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심화 문제 ❶
[01~ 0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흥보 이른 말이, / “애기 어멈 그리하시오. 쉬 다녀옴세.”
흥보 병영 내려갈 제 탄식하고 내려간다.
“도로는 끝없는데 병영 성중 어드메요. 조자룡이 강을 넘던 청총마(靑驄馬)나 있으면 이제 잠깐 가련마는, 몸이 고생스러우니 조그마한 내 다리로 오늘 가다 어디서 자며 내일 가다 어디서 잘꼬. 제갈공명 쓰던 축지법을 배웠으면 이제로 가련마는 몇 밤 자고 가잔 말가.”
여러 날 만에 병영을 당도하니 영문(營門)도 엄숙하다. 쳐다보니 대장이 지휘하는 깃발이요 내려다보니 순시하는 깃발이로다. 도군뢰(都軍牢)*의 치레 보소. ⓐ산짐승털 벙거지에 남일광단(藍日光緞)*으로 안을 받쳐, 갓끈 고리와 밀화(蜜花)* 귀를 땋은, 궁초(宮 )*로 만든 갓끈 잡아매고, 관디 협수(夾袖)* 군복 띠를 배에 눌러 매고, 날랠 용(勇)이라는 글자 떡 붙이고, 흥보 앞에 썩 나서며,
“에라 이놈 게 앉거라.”/ 흥보 속마음에, ‘내가 분명 저승에 들어왔나 보다.’
문간에 들어가니, 어떠한 사람들이 사오 인이 앉았거늘, 흥보 들어가며,
“인사하오.”/ “에 마오.”
“거기 뉘라 하오?”/ “나 말씀이오? 조선 제일 가난 흥보를 모르시오.”
한 놈 나서며, / “장자(長者)*가 무엇하러 와 계시오?”
흥보 가슴이 끔쩍하여, / “거기는 무엇하러 왔소?”
“평안도 사방동 동팔풍촌서 사는 솔봉 애비 모르시오. 이십오 대 가난으로 매품 팔러 왔소.”
또 한 놈 나앉으며,
“경상도 문경 땅의 제일 가난으로 사십육 대 호적 없이 남의 곁방살이로 내려오는 김딱직이란 말 듣도 못하였소.”
한 놈 나앉으며, / “이번 매품은 먼저 온 순서대로 들어간다니 그리하옵세.”
“저분 언제 왔소?”/ “나 온 지는 저 지난 장날 아침밥 먹기 전 동틀 때 왔소.”
한 놈 나앉으며, / “나는 온 지가 십여 일이라도 생나무 곤장 한 대 맞아 본 내 아들놈 없소.”
흥보 이른 말이, / “그리 말고 서로 가난 자랑하여 아무라도 제일 가난한 사람이 팔아 갑세.”
그 말이 옳다 하고, / “저분 가난 어떠하오?”
“내 가난 들어 보오. 집이라고 들어가면 사방 어디로도 들어갈 작은 곳이 없어 닫는 벼룩 쪼그려 앉을 데 없고 삼순구식(三旬九食) 먹어 본 내 아들 없소.”
한 놈 나앉으며, / “족히 먹고살 수는 있겠소. 저분 가난 어떠하오?”
“내 가난 들어 보오. 내 가난 남과 달라 이 대째 내려오는 광주산(廣州産) 사발 하나 선반에 얹은 지가 팔 년이로되, 여러 날 내려오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눈물만 뚝뚝 짓고, 부엌의 노랑 쥐가 밥알을 주우려고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톳이 서서 종기 터뜨리고 드러누운 지가 석 달 되었소. 좌우 들으신 바 내 신세 어떠하오?”
김딱직이 썩 나앉으며,
[A] [“거기는 참으로 장자라 할 수 있소. 내 가난 들어 보오. 조그마한 한 칸 초막 발 뻗을 길 전혀 없어, 우리 아내와 나와 둘이 안고 누워 있으면 내 상투는 울 밖으로 우뚝 나가고, 우리 아내 궁둥이는 담 밖으로 알궁둥이 보이니, 동네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 우리 아내 궁둥이 치는 소리 사월 팔일 관등(觀燈) 다는 소리 같고, 집에 연기 나지 않은 지가 삼 년째 되었소. 좌우 들으신 바 내 신세 어떠하오? 아무 목득의 아들놈도 못 팔아 갈 것이니.*]
”ⓑ이놈 아주 거기서 게정*을 먹더니라. 흥보 숨숨 생각하니, 자기에게는 어느 시절에 차례가 돌아올 줄 몰라,
“동무님 내 매품이나 잘 팔아 가지고 가오. 나는 돌아가오.”
하직하고 돌아오며, 탄식하고 집에 들어가니, ⓒ흥보 아내 거동 보소. 왈칵 뛰어 달려들어 흥보 소 매 검쳐 잡고 듣기 싫을 정도로 크고 섧게 울며,
“하늘이 사람들을 세상에 나게 할 때 반드시 자기 할 일을 주었으니, 생기는 대로 먹고 살지 남 대 신으로 맞을까. 애고애고 설움이야.”
이렇듯 섧게 우니 흥보 이른 말이,
“애기 어멈 울지 마소. 애기 어멈 울지 마소. 영문에 들어가니 세상의 가난한 놈은 거기 모두 모여 내 가난은 거기다 비교하니 장자라 일컬을 수 있어, 매도 못 맞고 돌아왔네.”
흥보 아내 이 말 듣고,
“얼씨구나 즐겁도다. 우리 낭군 병영 내려갔다 매 아니 맞고 돌아오니, 이런 영화 또 있을까.”
ⓓ“배고픔을 생각하여 음식 노래 불러 보자. 무슨 밥이 좋던 게요? 보리밥이 좋거던. 무슨 국이 좋 던 게요? 비짓국이 좋거던. 음식을 맛있게 하여 먹으려면, 개장국에 늙은 호박을 따 넣고 숭늉에는 고춧가루를 많이 치고 들기름을 많이 쳐, 사곰은 괴곰이 먹을 만하고,* 이만큼 시장할 때는 들깨 깻묵두 어둘레쯤 먹고 찬물 댓사발쯤 먹었으면 든든커던.”
이렇게 말을 할 제 흥보 아내 우는 말이,
“우정 가장(家長) 애중 자식 배 곯리고 못 입히는 내 설움 의논컨대, ⓔ 피눈물이 반죽 되면 아황 여 영 설움이요, 홍곡가를 지어 내던 왕소군의 설움이요, 장신 궁중 꽃이 피니 반첩여의 설움이요, 옥 으로 장식한 장막 속에서 죽으니 우미인의 설움이요, 목을 잘라 절사하니 하씨 열녀 설움이요,* 만경창파(萬頃蒼波) 너른 물을 말말이 다 되인들 끝없는 이내 설움 어디다 하소연할꼬.”
흥보 역시 슬퍼, 샘물같이 솟아나오는 눈물 가랑비같이 흩뿌리며 목이 막혀 기절하더니 다시 살아나서, 들릴 듯 말 듯한 말로 겨우 내어 기운 없이 가는 목소리를 처량하게 슬피 울며 만류하여 이른 말이,
“마음만 옳게 먹고 의롭지 않은 일 아니하면 장래 한때 볼 것이니 서러워 말고 살아나세.”
부부 앉아 탄식할 제, 청산은 높이 솟아 있고 온갖 꽃이 화려하고 찬란하게 피어 있는 때 접동 두견 꾀꼬리는 때를 찾아 슬피 우니 뉘 아니 슬퍼하리.
- 작자 미상, ‘흥보전’
*도군뢰: 조선 시대에, 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던 병졸의 우두머리.
*남일광단: 남빛 바탕에 해나 햇살 무늬가 있는 옛 비단.
*밀화: 호박(琥珀)의 한 가지. 밀랍 같은 누른빛이 나고 젖송이 같은 무늬가 있음.
*궁초: 엷고 무늬가 둥근 비단의 하나. 흔히 댕기의 감으로 씀.
*관디 협수: 옛날 벼슬아치의 공복과 군복.
*장자: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아무 목득의 아들놈도 못 팔아 갈 것이니: 자신 외에 어떤 사람도 매품을 팔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 ‘목득’은 ‘목두기’, 곧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귀신의 이름임.
*게정: 불평을 품고 떠드는 말과 행동.
*사곰은 괴곰이 먹을 만하고: ‘곰’은 고기나 생선을 푹 삶은 국. 여기서는 ‘곰’의 하나인 ‘사곰’중에서 ‘괴곰’이 먹을만 하다는 뜻.
*우정 가장 ~ 열녀 설움이요: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중국의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원통한 일을 당하고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음.
01 ⓐ~ⓔ를 이해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세밀한 묘사를 통해 벌을 받으러 온 인물의 처지를 드러낸다.
② ⓑ: 서술자가 개입하여 인물과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③ ⓒ: 말을 건네는 방식을 사용하여 청자가 사건 전개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④ ⓓ: 사리에 맞지 않는 가창이 등장하여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⑤ ⓔ: 동일한 어구를 반복하여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운율감을 형성한다.
02 [A]의 표현상 특징과 효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고사를 인용하여 지극한 효심을 표현하고 있다.
② 과장된 표현으로 인물의 궁핍한 처지를 희화화하고 있다.
③ 묘사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④ 대구적 표현을 통해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즐거움을 드러내고 있다.
⑤ 리듬감 있는 표현으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부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