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공원은 어린시절 우리 친구들의 추억이 깃던 곳이다.
'60년대 초,중반 초딩 시절 우리 학교의 단골 소풍코스가 에덴공원 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소풍길을 옛사진으로 한번 더듬어 보면서 에덴공원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노란선이 진행 방향임. 학장초교 후문을 나와 들판을 가로 질러 학장천둑 까지 간다.(1950년 항공사진)
학장천둑을 만나 둑길 서편 엄궁쪽으로 계속 걸어간다 ('80년대 학장천 사진)
학장천 둑길 서편 엄궁쪽으로 계속 걸어간다 ('90년대 학장천 사진)
학장천둑길을 좀 더 걸어간다.('70년대 엄궁쪽 학장천)
엄궁 다리와 수문이 나온다. 오른쪽에 엄궁 학장천 다리가 보임 ('80년대 엄궁교차로 부근 사진들)
엄궁 본동길을 가로질러 간다 ('70년대 엄궁본동 사진)
엄궁 본동을 지나 엄궁끝자락 장돌뱅이 고개길을 걸어 올라 간디.('70년대 엄궁 장돌뱅이 고개길 입구)
낙동강과 일웅도와 을숙도를 바라보며 장돌뱅이 고개길을 걸어간다 ('70년대)
장돌뱅이 모퉁이를 돌아가면 마침내 하단들과 에덴공원이 보인다.('70년대)
하단 삼거리와 에덴공원 ('70년대)
장돌뱅이길을 걸어 내려오면 지금의 하단 삼거리부근 거기서 하단 신작로를 좀 걸으면
오른쪽편 에덴공원에 드디어 도착이다.
그렇게 먼길을 걸었어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소풍때가 아니면 김밥에 삶은 계란, 사이다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물찾기에 노래자랑
끝나고 그 먼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우리들은 마냥 즐거워 했던 것 같다.
* 아담과 이브가 사는 동산, 에덴공원 *
사하구는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장이다. 부산 시내에서 버스로 30분쯤 하단동으로
가면 앞으로는 낙동강 하류를 끼고 산을 뒤로 한 에덴공원이 있다.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
과 테니스장이 있으며, 청마 유치환의 '깃발' 시비와 시민헌장비·산책로 등이 있다.
주변에는 철새가 찾아드는 곳으로 이름난 을숙도가 공원 앞 낙동강 가운데 갈대숲을 이루어 떠 있고
공원 안에는 토속 음식점이 있어 부산 시민은 물론 다른 지방의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 에덴공원의 역사와 유래 *
에덴공원은 본래 ‘강선대’라는 명승지로, 다대포의 몰운대와 함께 팔선대 중의 하나로 꼽혔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강선대 정상에 일본군이 해안포대를 설치하여 포병부대가 주둔한 적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8·15광복 후 개인 소유였던 곳을 1953년 부산중앙교회 장로였던 백준호
가 사들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에덴공원의 이름은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에 비유하여 지어졌다. 처음에는 에덴원이라고 불리던 것이, 그 뒤 자연스럽게 에덴공원으로 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다음 백과 사전에서
'70년대 에덴공원 강촌 카페 (팝송,포크송 감상, 막결리와 맥주)
'70년대 에덴공원과 강변, 강촌 카페 주점들의 추억을 얘기한 사연들
강변, 강촌 등 지금은 거의 이름을 잊었지만, 맥주는 엄두도 못 내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남기고 양심껏 주머니를 털어 노가리·오뎅[어묵]과 함께 막걸리를 시켜 마셨습니다. 계절은 지금쯤,
맵싸한 모깃불 연기에 가끔 눈물을 흘리며 ‘request music’으로 젊음을 함께 태웁니다. 고래 사냥,
「왜 불러」, 「화」, 「바다의 여인」, 「가을 편지」, 「listen to the music」, 「rain and tears」 「the boxer」……. 똥다리에서 뱃사공이 젓는 배를 타고 낙동강 삼각주 갈대밭으로 들어갑니다.
『메밀꽃 필 무렵』보다 더한 아스라한 마음 냄새가 어우러지면서 가슴은 뛰고…….”[afr56님의 글:
피플475 게시판, 2000. 8. 2]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시 호수와 갈대숲으로 둘러싸인 에덴 공원은 젊은이의 쉼터가 되었고, 동동주에 조롱박을 띄운 토속
적인 간이주점들은 통행금지에도 아랑곳없는 청춘들의 광장이었다. ……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황금빛 노을이 저물고, 강변 카페 창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며 꾸르몽의 낙엽」을 읊고,
존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를 불러 주던 그녀와의 추억….”[Daum: 박재영의 블로그,
2012. 6. 25]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70년대 에덴공원 주변 낙동강 돛단배 탄 여인들
1979 을숙도 나무다리
2003 강촌 카페가 강촌 골프 연습장으로, 그 뒤로 에덴공원과 승학산이 보인다.
1992 에덴공원 입구
2018 에덴공원 안내도
2018 에덴공원 산책길
2018 에덴공원 산책길
2018 에덴공원 산책길
에덴공원 체육시설
에덴공원 체육시설
2018 에덴공원 체육시설
2018 에덴원 표지석
2018 솔바람 음악당 표지판
2018 솔바람 표지판
1965년 부터 에덴공원 기슭에서 백광덕(에덴공원 소유자 백준호씨 둘째아들)씨가 강변카페(고전음악실)를 운영하던중 '70년대말 경에 에덴공원 주위가 매립되면서 강변카페 문을 닿게되고 그 옆에 있던 백광덕씨 동생이 운영하던 팝송 및 포크송 음악실 강촌카페도 문을 닿게 됩니다. 그 후 5~6여년을 숨 죽여 지내던 백광덕씨가 1986년 에덴 공원 꼭대기에 있던 작은 매점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고전 음악실 ‘솔바람 음악당’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갈대와 새들의 천국 강변을 거쳐 수풀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를 찾아 산정에서 ‘솔바람’을 맞게 된 것이다. 솔바람 음악당은 2013년 까지도 '고' 오태균 추모음악회 등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2018 솔바람 음악당 왼편 무대, 오른편 객석
2018 솔바람 음악당 무대
2018 솔바람 음악당 객석
2018 요태균 음악비
2018 청마 유치환 시비
2018 부산 시민 헌장비
2018 에덴유원지 사유지 표시
동아대 입구에서 본 에덴공원
다음 지도 현재의 에덴공원 항공 사진
에덴공원을 예산 185억원을 들여 에덴유원지(문화관광 테마파크)로 재개발 2018년 완공 예정
※ 추가사진 입니다 - '70년대 에덴공원 소풍 모습들
'70년대 초반 '52년생 용띠 처녀들의 에덴공원 나들이 ( 이 처녀분 들 이젠 67세 ^.^ )
'70년대 초반 '53년생 뱀띠 고삐리들의 에덴공원 소풍 ( 이 고딩분들도 이젠 66세... ^.^ )
1973년 '61년생 초딩6학년들의 에덴공원 가을소풍 ( 이 어린이들도 이젠 58세 ^.^ )
1977년 '65년생 초딩6학년들의 에덴공원 가을소풍 ( 이 어린이들도 이젠 54세 ^.^ )
첫댓글 부산살면서 에덴공원 한번도 못가봤네요
1990년대 하단역에서 찾아갈 때 소방서 옆길이 질러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가는 길에 큰 숲을 하나 끼고 돌았는데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돌아올 때 동아대 입구 육교 뒷길에서 숲 입구 표지판을 보고 나서야
거기가 버스 종점 이름으로만 들었던 에덴공원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 때가 에덴공원을 유일하게 스쳐 지나기만 했던 때였지요.
저도 공원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기억을 끄집어 낼 만한 게 전혀 없습니다.
여기를 유원지로 재개발한다는 건 이글에서 처음 접합니다만
예전에 이곳에서 남겨진 추억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앞으로 달라지게 될 에덴공원을 방문하실 경우 만감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홍깨님, 사진과 설명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980년대엔 1번과 2번 버스가 종점이 에덴공원이었습니다.
당시 집에 두어 권 있던 시내버스 노선 수첩에서 에덴공원이 첫머리에 늘 나왔었지요.
그 외에도 서면이나 가야에서 늘 봤던 59번, 116번도 에덴공원이 종점이었습니다.
1986년에 실수로 버스를 잘못 타서 대티터널을 잠깐 지났다가 내린 것 외에는
1990년 이전까지 사하구 지역을 전혀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기 전의 저에겐 에덴공원은 그저 부산 시내 아주 먼 곳 정도의 이미지였답니다.
그래도 1990년대에 근처를 지나고 나서는 위치에 대한 막연함은 사라졌었습니다.
사실 '30년대 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괴정에 분뇨투기장, 하단에 분뇨처리장(저장소),
하단 낙동강에 똥다리 분뇨배출관 때문에 똥냄새가 끊이지 않는 동네 였습니다.
이른바 똥골 동네..
,
'73년도에 엄궁(행정구역상 감전동)에 최신식 시설로 분뇨를 화학처리하는
분뇨처리장인 위생사업소가 생기기 전까지, 그 후 75년경에 괴정 분뇨투기장
과 하단의 분뇨처리시설들은 폐쇄하게 됩니다..
그래도 하단 낙동강의 똥다리는 을숙도 하구언 공사
시공전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선착장 용도로..
하단이 에덴공원과 을숙도의 꿈과 낭만 만이 있는 동네는 아니었죠.
위사진의 아아들 혹시 낙동국민학교 생들 아닌가요 저도 승학산 목장아니면 에덴공원, 동매산(오층꼭대기)으로 소풍가고 했습니다
위는 대교초교, 아래는 송도초교 입니다
전 78년부터 82년까지 자주 갔습니다. 강나루라고 비닐하우스에 피아노,기타가 있어 손님 중 아무라도 반주하고 같이 노래불렀던 곳입니다. 막걸리를 주로 팔았던 곳인데 당시 젊은이들이 많이 왔었죠. 화장실이 따로 없어 갈대밭에 가서 노상 방뇨했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