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티아 북쪽 시벨리아 툰드라 지방을 다녀왔다.
베르흐얀스크 주의 수도 바타가이와 베르흐얀스크(영하 67.8도를 기록한 엣날 수도) 음악학교를 다녀왔다.
베르흐얀스크는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지방으로 불렸는데 어느날 오이미콘(야쿠츠크 동쪽)이 영하 71.2도를 한번 찍은 후부터 오이미콘이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방이란는 타이틀을 뺐겼다.
9월10일 출발하여 14일 돌아왔는데 여기는 돌아오면서 비행기에서 찍은 풍경과 설명을 올린다.
바타가이 음악학교는 24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피아노 17명. 클라리넷과 리코드 10명, 바이얀 23명(교사2명), 합창30명, 전통악기(돔르이와 발라라이카) 15명
또 미술 37명, 발레40명(교사2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었다.
한때는 금광이 유명해서 1980년대까지도 한인들(고려인)까지 진출한 유명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조용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월급을 많이주고 또 연금 등에서도 확실히 차별을 두어서 잘해주었기에
모스크바등 대도시에서 이곳으로 자원해서 찾아오는 젊은이 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모스크바와 거리가 멀수록 월급과 대우가 좋았다.
예를 들어서 야쿠츠크는 모스크바보다 약 40%의 월급을 더 주었는데 더 먼 추코츠크는(캄차카 위)
모스크바보다 100%많은 두배의 월급을 주었다.
뿐만아니라 보너스와 항공권지원 또 집을 제공하는 등 많은 혜택이 있었기에 거의 3배의 월급을 받았다.
그러니 빨리 돈을 모으고 싶은 젊은이들은 시베리아 툰드라지역 골짜기까지 일을 하러왔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많은 젊은이 들이 시베리아를 또나고 있다.
미하일은 집은 한화 약1100만원을 하는데 자신의 자동차 값과 집값이 동일하다.
운전대를 잡고 나를 도와준 미하일은 바이얀 선생을 하면서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기사까지 겸하고 있었다.
전날 집을 빌려서 잤는데 더운 물이 문제가 있고 또 화상실에도 물이 문제가 되어서 연락했더니
미하일의 집에 방이 남고 또 공항과 가깝다고 초대해 주었다.
야쿠티아는 겨울에는 영하 50도 이하까지 내려간다.
더구나 야쿠티아는 땅을 1m만 파고 내려가면 동토의 땅이다.
그래서 아파트 등의 지하실리나 지하방은 없다.
모든 집을 땅에서 기둥을 세워서 띄워서 짓는다.
그래서 고층건물을 세우지는 못한다.
자동차를 난방이 된 차고에 보관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지 않을경우 차가 얼어버려서 ...
겨울에는 낮에 건물앞에 자동차를 주차할때는 시동을 켜 두어야한다.
그렇지 않을경우 30분 이내로 얼어버려서 ...
야쿠티아의 여자들의 경우 겨울에는 그냥 자동차를 얼려서 두고 봄이와서 자동차가 녹으면 운전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야쿠티아는 일년의 반 정도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집에 난반이 된 주차장이 없는 사람들은 밤에 자동차를 보관할 수가 없기에 차라리 겨울에는 이용을 않는다.
시베리아는 꽃이 귀하기에 외부에 나갈경우 꽃씨를 가져와서 집안에 심고 정성스럽게 가꾼다.
미하일의 부인은 꽃 뿐만이 아니라 아래의 사진처럼 수를 놓는 것을 즐겼다.
부인은 교육청 지점에서 장학관을 하고 있었다.
시베리아는 여름이 짧다.
그래도 이 짦은 기간동안 토마토나 작물을 키운다.
토마토가 크기가 작았는데 이렇게 익지않은 토마토를 따서 따스한 곳에서 익히고 있었다.
시베리아 북쪽지역은 아스팔트가 거의 없다. 도로는 거의 이런 흙 길이다.
공항조차고 흙으로 되어있었다.
비가 오면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항공기가 뜨고 내렸다.
바타가이 초입의 풍경
아래 사진이 공항이다.
한국의 시골 바스터미널도 이것 보다는 클 것이다.
옆자리의 나타샤는 부 교장겸 합창선생인데 전날 도시락을 싸주면서 챙겨주더니
가는 날 아침에도 공항으로 선물을 사들고 마중을 나왔다.
오른쪽은 지역신문 기자인데 가끔 도시에서 나같은 사람이 찾아가면 인터뷰를 하였다.
여기 기자는 권위적이지 않고 낮에는 기자로 또 밤에는 학생들 오케스트라에서 베이스악기도 연주한단다.
아침에 먹어라고 나타샤가 싸준 도시락인데 냄새가 좋아서 전날밤에 미하일과 먹어버렸다.
비행기를 타기전 대기실
자신의 짐은 자신이 이렇게 짐차에 실어야 한다.
그리고는 피난행렬처럼 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비행기를 탄다.
문제는 비가 올때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들이 비에젖게된다.
바타가이에서 산을 넘어가면 타발락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는 바타가이 음악학교의 분교가 있다.
겨울에는 눈때문에 막히고 여름에는 산과 숲으로 막혀서 위의 헬기가 이동수단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헬기로 이동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강을 따라서 모터사이클이나 자동차로 이동한다.
공항 활주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과 돌을 섞어서 다진 길이다.
비가오면 비행기가 내기기가 힘들다.
차라리 겨울에는 눈이 덥히고 또 얼어서 비행기가 내리기에는 좋다.
러시아 눈은 신기하게도 덜 미끄럽다.
이륙 후
큰 나무가 거의 없는 이런 산이 계속 펼쳐진다.
강물이 단단하게 얼어붙는 12월중순 겨울에는 아래의 얼어붙은 강을 따라서 자동차가 달린다.
일반 자동차는 다니지만 대형 화물차는 12월말을 지나야 가능하다.
그러다가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4월 말부터는 자동차가ㅡ 조심스럽다.
가끔 얼음이 약한지도 모르고 달리다가 자동차가 강물에 빠지기도 한다.
이륙 25분 후 지점
아무리 찾아봐도 집이나 사람이 사는 흔적을 볼수가 없었다,
나를 태워다준 미하일은 자동차로 야쿠츠크에서 바타가이까지 자동차로 많이 왔다갔다고 한다.
혼자서 약 60시간을 운전해야하는데 1월은 너무 추워서 위험하고 3월중순이 가장 좋다고 한다.
날씨가 영하 20 ~30도로 심하게 춥지않고 또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서 계곡을 오르 내리기가 좋다고 한다.
바타가이에서 야쿠츠크까지는 약 1,000km인데
바타가이에서 580km 지점까지는 사람이 살지않고 580km지점을 지나면 가끔 마을이나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에벤족 사람들은 툰드라 지역에서 순록을 키우면서 사는데 요즘은 워낙 순록을 많이 잡아서 숫자가 많이 줄어 들었단다.
혼자서 운전을 하고 올때는 피곤하면 운전대를 잡고 자다가 깨면 또 달린단다.
야쿠티아는 남한의 33배의 큰 땅에 인구는 고작 100명인데 사진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살기에는 지형이나 기후가 열악하다.
옛날에는 대우가 좋아서 살았지만 요즘은 모스크바 등 대도시와 생활수준이 많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난다.
물이 부족하고 또 모든것을 비행기로 실어 나르다보니까 물가가 비싸서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있다.
간혹 도시로 방문해서 살아본 사람들은 도시의 편안 생활에 적응되면 툰드라 골짜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로 인구가 몰리고 있다.
이륙 50분 후 지점까지 오로지 산과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55분 쭘 후에 두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이 나왔다.
산이 낮아지는지 북쪽에는 눈이 쌓여있고 남쪽에는 눈이 없었다.
이륙 한시간 후부터 눈이 거의 사라지고 평지가 펼쳐졌다.
66분후에 큰 호수가 보이고 주변으로 두개의 강이 흐른다.
레나강이 가까우니 푸른땅이 보인다.
70분 후에 레나강을 지나가는데 마을이 나타났다.
강을 따라서 양쪽으로 많은 마을이 보였다.
갈라진 삼각주 사이로 호수가 많이 보였다.
야쿠츠크 북쪽 도시 "좌타이"
야쿠츠크 공항 도착
1시간 45분 동안 비행기 소음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