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
화순에 적벽이 있다.
물을 저장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원지가 되어 네 군데로 나뉘어 있다.
창랑적벽, 물염적벽, 보산적벽, 노루목적벽
물을 가두기 전에는 네 적벽을 따라 흐르던 내를 달천이라 하였다.
달천을 따라 걷다보면 네 적벽을 다 볼수있으며 주유천하를 하였다.
가장 크고 웅대한 적벽이 노루목 적벽이다. 노루목적벽을 안고 있는 옹성산
그 웅장함은 옹성산 정상에 올라봐야 알 수 있다.
옹성산 정상에 올라보면 아! 이래서 적벽대전을 연상케 하는 구나 탄성을 내지를 수 있다.
정상에서 동복호를 내려다보면 물 모양이 별을 하고 있다.
마치 하늘에서 푸른 별이 내려와 놀고 있는듯 물결이 반짝인다.
아니다. 푸른 연꽃송이가 피어 있는 듯하다.
이런 모습은 노루목 적벽 위 옹성산 정상에 서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니가 발 아래가 노루목 적벽인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동복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달천에서 천렵(물고기를 잡아 끓여먹고 노는 일)도 했으며 불꽃놀이도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까 노루목 적벽 위에서 짚단에 불을 붙여서 달천으로 떨어뜨리면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린 조카를 등에 없고 불꽃놀이를 구경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2024년 4월 4일 청명날 다신제를 적벽에서 모신다는 연락이 왔다.
적벽!
잊고 있었던 아련한 기억들이 떠 올랐다. 딸 아이를 등에 없고 어머니 따라 외조부 산소에 가던 일, 애기똥풀꽃을 처음 보았던 일, 노란 꽃이 예뻐서 씨앗 받아다가 뜰에 심어 키우며 썼던 [웃긴다웃겨 애기똥풀] 동시
"웃긴다웃겨/ 애기동풀꽃// 노랑노랑 웃는/ 애기보듯이// 아침마다 예뻐서 / 들여다보는 사이// 봄 지나고/ 여름되더니/ 눈꼽 너덜너덜 달고/ 할머니똥풀꽃이 되어버렸네.(애기똥풀 전문)"
실제로 옹성산에나 건너 외조부산소 오르던 산에는 예쁜 꽃들이 참 많았다.
족두리꽃이며 피나물꽃, 사람들이 살다가 터전을 두고 떠나야 했던 돌확등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날 종일토록 끊이지 않고 내리던 비가 우리가 적벽에 도착을 했을 때는 주춤했다.
다신제가 시작하기 전 오전에 준비해 둔 꽃바구니를 제단에 놓고 잠시 여유를 즐긴다.

제 22회 세계 평화의 다례
전국 각지 명소를 돌며 평화의 다례제를 올리는 "차의 세계"도 참 고마운 일이다. 죽곡정사에서 다회를 했던 인연으로 오늘 이렇게 헌화를 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새겨둘만한 일이다.
꽃바구니를 만들며 나에게 물었다.
리본에 어떤 문구를 넣을 것이냐고, 순간 떠오르는 것이 "하늘에 전합니다" 였다. 오늘은 하늘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메세지를 전하기로 했다.
다신을 부르는 의식이 시작 되었다.
다신을 모시고 헌화하고 분향하고 차를 올리는 일이 진행되었다.
마침 적벽을 찾은 관광객도 함께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
다신께 차를 올리고 다시 망향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하리만치 천재단에 차를 올릴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망향정으로 자리를 옮기자 는개비가 안개비로 되더니 점차 이슬비가 되었다.
그 모습도 좋았다.
망향정에 앉아서 바라보는 적벽
진행되는다회와 풍류도 즐거웠지만 적벽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일
얼마만의 호사인가?
마음은 저 아래 망미정으로 향한다.
"적벽이라 명명했던 최산두(1483-1537) 이후 고경명(1533-1592)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창의사 정지준(1592-1663)이 입향하면서 적벽 앞 장항마을(노루목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정지준은 망미정, 환학정 등 정자를 짓고 주변 지역 문인들과 교유했다. 적벽을 마주했을 때 오른편 골짜기로 올라가면 ‘한산사(寒山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는 고려 말 창건되어 1985년 동복수원지 확장 조성으로 폐사되었다. 그리고 적벽강 건너 왼편에는 백제 때 ‘유마사(維摩寺)’를 창건한 유마운(維摩雲)의 딸 보안(普安)이 건립한 ‘보안사(普安寺)’도 있었다.(정지용 기고문 발취)"
망미정으로 내려가다보면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탑이 하나 있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상태로 있지만 어쩌면
보안사가 있던 절터였지 않을까 ?
보안보살의 이야기는 2015년 발간한 [달을 건진 소녀]를 창작하게 된 배경인물이다.
처음 내가 이 탑을 보았을 때는 글자가 새겨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마도 곁에 있던 묘 임자가 새겨 넣었을까?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는 새겨져 있어 익숙치 않게 포토샵을 했다.
탑에 새겨진 글시를 보면서 잠시 우리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하였다.
지금도 유마사 깊이 감춰진 곳에는 보안이 달을 건졌다는 우물이 있다.
보름날 자정이면 달은 이 우물에 들어 앉는단다.
밤에 그 모습을 보지못했지만 신비하지 않은가? 어떻게 채로 달을 건질 수가 있을까?
그것은 전능한 기운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후 보안은 자신을 향한 집착을 바꾸지 않은 응일을 대오각성하게 하고 관세음보살이 되어 연꽃잎을 남기며 옹성산을 넘는다.
"그림으로 있는 부처는 무섭고 살아 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으냐?"
외침을 남기고 훨훨 날아 옹성산을 넘어 와 이곳에 보안사를 창건하였던 것일까?
지금은 절터도 없이 이 탑만 덩그러니 서 있다.
탑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망미정이 있다. 이날은 길이 미끄러워 내려가보지 못했다.
화순 곳곳에 역사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적벽을 이름지은 최산두선생이 기묘사화로 이곳에 도착하던 1519년 12월 20일 능주에서는 정암선생이 사약을 받던 날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들이다.
정쟁!
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정치하는 것들하고는 사돈도 맺지 말라"
지금 정치계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아버지께서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벚꽃잎이 하염없이 날리는 시절에 망향정에서 눈물처럼 떨어지는 처마의 물방울을 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그 대쪽같던 말씀이 떠 올라 잠시 멍 때리며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