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날, 일요일 새벽
에스토니아를 떠나 러시아로 향하는 길....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구름이 가득합니다.
러시아 제 2의 도시, 집념으로 가꾼 예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실 3박 4일 정도 여행을 해야 하는 코스입니다.
하지만 제 여행의 목적지가 이곳이 아니었던 만큼
아쉬운 마음을 두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봐야만 했습니다. 흑흑.....
다음에 꼭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집념으로 일군 예술도시입니다.
1703년, 스웨덴에서 되찾아온 습지 위에서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는 장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네바 강 하구에 101개의 섬이 얼기설기 자리한 이 습지를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고 물렁한 땅은 돌로 촘촘히 메워 도시를 만들겠다는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계획이었지요.
이 계획을 듣고 어찌나 무모한지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았고 심지어 아들까지 반대하고 나섰지만 표트르 대제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결국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계획을 밀고 나간 집념의 왕은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무려 15만명이 희생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오명 속에서 성 베드로의 도시, 아니 표트르 대제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다면 표트르 대제는 왜 이렇게 도시 만들기에 집착했을까요?
청소년기를 서유럽에서 보낸 표트르 대제는 뒤처진 러시아의 위상에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전통만 고수하는 러시아에 변화가 필요하다 여긴 그는 새 도시에서 서유럽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길 원했던 거죠.
특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매료된 그는 바다와 강, 운하의 능력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생산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최북서단의 네바 강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길목에 새 도시를 만들고 서유럽과 같은 문화를 심어나간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습니다.
러시아 전통 복장을 금지하고 수염을 길게 기르는 습관마저 싹둑 잘라버린 그는 수염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수염세라는 세금까지 매겼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서유럽을 닮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화려한 서유럽풍의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지요.
운하와 수많은 다리를 간직한 아름다운 외관이 갖춰지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의 주인공 표트르 대제가 한 일입니다.
한 나절을 걸어서, 놀며 쉬며 먹으며 여행하면 좋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점을 찍듯이, 위대한 건물을 지나갑니다. 가장 아쉬운 점이죠.
테트리스 성당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
이곳에는 특히 소매치기가 많아, 가방을 꼭 앞으로 둘러야 한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니, 참 보기 안 좋으네요.(여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지만...)
발레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도시는 네바 강을 중심으로 101개의 섬과 580여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어 걸어서 도시를 감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운하 위 유람선을 타고 유유자적 즐겨도 좋겠어요. 이러한 점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발틱해에서 내륙으로 30㎞ 들어간 지점에 위치해 운하를 통해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에스토니아 탈린 등과도 연결되니까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13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이 시기 화려한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지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의 문호와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등의 음악가가 탄생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인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다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봐야할 것!>
'죄와 벌'을 가른 센나야 광장의 730걸음
벌레만도 못한 전당포 노파를 죽음으로 단죄하기 위해 좁다란 다락방에서 나와 무더운 초여름의 센나야 광장을 가로지른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의 집까지 총 730걸음을 꼼꼼하게 센다.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에 등장하는 센나야 광장과 주변의 빈민가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불리는 도스토옙스키가 직접 경험한 가난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지금은 도스토옙스키 박물관(Dostoyevsky Literary Memorial Museum)으로 말끔하게 꾸며져 있는 그의 허름했던 하숙집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담긴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진면목을 소개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번민에 휩싸여 걸었던 730걸음 동안 펼쳐진 처참한 도시의 풍경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백야' 속에 등장하는 더할 나위 없이 인위적인 도시의 몽상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깊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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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시킨 동상 / 넵스키 거리
넵스키 대로를 바라보던 푸시킨의 짧은 삶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넵스키 대로(Nevsky Avenue)를 따라 늘어서 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 이미지는 이 대로에서 포착된다. 그 덩치 큰 이미지들의 사이 좁은 골목에 숨은 예술가의 단골집이 있다. ‘문학 카페’로 불리는 유서 깊은 이 찻집에는 러시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푸시킨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에게 구애를 하며 명예를 더럽히는 일행을 향해 결투를 신청하고는 안타깝게 결투에 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허망하게도 결투의 총성 아래 서른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고 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라던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다면 죽음의 결투를 불러들인 노여움을 잠재울 수 있었을 텐데….
첫댓글 고 최웅길 박사의 그림중 이곳을 그린것을 본 기억이 남니다. 그때는 러시아라시며 한참 설명을 하셨지만 어딘지도 모를 그림속의 건물과 물들을 보고 감탄을 했었습니다.^^
최웅길 박사는 누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ㅋ
@바람숲 신경외과선생님.
@산지기 아, 최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