할 것이고, 그에 기초한 국가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러 저명한 미래학자들의 저술에서 얻은 생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금 지나친 견해를 말하는 이들은 장차 모든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이은래 지음 ‘미래의 기억’,50쪽) 그리고서 지구 단위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그 이름은 ‘가이아 킹덤(GAIA KINGDOM)’이 될 것이라 말한다. (사적인 말이지만, 필자의 인터넷 카페가 ‘GAIALOVE1927’ 이다. Gaia는 지구를 뜻하는 말이며, 광양시 중마동 뒷산이 ‘가야’, 곧 ‘가이아’이다. Gaia란 말은 1979년 영국의 James Lovelock이 만물을 생유하게 하는 지구를 어머니에 빗대어서 옛 그리스 신화에 나온 여신을 이름을 따서 지구를 Gaia라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4. 시민사회와 세계시민 시대의 도래: 이에 대해 유엔미래포럼 회장 제롬 글렌은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20세기의 국가 단위의 국경 구분이 점차 힘을 잃으며 인류는 ‘지구공화국’이라는 하나의 통합체로 뭉치게 될 것이다. 첨단 기술은 국가 간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며, 환경, 식량, 테러 등의 문제는 해결을 위해 협조 체제를 요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국제기구들이 신설되고 그 영향력은 개별적인 국가들을 능가할 것이다.”(‘세계적 미래학자 10인이 말하는 <미래혁명>’; 63쪽) 여기서 우리는 학문용어로 Civil Society, 곧 공공사회, 또는 시민사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나아가 세계시민 시대의 도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좋건 싫건 간에 세계는 빠른 속도로 세계화를 향해 내닫고 있다. 황교안 법무 후보 “공무원 시험, 주일 피해야” 저서 통해 헌재·대법 판결 비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국가 공무원 시험을 “주일(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황 후보자는 교회 내에서 노동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도 비판한 바 있어 황 후보자의 종교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화일보가 19일 황 후보자의 지난해 출간 저서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황 후보자는 종교의 자유와 관련한 부분에서 “헌재가 주일에 공무원시험인 사법시험을 치르는 것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유감이다”고 밝혔다. 헌재가 지난 2001년 9월 사법시험 1차 시험을 일요일에 시행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정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황 후보자는 “비록 헌재의 결정이 이와 같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공무원 시험을 주일에 치르라는 명령이 될 수는 없다”며 “따라서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정부로서는 종교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도록 이미 대다수 국민들에게 휴일이 되고 있는 토요일 오후 등 주일이 아닌 적당한 기회를 마련해 공무원 시험을 실시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편의를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후보자는 같은 저서에서 ‘교회의 유급 종사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며 해고된 선교사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심히 부당하다”고 비판한 사실이 최근에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종교적 편향성을 드러내 국론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종교적으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그렇지 못할 소지가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설사 황 후보자가 기독교에 심취해 있더라도 법무부 장관은 세속법과 교회법이 부딪치면 분명 세속법을 우선시해야 하는 데다 법적 질서를 제1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자리”라며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종교적 소신을 강하게 드러낸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황 후보자 측은 “그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철학은 앞에 서문에 나와 있듯이 종교생활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일요일에 시험 보는 것에 대해서도 기독교인으로서 하신 말씀인 만큼 종교 편향적이라고 타이틀을 다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문제될 사안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광양시가 뒤늦게나마 ‘국제화추진’을 표방하고 일어선 것으로 필자는 인식한다. 국제화라 하면 아주 거창한 것인 양 들릴 것이나. 그것은 거대한 건물이 여러 종류의 작은 소재들로 이룩됨과 같이 이 거창하게 보이는 국제화라는 것도 크게는 각각의 나라, 작게는 그 나라들의 도시와 마을들이 국제화의 토대인 것이다. 고대 로마는 물론, 그리스의 소도시 아테네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본받을 국제화의 원형이자 원조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광양시가 국제화를 추진하려고 나선 것이 이 시대를 정확히 읽고 올바른 방향, 곧 ‘세계로!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5. 광양국제화추진위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제안) 첫째; 국제시민 의식의 선양: 광양시는 작으나마 국제화를 이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기업인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으며, 네델란드 물류대학원이 있다. 광양항만은 한반도 남쪽 해안선의 중심부에 자리하고서 태평양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바다의 관문이다. 컨테이너부두에 이어 광양항은 이미 외항로선을 개설했다. 이웃 도시, 여수와 순천도 국제 행사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작년의 여수 국제박람회, 금년의 순천 국제정원박람회, 순천에 개설된 외국인학교와 시내면세점 개통 등이 우리 광양시를 자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을 갖춘 도시로서 시민은 마땅히 국제시민 의식을 갖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모처럼 출발한 이 ‘광양시국제화추진위원회’는 하나의 상설 기구로서 광양시민에 대한 국제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담당부서인 항만통상과는 관광진흥과 및 문화홍보담당관실과 긴밀한 협조 하에 시민의 국제화 마인드 조성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시 산하에 (가칭) 광양국제시민대학을 설치함이 좋을 것이다. 이 기관에서는 국제간 시민 및 단체의 친선 교류에 필수적인 국제적인 예절과 세계와 소통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 여기서는 글로벌 인재의 진짜 경쟁력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양성이 필수과목이 될 것이다.(참고로 필자가 지난날 일간지에 게재했던 ‘국제인의 예절’에 관한 글을 첨부한다)
둘째; 국제문화 행사의 주관 및 참여; 전술한 바와 같이 광양시의 문화홍보 및 관광 진흥 담당 부서와의 긴밀한 협조 아래 각종 국제문화 행사를 주관하고, 해외 자매/우호 결연 도시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전개할 것이다.
셋째; 광양시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과의 유대: 우리가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우리 지역 안에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 곧 다문화 가정들이다. 이들과 유대를 가짐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 문화를 그들의 모국에 전달함으로써 국제 친선교류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국제간 학생 및 성인의 다양한 문화 교류 촉진; 스포츠, 전통 무용, 가요, 다도, 꽃꽂이, 공예, 조각, 문예활동 등 예술 문화를 통한 국제간의 이해 촉진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각 나라들의 문화 유산의 보호, 환경 정화 운동 등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국제시민 정신의 고양이다. 나아가 세계의 99%의 풀뿌리 시민과의 복지 향상 위한 국제적인 시민운동에 대한 참여도 힘쓸 것이다. 이상
<후기> 이 글은 광양시가 '국제화추진위원회 설치에 관한 조례'에 따라 '광양시국제화추진협의회'를 설치함에 즈음하여 내가 지역신문에 투고한 것이다. 2012년 1월 8일에 소집된 제1차 회의에서 내가 회장에 선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