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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1 ~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Aristoteles, BC 384~BC 322]
우리는 어떤 철학자나 혹은 중요한 인물에 대하여 연구할 때에 두 가지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 철학자 이전의 사람과 관련시켜 그를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요, 또 하나의 방법은 그 후계자들과 관련시켜 연주하는 것이다.
이 점은 누구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경우에 더욱 필요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점이 크게 드러나게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그의 단점이 크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단점에 대하여 말하면, 후계자들의 편에 책임이 더욱 크다. 그는 그리이스 사상의 창조적 시기의 말엽에 태어났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2천년 동안이나 그와 비교할 만한 철학자가. 없었다. 이 긴 시기의 말기에 와서 그의 권위는 교회의 그것과 거의 동등하여, 절대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철학이나 과학의 발달을 크게 가로막았다. 17세기 초부터 엄청난 지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거의 모든 면에서 그의 학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논리학에 있어서는 오늘에 와서도 그의 학설에 대한 공격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고,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철학자(데모크리토스를 제외하고)가 그와 같은 권위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폐단은 마찬가지로 심했을 것이다. 그를 공평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가 후세에서 받은 바 지나친 명성을 잊어버리는 동시에 그 반동으로 나타난 지나친 비난도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 년경에 트레이스의 스타기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마케도니아왕의 시의로 있었다. 그는 18세쯤 되어 아테네로 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후 플라톤이 죽기까지 (B.C. 348-347) 거의 20년 동안 아카데미(academy, 플라톤이 세운 학원-역주)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때 여행을 하여, 헤프미아스라는 폭군의 여동생인가 그 조카 딸인가 하는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그 여자는 헤르미아스의 딸이 아니면 첩이였다는 풍설은 있지만, 헤르미아스가 고자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 풍설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그는 B.C. 343년에 13세의 나이인 알렉산더의 개인 교수가 되었으며 ,알렉산더가 16세가 되기까지 그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알렉산더는 16세 때에 부왕 필립 대왕에게서 성인이 되었다는 인정을 받고, 필립이 없는 동안에는 정무를 대행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와의 관계는 확실치 않다. 이에 대하여 곧 전설이 생겨 확실한 것을 알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들 사이에 주고 받았다는 편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위조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두 사람을.존경하는 사람들은 그 가정 교사가 제자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헤겔도 알렉산더와 생애는 철학이,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를 입증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벤(A..W. Ben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학자의 가치에 관한 증거로서, 알렉산더가 보여주는 성격 이상의 것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철학자에게는 분명히 불행한 일이다.....그의 성격은 거만하고, 술을 즐기며, 잔인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매우 미신적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고원 지대의 추장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관악상과 동양폭군의 광증을 겸유하고 있었다 (그리이스 철학자들) (The Greek Philosopher), 1권 285쪽 나는 알렉산더의 성격에 관하여 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지만, 그의 업적은 대단히 중요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없었던들, 그리이스 문명의 전통이 모조리 멸망해 버렸을 터이니 말이다. 그에게 .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에 대해서는 그럴듯하게 생각되는 것을 자유롭게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 준 영향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더는 야심이 큰 정열적인 소년으로, 자기 부친과도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아마도 학업에 대해서도 참을성이 없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국가에 만 명 이상의 국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윤리학(Ethics), 1170쪽), 또한 중용의 사상 (the doctrine of the golden mean)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자기가 방탕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 부친이 자기 위에 세워 놓은 무미건조한 늙은 현학자로 밖에는 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성격상 달리 보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알렉산더가 아테네 문명에 대해서는 신사답게 보이기 위해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그의 시대적 한 풍조가 되어 있었으며 자기가 야만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이 파리에 대하여 갖고 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아테네 문명에 대한 알렉산더의 태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는 알렉산더의 그러한 태도가 그의 성격으로 보더라도 다른 어떤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서 받은 영향도 별로 없다는 점도 아울러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대하여 이미 도시 국가의 시대는 지나가고 대제국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끝까지 알렉산더에 대하여 (철학에 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개으르고 머리가 굳어버린 녀석)이라고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위대한 두 사람은 그 접촉을 통하여 대체로 아무 열매도 얻지 못하였다고 본다.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B.C. 335년부터 B.C. 323년 동안에(알렉산더는 B.C. 323년에 사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생활하였다. 그가 학원을 세우고 저술을 한 것은 대채로 이 12년 동안에 있은 일이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나서, 아테네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우선 알렉산더의 친구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던졌다. 그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들어 있었다.
그는 신에 대하여 경건치 못하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자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형벌을 피하여 도망쳐 버렸다. 그는 이듬해인 B.C.322년에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이전의 철학자들과 다르다. 그는 처음으로 교수다운 글을 썼다. 즉 그의 논설은 조직적이고, 서술도 제목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한 직업적인 교사이며, 결코 영감을 받은 예언자는 아니었다. 그의 저술은 비판적이고, 치밀하고 단조로와, 바카스적인 정열을 찾아볼 수 없다. 플라톤의 오르폐우스적인 요소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해졌으나, 상식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플라톤적으로 서술한 부분을 보면, 그의 선천적인 기질이 그가 가르침을 받은 것에 과잉동력을 부여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정열적이 아니고, 깊은 의미에서 종교적도 아니었다. 그와 선배들의 오류는 불가능한 것을 시험해 보는 청춘의 오류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는 습관이 되어버린 편견예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인의 오류라고 하겠다. 그는 세밀한 고찰이나 비판에 뛰어나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체계 전반에 있어서 근본적인 명확성이 결여되고, 타이탄적 (Titanic)인 영화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설명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는지 결정하기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제일 좋은 출발점은, 그의 이데아론(theory of idea)에 대한 비판과 그 대신에 제기한 보편개념에 대한 학설일 것이다. 그는 이데아론에 반대하여 몇 가지 매우 훌륭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대부분은 이미 파르메니데스에서 취급되었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주장은 (제3인간) (the third man)에 관한 것이다. 만일 한 인간이 이데아의 인간을 모방해야만 인간이 된다면 이 인간과 그 모방한 이데아의 인간에게 다 공통된 이데아와 인간이 또 하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인 동시에 동물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동물일 순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동물의 수만큼 이상적인 동물의 수도 많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즉 여러 개체들이 어떤 술어를 공통으로 갖게 될 경우에 ,그 각각의 개체들과 동일하면서도 그것들보다 더 이상적인 어떤 것에 관련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정도는 증명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학설부터가 이미 매우 불투명하다. 이러한 명확성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유명론자(nominalist)와 실재론자(realist)사이의 논쟁이 중세기 동안 언제나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플라톤의 상식화라고 할 수 가 있다.
그런데 플라톤과 상식은 좀처럼 뒤섞이지 않으므로 그의 철학은 난해하다. 우리가 그를 이해하려고 할 때, 때로는 .그가 철학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소박한 사람의 일반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플라톤주의를 새로운 술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로 그의 보편개념이나 질료와 형상(form)에 대한 학설 등을 이해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그의 견해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식론을 해명하고, 이어서 이 상식론을 수식하고 있는 플라톤적인 요소를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편개념 (universal)에 대한 학설은 어느 정도까지는 매우 단순하다. 언어에는 고유명사나 형용사가 있다. 고유명사는 적용되는 대상인 사물이나 인간이 하나 뿐이다. 가령 태양이나, 달, 프랑스, 나폴레옹 등은 고유한 것으로 그 적응되는 사물은 결코 단수가 아니다. 한편 고양이, 개, 인간과 같은 명사는 많은 대상에 적용된다. 보편개념의 문제는 이러한 명사들의 의미와 (흰), (굳은), (둥근) 등등의 형용사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말하였다.
우리가 보편개념이라고 말할 때, 많은 주어에 대하여 술어가 될 수 있는 것을 뜻하며, 개별개념( individual)이라고 말할 때, 그러한 술어가 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형용사나 유의 명칭 즉 (인간의), 또는 (인간) 같은 말이 나타내는 것을 (보편개념)이라고 부르는 반면, 고유명사가 나타내는 것은 (실체)이다.
실체는 (이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보편개념은 (이런) -사물의 종류를 나타내며, 실제적이고 특수한 사물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보편개념은 실체가 아닌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플라톤의 천상의 침대는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견해를 달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어떠한 보편개념도 하나의 실체와 명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사물의 실체는 그 사물의 독특한 것으로, 다른 어떤 사물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개념은 공통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 가자 이상의 .사물에 공통으로 속할 수 있는 것을 보편개념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논해 온 문제의 중심은 다음과 같다. 즉 보편개념은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오직 특수한 사물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일반적으로 보아 매우 평이하다. (축구라는 운동이 있다.)고 누가 말하면 사람은 대체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축구를 하는 사람이 없어도 축구라는 운동동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있기 때문에 친권이 있는 것이며, 단 사물들이 있기 때문에 달다는 말이 있을 수 있고, 또 붉은 사물들이 있기 때문에 붉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존성은 교호적이 아니다. 또 축구선수들이 공을 차지 않아도 그들은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단 사물도 신(sour) 것이 될 수 있으며, 보통 때 붉던 내 얼굴이 창백하게 되더라도 내 얼굴은 그대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형용사의 의미는 고유명사의 의미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코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학설은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하나의 상식을 현학적으로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학설을 분명히 규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축구라는 운동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이 선수 또는 저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 운동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반드시 축구를 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는 있지만 어떤 무엇이건 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붉다는 성질은 어떤 주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이 주체 또는 저 주체가 아니라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주체는 어떤 성질이든 간에 없어서는 존재하지 못할 터이지만 반드시 이 성질 또는 저 성질을 가치고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물과 성질을 구별하는 근거는 결국 하나의 환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차이가 생긴 참된 근거는 실제로 언어에서 비롯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구문론에서 유도되는 것이다. 문장에는 고유명사와 형용사 및 관계어(relation word) 등이 있다. 우리가 (존은 지혜롭고, 제임스는 어리석다. 그리고 존은 제임스보다 키가 크다)고 말할 경우에 (존)과 (제임스)는 고유명사이며, (지혜로운) 또는 (어리석은)은 형용사이고, (보다 큰)은 관계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형이상학자들은 이와 같은 구문론상의 차이를 가지고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해 왔다. 즉 이 경우에 존과 제임스는 실체요,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은 보편개념이다(관계어는 무시되거나 또는 잘못 해석되고 있다)
우리가 잘 살펴보면 형이상학적인 차이와 그런 구문론상의 차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발견하더라도 어떤 오랜 과정을 거친 연후의 일이고, 그 동안에든 이 인위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를 지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용어에는 존이나 제임스 같은 명사나 또는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같은 형용사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통 말들은 모두 분석되어 좀더 단순한 뜻을 갖는 말들로 대치된다. 이런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알고는 특수 개념이니, 보편개념이니 하는 문제는 깊이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문제를 취급할 수 있을 단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논의하고 있는 문제가 이미 처음에 출발할 때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아스토텔레스의 보편개념에 대한 학설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그의 학설 자체가 본례 분명치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보편개념에 대한 학설은 분명히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연장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독특하고 또 중요한 하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스콜라주의 추종자들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술어가 있는데, 그것은 본질이며 보편개념과 같은 말은 아니다.
당신의 (본질)은 (당신이 그 본성에 있어서 그것인 바이다. 어떤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할 때에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가리킬 것이다. 즉 그 사람의 본질이란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있어야 할 특질이다. 그리고 본질은 하나의 개체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species)도 본질을 소유하고 있다. 종의 정의는 그 종의 본질을 말하는 데서 내려지게 될 것이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관련하여 (본질)에 대한 개념을 다시 고찰해 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 본질에 있어서, 혼란에 빠져 정확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것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형상(form)과 질료(matter)를 구별하는 것이다.(형상과 대조되는 질료는 정신과 대조되는 물질과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것이다.
이 현상과 질료 문제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지닌 바 상식적인 기초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보편개념의 경우에 있어서보다 플라톤적인 변형이 더욱 중요하다. 먼저 .대리석 조각에서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 대리석은 질료요, 조각가가 보여준 조각상의 모습은 형상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인용하면, 누가 구리로 공을 만들었다 할 경우에 ,그 구리는 질료이고, 구형은 형상이다. 또한 고용한 바다의 물은 질료요, 고요함은 형상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는 계속 해서 말하기를 ,질료가 어떤 사물이 되는 것은 형상(form) 때문이며 ,또 이것이 바로 그 사물의 실체라고 한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평범함 상식처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한 사물은 한계를 가져야 하며, 이 한계가 곧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그릇에 담긴 물을 놓고 생각해 보자. 그 물의 어느 부분도 하나의 그릇으로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다른 물과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하나의 사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의 어느 부분도 등질적인 다른 부분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조각상은 한 (사물)이다. 또 조각상의 재료가 되어 있는 대리석은 어느 의미에서, 그것이 본래 찍혀 나온 그 큰 덩어리, 즉 돌산의 내용물로 되어 있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자연이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형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원자론의 가설이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각 원자가 어떤 사물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원자들로부터 구분되어 한계를 갖고 어느 의미에서 하나의 상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새로운 진술에 대하여 고찰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언뜻 보면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렵게 생각된다. 그것은 영혼의 문제이다. 그는 말하기를 영혼이란 육체의 형사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분명히 어떤 형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중에 그가 어떤 의미에서 영혼을 육체의 형상이라고 말하였는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문제 삼고자 하지만, 지금은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있어서는 영혼이 육체를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이 되도록 하고, 또 목적의 동일성을 부여하며, 우리가 유기체라는 말과 관련시키고 있는 성품을 육체에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지지해 두려고 한다. 눈의 목적은 보는 데 있지만, 눈이 육체에서 떠나 있으면 볼 수 없으며 실제로 보는 것은 영혼이다.
그러므로 형상은 물질의 일부에 대하여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 통일성은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흔히 목적론적이다. 그러나 형상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형상에 대한 그 이상의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사물의 형상은 그 본질이며, 일차적인 실체라고 우리는 들어 왔다. 보편개념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지만, 형상은 실체적인 것이다. 가령 누가 놋으로 공을 만든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 그 질료와 형상은 이미 존재한 것이며,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이 질료와 형상을 결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형상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질료를 지어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다 질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사물들은 질료를 갖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사물들 중에서도 공간 속에 움직일 수 있는 것만이 질료를 갖는다. 사물들은 형상을 얻게 됨으로써, 그 현실성이 증가된다. 형상을 갖지 않는 질료는 단지 가능태에 지나지 않는다.
형상은 곧 실체이며 ,그 형상이 관여하고 있는 질료와는 독립되어 존재한다는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보편개념과 전혀 다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보편개념과 형상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형상은 질료보다 더 실재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이데아의 실제성에 대한 사상의 잔재라고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준 변형(change)이란 실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한결같은 것 같다. 젤러(Zeller)도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으며, 질료와 형상의 문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이 문제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여주고 있는 불투명성의 원인은 그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제화하는 경향에서 절반 정도밖에는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형상(form)은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것이며,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동시에 모든 개체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히 관념이 경험을 통하여 발전되는 것으로 보고, 그 과정을 추구하였으나, 이 관점들이 경험이나 직접적인 지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에는 결국 인간사고의 논리적인 산물을 초감관계의 직접 표상으로 보려고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것들은 예지적인 직관의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그가 답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떠한 두 개의 사물도 동일한 형상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일 것이다. 누가 놋으로 된 두 개의 공(구)을 만들었을 경우에 각각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며, 이것은 각각 보편적인 (구형)의 한 보기가 될 터이지만, 이 구형은 보편개념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들에서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특수한 구형은 알려지지 않으리라는 견해를 인정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사물은 형상의 요소가 더 많아지고 질료가 적어질수록 점점 분명히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형이상학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이상의 여러 가지 특수한 사물 속에 나타날 수 있어야만 성립될 것이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구형의 사물들의 수만큼 구형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면, 그는 자기 철학을 크게 변경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예컨대 ,형상은 그 본질과 동일하다는 그의 견해는 앞에서 말한 것과는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질료와 형상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가능태와 현실태의 구별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여 순수한 질료는 형상의 가능태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변화는 우리가 (발전)이라고 불러야 할 그런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되고 있는 사물은 변화된. 이 후에 전보다 더 많은 형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형상을 더 많이 가진 사물이 더 (현실적)인 것이다. 신은 순수한 형상이며, 또한 순수한 현실태이다. 따라서 신은 변치 않는다. 이러한 사상은 낙관적이요 목적론적이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전보다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태의 개념은, 아래와 같이 쓰일 경우에는 어느 의미에서는 매우 편리하다. 즉 우리의 진술을, 이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_형태로 고칠 수 있도록 이 말을 사용할 경우이다. (한 덩어리의 대리석은 가능태에 있는 조각상이다) 또는 (하나의 조각상은 적당한 행위에 의해 한 덩어리의 대리석에서 산출된다) 그러나 가능태라는 말이 어떤 근본적인, 따라서 다른 형태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개념으로서 쓰이면, 언제나 그 속에는 사상의 혼란을 내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말은, 그의 체계에 있어 그릇된 부분의 하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은 흥미있다. 그것은 그의 형이상학의 나머지 부분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실로 (신학)은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가 붙인 이름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 그 책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실체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로 감성적이며 멸하는 것이고 둘째로 감성적이기는 하지만 멸하지 않는 것, 셋째로 감성적도 아니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 그것이다. 첫째 부류에 식물과 동물이 포함되고, 둘째 부류에 천계들이 포함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가 운동 이외의 다른 변화는 받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세째 부류에는 인간의 이성적인 영혼과 신이 속한다.
신에 대한 주요한 주장은 제일 원인론이다. 세상에는 운동을 일으키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 존재 자체는 운동해서는 안 되고, 영원한 실체이며, 실재적인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욕망의 대상과 사유의 대상 자체는 운동하지 않고, 다른 사물의 운동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신은 바로 그와 같은 운동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은 사랑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밖의 것은 무엇이든지 운동의 원인이 되려면 (마치 당구공처럼) 그 자신이 운동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신은 순수 사유(Pure thought)이다. 왜냐하면, 사유가 최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은 신에 속한다. 사유의 현실이 곧 생명이며, 신은 바로 그 현실인 것이다. 신의 자주적인 현실성은 최선의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살아있는 존재라고 부르며, 영원한 최고선이라고 부른다. 또한 지속적이고 영원한 생명이 바로 신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바에 의해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실체가 존재하며. 또 그 실체는 감각적인 사물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실체는 어떤 크기를 가질 수 없는 존재이며, 또한 부분도 없고 분할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며, 변치도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변화란 장소의 변화에 뒤이어 생기는 것이다.
이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섭리를 속성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속성은 신의 완전성을 떨어뜨려 완전한 것인, 신 이외의 어떤 것에 관해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의 사유가 생각하는 대상은 그 자신에 관해서이다. 왜냐하면, 신의 모든 사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사유는, 사유에 대한 사윤(a thinking on thinking)가 될 것이다] (1074b). 따라서 우리는, 신은 우리들의 달 아래 세계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피노자처럼 인간은 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신을 움직이지 않는 원동자 (the unmoved mover)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천문학적인 고찰에서 47개 또는 55의 부동의 원동자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74 a.) 이것들과 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결국 이에 관한 자연스러운 설명은 47 또는 55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에서 말한 신의 정의를 내리고 나서 곧 우리는 그런 실체가 하나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또는 여럿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47 또는 55의 부동의 원동자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
부동의 원동과(unmoved stover)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변화의 원인이, 먼저 변화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우주가 정지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원히 정지되어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 원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에 의하면, 네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각 질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이라고 불렀다. 가령 대리석 조각상을 만드는 경우를 들어 생각해 보자. 그 조각상의 질료인은 대리석이고, 형상인은 그 조각상에 나타낼 본질이며 ,동력인은 조각가의 끌과 대리석과의 접촉이고, 목적인은 조각가가 뜻하는 목적이다. 오늘의 용어로 (원인)이라고 말할 때에는 단지 동력 인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동적 원동자라고 할 경우에는 목적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운동의 목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신과 같이 되기 위해, 그리로 향해 나아가는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기질로 보아, 깊은 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폭군도 그의 종교적인 면만을 자유롭게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신은 영원히 다음과 같은 상태에 있다. 즉 신은 순수 사유로서 행복과 완전과 자족속에 있으며, 실현되지 않는 목적은 전혀 없는 존재이다.
한편 감관계(sensible world)는 불완전하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있고 욕망이 있으며, 불완전한 것에 대해 사색하고 포부를 갖는다. 모든 생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신을 경외하며 또 사랑한다. 신은 모든 활동의 목적이다. 변화는 질료에 형상을 주어 생기지만 감관의 대상이 되는 사물은 연체나 질료의 기체로서 남게 된다. 오직 신만이 질료를 포함하지 않는 순수한 형상으로 되어 있다. 세계는 점차로 높은 단계를 향하여 발전하며, 따라서 점점 신에 유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결코 완성이 없다. 질료가 완전히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보와 발전의 종교이다. 신의 정적인 완전성이 세계를 움직이지만, 그것은 유사한 사물들의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서이다. 플라톤은 수학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이다. 이것이 두 사람의 종교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종교에 대한 일부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리이스인의 특성인 정적인 완전성에 대한 사랑과 활동보다도, 명상을 더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영혼에 대한 그의 학설을 보면, 그의 철학의 이런 면을 알 수 있다 베로에스(Averroesa)는 말하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며, 여러 기독교 국가에서 상당한 찬동자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서 극단적으로 나간 자들을 에피쿠로스 학파라고 부른다. 단테(Dante)는 이들을 지옥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복잡하므로, 자칫하면 오해하기 쉽다. 그의 (영혼에 대하여)(On the Soul)라는 저서에서, 영혼을 육체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피타고라스 학파의 윤회설을 조소하고 있다. 그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소멸되는 것으로 본 것 같다. 분명히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413a). 그러나 그는 이어서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영혼의 어느 부분은 육체와 유리될 수 없다)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육체와 영혼의 관계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영혼은 그 안에 생명을 지닌 물체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체는 현실태이므로, 영혼은 위에서 말한 육체의 현실태이다.
영혼은 사물의 본질 중에서 명확한 공식적인 것에 대응하는 의미에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은 이미 진술한 성질의 (즉 생명을 소유한)물체의 본질적인 것(essential whatness)임을 의미한다(412b). (영혼을 생명을 내재적 (내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연적인 물체의 제일차적인 현실태아다. 그리고 이런 물체는 유기화된 물체이다 (412a).영혼과 육신이 하나인가의 여부에 대한 물음은 밀랍과 밀랍에 샛길 도장의 흔적이 하나인가, 아닌가 하고 묻는 것과 같다(412b). 식물은 오직 영혼의 힘에 의하여 영양의 흡수 작용을 가질 뿐이다(413a). 영혼은 육신의 목적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고, 정신을 영혼보다 높은 단계에 있으며, 육신의 구속도 덜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영혼과 육신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나서 말하였다. (정신의 경우는 다르다. 정신은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독립적인 실체인 것 같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 실체이다) (408b). 이어서 (우리는 정신 즉, 사유하는 능력에 대하여 아직 아무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정신은 마치 영원한 것이 멸망하는 것과 다른 것처럼, 영혼과는 매우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과 같다.
신만이 그밖의 모든 심적인 능력을 떠나서_ 존재할 수가 있다. 영혼의 그밖의 모든 부분은, 이미 진술한 바에 따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그와 반대되는 몇 가지 진술이 있었지만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정신은 수학과 철학을 이해한다. 정신의 대상은 무시간적이며, 따라서 정신도 무시간적이다. 영혼의 특징은 영양의 흡수 작용과 감지 및 사유와 운동에 있다). 그리고 정신은 보다 높은 사유의 기능으로, 육신이냐 감각과는 아무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정신은 불멸일 수 있으며, 영혼의 나머지 부분은 불멸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대한 학설을 이해하려면 영혼은 육신의 (형상)이며, 공간적인 형체는 (형상)의 일종이라는 그의 견해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영혼과 형체 사이에는 어떤 공통성이 있는가? 나는 이 공통성이 곧 일정한 양의 질료에게 동일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한덩어리의 대리석 중에, 나중에 조각상이 될 부분이 아직 대리석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 통일성을 갖고 있지 않다. 조각가가 그 조각상을 만든 연후에 비로소 통일성을 갖게 되며, 이 통일성은 그 형체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영혼의 경우에는, 그 본질적인 특징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형상이 되며, 그 육체를 유기적인 것으로 만들고, 한 단위로서의 목적을 부여한다. 그 유기체 가운데 한 기관은 그 자체로서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며, 그 목적은 그 자신의 밖에서 갖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눈은 육신에서 떠나서는 볼 수가 없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전체로서 주체가 되는 사물들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주체들의 어떤 부분도 주체가 될 수 없다. 유기체나 형상이 실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이나 동물에게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영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신)은 어떤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육신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영혼의 한 부분은 될지 모르지만, 정신을 갖고 있는 생물은 극히 적은 수에다. 정신은 사색에 의해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신은 결코 실체적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을 축구하고 무엇을 회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이같은 학설은 그의 (니코마코스의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용어도 좀 다르다. 영혼에는 이성적 요소가 있고 또 비이성적 요소도 있다. 이 비이성적인 부분은 이중으로, 즉 식물적인 부분과 욕구적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어떤 생물에게서나 다 찾아볼 수 있으며, 후자는 어떠한 동물도 다 갖고 있는 요소이다(1102b), 이상 적인 영혼의 삶은 명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민간의 완전한 행복을 가리키지만, 이를 충분히 누리기는 힘들다. (그러한 삶은 인간에게는 너무나 고귀한 것이므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머물러 있는 한 그런 삶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신적인 것이 그 속에 나타나면 그는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신적인 요소가 우리 인간의 본성에서 우위를 차지하므로, 그러한 활동이 다른 종류의 덕행(즉 실용적인 것)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이성이 신적인 것이라면, 이 이성이 따르는 생활이야 말로 신적인 생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또한 죽어야 하는 존재로서 죽어가는 사물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보도록 권면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 아니라, 되도록 우리 자신을 불명한 것으로 만들고 우리 모든 신경을 예리하게 하며, 우리가 내부에 지니고 있는 지고지선의 존재에 따라서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 양에 있어서는 적을지 모르지만, 그 능력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것보다 많은 것을 행하고 ,그 가치에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문장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즉 한 인간을 다른 인간으로부터 구별하는 개성은 육체와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성적인 영혼은 즉 정신은 신적이며 비개인적이다. 어떤 사람은 굴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한다. 이것이 두 사람 사이를 구별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구구표를 염두에 두고 올바로 생각하는 한,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생기지 않는다. 비이성적과 것이 우리를 분리시키고 이성적인 것은 늘 우리를 융합시킨다. 이와 같이 정신, 또는 이성의 불멸성은 각자의 개인적인 불멸성이 아니라, 신의 불명성에 관련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기 플라톤이 가르쳤으며, 후에 기독교가 계승한 그런 의미에서의 개인적인 불멸을 믿은 것 같지 않다.그가 믿는 것은 오직 인간이 이성적으로 되는 한 불멸의 신성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본질상 이 신적인 요소를 증진시킬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최고의 덕이다. 그러나 만약 누가 그것을 완전히 이루었다면, 그는 고립된 한 개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위에서와 같은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그럴 듯한 해석에 지나지 않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요약(네이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이다.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BC 384년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아카데미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연구와 교수를 거쳐(이 동안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교육),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서 직접 학원을 열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노트이다.
스승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가 대립되었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고, 뒤에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플라톤의 철학적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소여(所與)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와 궁극적인 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성, 지식의 전부분에 걸친 종합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