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容齋) 이행(李荇)의 거제유배문학 5.>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해 많은 정치인과 학자가 거제도로 유배 왔다. 당시에는 거제 치소가 고현성에 있어, 대부분이 구(舊)신현읍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행(李荇)은 상문동, 김세필은 수월리, 홍언충(洪彦忠)형제는 장평동 바닷가(삼성호텔)에 배소가 있었다.
◯ 옛 시인들의 시(詩) 주제였던 남국의 식물, 파초(芭蕉)는 다년생 식물로 잎이 넓고 선인의 풍취가 있어 도교의 팔선(八仙)이 지니고 다녔다는 8가지 물건 가운데 하나이다. 주로 남부 해안지방에서 자라며, ‘감초(甘草)’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파초의 잎 모양으로 만든 파초선(芭蕉扇)이라는 부채를 즐겨 사용하였고 조정의 삼정승이 출행할 때 머리 위를 가렸던 식물로도 유명하다. 파초는 겨울에 죽은 것 같다가도 이듬해 봄이 되면 새순이 나오고 불에 타고도 다시 살아 나온다하여 장구(長久)와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상징으로 여겼다. 폭염 아래 파초는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로 초록 하늘을 만들어 눈을 씻어준다. 그래서 파초의 별명이 녹천(綠天)이다.
이행(李荇)은 1506년 거제도 여름동안, 태풍 속에 찢겨지는 파초의 이파리 소리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유배의 아픔을 느끼고 고독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일본의 중세 시인 바쇼는 '태풍 속 비바람에 쉬이 찢기는 연약함’ 때문에 파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파초는 청아하고 한가한 시인에게 최고의 시재(詩材)꺼리였다.
군미(君美) 홍언방(洪彦邦)은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홍언충 홍언승 홍언국 형제들과 장평동에서 함께 귀양살이를 했다. 군미(君美)가 봄부터 장평에서 키우던 파초를, 이행(李荇)이 와서 보니 큰 잎이 지붕 위로 높이 솟아 9척이나 되었다. 파초 포기를 얻어 온 이행은 파초를 심고는, 한여름 파초 그늘아래에서 파초 잎에다 시를 쓰기를 기대하며 시구(詩句)를 늘어놓는다.
송나라 학자 장재(張載)는 파초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초의 심이 다하여 새 가지를 펼치거든, 새로 말린 새 심이 은연중 뒤를 따르나니, 원컨대 새 심으로 새 덕 기르는 걸 배우고, 이내 새 잎으로 새 지식 넓힘을 따르련다.〔芭蕉心盡展新枝 新卷新心暗已隨 願學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 그리고 끊임없이 새 잎을 밀고 올라오는 파초의 자강불식(自彊不息)은 거제의 정신이기도 하다.
● 파초를 심으며(種芭蕉)
중국이 원산지인 파초는 고려시대에 씌어진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에 파초를 뜻하는 초(蕉)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1200년경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爲覓芭蕉種 파초 심으려 포기 구했더니
欣然九尺長 헌걸차게 구척 높이로 우뚝해라
-두주(頭註)에 “흔(欣) 자는 기(頎) 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 하였다(欣疑頎).
汲泉澆近土 샘물 길어다 가까운 땅에 붓고
掛席背斜陽 거적자리 걸어 비낀 햇살 막는다
休道光陰晩 한 해가 저물었다 말하지 말라
寧無雨露香 어찌 향기로운 우로가 없으리요
會修名卉譜 명훼보를 모름지기 지어야 하리
此物足升堂 이 식물도 승당하기에 충분할 테니
[주] 명훼보(名卉譜) : 명훼보란 이름난 화훼(花卉)를 적은 책이란 뜻으로, 이러한 책을 짓는다면 파초가 그 속에 충분히 들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거제유배문학 6.> 509
유배객이 유배지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중국 시인은 단연코 초나라 굴원(屈原, BC343?~BC278?)이다. 그는 2번이나 유배를 갔던 인물로 끝내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다 자살한 애국지사이자 시인이었다. 굴원의 작품은 『초사』라는 책에 「이소(離騷)」 · 「구가(九歌)」 · 「천문(天問)」 · 「구장(九章)」 · 「원유(遠遊)」 · 「복거(卜居)」 · 「어부(漁父)」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정치가로는 실패했으나 시인으로는 성공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1506년 거제도 유배객 이행 선생도 그의 시에서 언급했듯이 조정에는 난새 봉황 같은 길조는 나날이 멀어져 변방으로 쫓겨 가고, 제비 참새 까마귀 까치 매미 모기파리 같은 모리배 소인배들만 득실거린다고 한탄했는데 이는 모두 굴원의 시편에서 인용한 것이다. 흑백이 전도된 혼탁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노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유배객 중에는 죽는 그 날까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간 분들이 많다. “차라리 죽어 물에 흘러 없어질지언정 나는 차마 이런 짓 할 수가 없다.”던 굴원의 시편을 읊으며 닮고자 했던 것이다.
다음 시는 이행이 1506년 거제도에서 읊은 ‘독작장언(獨酌長言)“ 중 일부이다. 먼저 굴원(屈原)의 어부사를 언급하며 홀로 깨어 세속에 물들지 않는 굴원의 고지식함보다, 야랑(夜郞)에 유배 갔던 이적선(李謫仙) 즉, 이백(李白)이 항상 술에 취해 세상일 잊고자 했던 이백을 닮고 싶어 한다. 하지만 덕수자(德水子) 즉, 덕수 이씨 자신은 술을 살 돈도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전설상의 삼신산(三神山)에서 선인(仙人)이나 되어볼까 하는 속내를 내포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돌아도 변하질 않는 것인가? 2300년 전 중국이나 500년 전 조선이나 지금 대한민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일수록 그 뒷면에 숨겨진 사실은 그야말로 추악하다. 도덕성이나 신념 애민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옛날 분들이 말하길, “현실은 항상 어둡다. 세상은 혼탁해 분별이 없고 미덕은 가려지고 시기질투만 한다.” 먹묵은 버려두고 굽은 길 따라 다투어 비위 맞추는 것을 일로 삼는다.“ ”혼탁하고 시비곡직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고 사악함이 판친다.“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탐욕을 부리고 만족하지 못해 탐색한다.“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어느 하나 제대로 쉬이 바뀌질 않는다. 그렇더라도 단호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 홀로 술을 마시며 길게 말하다(獨酌長言). / 이행(李荇 1478∼1534)
吾不學屈原 나는 배우지 않으리라 굴원(屈原)이
憔悴江潭遷 초췌한 모습으로 강가에 쫓겨나
獨醒自著漁父篇 홀로 정신 깨어 어부사 짓고는 죽어서
死葬魚腹終不悛 물고기 뱃속에 장사해도 후회 않은 것을....
但願學夜郞李謫仙 다만 배우고 싶느니 야랑(夜郞)의 이 적선(李白)이
得錢沽酒醉則眠 돈이 생기면 술 사먹고 취하면 잠자며
眼下富貴滅沒雲與煙 눈 아래 부귀는 덧없는 구름과 안개라
仰視日月雙高懸 높이 걸린 해와 달만을 우러러본 것을....
李謫仙上天今千年 이 적선이 하늘로 오른 지 어언 천년 만에
德水子又竄炎海邊 덕수자(李荇)가 또 남쪽 바닷가로 귀양 왔구나
炎海邊無酒錢 남쪽 바닷가(거제도)에는 술을 살 돈이 없어
食貧寂寞枯腸煎 적막하고 가난한 터에 마른 창자 타겠네.
---중략---
唐虞三代遠矣邈焉 요순과 삼대의 시대 아득히 멀어졌으니
但飮酒休問天 그저 술이나 마실 뿐 하늘에 묻지 말자.
● 긴 이야기로 회포를 기술하다. 中 일부 / 이행(李荇 1478∼1534)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1506년 8월말에서 9월초에, 이행 선생은 지난 역사 인물들의 덧없는 인생을 나열하곤 스스로 체념하는 심정을 내포하고 있다. 다행이 선생은 9월초 중종반정이 일어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顔回不壽考 안회는 오래 살지 못하였는데
盜跖擁強兵 도척은 강한 병사 호위 받았고
鵩鳥災賈誼 복조는 가의에 재앙을 끼쳤으며
湘水沈屈平 상수는 굴원을 빠뜨려 죽였구나.
안회(顔回)는 공자의 가장 뛰어난 수제자였으나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고, 도척(盜跖)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유하혜(柳下惠)의 아우로 9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남의 우마(牛馬)와 부녀(婦女)를 마음대로 탈취하고 제후에게까지 횡포를 부렸던 도적의 괴수였다.
복조(鵩鳥)는 올빼미를 닮은 불길한 새이다. 가의(賈誼)가 좌천되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있을 때 복조가 지붕 위에 날아와 모였는데, 당시 민간에 전하는 말로는 복조가 지붕에 앉으면 그 집 주인이 죽는다고 하였으므로, 가의가 슬퍼하여 〈복조부〉를 지었다 한다. 상수(湘水)는 굴원(屈原)이 익사(溺死)한 곳으로 가의가 장사(長沙)로 좌천되어 가면서 상수를 건너다가 그곳에 빠져 죽은 초(楚)나라 현신(賢臣) 굴원을 조문하는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어 자기의 처지에 비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