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은 그대의 화폭을 접지 마오
-경남여고 졸업 60주년에 부쳐-
김금조(35회)
순간순간마다 멎었다 흐르는 뇌수
일상의 대부분은 실수의 반복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생의 끝자락 그 뒤안길에서
지성과 야망을 노래하던
젊은 날의 풋풋한 추억을 소환하여
잊어버렸던 기쁨과 슬픔의
잔재를 들추어내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라✽의 행진 같은 노을 길에서도
아기를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고
흩날리는 가을 낙엽에 화려한 이별을 꿈꾸는 그대는
지구의 한 비알✽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종착지에
이를 때까지
그대 아직은 그대의 화폭을 접지 마오.
✽미라mirra: 연부조직軟部組織이 부패되지 않고 말라 굳어진 동물의 반영구 보존사체. 사람의 미라는 사후에 영혼이 다시 육체에 복귀한다고 하는 신앙에서 기인한 것이다.
✽비알: ‘비탈’의 방언. 2.‘벼랑’의 방언.
시작(詩作) 노트 : 왔다 가는 인생의 길에서 80을 바라보는 지점에 서면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은 더 이상 울림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한 해 한 해가 다름을 느낍니다. 영원히 살 것 같던 사람들, 사랑하던 사람들이 영원으로 떠나고 혼자 남은 그 텅 빈 공간에서 쇠잔한 육신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직도 오카리나를 배우고 연습하면서 졸업 60주년 기념 연주회를 준비하는 경남여고 35회 동기들과 그리운 친구들 모두가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를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2024.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