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여름. 진주 남강변은 아이들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솨솨’하는 바람을 게워내던 대숲과 강물 사이 백사장에서 조무래기들은 조막손을 넣어 두꺼비집을 짓고, 아낙들은 삼삼오오 모래찜질을 즐겼다. 삼베 고쟁이 차림으로 따끈따끈한 모래이불을 덮고 누운 어른들 모습이 어린 눈에는 참 흥미롭게 보였다. 추위로 온몸이 뻣뻣해지는 계절. 훈증모래로 온몸을 지지고, 그 시절을 반추해 보는 추억의 건강여행을 떠나보자. 아울러 주변 유적지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일석이조’의 여행이 될 게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흑모래(검정모래)찜질로 알려진 ‘용두원’(041-833-4906)은 청양군과 부여군의 경계인 부여군 은산면 용두리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나와 좌회전, 21번 국도를 따라 아산방향으로 가다 온양에서 39번국도를 타면 솔티터널을 지나게 된다. 645번지방도 장곡사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낙지터널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면 용두원표지판이 보인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마침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흰 눈이 펑펑 쏟아져 주변 풍경이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속 그림처럼 예뻤다. 여행 중 휴게소에 들러 국수 한 그릇 먹는 것도 즐거움. 카페처럼 아담한 서산휴게소 바지락 칼국수 맛은 휴게소 음식답지 않게 일품이다. 바지락을 듬뿍 넣어서인지 여느 광고카피처럼 국물맛이 끝내준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는 홍성나들목으로 나가 29번국도를 타고 청양 읍내에서 36번국도를 따라가다 645번 지방도로 우회전, 장곡사 방향으로 간다. 장곡사 푯말이 있는 갈림길에서 645번지방도쪽으로 좌회전, 낙지터널 못미쳐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서 용두원 표지판을 따가가면 된다. 중간에 천년 고찰 장곡사도 들러볼 만하다.
용두원은 백두산에서 들여온 화산 검은 모래를 스팀을 이용, 섭씨 50∼60도로 뜨겁게 달군 뒤 삽으로 일일이 사람들을 모래 속에 묻어준다. 검은 모래 속에 몸을 누이면 금세 얼굴이며 등이 땀으로 범벅되고 욱신욱신 온몸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땀과 함께 몸안 노폐물과 독소가 빠져나가 체액이 정화되고,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즘은 술이나 스트레스로 찌든 몸을 환기시키기 위해 남자들이 많이 온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후조리를 못한 어머니들에게 좋다고 한다. 목초액과 소금을 섞어 수시로 소독, 위생관리를 한다고. 개중에는 어지럽다고도 하고 욕심부려 너무 오랫동안 찜질하면 토하는 사람도 있으니 자신의 몸상태를 알아 시간 조절을 하라고 주인은 귀띔한다. 특히 찜질하고 나면 나른해져 운전하기 힘드니 좀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방도 4개 있어 민박도 무방.
목욕 후 한가롭게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자. 용두원 뒤로 흐르는 내(川)이름이 까치가 많아서인지 작천(鵲川)계곡이다. 작천계곡은 참게가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 명노환(56)씨가 멸종되어 가는 참게를 연구, 95년 양식에 성공해 새끼 방류를 시작한 것. 키토산이 풍부해 영양도 그렇고 맛도 게 중에 으뜸으로 치지 않는가. 특히 참게장의 독특한 옛맛을 기억하고 있는 40∼50대라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밥 도둑이라고 표현할 게다. 어릴 적 우리네 할머니들은 김장을 하는 것만큼이나 정성스럽게 참게장을 담갔다. 3∼4달 숙성시켜 간장을 7∼8차례나 다려 부어 곰삭였는데 일년내내 밥상에 올랐다.
그 맛을 ‘둥지가든’(041-943-0008)에서 고스란히 재현해내고 있다. 참게장은 물론 탕·튀김도 있어 구운 김에 밥 한 숟가락 얹고 참게간장을 살짝 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게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근동에 오면 괜히 ‘콩밭매는∼아낙네야’라는 노랫말이 입속을 맴도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흥얼거리며 아이들과 대치면·정상면과 장평면에 접해 있는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七甲山·561m) 산행을 하면 어떨까.
산속에 일곱군데의 명당이 있다고 붙은 이름이라는데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며 아이들과 명당이 될 만한 곳을 짚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냉천계곡·천장계곡·백운계곡 등 수많은 계곡을 품고 있는 명산. 칠갑 산장에서 정상을 거쳐 장곡사까지 2시간 30분이면 된다. 칠갑산은 관광 도로를 이용, 드라이브를 하면서 쉽게 산 정상 휴게소까지 오를 수도 있다. 자연휴양림·천장호수를 들러봐도 좋다.
또 인근 부여군 외산면 화암마을에 가면 ‘화암한증막’(041-836-8405)이 있다. 화암사 수일(65)스님이 직접 지은 한증막이다. 몇년 전 동료스님이 건강이 안 좋아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한증막에 다니면서 효험을 보자 절 아래편에 자그맣게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여성 신도 전용이었으나 지금은 남성용도 만들어 아예 영업을 한다.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이 절에 묵으면서 이 곳을 드나들며 요양을 하기도 하는데 찾는 사람이 무척 많다. 순 황토로 벽 두께가 1m20cm나 된다고 한다. 용두원에서 다시 나와 장곡사 방향으로 가다가 장곡사 갈림길에서 좌회전, 606번도로를 타야 하는데 시골길이라 근처에서 전화를 하면 자세하게 안내를 해 준다.
부여에 왔으니 한나절쯤 시간을 비워 아이들과 백제의 고도를 둘러보며 역사공부를 해보자. 역사여행하면 으레 천년왕국 신라의 경주를 떠올리는데, 경주가 화려함을 자랑한다면 백제는 담박한 멋이 있다. 구석구석 할미꽃처럼 소리없이 숨어 있는 유적지가 그렇고 몇 번을 들러도 질리지 않는 풍미가 더욱 그렇다.
이밖에 백제권에서 조금 거리를 넓혀 30분 거리에 있는 논산이나 공주도 관광 포인트. 특히 논산군 은진면 반야산(般若山) 기슭에 있는 관촉사를 둘러보고 맛집탐방도 해보자.
관촉사는 높이 18.12m나 되는 거대한 은진미륵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옛날 중국의 지안(智安)이라는 명승은 은진미륵을 보고 “아아,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고 조아려 관촉사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절 입구의 구름다리 반야교(般若橋)를 건너는 재미도 좋다. 게다가 논산에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난 숨은 맛집이 있다. 계백장군묘쪽 탑정호 근처의 ‘안천매운탕’(041-732-7796)이다. 이 집 붕어찜은 먹어본 사람이면 구수한 시래기와 달디 단 살점 뜯는 재미를 못 잊어 지방출장 길이라면 일부러 들러서 먹고 가는 두고두고 찾는 집이다.
한가로운 시골이지만 주방장 모자까지 갖춘 깔끔한 할머니의 깔끔한 손맛이 환상적이다. 반면 옆 동네 강경의 ‘황산옥’(041-745-4836)은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진 맛집. 최근 현대식 건물로 재단장, 정겨운 옛 풍모는 사라졌지만 3대째 내려오는 황복찜 맛은 치켜세울 만하다. 봄이 황복철이라 지금은 양식이나 냉동이다. 가시가 씹히는 고소한 우여회도 강경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세도나루터 부근에 있고 나루터에는 오리 배 등 가족들이 즐길 만한 간단한 놀이시설도 있다.
청양에서 부여, 논산…. 소담한 산과 수확을 다 끝내고 휴식에 들어간 논들. 이즈막 넉넉한 충청도 길을 드라이브하다보면 날선 맘이 푹 가라앉고 평화를 느끼게 되리라. 알곡이 다 털려나간 볏짚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 논바닥을 보면서 건강과 휴식의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해보는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가·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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