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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7월 팸투어 포스팅 스크랩 무더운 여름밤 탈출 아름다운 레이져불꽃쇼가 즐거운곳 대구수성유원지 수성못
바람흔적 추천 0 조회 175 11.07.20 06: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구 수성못 !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밤에

                  대구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곳이자

                  불꽃놀이와 레이져쑈로 즐겁고 아름다운 밤을 즐기는 곳이다.

 

                  전국에서 제일 로 덥다는 대구시내 한복판에

                  수성못인 유원지가 있다는 것은 복받은 일인것 같다.

 

                 저녁먹고 운동하러 나온 사람

                 가족과 함께 산책나온 사람

                 두손잡고 데이트 하러 나온 연인들

                 우리마냥 불꽃놀이,레이죠쑈 보러 여행온 여행객

                 수성못이 분명 대구의 유명한 유원지라고 인정하고 왔다. 

 

                 빼앗긴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일본인이 만든 수성유원지 수성못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는 수성못이다. 일본인이 만들었으면 어떻고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면 어떨까 마는 그래도 한번 알아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대구에는  조선시대 그러니까 세종대왕시대 부터  못(저수지) 4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배자못(佛上堤), 동촌유원지 (釜堤), 성당못 (聖堂堤) 그리고 오늘 둘러본  수성못(屯洞堤)

                이렇게 4곳의 못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1468년 예종 임금떼에는 대구군에 저수지 (못)를 더 축조하여 총22개소가 있었고
                영조 임금시대 대구읍지를 보면 수성못(둔동제)이 현재의 범물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둘레 1,429 척,수심이 7척이라니 , 대구 수성못이 참 오래된 못임을 알수 있습니다.

 

                 한일 합방으로 일본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땅에 살며 농지도 빼앗으니

 

                 미즈사키린따로는 일제시대 대구지역 관개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를 조성하는 등

                 지역의 농업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한 인물로 묘소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저수지 옆에 만들어졌다.

 

                1914년 가족과 함께 대구에 정착한 그는 농업에 종사하며 이곳 농민이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저수지의 설계, 측량을 끝낸 후 경북도의 일본인 지사에게 직언을 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한국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은 일본인의 잘못”이라고 격노하여 조선 총독과 직접 면담하고

                공사비 1만 2천엔(현재 10억엔 정도)을 받아 못을 조성. 관리한 사람이다.

 

                미즈사키 린따로 자신과 일본인들을 위해 못을 조성했겠지만

                그래도 수성못 밑에서 농사를 지었던  백성들도 그 덕을 봤지 않아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구출신 이상화시인의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그 배경이 수성못 밑의 수성평야라고 한다.

                일본인 미즈사키 린따로가 수성못을 조성하여 수성평야까지 빼앗았음을 시로 표현한 것 같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출생하여 1943년에 작고한 인물로 
                한 마디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다.
               그는 매년 다시 찾아오는 봄이지만 들을 빼앗겨버린 민족에겐 봄이 봄이 아님을 서정적으로 읊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작자의 반일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 망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 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것,

               즉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는 이 시가 태동된 곳이 수성못이라고 하니

               지금은 우리땅 밤마다 불꽃과 레이져 쑈로 즐겁고 아름다운곳이니, 세월의 차이를 새삼 느껴 보게 되는곳이다.  

 .            

               당시의 수성평야는 현재 주택과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들안길이 되었고

               수성못은 유원지로 조성되어 시민의 휴양지로 변모하였다.    

 

 

 

        

           범물동의 용지봉(634m)에서 북서부로 뻗어내린 완만한 산지와 수성못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수성못 서쪽에는 우주선·유람선· 바이킹·범퍼카·회전목마·미니기차 등 갖가지 놀이시설을 갖춘 수성랜드가 들어서 있다.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수성유원지에서 야간에 제일 볼만한것은 뭐니뭐니해도 환상적인 레이저 음악분수쇼다.

              시간을 정해서하는데 주간에는 음악분수쇼만하고 야간에 레이져음악분수쇼를 한다.

 

               5, 8, 9, 10월  - 주간 : 10:00, 12:00, 15:00, 17:00(각 40분간 분수운영)

                                   - 야간 : 20:00, 21:00(각 30분간 영상음악분수 공연)

               

               6, 7월   - 주간 : 10:00, 12:00, 15:00, 17:00(각 40분간 분수운영)

                             - 야간 : 20:30, 21:30(각 30분간 영상음악분수 공연

 

 

 

      

            여행정보

          1> 장소 : 대구 수성못

          2> 위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산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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