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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 35. 땅에 앉게 36. 축사 37. 배불리 먹고 38. 사천 명이었더라 39. 마가단 지경
마 15: 35. 땅에 앉게 하시고 -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셨고 모든 것이 가능하셨다.
예수께서는 무리로 땅에 앉게 하셨다.
1]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인간 예수님은 믿음이 충만하셨다.
그의 충만한 믿음은 그의 신성의 도우심에 근거하였을 것이다.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비하게 결합되어 있으셨다. 그의 인성은 그의 신성으로 인하여 믿음 충만함을 가지셨다.
2] 땅에 앉게 하시고
이때의 계절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14: 19에서 푸른 잔디(막 6: 39)에 앉게 하셨을 때의 계절은 우기가 지나고 유월절이 가까운 봄이었다. 그러나 이방 땅에서의 전도 여행을 끝맺음하려는 이때는 유월절이 훨씬 지난 건조기의 여름에 해당한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떡 일곱 개를 가지고 그 많은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셨다.
마 15: 36. 축사하시고 -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
예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음식을 가지고 축사하셨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떼어주기 시작하셨고 제자들은 주님께 그것을 받아 무리에게 주었다.
1]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1) 떡 일곱 개와 생선
오병이어와 달리 떡과 생선이 어디에나 나왔는지 말이 없다.
(2) 축사하시고(*, 유카리스테사스)’
이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대화(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이러한 감사의 기도를 습관처럼 드렸다.
* 마 14: 19 -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떡과 생선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치리의 원칙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다.
마 15: 37.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음식은 그의 손에서 신기하게 늘어났다.
주께서 떼어주시는 행위는 수없이 반복되었고 온 무리가 배불리 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육신적 필요에 대한 그의 기적적 행위는 그 필요가 충족되고 남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 다 배불리 먹고
배불리 먹고와 같은 동사 '코타조'(*)가 5장의 산상수훈(山相羞訓)에도 나온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5: 6). 이 동사는 주로 '만족을 채우다'라는 의미로, 각 사람들이 각자 만족한 만큼의 넉넉한 음식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2]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유대인들이 여행 시에 이방인 지역을 지나가더라도 그들의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음식을 담아서 다니는 주머니를 가리키는 바구니(코피노스, 14: 20) 와는 다르다.
광주리(*, 스퓌리스)는 흔히 이방인들이 물고기나 과일을 담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갈대로 만든 큰 그릇이다. 어떤 것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것도 있었다.
본문의 남은 떡 조각은 5,000명 급식 때보다 더 많은 양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롤린슨(Rawlinson)에 의하면 최소한 유대인들도 정결한 음식물을 나르기 위해서는 광주리가 아니라 바구니(코피노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광주리'라고 하는 표현도 이 무리들이 역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 행 9: 25 -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그는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시고 축사하셨다. 그 앞에 놓인 떡과 생선, 그의 손에 들린 그 음식은 그 큰 무리에 비해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기 시작하셨고 제자들은 주님께 그것을 받아 무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음식은 그의 손에서 신기한 팽창을 하였다. 주께서 떼어 주시는 행위는 확실히 몇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온 무리를 다 배불리 먹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인간의 육신적 필요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 필요가 넘치게 충족될 때까지 그리고 남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 15: 38. 사천 명이었더라 -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
1]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예수의 이적이 지닌 탁월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구에 그가 베푸실 메시야 잔치의 풍성하고도 충만한 상태를 예시해 준다.
전 세계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필요로 하고 주님은 이 세상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도 남을 만큼의 풍성한 영적 생명력을 가지심을 보여준다.
2] 사천 명이었더라.
사천 명이라는 수에서
(1) 4
'넷'이라는 숫자는 천지사방(天地四方)을 의미한다.
(2) 천
'천'이라는 숫자는 크고 많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4,000(4×10X10X10)이란 영적으로 세계성, 보편성, 및 광대성을 암시하는 숫자라고 볼 수 있다.
3] 굶주린 자를 돌보시는 예수
예수께서는 데가볼리 지방에서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이미 주님과 함께 기거한지 3일이나 되었으므로 가진 양식이 진하여 매우 시장한 중에 있었다.
이에 주님은 그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사건에 버금가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우선 예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떡 일곱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취하셨고, 오병이어의 이적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이적을 베푸셔서 4천 명의 장정이 배불리 먹고도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차게 거두었다.
(1) 이적의 준비
① 그들은 떡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35절). 그들은 지극히 작은 음식을 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순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했다.
이것은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은혜를 충만히 받으려 할 때 겸손히 그 발아래 앉아서 영적인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주께서는 자아의 아집과 교만을 버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② 예수께서 음식에 대해 축사하셨다.
주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이처럼 축사(감사)를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갈망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또한 음식을 먹기 전에 감사를 하는 것은 이미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현재에도 그의 주실 은혜를 간청하며, 또한 미래의 모든 의식주를 부탁하는 것이다.
* 행 27: 34-37 –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③ 적은 것으로 큰 능력을 이루었다.
우리도 섭리의 주님께서 주신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다 사용해도 너무 적어서 실패할 지 모른다고 불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할 때 주님이 신적인 능력으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모든 영적 축복은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드려졌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기 때문이다.
④ 주님은 무리를 흩어 보내셨다.
주님께서 영육의 양식으로 그들을 먹이셨을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가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 항상 이적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 이적은 보편적으로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별할 상황, 즉 주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적을 바라는 신앙보다 오히려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2) 제자들의 손길을 통해 백성을 먹이신 예수님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은 앉아있는 무리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36절)
이것은 제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친히 받은 우리 각 사람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러한 영적 생명을 나누어 주기 위해 받았음을 기억합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적 생명을 받은 것은 나누어주는 데 필요하다.
예수님께 드려진 떡은 실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 떡이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지자 그 떡은 이미 보잘것없는 떡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비천한 죄인인 우리들이 예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지면 우리는 이미 비천한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이며, 하늘나라의 주인이 되는 영예로운 자격을 갖게 된다.
이러한 축복은 우리만 누려서는 안 된다. 제자들이 보잘것없는 떡덩이를 예수님께 맡겼듯이 우리도 예전의 우리와 같았던 비천한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예수님에 의해 변화를 받아 하늘나라의 귀한 성도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4) 그들은 차고 넘치는 풍요를 누렸다.
'그들이 다 배불리 먹고'(37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먹이시는 자들을 만족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때로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한다.
* 사 55: 2 -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모든 쓸 것을 공급받는다.
* 빌 4: 19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주님께서 이와 같이 많은 무리들을 배부르게 해 주신 사실은 그는 '베들레헴'(떡집), 즉 '영적인 떡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아니 그보다도 친히 '생명의 떡'이셨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 요 6: 48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비단 육신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까지도 주님의 은혜를 통해 날마다 공급 받으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마 15: 39.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
1]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주님과 함께 지내던(프로스메노, 32절) 사람들을 이제 '풀어 보내시다'(*, 아폴뤼오)는 의미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곁에 더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강제로 집에 돌려보낸다는 뜻이 들어있다.
(1) 제자와 다르다.
이들은 12제자들과 같이 집이나 전토(田土),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christian)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적만을 기대하며 쫓아다니는 사람들(Christ follower)이기 때문이다.
(2) 정치적 모의
광야에 남아서 예수를 임금으로 옹위(擁衛)하려는 정치적 모의를 할 수 없게 하려고 그들을 흩으시고 강제로 집에 가게 하셨다.
(3) 흩어짐의 결과
이들이 집이나 마을로 돌아가서 이 엄청난 사건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예수의 소문은 크게 퍼져나갔고 이들은 이방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다.
2]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막 8: 10에는 '달마누다 지방'으로 유대의 사본(바질 사본, 오전시스 사본)에는 '막달라 지경'으로(KJV에도 이를 따름) 라틴 벌게잇 역(Vulgate)에는 '마게단'(Magedan)으로 표기되어 있다.
* 막 8: 10 -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마가단'의 이름의 뜻은 '망대'로 그 위치는 불명확하나 디베랴의 북쪽 5km 지점의 게네사렛 평야의 남단에 있었던 성읍으로 보인다.
이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셔서 마가단[막달라](전통 본문)지경으로 가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믿으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고 각종 질병에 걸린 자들을 고쳐 주셨고,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명 이상을 먹이셨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도우심을 구하라.
무슨 문제든지 겸손히, 간절히 주께 구하는 자는 도우심을 얻을 것이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며 문제의 해답이다.
가나안 여인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주께 나아와 간구함으로 딸의 병을 고침 받았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주께 간구해야 한다.
셋째, 구원과 성화는 외적 기적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은 택자들의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이다.
2천 년 기독교 역사는 그 일이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고 성경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증언한다.
우리는 기적을 구하지 말고 회개와 믿음과 순종과 성화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