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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가 쓰시겠다 하라 / 누가복음 19:28~35 > 2026-03-22
[개정]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向(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橄欖(감람)園(원)이라 불리는 山(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弟子(제자) 中(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便(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萬一(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主(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者(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對答(대답)하되 主(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自己(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새번역]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걸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29 예수께서 올리브 산이라 불리는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30 말씀하셨다. "맞은쪽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1 혹시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32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가서 보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33 그들이 새끼 나귀를 푸는데, 그 주인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 새끼 나귀는 왜 푸는 거요?" 34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35 그리고 그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옷을 나귀 등에 걸쳐 얹고서, 예수를 올라타시게 하였다.
[공동번역]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29 올리브 산 중턱에 있는 벳파게와 베다니아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앞질러 보내시며 30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가보면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터이니 그 나귀를 풀어오너라. 31 혹시 누가 왜 남의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32 그들이 가보니 과연 모든 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33 그래서 나귀를 풀었더니 나귀 주인이 나타나서 "아니, 왜 나귀를 풀어가오?" 하고 물었다. 34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35 나귀를 끌고 와서 나귀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고 예수를 그 위에 모셨다.
[NLT] 28 After telling this story, Jesus went on toward Jerusalem, walking ahead of his disciples. 29 As he came to the towns of Bethphage and Bethany on the Mount of Olives, he sent two disciples ahead. 30 “Go into that village over there,” he told them. “As you enter it, you will see a young donkey tied there that no one has ever ridden. Untie it and bring it here. 31 If anyone asks, ‘Why are you untying that colt?’ just say, ‘The Lord needs it.’” 32 So they went and found the colt, just as Jesus had said. 33 And sure enough, as they were untying it, the owners asked them, “Why are you untying that colt?” 34 And the disciples simply replied, “The Lord needs it.” 35 So they brought the colt to Jesus and threw their garments over it for him to ride on.
1.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이고, 다음 주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그 주간이 고난주간이고 부활주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장면인 28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면서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시고, 이에 관련하여 왕위를 받으러 떠나는 주인이 10명의 종들에게 각각 1므나 씩을 맡긴 ‘10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여리고 성을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셨고, 그 길을 계속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들은 전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 만 명을 먹이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며,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하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 했고,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과 영화를 되찾을 메시야가 예수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제자들도 그 기대감속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 다툼까지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18~25]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가복음 9:43~45]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누가복음 9:51~53]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누가복음 13: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누가복음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누가복음 18: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누가복음 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요한복음에는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오셨다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하여 그곳을 피해 다시 베레아 지역으로 피하셨다가, 유월절 즈음에 십자가의 고난의 때에 이르러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전절’은 ‘성전봉헌절 (the festival of Rededication)’을 의미하며, ‘하누카’ 즉 ‘빛의 절기(Feast of Lights)’ 라고도 불립니다 ‘빛의 절기’ 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기간 동안 각 가정에서 깨끗한 기름으로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태양력으로 11-12월 즈음으로, 유대 종교력으로 제9월인 기슬리월 25일부터 시작되어 8일간 지켜지는데,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에 의해서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B.C.164년 그 날에 유다 마카비가 회복한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전통적인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수장절) 등 3대 절기는 아니지만, 포로기 이후 있었던 사건으로 유대인에게는 중요한 절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가신 것은 당신 자신이 회복된 성전의 실체이심을 알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22~23, 39~42]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2.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면서,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벳바게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벳바게는 본문에만 기록되어 있는 마을로 ‘아직 익지 않은 무화과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감람산 동쪽 기슭에 있던 마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셨는데, 이곳이 베다니인지 벳바게인지 아니면 다른 마을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마을로 들어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풀어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으로 오시기를 기대했다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왕복을 입고 건장한 말을 타고 무장한 수많은 군사들을 거느리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의 기대였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불러 그 죄에서 구원받기를 구하는 자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스가랴를 통해서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셨습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3.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래서 그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셨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도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보고, 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곧 왕이 될 거라는 기대를 받는 예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니, 어떤 용도로 쓰실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지만, 그 주인은 기꺼이 나귀를 내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고, 기꺼이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우리는 죽어 썩어 사망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그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복음을 듣고 육신으로 살아가는 동안 땀 흘려 수고하며 그 수고 가운데 주시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시간을 드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예배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지식과 지혜와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기꺼이 하나님 손에 드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기도합니다.
[역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고린도전서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