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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21)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4)
비무극(費無極)의 말에 따라 맹영(孟贏)을 가로채기는 했으나 초평왕은 세자가 이 일을 알게 되지나 않을까 늘 불안했다.
- 세자의 왕궁 출입을 일체 금하노라.
이렇게 명을 내리고 나서야 마음이 안심되었다.
초평왕(楚平王)은 맹영에게 빠져 있었다.
열흘이면 아흐레를 내궁 맹영의 처소에 머물렀다.
그러는 중에 이상한 소문이 왕궁 일대에 퍼져나갔다.
- 이번에 새로이 들인 후궁의 정체가 수상쩍다.
백관들은 모이기만 하면 초평왕과 맹영(孟贏)과 세자를 입에 올렸다.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무극(費無極)은 은근히 겁이 났으나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는 다음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적당한 기회를 보아 초평왕에게 아뢰었다.
"진(晉)나라가 오래도록 천하 패권을 잡은 것은 남양(南陽) 일대를 장악하여 중원과 통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왕께서도 천하 패권에 대한 대망(大望)을 버리시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세자를 대장으로 삼아 중원으로 통하는 길목인 성보(城父)를 굳게 지키십시오.
그러면 가히 앉아서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초평왕(楚平王)은 세자를 변방으로 내보내라는 말의 의미를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두 눈을 끔벅거리며 비무극을 내려다보았다.
비무극(費無極)이 가까이 다가 앉으며 초평왕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세자가 도성 안에 있으면 신부를 바꿔친 비밀이 탄로나기 쉽습니다.
세자를 먼 곳으로 보내야만 양쪽이 다 편안합니다."
비로소 초평왕(楚平王)은 비무극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며칠 후, 세자 건(建)을 성보 땅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대신들 사이에 반대 의견이 일었다.
- 세자를 변방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초평왕은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결국 세자 건(建)은 영성을 떠나 성보로 떠나갔다.
태사인 오사(伍奢) 역시 세자를 따라갔다.
장수 분양(奮揚) 또한 사마에 임명되어 성보로 내려갔다.
세자 건(建)은 성보 땅에 이르러서야 아버지 초평왕이 자신의 신부인 맹영(孟贏)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노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그는 그대로 동강(東姜)을 자기 아내로 여기고 살았다.
BC 523년(초평왕 6년) 여름의 일이었다.
맹영(孟贏)은 우울했다.
'나는 세자의 아내가 되기로 하고 초나라로 시집왔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엉뚱하게 초왕의 후궁이 될 줄이야.‘
날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는 웃음을 잃어갔다.
그 해 겨울에 맹영(孟贏)은 아들을 낳았다.
초평왕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보배처럼 귀하다 하여 이름을 진(珍)이라고 지었다.
다시 1년이 지났다.
그래도 맹영(孟贏)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이 초평왕(楚平王)은 안타까웠다.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
"그대는 궁중에 들어온 후 늘 수심에 젖고 웃질 않으니 웬일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자에게 시집온 몸으로 왕을 섬기게 되었는데, 어찌 낯을 똑바로 들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초평왕(楚平王)은 겸연쩍었다.
"그대는 지난 일을 더 이상 기억하지 마라. 내가 그대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리라.“
"어떻게 저를 위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유심히 살피니 그대의 소생인 공자 진(珍)이 퍽 영특하다.
군왕의 자질이 다분하니 세자로 삼아 나의 후계자로 삼을까 하노라."
"그렇게만 되면 원이 없겠습니다.“
며칠 후 초평왕은 공자 진(珍)을 세자로 삼았다.
그제야 맹영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이로써 초나라에는 세자가 둘이 있게 되었다.
자신을 미워한 세자 건(建)에 대해 비무극은 철저히 복수했다.
그는 세자를 초평왕에게서 멀리 떼어놓는 것까지 성공했다.
여기까지가 그가 애초에 구상했던 음모였다.
그런데 자신의 음모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이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었다.
'후일 세자 건(建)이 복수를 해온다면........‘
이런 생각이 들자 잠이 오질 않았다.
만일 세자 건이 왕위에라도 오르는 날이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왕 일을 벌인 김에 세자 건(建)을 죽여버리자.‘
비무극(費無極)은 내심 새롭게 결심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초평왕을 볼 때마다 세자 건을 모함하는 말만 아뢰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성보 땅에 나가 있는 세자가 자기 신부를 빼앗긴 것을 알고 오사(伍奢)와 더불어 반역을 꾀하고 있다 합니다.
이미 진(晉)나라와 제(齊)나라에 사람을 보내 원조를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왕께서는 경계를 철저히 하셔야 할 것입니다."
"건(建)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는 천성이 유순하여 결코 그런 일을 꾸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유순한 사람이라도 자기 아내를 빼앗기고서 마음이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왕께서는 공자 진(珍)을 세자로 삼으셨습니다.
자신의 앞날이 위태로운데 어찌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겠습니까?
만일 왕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신은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목숨이나 유지해야겠습니다.“
두 번 세 번 듣는 중에 초평왕(楚平王)은 어느덧 세자 건(建)에 대한 의심이 가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건을 세자 자리에서 폐하고 영성으로 불러들여야겠다."
비무극(費無極)이 펄쩍 뛰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지금 세자는 외방에서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세자를 폐한다는 전지를 내리면 그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왕을 치러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은가?"
"뒤에서 세자를 조종하는 사람은 그의 스승인 태사 오사입니다.
왕께서는 먼저 오사(伍奢)를 불러들이시어 옥에 가둔 후 다시 군대를 보내어 세자를 잡아오십시오.
그러면 모든 불행을 일거에 없앨 수 있습니다.“
초평왕은 고개를 끄덕인 후 사람을 성보 땅으로 보내어 오사를 소환했다.
초평왕(楚平王)은 궁으로 들어온 오사를 향해 준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자가 성보에 머물며 반역할 것이라는데, 너는 그것을 아는가?“
오사(伍奢)는 성품이 강직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간신의 말만 듣는 초평왕에게 간(諫)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잘되었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왕께서는 맹영(孟贏)을 빼앗은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왕께서는 하찮은 소인배의 말만 듣고 아들을 의심하시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소인배를 멀리하시고 세자를 도성으로 불러들이십시오."
오사의 직간에 초평왕(楚平王)은 부끄럽기도 하고 노기가 치밀기도 했다.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호령했다.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오사(伍奢)가 무사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무극(費無極)이 다시 초평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이제 세자에게 반역의 뜻이 있음을 명확히 아셨습니다.
세자는 오사가 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면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올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람을 보내어 세자를 죽여야 합니다.“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영성에서 사람이 내려가면 세자는 필시 목숨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따로이 사람을 보낼 필요 없이 성보 땅에서 세자를 보좌하고 있는 사마 분양(奮揚)에게 밀지를 내리십시오.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그렇군."
초평왕(楚平王)은 심복 내관 한 사람을 성보로 내려보내 분양에게 밀지를 내렸다.
- 세자를 죽이면 큰 상을 내릴 것이요, 세자를 놓아 보내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분양(奮揚)은 고민했다.
그는 본래 세자 건(建)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몇 년간 함께 지내는 동안 세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그는 부하 한 사람을 세자에게로 보냈다.
"세자께서는 다른 나라로 도망치십시오.“
세자 건(建)은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왔음을 알았다.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아아, 나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이때 그에게는 동강에게서 난 아들 하나가 있었다.
아들의 이름은 승(勝)이었다.
그는 동강과 아들 승을 깨워 밤의 어둠들 이용해 함께 송(宋)나라로 달아났다.
뒤늦게 세자 일가가 도망친 것을 안 초평왕(楚平王)은 크게 분노했다.
세자 건의 생모인 채희(蔡姬)를 운(鄖) 땅으로 쫓아내고, 맹영을 정부인으로 삼았다.
아울러 공자 진(珍)을 정식으로 세자에 책봉했다.
이로써 이 일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간신 비무극(費無極)의 농간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세자 건(建)이 죽지 않고 국외로 도망친 사실에 대해 몹시 불안해하였다.
그가 언제 국내의 세력과 줄을 잇고 다른 일을 도모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먼저 세자 건의 스승인 오사(伍奢)부터 죽여야 합니다.
그는 초평왕에게 속삭였다.
지금 오사(伍奢)는 옥에 수금되어 있다.
그를 죽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초평왕(楚平王)이 비무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구를 불러 오사를 죽이라는 명을 내리려 할 때였다.
비무극(費無極)이 또 말했다.
"왕께서는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오사(伍奢)는 비록 세자의 스승이기는 하나 그다지 염려할 만한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근심거리인가?“
비무극(費無極)은 작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오사에게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습니다.
오상(伍尙)과 오원(伍員)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출중하고 비범합니다.
오상은 지금 당읍(棠邑)을 다스리고 있으며, 그 동생 오원이 형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다른 나라로 달아나 폐세자 건(建)과 합세하는 날이면 왕께서는 한시도 베개를 높이고 주무실 수 없습니다."
"그들을 불러 죽이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하오나 그냥 부르면 그들 형제는 죽을 것을 짐작하고 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올까?“
"오사(伍奢)를 불러내어 죄를 용서할 터이니 두 아들에게 속히 영성으로 오라는 편지를 쓰게 하십시오.
오상과 오원은 아비에 대한 효성이 지극합니다.
아비의 석방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삼부자를 한꺼번에 죽여버리면 아무 후환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계책이다.“
초평왕(楚平王)은 기뻐하며 오사를 옥에서 끌어냈다.
당하에 꿇어앉은 오사 앞에 글을 쓸 수 있는 붓과 비단을 내주었다.
"그대가 세자와 짜고 모반을 도모한 죄는 크다.
마땅히 목을 참하여 널리 보여야 할 것이로되, 그대 조부 오삼(伍參)과 부친 오거가 선대에 공이 컸으므로 특별히 용서하겠다.
아울러 그대의 두 아들에게는 새로운 관직을 내릴 터이니 편지를 써서 조정으로 불러들여라.
그러나 그들이 오지 않으면 그대를 용서하지 않겠다."
오사(伍奢)는 초평왕이 속임수를 써서 자신의 두 아들까지 죽일 작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는 신하의 신분으로서 왕명을 거역할 마음은 없었다.
곧 그 자리에서 편지를 썼다.
나는 왕께 바른말을 올리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옥에 갇힌 몸이 되었으나,
다행히 왕께서 우리 조상의 공적을 생각하시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여러 신하의 권고에 따라 왕께서는 너희들에게 새 벼슬을 내리시겠다고 하시니, 너희 형제는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조정으로 들어오너라.
만일 왕명을 어기면 그 죄가 가볍지 않을 것이요. 나 또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초평왕(楚平王)은 오사가 쓴 편지를 읽어보았다.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흡족한 웃음을 지은 후 사구를 향해 명했다.
"오사를 다시 옥에 가두어라!“
오사(伍奢)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 항변도 하지 않고 옥으로 돌아갔다.
옥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오사가 두 아들을 불러내는 편지를 쓰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타박하듯 물었다.
"왕은 그대의 두 아들까지 죽일 것이 뻔한데, 어째서 그런 편지를 썼소?"
오사(伍奢)는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나의 큰아들 오상은 천성이 고지식하고 착하여 아비가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요.
하지만 둘째 아들 원(員)은 생각이 깊고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 내가 부른다 해도 오지 않을 것이오.
어찌 왕이 나의 아들 모두를 죽일 수 있으리오?"
한편, 초평왕은 총신 언장사(鄢將師)에게 오사의 편지를 내주며 명했다.
"너는 바람처럼 당읍으로 달려가 오상 형제에게 이 서신을 전하여라.“
그 날로 언장사는 영성을 출발해 당읍으로 내려갔다.
그는 오상을 보자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경사를 축하합니다.“
오상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아버지께서 옥에 갇혀 지내시는데, 내게 경사스런 일이 생길 게 무엇 있다고 축하의 말을 하는 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왕께서 그대 아버지를 옥에 가두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후 많은 신하들이 간하여 지금은 풀려나신 상태입니다.
여기 그대 아버지께서 친히 쓰신 편지가 있으니 읽어보고, 어서 나와 함께 영도로 올라갑시다."
그 말을 믿고 오상(伍奢)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가 옥에 계신다기에 늘 마음이 칼로 베어내는 듯 아팠는데,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셨다 하니 천만다행이오.
내 곧 동생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하겠소이다.“
그러고는 아버지 오사의 친필 편지를 들고 동생 오원의 집으로 향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