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요?”
이영애는 유지태에게 말했다. 유지태는 이영애의 숨은 뜻을 전혀 몰랐다.
라면의 뒤에는 유지태의 멍청한 사랑이 시작될 줄은 이영애만 알고 있었다. 관객들도 그때까지 이영애의 숨은 뜻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관객들은 자신의 멍청함은 모르고 영화 속 두 남녀의 벌거벗은 몸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후, ‘라면 먹고 갈래요’는 서서히 그 위력을 발휘 하기 시작했다.
라면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남용이 되었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여자인데, 남자들도 사용할 지경에 이르렀다. 남자가 그 말을 하면 성추행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법정에서는 진짜 라면만 먹을려고 했다고 하면 판사가 눈 감아 줄수도 있을테지만.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바로 옆에 내가 살았다. 동문산이 동해로 뻗는 산등선 위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었고, 바로 옆에 영화 촬영지가 되었던 산본 아파트가 있고 301호였다.
산본 아파트 301호에서 그날 유지태는 라면 보다는 훨씬 좋은 것을 먹었다. 아니, 먹은 것이 아니라, 이영애에게 먹혔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다.
여자에게 남자도 먹힐 수 있다는 것을 그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난, 이영애가 대단히 섹시한 여자인 줄 착각을 했다. 대장금의 장금이와 봄날은 간다의 라면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후 이영애의 캐릭터는 ‘봄날을 간다’의 라면 여자가 아니었다.
섹시한 요부가 아닌, 착하고 바르고 게다가, ‘봄날은 간다’에서의 섹시한 장면은 전혀 연기하지 않는 답답한 모습 뿐이었다.
물론, 이영애의 얼굴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의외로 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혜수처럼, 가슴이라도 보여주었다면, 이영애는 지금 보다도 훨씬 유명해졌을 것이다. 물론 남자로서 바라보는 응큼한 나의 관점이지만.
‘라면먹고 갈래요’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이영애는 유지태만 먹은 것이 아니다. 또 먹었다. 순진한 유지태는 자신이 먹은 라면의 의미도 모른채 드디어 스토커가 된다.
이영애가 바람 피는 것을 미행하고, 삼척의 골프장까지 따라가고 이영애가 세워 놓은 연두색 경차에 드디어 유지태는 범행을 저지른다.
그것은 범죄다. 스토커다. 영화가 만들어 질 당시는, 아직 그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지만, 만약 지금이라면, ‘봄날은 간다’는 트집 잡기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나 대중들에게 스토커를 왜 예술화 시켰냐고 비판 받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치권이었다면 틀림없이 고소 당했을 것이다. 스토커 방지법에 의해.
여자가 바람 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전까지 나는 여자들은 다 착한 줄 알았다. 남자만 나쁜 놈인 줄 알았다.
라면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알게 해 주었다.
영화에서 또 작은 결점을 찾아내자면, 유지태가 이영애의 산본 아파트로 택시타고 오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묵호 등대 논골담길 동해바다 쪽에서 올라오는데, 그렇게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길이 없으니까.
그러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 엔딩 미쟝센이다.
영화 제목처럼 벚꽃이 휘날리는 거리에서, 요부 이영애는 유지태를 찾아온다.
이영애는 새로운 라면보다 유지태의 라면이 좋았나 보다.
그런데, 벚꽃은 그 영화의 주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멍청한 스토커에 불과한 유지태와 요부 이영애의 사랑이 신파가 되었다. 신파란 미리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억지로 관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삼류 블랙코메디다. 그 당시 유명했던, 그래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던 K 드라마는 그런 식이었다. ‘천국의 계단’을 비롯하여.
K 드라마의 세계화는 신파가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그런 신파의 절정이다. 거리에서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고 이영애가 다가오고, 그러나 유지태는 무시하고 그냥 걸어간다. 돌아보지도 않고.
이영애는 잠시 서 있다가 아쉬운 듯 제 갈 길을 간다.
순진한 스토커 유지태의 캐릭터로는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신파라고 하는 것이다. 억지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신파다.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마지막 앤딩 미쟝센에 좀더 공을 들일 것이다.
이렇게.
벚꽃이 없어도 좋다. 유지태가 살고 있는 서울 변두리 허름한 골목이라도 좋다.
이영애가 유지태를 불러내고, 뭐라고 이야기 하고, 유지태는 이영애를 한참 응시하다가, 이렇게 얘기 한다.
“라면, 너나 실컷 먹어”
틀림없이 이영애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유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간다.
물론, 속으로 유지태는 이영애의 라면을 먹고 싶었겠지만.
영화에서처럼 벚꽃이 휘날리는 거리에서라면, 유지태는 그렇게 얘기하고 벚나무를 무지막지 하게 발로 찬다. 벚꽃이 다떨어질 때까지.
영화의 제목 ‘봄날은 간다’와 벚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신파다.
그리고 마지막 앤딩 장면 하나를 추가한다.
산본 아파트 301호에서 이영애와 유지태는 같이 라면을 먹는다. 이영애는 유지태에게 라면을 먹여준다.
유지태는 이영애의 라면을 살짝 거부하는 척, 마지 못해 먹는다.
내가 아내와 살았던 묵호주공아파트 101동 404호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일출을 누워서 볼 수 있었다.
산본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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