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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2021년 5월 02일, 부활절 제5주(어린이 주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5월 2일, 부활절 제4주(어린이 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부활절 제5주 (어린이 주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 교독 시편 22:25~31절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 함께 기도합니다. [미국 성공회 공동기도서]
(실시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아이의 성공과 실패 속에서,
기쁨과 슬픔 속에서,
아이를 붙잡아 주옵소서.
아이가 자랄 때 은혜 속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자신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성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8:26~40절입니다. (성경)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 특별 찬양 -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 말씀 선포: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절 제5주(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확장되어감을 보여줍니다. (성령에 의하여) 빌립이 에디오피아 궁궐에서 일하는 관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관리는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빌립은 (성령에 의하여) 관리가 마차 안에서 읽던 이사야 53장을 풀어 설명하면서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그에게 믿음이 생기고, 마침내 빌립은 그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 관리는 그의 고국, 에디오피아로 돌아갔고, 그는 아마 아프리카 최초의 복음전파자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은 또한, 세례를 베풀고 물에서 올라올 때,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 갔다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빌립은 곳곳에서 복음 사역을 잘 감당했다고 전해줍니다. 오늘 빌립의 이야기속에서 성령을 따르는 삶을 만나고,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본문: 빌립 이야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라는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고,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끝’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빌립에 의해서[*. 빌립은 사도를 돕기 위해 선택된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ref. 사도행전 6:5)] 성취됨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곧, 8장 4-25절에서 사마리아로, 오늘 본문에서는 ‘땅끝’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빌립은 온전히 성령에 의해서 (ref. 사도행전 8:1a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복음 사역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빌립은 주의 사자의 인도로 예루살렘 남쪽 가사까지 가서,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국고 재산을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 관리인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수레에 앉아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두 번째로 성령이 빌립에게 이르기를 관리인에게 다가가도록 했고, 그와의 대화 속에서 이사야 성경 구절을 풀어주게 됩니다. 그가 읽고 있던 구절은 이사야 53장 7-8절이었습니다. 이사야 53:7-8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 오늘 본문은 <70인 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리자 내시가 이사야에 나오는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 받는 어린 양으로 소개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된 관리자는 빌립에게 세례를 청하고, 빌립은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세례를 베푼 후 물에서 그들이 올라올 때에, 다시 세번째로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가고, 관리자는 기쁨을 안고 그의 나라 에디오피아로 돌아갑니다. [*. 에디오피아가 속한 아프리카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됨을 예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령 표현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26절에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라고 말하고, 29절에서는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29a).” 마지막으로 39절, “ ….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 그 표현이, 1) 주의 사자, 2) 성령, 그리고 3) 주의 영이라고 합니다. 다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굳이 나뉘어 생각을 하자면, ‘주의 사자’는 밖을 마주한 성령의 역사, ‘성령’은 내면을 마주한 성령의 역사, 그리고 ‘주의 영’은 하늘을 마주한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성령 표현에 대한, 성자, 성령, 성부의 지평이 됩니다.)
빌립처럼 온전히 성령의 인도로 삶을 꾸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립과는 달리, 성령의 인도로 사역을 잘 감당하다가 마지막에 혹은 한 순간 성령의 인도를 놓친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이나 모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만큼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온전히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의 경우, 그의 사역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이루어졌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유럽의 첫 교회 빌립보 교회를 세운 것은 성령의 인도에 따른 대표적인 사례(ref. 사도행전 16:6~10)가 될 것입니다.
[*. 사도행전 16:6~10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그러나 3차 전도 여행 중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성령의 뜻으로 여겼지만, 실상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ref. 사도행전 20-21장).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 결국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을 풀어보려는 그의 생각이 성령의 생각보다 앞선 것입니다.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사도행전 20-21장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드로아에서 앗소 까지의 30km의 길을 (일행은 뱃길로 보내고) 홀로 육로로 걸어가는 장면은(ref. 사도행전 20:13) 그의 갈등이 어떠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마지막일 수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ref. 사도행전 20:22).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가는 길을 반대했지만(ref. 사도행전 21:4, 21:11, 21:12), 그러나 바울은 심지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만 불러 놓고 마지막이지 싶은 설교까지 합니다(ref. 20:17-35). 아니나 다를까, 바울은 예루살렘에 간 후, 곧장 잡히게 되어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그의 선교의 사명은 그렇게 마치게 됩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성령보다 앞선 구제금이 문제였습니다. (비록 바울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와 협력을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바울은 서바나로 가려던 선교여행을 뒤로 미루고 모금된 연보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ref. 로마서 15:22~29). 그러나 바울은 이루고자 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는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붙잡혀 벨릭스 로마 총독 앞 재판정에서 그저 자신을 변호하는데 ‘(구제금의) 말’을 보탤 뿐입니다(ref. 사도행전 24: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 위의 언급된 성경 구절입니다.
사도행전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사도행전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사도행전 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사도행전 21: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로마서 15:22-28,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바울이 모금된 연보로 일을 도모하다가 한 순간 성령의 음성을 놓쳤다면, 모세는 애굽을 그리워하는 백성의 원망에 한 순간 마음을 놓친 경우입니다. 모세는 온전히 하나님께 충성하며 그 뜻을 따랐고, 심지어 하나님과 대면하기까지 했지만, 백성들의 원망에 자신의 마음을 한 순간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ref. 민수기 20:10~13).” 성경은, 물을 만나지 못한 이유로 백성들이 애굽을 그리워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 모세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는데, 이를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결국 모세의 삶은 2% 부족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 민수기 20:10-13,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바울은 모금된 연보에, 모세는 백성들의 배신과 원망의 마음에, 성령의 인도를 잠깐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온전히 성령이 이끄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3. 성령이 인도하는 삶
성령이 인도하는 삶을 살펴봅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삶은 율법을 넘어 자유의 삶을 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단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을 넘어 선다고 말해줍니다. 갈라디아서 5:18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은 법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고, 법을 넘어서 있다는 것은 법을 무시하거나, 필요가 없다거나, 혹은 불법을 행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의 취지를 살려 법의 온전함을 이루겠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5:17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정죄(定罪) 혹은 정의(定義)’에 쓰입니다. 율법을 어기면 정죄(定罪), 곧 ‘죄이다’가 되는 것이고, 율법을 지키면 정의(定義), ‘의롭다’ 곧 ‘죄 아니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을 넘어서 성령이 인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죄이다’ 혹은 ‘죄 아니다’하는, 정죄(定罪)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2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 율법(계명) 측면에서, 삼위의 계명을 살펴봅니다. 성부 하나님의 계명은 “선악을 구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성자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계명은 (바울의 입을 빌려) ‘정죄(定罪)하지 말라’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위 세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악을 구분하지 말라’ … ‘(예수님의) 서로 사랑하라’ … ‘(성령님의) 정죄하지 말라.’입니다. 삼위 하나님에 따라 그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그 내용을 성찰하면, ‘정죄(선악을 구분)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율법(계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율법(계명) 위에 서 있는 율법(계명)은 없습니다. (없어야 합니다).]
율법을 넘어서기 때문에, 성령이 인도하는 삶은 자유의 삶입니다. 요한복음 3:8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이 인도하는 삶은 율법을 넘어선 바람과 같은 자유의 삶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이 인도하는 자유의 삶을 온전하게 누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자꾸 놓치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바울 같은 위대한 인물도 성령의 인도를 한순간 놓쳐 2% 부족한 삶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는 곳에 성령의 기운이, 에너지가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 순간도 성령의 음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집중할 것은, 1)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이해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2) 분열을 치유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3)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첫째, 성경말씀을 이해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3:34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그리고 말씀은 성령에 따른 삶을 사는 이의 무기가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검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6:17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 묵상을 늘 생활 속에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빌립이 그랬던 것처럼, 복음(福音),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에 눈을 뜨고, 그 시각에서 성경말씀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26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둘째, 분열을 치유함에 집중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이 분열을 일으킵니다. 유다서 1:19입니다.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기억하시죠. 이 열매를 가만히 성찰해 보면 모두 분열을 치유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나뉜 세상을 하나로 치유함은 또한 복음의 속성이 됩니다.
셋째,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3:11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요약하면, 1)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이해하는데 집중하고, 2) 나뉘어진 분열을 치유하는데 집중하고, 3)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면 성령의 음성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집중하는 곳으로 우리의 에너지는 흐르기 때문입니다.
4. 나가는 말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삶은, 율법을 넘은 자유의 삶입니다. 온전히 자유의 삶을 누리려면 성령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함에, 분열을 하나로 치유함에,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면 성령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 어른들은 이리 노력을 해도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꾸려가기 힘이 들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그 비밀이 쉽게 드러나니, 하나님의 뜻이 묘합니다. 누가복음 10:21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 아버지의 뜻을 알아채시기 바랍니다. … 어린 아이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빌립과 같이, 성령이 인도하는 삶, 온전하게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201장 (참 사람 되신 말씀)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