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고구(良藥苦口)
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곧 충고나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등에 나옵니다.
우리가 격언, 또는 속담으로 쓰는 말 중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는데 양약고구 충언역이(良藥苦口 忠言逆耳)를 우리말로 옮겨 놓은 말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편을 보면,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 은(殷)나라 탕왕(湯王)과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간(諫)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영했고 하(夏)나라 걸(桀)과 은의 주(紂)는 뜻에 따르기만 하는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의 잘못은 신하가, 아비의 잘못은 아들이, 형의 잘못은 동생이, 자신의 잘못은 친구가 간해야 한다. 간하는 사람이 없다면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기(史記)에도 장량(張良)이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간언할 때에 이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나자 각지에서는 진나라를 타도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유방도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기원전 206년, 유방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항우(項羽)보다 한 발 앞서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3세 황제 자영(子嬰)의 항복을 받고 아방궁으로 들어간 유방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호화로운 궁전과 온갖 금은보화, 아름다운 궁녀들에 정신을 빼앗긴 유방은 그대로 아방궁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용장 번쾌가 나서서 반대했습니다.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여기 머문다면 기껏 함양을 차지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지체 없이 궁을 떠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십시오.”
그러나 유방은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참모 장량이 설득했습니다.
“당초 진나라가 포악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민심이 떠나 쟁란(爭亂)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또 전하와 같은 야인(野人)이 이처럼 왕궁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전하는 천하를 위해 나머지 적들을 소탕하여 백성들의 짓밟힌 마음을 위무(慰撫)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이 왕궁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궁궐에 눈이 어두워 포학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이는 하나라 걸왕, 은나라 주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부디 번쾌의 진언에 따르십시오.”
이렇게 간곡한 진언이 이어지고서야 정신을 차린 유방은 곧 진의 창고를 봉인하고 왕궁을 물러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진정한 간언이 없었다면 한나라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요?
바른 말을 들으면 잠깐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지만 자신을 돌이켜본다면 분명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듣기 좋은 감언이설(甘言利說)보다는 듣기 거북하더라도 충언역이(忠言逆耳)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첫댓글 이처럼 옆에서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신처렴 옆에 붙어서 아양이나 떨고
그 사람 비위나 맞추고 사는 사람도
있다지요
세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