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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신 5강 진리와 사랑의 우월성 ~ 요한 이서 거짓 교사 경계
26.07.31(금)
요한 이서 1장 3절에서 5절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오늘 요한 서신서 다섯 번째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다섯 번째 강의는 요한이서입니다.
오늘 요한이서를 시청하시면서 세 가지 포인트를 잡으시고 시청해 주시면 더 유익이 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요한이서의 핵심 단어인 진리와 사랑으로 본문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이서의 내용과 또 주제는 무엇인가
그 짧은 서신이기 때문에 아마 한눈에 이렇게 싹 파악을 할 수 있는 분량인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요한이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래서 적용점을 갖고서 하나하나 한 챕터 끝날 때마다 그렇게 나에게 말씀을 비춰보시면서 적용하시면서 그렇게 따라오시면 더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이서의 수신자들의 상황을 보면 요한이 복음을 전해서 세운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거짓교사들의 주장은 예수는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 육체로 왔다면 그는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아가 아니다. 이런 인제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쳤죠
영지주의자들의 분파들이 들어와서 교회에서 참된 신앙을 어지럽히는 이런 일들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 요한 사도가 서신을 보냈는데 그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진짜를 갖고서 가짜를 퇴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를 많이 이야기하게 되죠.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복음의 진리와 성도의 교제에 대한 그런 문제가 발생했었어요.
성도들이 이게 인간관계가 많이 얽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싸움은 내부적으로 큰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데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써 사도 요한은 사랑을 많이 강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 짝을 이루면서 가야 되죠.
진리가 없는 사랑은 맹목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랑이 없는 진리는 차가울 수 있고 공격적일 수 있습니다. 이 두 짝을 계속해서 핵심 가치로 붙들면서 이 편지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요한이서의 목적과 주제는 무엇일까요?
진리와 사랑의 우월성입니다. 진리와 사랑을 기준으로 어떤 것을 분별해야 된다. 사람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나도 잘 살고 있는지 평가해야 된다.
그러니까 진리와 사랑이 핵심 가치이면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해야 될 것이나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그것을 구별하는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라는 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는 것이죠. 진리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단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는 튼튼한 성벽이에요. 우리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웬만해 가지고는 잘 안 뚫리거든요.
왜냐하면, 그 관계성 속에서 그 이야기들이 막 오갈 테니까. 그래서 성도들 건강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의 관계를 갖고 있을 때 그때 다른 더러운 것들이나 그 다음에 다른 잘못된 가르침들이 침투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 다음에 진리죠 진리는 오류를 막아내는 막강한 요새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무장하고 있다면 요새에 있는 것 같아서 어떠한 공격도 침범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진리와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죠 오늘날 나와 우리 교회를 평가할 때 많은 것들이 있으나 성경의 기준으로 본다면 과연 진리와 사랑이 주도하는가?
진리와 사랑에 의해서 움직여지는가? 이렇게 보는 것이 굉장히 좋은 기준을 갖고서 평가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요한이서의 앞부분을 좀 먼저 보시죠.
발신자와 수신자 발신자는 사도 요한인데 본인을 장로라고 그렇게 소개를 합니다.
엘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지도자 연세 많으신 존경받는 지도자 이들과의 좋은 관계가 있는 지도자였던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데 학자들은 그분을 바로 사도요한이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수신자는 누구를 분명하게 거론하진 않았어요.
좀 보편적인 그런 교회를 말하는 것 같은데,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택하심을 자는 부녀는 누구일까? 그런 연구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죠. 근데 택하심을 입은 이라는 말은 글쎄 신부인 교회에 자주 붙여졌던 용어라는 점 그 다음에 나중에 뒷부분에 보면 이 부녀들을 다 사랑한다.
이런 표현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 부녀와 그 자녀들은 어느 교회의 공동체의 지도자와 그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죠.
2절에 보면 교제의 동기가 나와요.
굉장히 주목할 만한 구절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은 위로다 그렇게 말했거든요.
장로인 사도 요한이 이들하고 친해지고,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각별한 사이가 된 연대감은 뭔가 사김의 동기는 뭔가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렇게 사귐이 깊어지고 특별한 관계가 됐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거든요.
오늘날 교회의 성도님들과의 사이에 있어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친해졌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가 이거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장로는 진리 안에서 여기서 참으로라는 말을 진리 안에서 이런 표현들인데 진리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한번 강조를 해요.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떤 교회 공동체의 친밀함을 갖게 되는 그러한 이유 근거 연대감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거스르다가 친밀도를 형성하기를 원하셨고 그거야말로 하나님 안에서의 영적인 가족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은 진리에 근거한 사랑이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을 얘기할 때 사랑은 뭐라고 했어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죠.
3절에서는 축원을합니다. 많은 경우에 그걸 인사로다가 가볍게 처리를 하는데 물론 형식은 인사의 형식을 띠나 또 당시에 정형적인 편지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것이 정경화되고 성경에 들어왔을 때는 새로운 의미가 거기에 포함되는 거거든요.
권위도 포함되어지고 그런 면에서 일반 인사로다가 처리하는 것은 너무나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도는 그 부녀와 자녀들이 있는 그 교회에게 이렇게 축언을 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예수쿠스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다 이렇게 축원을 하고 선포를 하죠.
이것은 그냥 덕담이 아니에요. 여기서 은헤와 진리와 평강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너에게 있을지어다 이렇게 말했을 때에는 그것은 덕담을 넘어서서 축원이고 축도이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교수께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죠.
여기서 세 가지를 빌어주는데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를 말하고 굉장히 광범위한 내용이고 긍훌은 불행이나 곤경에 빠진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해요.
그러니까 소극적인 극률은 죄를 진 것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에요. 처벌하지 않고 적극적인 극률은 자비인데 그게 뭐냐하면 용서해 주는 그러한 천박한 용서받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대접을 안 해도 해줄 그러한 그런 후대해 주고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주는 것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하시고 존귀한 자로 그렇게 받아주는 것 그것이 긍휼입니다.
평강은 은혜와 극휼로 인한 결과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극률을 베풀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평안한 관계가 되고 그 다음에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평강이 관계에도 임하는 것을 포함할 수가 있습니다.
진리 사랑 그리고 은혜와 극휼과 평강 이것을 요한사도는 교회에게 축복하고 있습니다.
5~2강
자 본론으로 들어가죠
진리와 사랑으로 행하라는 큰 타이틀로 본문을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그의 말씀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을 때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고 그 다음에 성경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말할 때 두 가지를 꼭 염두에 두시면 훨씬 더 좀 명확하게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진리로 인한 결과 저 사망이 지배하는 어둠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빛의 영역으로 우리가 진리 때문에 옮겨졌다 진리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진리에 의해서 우리가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혜택을 받게 된 것이죠.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과 사귀며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를 그래서 기뻐한다라는 표현을 여기서 사도요한이 하게 됩니다.
4절보시죠.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데로 진리를 행하는 자 현재 분사형으로 썼는데 진리를 계속 행하는 그런 자들을 내가 보니 어떻게 했어요. 심히 기쁘도다 이렇게 말했어요.
저분들이 진리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진리를 순종하고 진리를 존중하고 진리를 묵상하면서 그렇게 행하고 있어요. 이 소식을 들었어요.
그랬을 때 사도 요한이 그것이 엄청나게 나에게 기뻤다 심히 기뻤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아 이거는 우리 사도님께서 이걸 이렇게 좋아하시니까 우리 계속해야 된다.
이런 어떤 격려의 말씀도 들렸겠고 아 이렇게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도 했겠죠.
그러면서 여기서 사도가 기뻐했던 것은 그 차원을 넘어서서 그것도 포함되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한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사도가 이런 표현을 썼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계명을 따라 행하라 라고 5절 6절에 진리에 이어서 사랑을 말합니다. 항상 짝이라 그랬죠 진리와 사랑입니다.
5절에 보면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렇게 말해요. 이는 새 계명같이 내게 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심이라
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로 만들어진 계명이 아니다. 구악때부터 계속 있었던 계명이고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새롭게 새로운 차원에서 이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랑은 뭐냐 하면 바로 계명을 행하는 것이다. 말씀을 행하는 것 진리를 행하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과 계명을 엮어놓고 있습니다.
사랑은 뭘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최고의 계명이 뭡니까? 이렇게 물음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사랑은 다른 계명을 이루는 그러한 가장 강력한 계명이다.
다른 계명들이 이 사랑의 계명 안에 다 포함된다. 이런 측면에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죠. 예컨대 십계명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까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예수님도 지지하셨습니다.
계명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예수 제자 공동체를 얘기할 때 사랑이라는 것 갖고서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더 사랑하는 자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누구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 여러분들 하시죠. 위대한 기도입니다. 우리 이 기도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거를 빠뜨릴 수 없잖아요. 기도해서 사랑하는 것만큼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사랑의 승리만큼 최고의 승리는 없어요.
결국 승리했다라는 것은 사랑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큼 잘 산 것이고. 그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죠.
세 번째는 거짓을 행하는 자를 조심하라는 경계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때 거짓 교사들이 와 가지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혹하는 자의 정체는 누구였냐 이 사람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했어요. 그런 자를 사도 요한은 적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했죠.
요한 일서에서도 이러한 표현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예수님으로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적 그리스도이었어요.
이때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 때문에 육체로 예수님이 오실 수 없다. 어떻게 그런 거룩한 구세주가 육체 더러운 육체를 통해서 오는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들의 전제가 세계관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을 어떻게든지 피해가려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예수님을 바로 못 보게 했고 예수님 육체로 안 오셨으면 그분의 사랑하심이나 고난이나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나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해요.
이제 이런 거짓된 가르침들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스스로 삼가고 너희들이 지금 잘하고 있는 이 예수를 믿는 것 그것을 그대로 끝까지 지켜라 그래야 온전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너희들 분별해야 된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훈이죠.
그것을 갖고서 그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하도록 해라 분별 기준은 분명하다 진리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바로 그분이 말씀하신 성경이죠. 거짓 교사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고 말해요. 이 사람들은 영적인 나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너희들이 멀리해야 된다.
그래서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라고 말해요.
집에 들인다라는 것은 가정교회 모임에 그를 초청한 것이고. 그를 영접한 것은 그의 사상이나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인사를 하는 것은 그분이 잘못됐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존중한다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그분하고는 인사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마지막으로 문안 인사와 그 다음에 맺은 말을 하면서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방문 계획과 목적을 말해요.
내가 너희들 글로만 이렇게 종이로만 만나기를 원치 않는다.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너에게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니다
서신서 앞부분에서 너희들이 진리 안에 행한다는 것을 내가 보니 참 기쁘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시죠. 기쁨으로 시작했던 이 사도는 다시 기쁨이 충만하기 위해서 너랑 너희들이랑 만나길 원한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성도의 교제의 특징 중에 하나가 만나면 기쁨이 있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요.
마무리 인사 이렇게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니라 이렇게 말하면서 그쪽에 요한 공동체에 있는 그러한 교회에서 이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안 인사를 이렇게 계속해서 드리는 것은 예의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의 영적인 교재에 있어서 문안은 간단한 어떠한 교제의 차원을 넘어서 깊은 사귐 또 공동체 의식 또 같은 편이라는 어떤 생각 연대감 이런 것들을 증진시켜주는 출발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하고 많은 문안 인사를 나누시고 교제를 나누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그런 유익을 많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 본문에 우리를 비춰보면서 적용을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첫째로 우리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로 연대하고 있는가 우리가 친하게 된 이유는 뭔가 우릴 엮어주고 있는 건 뭔가 예수 그리스도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쪽으로 더욱더 강화시키면 우리의 모임이 지루하거나 싫증나거나 그러지 아니하고 더 친밀한 관계로 그렇게 들어갈 수가 있고 건강하게 서로 함께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요한이서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힘쓰는가 사역을 해서 봉사를 해서 기쁘게 하는 것이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분을 높이는 것이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갈 때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정말 더 기쁘게 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세 번째는 요한이서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진리와 사랑이다. 나는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는가 가치에 대한 문제 핵심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적용할 수 있겠고
마지막으로는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훈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확실히 알고 거짓을 배제하고 있는가 혼란한 영적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혼미케 하는 영들이 난무하고 있죠.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교훈을 더욱더 체계 있게 분명히 알아서 나의 영혼도 지키고 우리의 가족도 지키고 우리 교회도 지키고 또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하는 그런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우리 다음 시간에는 요한서신서의 마지막 요한삼서를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유한삼서때 여러분들 뵙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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