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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겨울 - 조병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 홍시화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람녀
잠 못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꽝꽝 언 겨울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줄을
겨울강 - 정호승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본다.
겨울 편지 - 이해인
겨울나무 / 이해인
내 목숨 이어가는
참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눈 감아도 트여오는
백설의 겨울 산길
깊숙이 묻어 둔
사랑의 불씨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넘치는 은혜의 바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
오는 세월
기도하며 드새운 밤
종소리 안으로
밝아오는 새벽이면
영원을 보는 마음
해를 기다립니다
내 목숨 이어가는
너무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겨울나무 /오보영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줄
꿈이 있단다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 / 윤보영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가지 끝에 남긴
까치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안이 따뜻한 것은
날마다 담겨 사는
그대 생각 때문이었군요.
행복합니다
겨울나무 / 신경희
아름답구나
허물을 벗어 던진 너의 자태
낱낱이 들어난
상처투성이와 비틀림
거친 피부에
버석거리는 살결
굵은 허리로 꼬여있어도
너의 자태가 아름답구나
뼈마디가 앙상하면 어떠하고
우유 빛에 하얀 속살이 아니면 어떠하랴
너는,
언제나 땅을 지키는 나무이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자연인 것을
아름답구나..
알알이 비춰지는 울퉁불퉁 너의 굳은살
낱낱이 해부되는 너의 곡선
누드로 서 있는
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겨울나무 / 김후란
침묵하는 나무
고집스레 눈을 감고
깊이 생각에 잠긴 그대
빛을 받아 반사하듯
나도 향기로운
한 그루 나무 되어
침묵의 응답을 보낸다
휘젓는 바람
창연한 고요 속에
차디찬 달빛 날을 세운다
아무도 봄을 믿지 않는 이 시각에
기다림을 배워 준
나무의 인내
봄은 내 가슴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나목裸木 / 이현우
이제 곧 자유를 얻으리라.
아름다운 전쟁도 막을 내리고
꽃이었다가
열매였다가
마침내 바람으로
몇 안 남은 미련마저 다 지워버린
겨울, 여백의 평화.
나목 / 성백균
추울 텐데
한 잎 한 잎 입성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겨울 문턱을 들어서는
나목
삶이란 나목처럼
때가 되면 내려놓는 것
나뭇잎 떨어지듯 명예도 권세도 부도
다 내려놓아야 편한 것
거친 겨울바람도 쉽게 지나가고
지나가야 다시 올 수 있지
차면 비워지고
비우면 채워지고
그러니까 회계도 하고 가난도 이기면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지
알몸, 저 겨울나무
춥기야 하겠지만, 수치는 아니야
용기지
봄은 용감한 사람에게만 오는 거야
겨울나무로 서서 / 이재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겨울나무의 기도 / 정연복
사람들만 기도하는 게 아니다
겨울나무들도 기도한다
성당 담벼락에
가지런히 서 있는 나무들
난방이 들어오는
따뜻한 기도처가 아니라
갑작스런 한파가 들이닥친
추운 세상의 한복판에서
푸른 하늘 우러러
온몸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끝내 인내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굳센 용기
강인한 생명의 힘을 달라고
숨길 것 하나 없는
알몸으로 간절히 드리는
저 겨울나무들의
말없이 정직한 기도.
겨울나무 / 김근이
추운 겨울
기도에 잠입하는
겨울나무
하늘을 향해 묵상하는
가지 끝으로
봄이 내린다.
겨울나무로 서서 / 목필균
나 이젠 서슴없이 동안거에 들어갈까 해
고단한 허울 다 벗어놓고
홀가분한 가슴이 되는 거야
영하로 내려갈수록
바람의 뼈대를 세우고
한 계절 온전히 견딜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부산한 세상 바람
단단히 걸어 잠그고
침묵의 동안거로 들어서는 내겐
겨울은 가장 평화로운 나라이지
겨울나무 / 나태주
빈손으로 하늘의 무게를
받들고 싶다
빈몸으로 하늘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벗은 다리 벗은 허리로
얼음밭에서 울고 싶다.
겨울나무 / 박덕중
옷을 벗는 일은 슬픈 일이다
맨살 드러내는 일도 슬픈 일이다
맨살로 노래하고
맨살로 춤을 추고
체온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벗겨진채
살갗에 내리는
치욕을 팔아
살아가야 하는
잎새하나 없는
벌거벗은 겨울나무야
밤 하늘의 반짝이는
수 많은 별빛 아래서
빛나는 음악을 타고 흔드는
너는 언제쯤
잠이 들려나.
부끄럼 벌거벗고 흔드는
겨울나무야
겨울나무 / 김남조
말하려나
말하려나
겨우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이 말부터 하려나
겨우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산울림도 울리려나
나의
겨울나무
새하얀 바람 하나
지나갔는데
눈 여자의 치마폭일 거라고
산신령보다 더 오래 사는
그녀 백발의 머리단일 거라고
이런 말도 하려나
산울림도 울리려나
어이없이 울게 될
내 영혼 씻어내는 음악
들려주려나
그 여운 담아들
쓸쓸한 자연
더 주려나
아홉하늘 쩌렁쩌렁
산울림도 울리려나
울리려나
나의 겨울나무
겨울나무들 / 용혜원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여름날 그 찬란한 햇살 속에
아름답기만 하던
옷들을 다 벗어버리고는
가지마다 서로 외로움을 비비며
추위에 떨고 있다
아니다 아니다
벌써부터
봄이 오는 걸
기다리고 싶은 마음에
모든 손을 다 들고
환영하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겨울나무 가지치기 / 김재진
인적없는 깊은 산마루 기슭의
고욤나무에 찬 서리꽃 내려서
한알 두알 근심을 떠나보냅니다
허기진 산 벗은 눈 망에 담습니다
산 아래 어스름 불빛 고택에는
노부부가 도란도란 의지합니다
안채 뒤뜰 오롯한 담벼락 뒤서리
유실수가 아름드리 보기 좋습니다
햇살과 바람과 가랑비 근근하니
고욤나무는 속 응어리 터집니다
노부부의 지혜 담긴 성근 열매는
출가한 자식도 인정하니 선물입니다
어수룩하니 움츠린 겨울나무 가지는
애련하나 잘라줘야 소담스럽습니다
못난 겉까지는 땔감으로 산화합니다
무녀리 산지기는 한껏 가엾은 마음입니다
겨울나무는 / 임영준
겨울나무는
이유 있는 서러움이 걸려
허청거릴 수밖에 없어
한 해를 꼬박 다 바쳐
잉태했던 핏줄들이
허망하게 떨어져나가고
해갈할 수 없는 혼돈만 남아
깊이 주름 짓고 있는 거야
가끔씩 눈보라가
어루만져줄 때에야
비로소 사무치는 뿌리를 딛고
호소할 날들을 헤아려 보기도 하는 거야
나름 까닭 있는 몸짓인거야
겨울나무 속 꽃 / 정연복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봄이 되어
비로소 꽃 피는 게 아니라
겨울나무 속에
꽃은 이미 들어 있다
겨울 너머 오는 봄은
겨울과 맞닿아 있고
겨울 지나 피는 꽃은
겨울나무와 연이어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목(裸木)의 온몸에는
수액이 돌아
봄의 연둣빛 이파리를
잉태하고 있을 터.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스물 안팎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 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서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겨울산에서 / 이해인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겨울 날의 희망 /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 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의 회상(回想) / 오광수
당신이
손 내밀 때 왜 내가 잡질 못했던가?
뿌옇게 색이 바랜 아쉬움 들을
가슴속에다 억지로
밀어 넣어도
회상(回想)의 실핏줄을 타고 튕겨나와선
가끔씩 가끔씩 심장을 꼬집으며
덮어두었던 노래를 열고
가슴을 데우려고 하지만
굳어진 현실의 시간 앞에선
그저 아랫입술만 꼭꼭 씹습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그 고백들은
이제는 탁한 숨소리가 되어
가슴이 아닌 세월에다 불을 붙이며
한 줄 나이테로
사라지는 오늘,
당신이 손내밀때 잡지 못했던 손은
지금 주머니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겨울 나무에게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벋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을 듣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겨울 편지 / 김현태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겨울날 /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 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을 건너는 이삿군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으니
어머님 한분만 오시쟎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은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하늘에 푸른 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치 한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나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나온다
어느날 목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번 못 하고
친구들의 손 한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겨울 노래 /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겨울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그 겨울밤 / 안도현
한숨 자고
고구마 하나 깎아 먹고
한숨 자고
무 하나 더 깎아 먹고
더 먹을 게 없어지면
겨울밤은 하얗게 깊었지
겨울 바다 / 용혜원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파도가 휘몰아쳐 와
방파제를 깨물었다 놓았다
거센 파도의 아픈 비명에
시퍼렇게 멍든
바다를 보고 있으면
찬 바람이 매섭게 따귀를 때리고
가슴 시리게 뚫고 지나간다
갈매기들이 낯선 객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날개를 저으며 날고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은
햇살이 끼어들 수 없는
산비탈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춥다! 춥다! 외칠수록
추운 선창가에서
항구를 떠나는 배는
시린 손짓 그리워
점점 멀어져 간다
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의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아,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아,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흐를 것들이
쩡,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눈위에 쓰는 겨울시 /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겨울 나목 / 양광모
알몸으로도
겨울 이겨내는
네 삶 눈부셔라
한 백년쯤이야
하늘 높이 쭉쭉
가지 뻗으며 살아야 한다고
헐벗은 가슴으로도
둥지 한두 개쯤
따뜻이 품으며 살아야 한다고
눈 내리면 눈꽃 피우며
봅이 아니라 겨울을
열렬히 살아야 한다고
너는 아무런 말 없이도
알몸으로 눈시울 뜨겁게 만든다.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겨울 그리스도 / 김남조
오늘은
눈덮인 산야를 거닐으시네
눈같이 흰 옷 입으시고
눈보다 더욱 흰
그 옛날 물위를 걸으시던
강줄기도 얼어
오늘은
수정의 빙판 걸으시네
울고 싶어라
머리칼도 곤두서는
율연(慄然)한 추위에
물과 땅의 모든 깊은 곳으로부터
보혈을 섞어 빚은
새 봄의 혈액을
한 없이 자아 올리시는
설일(雪日)의 주님
겨울 잠 / 박목월
천장 구멍에서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두 개의 수염이 짝 뻗은
쪼붓하고 조그맣고 놀란 얼굴
쩡쩡 얼음이 어는 밤
얼음 위에 바싹바싹 달빛이
부서지는 밤
오오 추워라
아랫목 이불 속에 우리 아기가
고개를 푹 파묻었다
방에는
일렁일렁 흔들리는 그림자
아직도 아버지는
글을 쓰시는데
저절로 전등이 흔들리는 밤
천장 구석에 쥐가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새까만 두 눈이 또록한
쪼봇하고 조그많고 놀란 얼굴
오오, 추워라
찡 울린 저 소리는
추위에 날무대가리가 터진게지
추위에 독이 갈라진 게지
새끼 있는 구멍으로
어서가 자거라
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갈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겨울나그네 / 김재진
비오는 밤 편지를 쓴다.
키보드 두드리는 전자 우편 아닌
만년필로 써나가는 고전적인 노동,
노동하듯 나는 네게
힘들여
사랑한다는 한 마디 하고 싶다.
사랑한다.
잘 못 걸려온 전화처럼 수화기 내려놓으며
나 이제 너를 향해
한 통의 전화조차 할 수 없지만.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려오는 네 음성 듣고서도 아무 말 할 수 없지만,
바깥에는 비 내리고
나는 지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처음 본 지붕과 낯선 길들
끈질기게 따라온 절망을 버리기 위해 나는
정류장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쉴 새 없이 물건을 사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말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듯
혼자 있는 방에서도 지껄였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말을 하고,
아무도 읽어주는 이 없는 글을 썼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듯 확인하는 일,
한때 네가 확인하던 내 마음처럼
두드리고 만져보는 일,
눈 대신 바깥에는 비 내리고
아무 것도 더 확인할 것 없는 너를 향해 나는
쓰고는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전화조차 할 수 없는 너,
사랑한다는 말이 죄가 되는 너,
나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겨울강 / 도종환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얼음 속에 갇힌 빈 배같은 그대를 남겨 두고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굽이굽이 강길을 걷는다
그대와 함께 걷던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
새벽의 바다에 이르렀음을 끝까지 믿기로 한다
내가 이 길에서 끝내 쓰러진 뒤에라도
얼음이 풀리면 그대 빈 배만으로도 내게 와다오
햇살같은 넋 하나 남겼다 그대 뱃전을 붙들고 가거나
언 눈물 몇 올 강가에 두었다 그대 물살과 함께 가리라
겨울밤 / 복효근
감나무 끝에는 감알이 백서른 두 개
그 위엔 별이 서말 닷 되
고것들을 이부자리 속에 담아와
맑은 잠 속에
내 눈은 저 숲가에 궁구는 낙엽 하나에까지도 다녀오고
겨울은 고것들의 이야기까지도 다 살아도
밤이 길었다
겨울밤 /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닭이라고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겨울 저녁 서산에서 / 황동규
어른대던 사람들 둑에서 내려가고
한참 만에 사람 하나가 새로 올라간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있던 금 천천히 풀어지고
언제부터인가 눈이 자꾸
안 보이는 것을 찾고 있다
바티칸이 감추어 두었다
이따금 꺼내 보여주는 미켈란젤로 그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 얼굴의 눈이
열심히 미켈란젤로를 찾는 그런 겨울 저녁
눈 친 벌판을 둘러보는 동박새의 눈
한 점 두 점 눈발이 시작되다
빗방울이 되어 날기도 하는
그런 저녁
가창오리 몇 마리 날아올라 허공을 휘돌다 사라진다
김용배의 설장구, 그 시원한 끄트머리!
빗방울 몇이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손사래를 친다
지금 이곳이 지구 속인가 밖인가?
생각하다 말고 바람이 불고 있다
겨울강 두물머리 / 나상국
한 무리의 행락객 철새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발자국마저도 휑한 두물머리
사백 년의 나이에도
거칠게 불타오른 느티나무의 열정
한 잎 나뭇잎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모로 두러 누운 색바랜 풀들이
너을 너을 춤추던 쓸쓸한 강둑
강한 비바람이 몰려왔다가
스스로 몸을 낮추어
한 바퀴 돌아보고
에둘러 떠나간 두물머리
노만 덩그러니 남겨진 배 한 척
사공 잃은 황포돛배
새벽 안개에 갇혀
쨍쨍 강울음 소리에
머리채를 낚아채인듯
무릎 끓는다
금강산 골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북한강
태백산 검룡소를 힘차게 박차고 발원한 남한강
처녀 총각 만나듯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깊은 포옹으로 한몸이 되어 흐른다.
겨울강 / 이채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제 차가운 겨울강이 되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추위는 몸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는 것이라고
겨울강은 제 가슴도 보이지 않고
저 강물 소리없이 깊어가듯
당신과 나도 그렇게 꿈을 꾸며
하루 하루 깊어가는 것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송이 만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강바람 따뜻한 날
한마리 새가 분명 날아 올 것이라고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눈물을 모두 제 가슴에 가두고
겨울강은 유달리 말이 없다
겨울강에서 /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다소곳한 귀일 뿐
겨울, 동강 / 서원동
문산나루 질퍽한 삼들
어라연 휘돌아 돌며 숨차 헐떡거리다
얼음짱 되어 문득 발걸음 멈춰 선곳
겨울 동강은
지친 몸 기대 술 곳초차 없이
삭막하다
산잠승들 뛰놀던 협곡 사이로
자갈톱 스쳐온 찬바람만
길게 한숨소리 내뿜고 있다
아무도 없다
앙상하고 고즈넉하다
응고된 피딱지인 듯
여기저기 나뒹구는 녹슨 깡통들
넝마 되어 펄럭대는 폐비닐 조각들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숨겨진 상처 마냥 한없이 삐걱거릴 뿐
겨울 동강은
이빨 빠진 늙은이가 뜯어먹다 남긴
풀빵처럼 곳곳에서 찐득거린다
겨울강가에서 겨울바람을 잡으며 / 정세일
겨울이 만든 강얼음위에 네모나게
얼음을 잘라 그 위에 사다리를 놓습니다.
차거운 물속에다 그믈을 쳐놓고
삼촌이 대나무 삼지창으로
강 바닥에 엎드려있는 겨울강을 잡고 있습니다.
큰 나무로 돌을 살짝 옆으로 비키면
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옵니다.
대나무에 동그랗게 철사를 말아 만든
뜰채로 고기를 잡아 노란 양동이에 넣습니다.
잡혀지는 고기는 노란양동이속에 퍼뜩거립니다.
양동이속이 너무좁아 고기들이 업어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동그랗게 모여서서 겨울강을 잡는 구경을 합니다.
겨울강을 잡는 것은 기나긴 겨울바람을 잡는 것입니다.
겨울강 / 김세영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무성하게 출렁이는
바람의 치마 밑으로
때로는 춤추며
달려가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앙상하게 얼어붙은
바람의 고샅 밑으로
때로는 포복하며
웅크리고 걸어가면서
등허리의 긴 상처를
달빛으로 꿰맬 때만
살얼음 덮인 알몸을 보일뿐
얼음 비늘의 황톳빛 잉어들이
바다의 도마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파도의 칼날이 잘게 다져서
바닷물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겨울 마음 / 이상화
물장사가 귓속으로 들어와 내 눈을 열었다
보아라!
까치가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서 울음을 운다
왜 이래?
서리가 덩달아 추녀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가
내야 반가웁기만 하다 오늘은 따스겠구나
동면(冬眠) / 임보
겨울 산은 눈 속에서
오소리처럼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산의 체온을 감싸고 돋아나 있는
빽빽한 빈 잡목의 모발(毛髮)들
포르르르
장끼 한 마리
포탄처럼 솟았다 떨어지자
산은 잠시 눈을 떴다
다시 감는다.
겨울행 / 나태주
열 살에 아름답던 노을이
마흔 살 되어 또다시 아름답다
호젓함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들판 위에
추운 나무와 집들의 마을,
마을 위에 산,
산 위에 하늘,
죽은 자들은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언 별빛이 되지만
산 자들은 마을로 가
따뜻한 등불이 되는 걸 보리라
겨울 초대장 /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아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 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 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겨울 산사 / 목필균
긴 겨울
눈 속에서 묵언 수행 중인
대윤사에는
숫눈 위 쌩한 바람 소리로
명상에 잠기는 성엽스님
제 몸 부딪히며
수런대는 대나무들
독경소리 들으며
사철 다향을 가꾸는
부지런한 전처사님
입으로 지은 구업도
가슴에 얼룩진 상처도
평정심으로 돌려놓는
대각전 부처님이
정갈한 풍경소리로
머물러 있다
하얀 계절의 일기 / 오광수
어제 이 강가에서 만났던 노래는
반짝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돌틈속에 숨었답니다.
모질게 구는 바람이
무서워
조롱 조롱 그렇게 숨었답니다.
하얗게 하얗게 쌓인 눈밭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도
남은 낱알 찾던 철새의
소리도
숨구멍만 조금씩 내놓은 채
빠끔이 숨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한 움큼씩 고운 햇살을 주면
천사들의 따스한 손길
따라
뾰족 뾰족 생명들이 고개를 들고
숨었던 소리가 날아다니고
초롱 초롱 보고픔이 꽃이 필 테지요.
앙상한 나무를
마구 때리는 바람도
이젠 지쳐 힘이 없나 봅니다.
숨바꼭질했던 나무의 새 순들이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껍질을 벗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겨울강 / 정호승
꽝꽝 언 겨울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것을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 김시천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깊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천지사방 고요히 내리는 눈발과 함께
세월이 남기고 간 그림자는 마냥 길고 적막한데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사람 하나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눈 내려 쌓일수록 밤은 깊어져
나마저 보이지 않는 외딴 산 마을
촛불 하나 켜지는가
보고 싶어집니다
겨울로 가는 길 / 최영희
수북이 낙엽으로 쌓인 숲 속 길
이제는 성근 가지로선 나무들
난, 지금 그 쓸쓸함 마져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어느 詩 낭송회장에서 노(老) 시인이 불던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을 떠올리며
푸른 날 새들의 살아 낸 이야기로 가득한
전설 같은, 내 가슴엔 아직은
그들의 이야기가 수런수런 들리는
빈 숲 길을 걷고 있다
은행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아슴히 비치는 햇살
추억으로 가득한,
내가 사랑한 바다도
이제는 하늘의 조각구름 가득 싣고
먼 여행을 떠나고
내게 주어진 고적한 이 시간이여!
나는 지금 나의 나에게 묻고 싶다
내 삶에서 그토록 사랑한 것이 무엇이며
지금도 목말라 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초겨울, 마지막
어미를 쫓아 길을 떠났을 산새소리
가슴이 젖어 오고
길가에 저 감나무도 아직은 곰 익은 감
떨구지 못하고 있구나
겨울로 가는 하얀 새벽 길
다 하지 못한
뭉쿨~한, 이 그리움처럼…
겨울 까마귀 / 김현승
영혼의 새
매우 뛰어난 너와
깊이 겪어본 너는
또 다른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호올로 남은 것은
가까워질 수도 있는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12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멀뚱거리다가
벽에 부딪쳐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까아욱
까각
이 겨울엔 / 홍해리
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눈이 천지 가득 내려 쌓이고
수정 맑은 물소리도 들려오는데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겨울 노래 /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 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겨울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밤의 꿈 / 김춘수
겨울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살과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게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煙炭가스는 가만히가만히
주라기紀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市民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홋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기 공룡恐龍의
순금純金의 손을 달고
서양西洋 어느 학자學子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주라기紀의 새와 같은 새가 한마리
연탄煙炭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그해 겨울나무 / 박노해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도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절대적이던 것은 무너져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굵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뿌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촉촉한 빛을 스스로 맹글며 키우고 있었다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에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겨울나무 / 김영래
겨울나무
매마른 가지마다
겨울바람 불어와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그져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서
수백년을 지켜보며
당 당 하게 서있다
흐르는 세월속에
오늘도
푸른 새싹을 꿈꾸며
봄을기다린다
마을입구에
묵묵히 서있는
져 나무는
이제 잎이 무성 해질
여름이 오면 그늘믿으로
동네 사람 들이 모여들어
한가로이 덕담을 나누리라
겨울나무 / 오보영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 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줄
꿈이 있단다
겨울나무 / 김덕성
아침 창밖에
헐벗은 채 밤샘을 한 겨울나무
안쓰럽게 보인다
이상 기온이라 따스하다지만
그래도 찬바람
맨살을 헤집고 스쳐 가는데
언젠가 다칠 칼바람
노출된 채 보란 듯이 서 있으니
어쩌면 좋아
간밤에 가지에 내려앉은 달빛
얄밉게 속삭이던 서리
더 시리게 하고
차라리 흰 눈이라도 펑펑 내려
따뜻하게 덮어 주렴
봄에 원대한 꿈을 이루게
겨울나무 / 류인순
지난가을
벗어 던진 옷가지에
시린 발목을 덮고
나무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네
겨울 한복판
날을 세운 칼바람에
온몸 맡긴 채
골짜기 사이로
묵은 추억 밀어내고
하분하분 춤사위
눈꽃 핀 가지마다
연둣빛 설렘
움 틔우기 위해
옹골차게 숨 고르네.
겨울나무 / 심억수
새 날을 채워가는 겨울나무
빈가지에 바람만 가득 걸렸다.
가슴에 안았던 소망, 앗아간 바람
기다림으로 걸어 두고
여백의 미를 안으로 다스린다.
버림으로써 초연해지는 너
땅속의 별이 되고 싶은 인생
당당한 알몸이 되기 위해
난 무엇을 떨처야 한단 말인가
채워서 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걸 다시 채우려는
나의 욕심을 거두고 나면
내 생의 뒤안길에 시간만 둘 수 있을까
모두를 버리고서야 모든 걸 얻은 듯
마냥 자유로운 너.
겨울나무의 마음 / 김덕성
요즈음 거리를 걷다보면
눈에 지피는 것이 겨울나무다
애지중지 키워 온
잎사귀들이 떠나가 애처롭게 보이던
알몸이 된 나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할까
나 같으면 분통이 떠졌을 텐데
마음이 너그럽다
숫한 원망을 들으면서도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내색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화풀이도 없이
겨울을 지키고
새 봄을 여는 겨울나무를 보며
내 마음에 담는다
겨울나무에서 나를 보다 / 김덕성
매섭게 불어오며 스치는 찬바람
겨울나무의 마음을 흔들고
받은 소명을 다하고
모두 떠나간 빈 겨울나무엔
아쉬움 보다
내일을 바라는
기다림이 있어 든든하다
다가올 새 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창조를 산고를
겪어야 하는 겨울나무
나도 시 한편을 출산을 위해
인고를 겪는데
모두 함께 고된 내일의 기다림
시작하누나.
겨울나무 스케치 / 홍수희
구부렸던 손가락을
하나 하나
펴보니 나무가 된다
휘감았던 두 팔을
느슨히
놓아주니 나무가 된다
저절로 무성했던
잎새, 가거라
보내니 나무가 된다
그 또한 겨울나무가 된다
더 이상은 바랄 것 없네
가난은 이리도 자유로워라
겨울나무 / 박동수
색색 단풍잎들
숨 가쁘게 둘러댄 것은
아픔을 감추고 싶었던 너
훌렁 벗고 보면
온통 검은 상처뿐인 산
칼날세운 가을비의
송곳 끝 같은 몸살에
날 선 겨울나무
알몸 들어낸 겨울 날이어도
저 시퍼런 무리들보다
내리는 하얀 눈
두둑하게 솜 이불처럼
덮어주는 이 은총
날 선 마음 내려놓으려나
민초 같은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순정 / 김덕성
따뜻하게 감싸주던 잎새가 떠나
체온 떨어져도
실망하지 않은 겨울나무
순리의 역사로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루려는 마음
내일을 아름다움으로
순고한 꿈꾸며
새로운 창출로 승화하려는 의지로
오랜 기다림으로 떠나는
순정어린 겨울나무
기다림은 아름다움이요
내일이 있고 꿈이 있는 삶이기에
나도 겨울나무와 함께
기다리리.
겨울나무 / 배귀선
남은 잎 살며시 보듬었더니
아스스 모습 없이 부서져버린다
미처 몰랐다
보여진 모습이 전부인줄
네 안의 옹이마다 서린 세월의 흔적을
철마다의 화려함이 전부인줄
가파른 시간 묵묵히 견디어낸 인고의 날들을
나 아픈 날 겨울나무 앞에 서
그 안의 마음을 살짝 훔쳐보리라
나 슬픈 날 겨울나무 앞에 서
뿌리 깊은 곳 치열한 신음을 들어보리라
울분과 서러움을 조각내어
무게 안의 나를 일깨우는 시간
혹독한 추위에도 올곧은 삶의 길
뜨거운 생애가 여기 있다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다시 안녕하신가요.
별처럼 수많았던 이야기들
풀잎들의 속삭임처럼 도란도란
꽃들의 주고받은
별빛 같은 무지개의 아름다움들은
소소한 이야기로
마음까지 감동시키는
꽃잎들은 서둘러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향기의 중심에 서고
종달새들은 이미 둥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하얀 새알을 만들어
별처럼 빛나는 태어남의
단 하나의 감동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당신이여
이제 당신에게 드릴
단 하나 남아있는 것은
그것은 바스락 거리는 가을날의 속삭임
낙엽들의 소리만을 모아서
당신의 기억 속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가을이 수레바퀴 앨범 속에 넣어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시간입니다
노을이 걸어온
가을 산 둘레마다
그리움이 걸어갈 수 있는 단풍잎의 길을 하나 만들고
별처럼 빛남 때문에
이제는 슬퍼할 수도 없는
마음 한곳에 또 다른 공허함이 있을지라도
당신의 마음처럼
아침이슬의 눈물처럼
단풍잎의 생각처럼 다시 마음을 씻어봅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고결함처럼
가을이 다시 올수 있으면
나의 마음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곳에
그렇게 별빛으로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순수의 시대에서
꿈과 낭만과 그리고
당신을 향한 아름다움을 위해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겨울나무의 생애 / 성백군
나뭇잎 한 잎 두 잎
떨어져 땅 위에 뒹굴 때 나무의 생은
끝인가 싶었는데, 발가벗고도
어느 잔가지 하나 기죽지 않고 당당한 것을 보면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가 봅니다
하늘 향하여 쭉쭉 뻗은 가지들
“윙윙” 소리가 납니다
닿기만 하면 배어버릴 칼날입니다
바람이 토막 나고 허공이 찢어지고
겨울을 잘 견뎌야 봄에 싹을 틔울 수 있다며
찬바람이 “쌩쌩” 돕니다
누가 감히
생애를 담보로
온몸을 까맣게 죽음으로 칠하고 싹을 키우는
나목의 모성애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약하다고 얕볼 수 있겠습니까
감동 없이 볼 수 있겠습니까
함박눈이 쏟아지며
나목에 하얀 꽃을 피웁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낙엽이 여력을 다해 일어나
다시는 허튼수작 말라고
찬바람을 밟는 “바스락” 소리
겨울 창가에서 듣습니다
겨울나무 / 서연정
가슴에 입술에 어깨에
손톱 그 끝에까지
빠진 데 없이
푸르게 멍든 눈을 뜨리라
먼지 낀 하늘만 보이고
삶의 시궁창만 보이는 것이 다
이 눈이 모자란 탓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뼈를 뚫고 아니 수백 번 살을 찢어서라도
온몸을 가득
핏물 밴 눈으로 채우리라
허리에 다리에
그리고
발톱 끝에까지
겨울나무 / 곽상희
여기 온 사람들은
옛적 쓰던 말을 잊어버렸다.
낯설고 이상한 말을 잡으려
가슴 깊이 잠겼던
아름다운 그 모든 말들을
망각의 늪으로 던져버렸다
ㅡ 그래 생활에 때묻고 낡은 그 모든 언어들은 신선하고 찬란한 것 ㅡ
이제는 그것들 다시 끄집어내어
여기 바람과 햇살 아래
버젓 내놓으며 갈고 닦아야지
버리고 온 망각의 창문가
아직은 녹슬지 않고
세월 물살 바람에 떠내려가지 않고
그때 그 자리 어엿 지키고 있는 것
그대와 나의 가슴으로 부를 그 이름
그래, 봄을 기다리는 경루나무처럼.
찬 바람에도 끄덕찮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난 우리들이 불쌍해진다.
어쩌다 돈만 알게 된 우리들 불쌍해진다.
아이들 뿌리, 꿈 잊어버리고
내일 숫자 던지고 사는 우리들 가여워진다.
겨울나무 / 김영호
외롭다는 것은 가슴이 따듯하다는 것이다.
쓸쓸하다는 것은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이며
가야할 먼길이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침묵은 절실한 인연
그에게 흐르는 기도의 강물소리다.
홀로 있다함은 현실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다는 꿈의 그림자다.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없는 집,
집없는 마음이다.
저토록 상한 무릎은
먼 순례의 길에서 돌아왔다는 약속이다.
삐걱대는 지구의 받침대
낮달의 지팡이다.
겨울나무 아래에서 / 구재기
가난은
가슴에 머무르되 고이지 않는다
가난은 오직
홀로인 진리일 뿐
결코 이브의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이여
세상은 네가
참됨을 말하여도 믿지를 않는구나
가난은
겨울숲 겨울에 머물러
내일의 보상을 꿈꾸지 않는다
위장된 축복을
끝내 기다리지 않는다
겨울나무 / 손광세
물결선 그 위로
고개 내민 안테나
청자빛 고운
전파를 수신한다.
겨울나무 / 안은주
눈 잠그고
가만히 숨 멈춘 그녀 몸에 손 넣어
빗장을 풀었다
완강한 고요에 날이 서고
놀란 세포가 실눈을 뜨고 무릎으로 기어 온다
엿 듣던 천 개의 귀가 붉어진 숨소리를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리고 몇 개의 나이테 문을 더 지났다
금줄 쳐진 자궁이 보인다
그녀의 감빛 자궁이 환하다
저것 좀 봐!
땅 냄새나는 진액을 빨며 잠들어 있는
저 고운 핏덩이 싹들을,
감추었던 그루잠이 밀린다
마음속 옹이를 반질반질하게 밀고
새싹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그녀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 근질근질 탯줄이 솟고
혈관을 따라 그녀 몸 깊숙이 흡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