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권 “각하 살려주십시오”…정인숙 피살에 靑 달려갔다 (61)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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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집권 기간 중 고위직으로 장수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정일권(1917~94년)씨일 것이다. 5·16혁명 때 주미대사였던 정씨는 외무부 장관(63~64년, 66~67년 겸직)→국무총리(64~70년)→공화당 의장서리(72년)→국회의장(73~79년) 등 대통령을 제외한 최고위직을 가장 오랫동안 누렸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산 것일까. 박 대통령은 그때그때 당신이 필요한 부분을 충족해 주는 사람들을 측근으로 중용했다.
김형욱이 저돌적 공격성을 보여줬다면 이후락은 일을 꾸미는 재기가 뛰어났고, 김성곤은 돈과 조직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정일권은 이들과 비교해 딱히 이렇다 할 장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관운(官運)이 특별한 건 분명했다.
무슨 일을 시키더라도 무난하게 처리하고 요령도 좋았다. 속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기가 막히게 점잖고 온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한테 인상 좋은 사람으로 비춰졌다.
자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지만 대통령 친위부대들의 경계 대상이 될 만큼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정일권은 ‘대통령 자리를 넘겨다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상대방한테 권력욕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김형욱·이후락이나 김성곤의 공화당 4인방은 그를 위험시한다거나 견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JP “이제 좀 놓아주십시오” 박정희 “왜, 총리 하기 싫어?” (62)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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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국무총리직을 사퇴했다. 4년6개월 전 총리에 취임한 뒤 쉴 새 없이 달려오다 보니 육체적으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과 유신체제의 출범,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 김대중씨 납치사건,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등 수많은 일을 헤쳐 왔다.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특유의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분할 통치)’ 통치술로 나를 힘들게 했다. 대통령의 친위부대들로 하여금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게 했다.
1979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 남산 당사에서 열린 창당 16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필 총재고문, 최규하 국무총리, 윤치영 전 당의장서리, 백두진 전 총재고문, 정일권 전 당의장서리. 박정희 시대의 국무총리 5인 중 초대 최두선 총리를 제외한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총리 취임은 정일권(1964년 5월), 백두진(70년 12월), 김종필(71년 6월), 최규하(75년 12월)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