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는 길』
-이미영 작가의 수필집을 읽고-
박경선
그루사에서 출간된 이미영 수필가의 두 번째 수필집 『너에게 가는 길』을 읽었다. 영남수필 카페에서도 그녀의 수필을 몇 편 읽었는데 그때마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글의 품격에 감탄하게 된다.
이번, 수필집 『너에게 가는 길』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보내는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듯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이미영 작가의 글에서 빛나는 부분들은 내게 없는 부분이거나 부족한 부분들이어서 ‘쓰지 않고는 죽을 만큼 견딜 수 없거든 그때 써라’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음성이 나를 혹독하게 꾸짖는 듯 들려왔다. 이번 작품집을 읽으며 그런 혹독한 꾸중 속에서도 감탄하며 공부한 것들 네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글의 품격을 높여준다. 수필 <집으로>에서 보면 거실 한편 김장배추 절일 공간에서도 이집트 신전 앞 오벨리스크를 떠올리는 상상은 오랜 기간 동안 폭넓은 독서를 해온 내공이 아니고서는 펼쳐낼 수 없는 공간인데.
둘째, 작가는 시치미 떼고 능치는 능력(오랜 필력)으로 독자들에게 신선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서두를 장식하는 능력이 뛰어난다.
수필, <황금마차>서두에서 ‘황금마차는 돌아오지 않았다.’로 시작해서 한참 가다가 그 황금마차가 붕어빵 굽는 포장마차를 이른 말임을 깨닫고 포장마차를 얼마나 품격 있게 표현했는지 알게 되었다. 문득, 김용준의 <이동음식점> 수필이 생각났다. ‘이 집의 재미난 것은 주추 대신 도롱태를 네 귀에 단 것이다.’며 한참 뒤에 가서 포장마차의 정체를 드러내었는데 그때 능침의 톤과 색채에 감동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황금마차>는 <이동음식점>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수필, <신세계>에서 칭기스칸 이야기를 끌어와 무슨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나싶어 읽다가 아파트 이름<신세계>를 끌어오는 바람에 ‘또 속았잖아.’ 싶어 피식 웃었다. 그 속임이 얼마나 그럴듯하고 재미있든지.
셋째, 수필의 여러 형식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작품도 여러 편 있었다.
수필 <간병 일기>에서 등장인물들을 침상1, 2 희곡 형식으로 끌어들여놓고 작가는 나레이션을 맡은 듯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구성이 인물 하나하나의 특징을 더 또렷하게 집약해서 표현해준다.
수필 <안녕하세요 미스터스터다아시> 는 『오만과 편견』 의 주인공인, 19세기에 살다간 미스터스터다아시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마차를 타고 만나러가는 묘사로 시작했다. 본 것은 고작 벽난로 위에 놓인 부부의 초상화이지만 밀랍으로 봉해진 편지 한 통을 펼쳐 읽는다는 식으로 작가의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기법과 재치가 작가의 충실한 사유에 황금빛 날개옷을 입혀주었다..
넷째, 자세하게 사물을 관찰해서 묘사하는 훈련을 얼마나 치열하게 해왔을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표현들이 빛났다.
수필 <삼김 시대>만 봐도 감탄하게 된다. '한 손은 참고서를 끼거나 흘러내리는 가방 끈을 잡고 다른 한손을 가슴팍까지 올렸다가 내리면 내일 또 만나자는 말이 된다. 생기 없는 머리칼은 얼굴을 덮었다.‘
수필 <밥그릇 기도>에서 ‘툭 불거진 광대뼈 아래로 앙 다문 마른 입술로 뾰족하게 도드라진 턱밑에 두 손을 모아 감사를 드리는 중이었다. 기도하는 아이에게는 ’얼른 먹고 싶어요 보다는 한 그릇에 대한 고마움이 고스란했다.’식의 묘사는 얼마나 치밀하게 지켜보며 다듬은 문장일까?
다섯째, 작가가 주로 쓰는 말들이 신선한 단어들의 조합이라 낯설음의 참신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문체와 운율은 물론이고, 풍유, 대조의 수사법등 다양한 수사법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
수필 <돌이 기도한다>에서 ‘기도는 경전이 되어 돌마다 새겨지고 계곡은 염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대구법과 시적 운율을 품었다.)
아, 그래서 이미영 수필가는 2011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래 2012년 동리목월 신인상, 2014년 젊은 수필로 선정, 2019년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 후원금 수혜, ‘빛나는 수필가 60’으로도 선정되었나보다.
나처럼 20년 동안 칼럼을 주로 써온 사람은 12매로 고정된 지면에 주제를 요약해서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한다는 관념만 바투 쫓아온 탓에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이나 섬세한 묘사를 위한 오랜 관찰에 마음을 두지 못했다. 기한 전에 원고를 넘겨야 된다는 압박감만 안고 살았으니 문체도 직유법이 주를 이루었고 딱딱한 명령어도 더러 썼다. 그래서 이미영 작가의 수필집『너에게 가는 길』 은 수필쓰기 공부를 제대로 하려는 나에게 『나에게 오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스승 같은 책을 만남에 감사한다.
2019.9.27. 12매
이미영선생님! 책표지의 작가 사진을 보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책 안쪽을 보는 옆모습사진. 즉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진 사진을 실으면 좋겠습니다. 정면을 보는 사진이야 상관없지만 옆모습 사진일 때는 오른쪽으로 보는 사진이라야 작가가 책 안쪽을 보는 인상을 줍니다. 왼쪽으로 보는 옆모습 사진은 작가가 책 밖을 보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이 점을 챙겨주어야 할겁니다. 다른 책들에 실린 작가의 옆모습 사진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이미영 작가의 너에게 가는 길을 읽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