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실재론의 부상
저자 마누엘 데란다,그레이엄 하먼
(요약)
『실재론의 부상』**은 마누엘 데란다와 그레이엄 하먼의 대담을 통해 현대 대륙철학에서 실재론이 부상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실재론은 세계가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포스트칸트주의적 관념론과 구성주의적 반실재론을 비판한다.
인류세, 기후위기, 생태위기 등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 철학이 한계를 지님을 보여주었고, 이에 실재론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책은 실재론과 유물론, 반실재론, 실재론적 존재론, 인지와 경험, 시간과 공간 등을 주제로 다룬다.
데란다는 신유물론을 주장하며, 역동적 과정과 창발성을 강조한다.
하먼은 객체지향 존재론을 주장하며, 객체의 자율성과 관계에서의 ‘물러섬’을 강조한다.객체의 개별성과 본질을 중시하며, 유물론을 거부하고, **“유물론 없는 실재론”**을 주장한다.
두 철학자는 관계론과 반실재론을 비판하며, 인간과 독립된 존재론적 체계를 모색한다.실재론의 부상은 철학이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 사물과 실재를 탐구해야 함을 시사한다.
책 소개
이 책에서는 오랫동안 실재론자로 자처해온 두 명의 철학자, 마누엘 데란다와 그레이엄 하먼의 대담이 펼쳐진다. 꽤 최근까지 대륙철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거의 모든 철학자는 실재론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대륙철학에서는 실재론이 일반적으로 사이비 문제로 여겨졌다. 그런데 사정이 더는 그렇지 않다. 이 자극적인 새 책에서 두 명의 선도적인 철학자는 대륙철학적 전통에서 실재론이 두드러지게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놓고 자신들의 고유한 입장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고찰한다. 데란다와 하먼은 실재론과 유물론, 실재론과 반실재론, 실재론적 존재론, 인지와 경험, 시간, 공간, 과학 등의 주제에 관해 토론한다. 또 이들은 더 잘 알려진 대륙철학적 입장과 방법들, 특히 들뢰즈의 ‘잠재영역’ 존재론이나 후설주의적 현상학으로부터 자신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것들과 자신들의 입장이 어떤 차이를 갖는지에 관해 서로의 생각을 교류한다.
생생하고 가독성이 있으며 몰입하게 하는 이 책은 대륙철학에서 실재론의 여러 가지 다른 경로를 밝히기 위해 여태까지 실행된 시도 중 최선의 것이다. 이 책은 대륙철학의 학생들과 학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철학과 비판 이론에서 벌어지는 최첨단의 논쟁들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가치가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실재론 : 세계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실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실재론의 부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대륙철학’에 뿌리를 둔 몇 가지 철학 사조의 최근의 추세를 가리킨다. 21세기 이후 대륙철학에서는 ‘사변적 실재론’, ‘신실재론’, ‘신유물론’, ‘객체지향 존재론’, 그리고 ‘평평한 존재론’ 등의 철학적 기획들이 나타났다. 이런 기획들은 세계의 존재자 및 현상과 관련된 이런저런 종류의 ‘실재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9세기와 20세기 대륙철학의 입장들과 방법들을 특징지었던 것은 다양한 판본의 관념론과 반실재론이었다. 최근의 실재론들은 이러한 과거의 경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어서 최근의 실재론들은 포스트칸트주의적인 관념론들과 더 최근의 사회·언어·문화 구성주의들로 대표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반실재론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새로운 ‘대륙’ 실재론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출발점은 ‘인간의 마음 및 실천과 독립적인’ 세계의 실재를 단호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자와 현상의 본성들과 관계들은 어떤 주관적이거나 언어적인, 또는 사회적인 형태의 인간 지각, 인간 인지, 인간 표상 등에 의거해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나 접근에 관한 물음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실재론자들은 주장한다.
실재론 부상의 원인 : 인류세, 기후위기, 생태위기
최근의 대륙철학에서 인간과 독립적인 사물의 실재성, 사물의 물질성, 사물의 행위성을 강조하는 사조인 ‘실재론’들의 부상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로 특징지어지는 인류세 시대는 폭염, 초강력 폭풍, 홍수, 기근, 팬데믹, 멸종 등을 일상적인 조건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도 아니고 세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일상에서 비인간의 실재성과 행위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대륙철학의 전통을 대표하는 포스트칸트주의적 관념론과 구성주의 이론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인 기본 도식을 채택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류세 시대의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문명적 위기를 성찰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질문들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현실이 인간중심주의 관점에 반기를 드는 실재론적 존재론이 전 세계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은 대담의 주제에 따라 구분된 다섯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실재론과 유물론」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실재론의 역사를 논한다. 주로 대륙철학 전통에서 실재론에 부여된 지위, 실재론과 유물론의 관계를 주제로 삼는다. 데란다는 유물론을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모든 존재자를 거부하는 일종의 실재론”으로 정의하면서 “강렬히 실재론적인 동시에 강력히 유물론적인” 철학, 이른바 ‘신유물론’을 견지한다. 한편, 하먼은 유물론이 객체를 그것의 구성요소들로 환원하거나 그것의 효과들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로 유물론을 철저히 거부하면서 이른바 “유물론 없는 실재론”을 견지한다.
데란다와 하먼의 실재론적 존재론들은 실재론을 사이비 문제로 치부하거나 실재론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유물론적 구상에 전념해온 대륙철학적 전통에 선전 포고하는 급진적인 철학들로 간주될 수 있다.
2부 「실재론과 반실재론」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이라는 두 개념 사이의 차이를 논의한다. 두 대담자는 리 브레이버의 저작에 기반하여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핵심 테제들을 명료하게 표현한다. 여기서 데란다와 하먼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쟁점들을 분명히 밝히고, 반실재론이 대륙철학의 전통에 얼마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륙철학의 최신 사조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음을 서술한다. 특히, 두 대담자는 관계와 관계주의의 개념들을 가능한 한 정확히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하먼은 화이트헤드, 라투르, 버라드가 관계들을 그것들에 선행하는 관계항들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은 채로 개념화한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하먼은 그들을 반실재론자들로 규정한다. 한편, 데란다는 “어떤 관계항의 바로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내부성의 관계들”은 수용하지 않고 단지 외부성의 관계들만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부 「실재론적 존재론」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신유물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의 주요 언표들에 집중하면서 실재론적 존재론을 논의한다. 여기서 그들의 대담은 본질(essence)과 성향(disposition)이라는 개념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존재론에 의지하는 하먼은 ‘본질’이 없다면 객체를 정합적인 존재자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들뢰즈주의적 존재론에 의지하는 데란다는 본질이라는 개념이 비합법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두 대담자는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량으로서의 성향에 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인다. 하먼은 성향을 사물에 귀속시키기를 거부하면서 일종의 관계적 양태로 간주하는 반면에, 데란다는 객체의 정체성을 현실적 특성들과 잠재적 성향들의 조합으로 규정한다.
4부 「인지와 경험」에서 데란다와 하먼의 대담은 인지와 경험에 관한 물음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두 대담자는, ‘인식론’이라는 용어가 인간과 그 밖의 모든 것 사이의 관계에 특권을 부여하는 이원론적 존재론을 수반한다는 이유로, “존재론적 의문은 인식론적 의문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먼은, 객체의 본질적 양태들이 필연적으로 물러서 있다는 논점과 객체에 대한 접근이 언제나 ‘번역’ 과정에 의해 매개된다는 논점을 강조함으로써 인지에 대한 그의 접근법을 설명한다. 데란다의 이론은 객체와 경험적 패턴 사이의 ‘변환’ 메커니즘을 중시하는 한편, 체화된 인지와 선택적 주의집중 과정의 생물학적 기원에 주목한다. 여기서 두 학자가 공유하는 통찰은, 객체의 근본적인 물러섬에서 기인하든 자연의 개방적 특질과 과거의 추적 불가능성에서 기인하든 간에, 절대적 지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5부 「시간, 공간, 그리고 과학」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시간, 공간, 그리고 과학과 관련된 개념적 딜레마들을 논의한다. 하먼은 ‘실재적 시간’을 객체들의 배치의 공간적 변화와 등치시키고 ‘감각적 시간’을 “객체들의 상태들의 비가역적인 순서열”의 파생물인 관계적 존재자로 규정한다. 요컨대, 하먼은 “우리가 시간을 실재적인 것 자체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저는 제가 시간에 대한 실재론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진술한다. 반면에, 데란다는 시간에 관한 이런 비실재론적 철학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실재적 시간의 비가역성을 강조한다. 또한, 데란다는 ‘강도’(intensity) 개념에 대한 매우 유용한 분석도 제시한다. 여기서 두 대담자는 라투르에 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이면서 지식, 의미론, 반증, 그리고 진리 규정을 논의한다.
데란다의 ‘신유물론’과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 : 수렴과 발산
『실재론의 부상』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지난 20여 년간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발전시킨 자신들의 독특한 철학적 신념들에 관해 논의한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의 저자인 마누엘 데란다는 ‘신유물론’(neo-materialism)의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이다. 얼마 전 한국 EBS 방송국의 ‘위대한 수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미국의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은 사변적 실재론의 한 갈래인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을 창시한 사람이다.
데란다의 실재론
데란다가 추진한 실재론적 기획의 철학적 근거는 2002년에 출간된 데란다의 저서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에서 제시되었다. 데란다의 실재론은 역동적 과정들에 관한 들뢰즈의 미분적 존재론과 그 과정들의 발생, 진화, 전개, 그리고 변환을 위한 형식적·구조적 조건들에 대한 들뢰즈의 ‘실재론적’ 태도에 기초한다. 데란다는 동역학적 체계들을, 쌍갈림, 끌개, 그리고 그 밖의 독특한 위상수학적 양태들로 특징지어지는 위상 공간에서 나타나는 그것들의 비선형적 움직임에 의거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틀은 인간-비인간의 구분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모, 영역, 체계에 걸쳐 생겨나는 시간에 따른 변화와 창발의 역동적인 과정들도 설명할 수 있다고 데란다는 말한다.
예를 들면, 『천 년의 비선형적 역사』에서 데란다는 지난 천 년의 세계 역사의 모델링에 비선형 동역학을 독창적으로 적용했다. 그리하여 그는 진보 또는 직접적인 역사적 발전의 어떤 선형적인 서사도 부정하면서 인간적·지질학적·생물학적 현상들, 과정들, 그리고 사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복잡한 동역학을 옹호한다. 『실재론의 부상』에서 데란다는, 그러한 잠재태의 비선형 동역학이 객체들과 형태들의 외관상 안정적인 정체성을 “그 정체성의 역사적 생성과 일상적 유지의 배후에 자리하는 창발 메커니즘들로 설명하는” 더 넓은 틀 안에 포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레이엄 하먼의 실재론
한편, 그레이엄 하먼은 ‘객체지향 존재론’이 하이데거에 대한 자신의 실재론적 독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하먼은 『존재와 시간』에서 제시된 하이데거의 도구-분석을 하이데거 철학 전체의 핵심으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주류 하이데거 해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면에서 자신의 해석은 비정통적인 것이라고 하먼은 말한다. 하먼은 2002년 출간한 저서 『도구-존재』에서 하이데거에 관한 이러한 주장을 했다.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은 객체들을 그것들이 서로 맺은 다양한 역동적인 관계에 의거하여 특징짓는 것에 반대한다. 하먼이 보기에 오히려 객체들은 자신이 맺고 있는 그 관계들의 총체에서 ‘물러서는’ 방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물러섬’으로 인해서, 객체지향 존재론에서는 어떤 객체도 완전하고 포괄적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실재론의 부상』의 여러 곳에서 하먼이 강조하듯이 이런 생각의 선례는 후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하먼은 후설의 입장을 뒤집어서, 유의미한 구조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어떤 다양한 인식적인 외부 관계에 의해서도 직접 인식되지도 않고 망라되지도 않는 ‘실체적 형상들’ 또는 ‘특이한 본질들’의 현존을 승인한다. 이런 구상에 근거함으로써 하먼은 객체를 더 단순한 구성요소들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이른바 ‘아래로 환원하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객체를 더 넓은 관계적 네트워크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에 의거하여 설명함으로써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이른바 ‘위로 환원하기’) 역시 거부한다.
실재론의 다양성 : 실재론적 테제들과 반실재론적 테제들
철학적 논의에서 ‘실재론’은 다양한 방식과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실재론의 부상』에서 데란다와 하먼은, 2007년에 출간된 리 브레이버의 책 『이 세계라는 것 : 대륙적 반실재론의 역사』(A Thing of This World : A History of Continental Anti-Realism)에 제시된 실재론 테제(R)들과 반실재론 테제(A)들을 확장하여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 존재론적 목록을 제시한다.
R1/A1 세계는 마음에 의존하지 않는다/의존한다.
R2/A2 진리는 대응이다/대응이 아니다.
R3/A3 세계가 어떠한지에 관한 하나의 참된 완전한 서술은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
R4/A4 모든 언표는 반드시 참 아니면 거짓이다/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R5/A5 지식은 그것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수동적이다/수동적이지 않다.
R6/A6 인간 주체는 어떤 고정된 특질을 지니고 있다/있지 않다.
R7/A7 철학의 경우에 인간 주체가 맺은 관계는 특권적인 관계가 아니다/관계이다.
R8/A8 세계는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전체론적 존재자가 아니다/존재자이다.
R9/A9 주관적 경험은 언어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구성된다.
실재론적 존재론이 견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은 R1 테제, 즉 마음-독립적인 세계의 현존이다. 그런데 데란다와 하먼이 주고받는 대담의 직접적인 맥락을 형성하는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의 경우에 가장 주요한 신념은 『유한성 이후』의 저자 퀑탱 메이야수가 ‘상관주의’라고 일컬은 A7 테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물자체를 가정하고 “인간-세계 상호작용이 세계 속 객체-객체 상호작용과 존재론적으로 다르다”라고 가정한 칸트의 ‘상관주의적’ 존재론은 R1/A7 연접으로 간주될 수 있다. 독일 관념론은 “R1 물자체를 본체가 한낱 현상의 특별한 일례에 불과한 A1 입장으로 뒤집”은 A1/A7 연접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하여 데리다와 하먼에 따르면, 세계에 관한 실재론적 존재론(R1/R7 연접)은 인간 주체성, 행위성, 지식, 또는 언어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객체들과 과정들 ‘자체’에 전적으로 의거하여 서술되어야 한다.
데란다의 견해와 하먼의 견해 사이의 주요한 차이점
데란다와 하먼은 A7 테제를 견지하는 모든 ‘인간중심적’ 접근법을 거부하는 데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실재론적 존재론들의 세부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하먼의 존재론은 자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존재자들로 여겨지는 객체들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각각의 객체는 언제나 파악될 수 없지만 개체화된 특이한 본질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반면에, 데란다의 존재론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역사적 과정들의 존재론으로, 개별적 존재자들 또는 ‘객체들’은 이런 광범위한 동역학의 순간적으로 안정적인 배치물들로서 출현할 따름이다.
이와 밀접히 관련된 사실은 데란다와 하먼이 자연과학적인 설명의 방법론적 역할에 관해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란다의 경우에 자연과학적인 설명은 세계 속 현상의 변화와 전개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것인 반면에, 하먼의 경우에 주요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외양들 또는 관계들의 총체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객체에 관한 ‘미학적’ 패러다임이다.
또한 데란다는 자신이 “패턴을 갖춘 물질-에너지에 내재적인 존재자들의 존재를 믿을 따름”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유물론적 실재론’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하먼은 “유물론 없는 실재론”을 옹호한다. 하먼은 소설의 등장인물 같은 허구적 객체들처럼 “물질 없는 형태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물질이라는 개념에 “실제적 사물과 가상적 사물 사이의 차이에 대한 허약한 설명으로서의 용도 이외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데란다와 하먼이 공히 거부하는 입장은 이른바 “실재론 없는 유물론”이다. 그들은 “객체의 실재는 그것이 마음과 갖는 상호작용들로 이루어져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캐런 버라드의 ‘유물론적’ 견해에 대해서 비판적 태도를 공유한다.
이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하먼은 자신의 견해와 데란다의 견해 사이에는 네 가지 주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요약한다.
첫째, 데란다는 존재자들의 ‘역동성’을 중시하는 반면에, 하먼은 객체들의 ‘관성’을 중시한다.
둘째, 데란다는 “철학을 과학의 작업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지식 형태”로 간주하는 반면에, 하먼은 철학의 “모범 사례가 미학”이라고 여긴다.
셋째,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은 개별적 존재자들에 집중하는 반면에, 데란다의 신유물론은 위상 공간과 끌개 같은 외부 인자들을 개념화한다.
넷째, 하먼에게는 ‘형상인’이 중요한 반면에, 데란다에게는 ‘목적인’이 중요하다. 이러한 요약에 데란다는 객체지향 존재론의 ‘물러섬’ 개념과 실재적 시간을 부인하는 태도에 대한 자신의 이견을 덧붙인다.
독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대화체로 서술된 이 책은 실재론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이며, 실재론과 유물론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유용한 참고서이다. 데란다와 하먼의 기획들에 공감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신유물론 학파의 보다 더 ‘실재론적인’ 발전 또는 보완에 대한 우리 시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독자들도 이 대담에서 시사적이고 유익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