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에서 가족으로 / 최미숙
84년 9월 1일, 중간 발령으로 여천군 율촌으로 학교를 옮겼다. 얼마나 고대하던 일인지 모른다. 집에서 첫 근무지인 여천 화양면에 있는 학교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차를 갈아타며 네 시간이 넘게 오간 세월이 1년 반이다. 지칠 대로 지쳤는데 마침내 원하던 일이 이루어져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첫 출근 날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에 들어서니 젊은 여선생이 많아 놀랐다. 알고 보니 내가 제일 막내고, 20대 중후반인 처녀만 일곱 명이었다. 다들 순천에서 통근했고, 모임까지 따로 있어 무척 끈끈해 보였다. 소극적이고 붙임성이 없던 나는 선배들 사이에 끼지 못해 약간의 소외감도 느꼈지만 시간 여유가 생긴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6학년 담임을 했다. 네 개 반으로 학교에서 유일한 총각인 서른 살 먹은 남자(80년대엔 서른이면 노총각이다) 한 명과 교육 대학 동창, 고등학교와 대학교 1년 선배 언니, 나 이렇게 여자 셋으로 구성되었다. 그나마 또래여서 금방 친해졌고, 시간이 가면서 소외감도 점점 없어지고 즐겁기만 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나면 부장인 노총각 선생님 교실에 모여 학년 일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이야기했다. 또 3년 선배 언니에게 고백했다 차인 노총각 선생 놀려먹는 재미도 한몫했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허허 웃으며 다 받아 줘 더 즐겼던 것 같다. 일요일이면 넷이 도시락을 싸 들고 조계산 등반에 나섰고, 그렇게 서로 신뢰의 정을 쌓았다. 특히 항상 다소곳한 1년 선배는 천성이 착하고 인정이 많아 주변에서 다들 좋아했고, 나도 언니라 부르며 많이 따랐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와 평소 친분이 있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시내 페인트 집 사모님이 나를 보고 싶다고 다리를 놔 달라고 했다며 서른 살 먹은 중학교 선생인 셋째 아들과 만났으면 했다. 페인트 가게라면 1년 선배 언니 집이다. 짐작하건대 자기 오빠에게 내 얘기를 하자 소개해 달라고 한 모양이다. 본인이 내게 직접 말하기 거북하니 시어머니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단다. 갑작스러운 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가슴까지 벌렁거렸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잘못하면 날마다 만나는 선배와도 어색한 사이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엄마는 한 번 만나 보기라도 하라며 자꾸 말을 되뇐다. 자초지종이라도 알아야겠기에 선배에게 전화했더니 내 짐작이 맞았다. 어른들 없이(그 시절엔 소개팅 자리에 부모님이 같이 나왔다) 그냥 둘만 만나 보라고 한다. 오후로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며 진정되지 않았다. 오전 내내 이런저런 생각으로 소설을 쓰느라 머릿속이 복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만날 자신이 없었다. 선배에게는 차마 말 못 하고 다리 놓은 아주머니에게 없던 일로 하고 싶으니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말을 뱉고 나니 큰일 하나를 해치운 듯 쌓인 체증이 내려 날아갈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편안한 마음으로 하던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흔연스럽게 본인도 같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주머니가 내 말을 전하지 않아 선배 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하며 얼굴까지 달아 오른다.
할 수 없이 약속 장소로 갔다. 다방에 들어서 두리번거리니 반대쪽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젊은 남자가 눈에 띄었다.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선배가 나를 발견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오빠를 소개하고 나간다. 셋 다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해 선배를 잡고 싶었다. 그래도 이야기하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놓이면서 한결 편해졌다. 그날을 계기로 결혼할 때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봤다. 출근 시간이 비슷해 아침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하고는 다방에서.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나를 만나러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5개월 만에 여섯 살 차이 난 서른한 살 노총각과 결혼했고, 선배와는 시누이와 올캐로 가족이 되었다.
한동안 다른 선배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다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고민이 많을 때라 눈치가 보였다. 결혼 날짜를 잡고서야 그동안 일을 털어놓으니 놀란다. 가장 어린 내가 제일 먼저 어른이 됐다며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며 한마디씩 했다. 20대 앳된 처녀였던 선배와 나 모두 이제는 할머니다.
“자네, 어떤 생각으로 나를 선택했는가?” 남편이 묻는다. “고모가 워낙 착해서 그 오빠도 괜찮겠거니 했지. 다 동생 덕분인줄 아세요!”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첫댓글 오빠와 믿고 보는 후배 사이에 다리를 놔준 선배군요.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보는 것처럼 글이 섬세하고 구체적이어서 술술 읽힙니다.
글에 선생님의 순수하고 담백한 성품이 보여요.
동학년으로 근무하며 선생님의 성품을 보고 오빠를 소개시켜 주셨겠죠? 가족이 되기를 바랄만큼 남 주기 아까웠나 봅니다.
결혼은 뭔지 모를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글도 그렇구요.
다리 놓아준 선배님,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그분은 평생 참 잘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콩닥거리는 가슴이 느껴집니다. 반백년 다 되어가는 일이건만 잊혀지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