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 범전동 재개발추진위원회 박규섭(68) 고문은 하얄리아 부대 이야기가 나오자 언성을 버럭 높였다. 실제 오늘날 하얄리아 '게이트3' 일대의 범전동 지역은 시간이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듯 낙후된 모습이다. 동네의 형태도 하얄리아 부대 한쪽을 파먹은 듯한 세모꼴이다. 미군부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하얄리아 부대 철수와 재개발이 그동안의 소외를 보상해줄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듯했다. 박 고문은 "시민단체들이 범전동 재개발을 반대하는데 이곳에 와 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멈춘 동네
범전동 1, 3통 일대 골목은 리어카가 지나가기도 어렵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30~40년 전에 지어져 낡은 모습이다. 이 지역에는 현재 413세대 91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 이진돈(70·부산진구 범전동)씨는 "부산 중심가인 서면에서 불과 7분 거리에 이런 슬럼가가 존재한다고 하면 누구도 쉽게 믿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한때는 헬기 소음도 말썽이 됐다. 범전동에서 줄곧 살아왔다는 박철우(59)씨는 "70년대에 담장 건너편에 헬기장이 있었는데, 수시로 헬기가 뜨고 내려 그 소음이 엄청 심했다. 생활이 제대로 안될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얄리아 부대 정문 맞은편 연지동 쪽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연지동의 진주횟집 주인 최용씨(59)는 지난 2003년 8월초 폭우 뒤 겪은 물난리를 떠올렸다. 당시 하얄리아 부대 안으로 이어지는 하수관로(너비 2m, 높이 1.4m)가 막혀 물이 범람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겨 소방차가 출동해 물을 퍼냈다.
최씨는 "부대측이 하수관로에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쇠창살을 설치했는데 여기에 쓰레기가 쌓여 물이 넘친 것 같다"며 "난리가 났는데도 부대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원인규명은 커녕 개선책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각종 건축 규제
하얄리아 부대 담장을 끼고 있는 범전동 일대 주민들은 '주택 건축에 대한 고도제한'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자동차 부품 가게를 하고 있는 백낙준(66·부산진구 연지동) 씨는 "지난 80년대까지 이곳에 건축물 높이 규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연지동 하얄리아 부대 맞은편에 3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는 우동엽(69)씨는 보다 생생한 증언을 한다. "1985년 당시 5층 이상 건물을 못짓게 했지. 그 이상은 구청에서 허가를 안 내줬어. 10~20층 지을 수 있는 여력이 되는데도 5층 밖에 짓지 못하게 한건 엄연한 재산권 침해지."
90년대 중반 부대 인근에 4층 짜리 건물을 지은 황동욱(55) 씨는 미군부대 담장을 건드려 된통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건물 기초공사를 하면서 하얄리아 담장에 금이 갔는데, 미군측이 구청에 민원을 넣는 바람에 300만원을 보상한 적이 있었어요. 오래된 담장이었는데도 인정사정없이 보상금을 챙기데요. 억울했죠."
몇몇 주민들은 부대 쪽으로 창문조차 내지 못하게 하거나 섀시로 가리개를 씌워야 했다고 말한다. 군보안상의 이유였지만 주민들은 생활 불편을 겪었다.
자신의 집이 부대 담장과 붙어 있는 김 모(64·부산진구 범전동)씨는 "아마 건축허가 사항에 '부대쪽으로 창문을 내지 말 것'이란 단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로인해 우리 집은 뒤편에 창문이 없는 이상한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아예 국방부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았다는 주민도 있다. 하얄리아 부대 구 정문 옆 3층짜리 건물에 살고 있는 홍세철(80)씨는 "1988년 건축 당시 '부산진구청에서 국방부의 허가를 얻어와야 공사 허가가 난다고 해서 서울까지 갔다왔다"고 증언했다.
#계획도로는 '계획만'
부산진구의회 김정환(54·부산진구 연지동) 의원은 시내에 볼 일 보러 나갔다 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새싹로 교통 체증 때문이다.
서면교차로에서 하얄리아부대 옆을 지나 성지곡 어린이대공원에 이르는 새싹로(너비 12~25m, 길이 3.2㎞)의 체증은 심각하다. 최근 부산시가 실시한 서면교차로 주변 도로들의 교통상황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새싹로의 교통량은 하루 평균 1만2800여대로, 5개 주요 도로 가운데 전포로(1만800여대) 다음으로 적지만 차량 지체도는 298초에 달했다. 이는 교통량이 가장 많은 범내골 교차로쪽 중앙로 지체도의 배가 넘는 것이다.
김 의원은 "10여분이면 갈 서면~어린이대공원 구간이 출퇴근 시간엔 30분 이상 걸린다"며 "이는 하얄리아 부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얄리아 부대는 범전·연지동 계획도로(너비 25m, 길이 1.2㎞)를 장기간 '계획'으로 묶어놓고 있다. 하얄리아 부대 뒷편 도로(범전아파트~부산진구청, 길이 970m)도 너비 25m로 확장 계획이 잡혀있지만, 부대 탓에 8~10m 왕복 2차로에 머물러 있다.
이들 도로가 개설 또는 확장되지 않는 바람에 교통량 부하가 새싹로로 쏠리고 있어, 결국 새싹로 체증 가중의 주범은 하얄리아 부대인 셈이다.
부산시 김규형 교통기획과장은 "내년 8월 하얄리아부대가 폐쇄된 뒤 부대내 계획도로가 개설되면 어린이대공원 옆을 지나 동래구 사직동에 이르는 월드컵로와 이어져 교통량이 분산되기 때문에 새싹로의 체증 완화는 물론 도심 교통여건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