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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79편1~13절
제목 : 주의 백성을 보존하소서
범죄(犯罪)한 이스라엘이 적국(敵國)에 의해 멸망당한 상황(狀況)에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 시입니다.
학자들은 본 시의 저작 시기를 대체적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을 당해 멸망한 이후(왕하25장)로 봅니다.
시인은 이 상황이 자신들의 죄악의 결과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유린하고 하나님과 그 백성을 조롱하는 열방의 악행을 고발하며, 이방 나라들의 보복(報復)과 이스라엘의 보존(保存)을 간구합니다.
1. 이스라엘을 욕되게 하는 열방=고난 받는 백성(1~4절).
1)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었습니다(1절).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1) 이방 나라들이(열방이). - '열방'('고이')는 성경에서 '나라'(83:4;창 10:5;민 14:12), '백성'(창 20:4;수 3:17;사 60:12), '이방' 또는 '이방인'(46:6;레 25:44;왕하 16:3;21:2;느 6:6;사 42:1;겔 38:16), '열방'(출 34:24;대하 32:13), '열국'(민 14:15;삼하 7:23;사 34:1)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
그리고 이는 드물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33:12;창35:11;사1:4;26:2).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대 랍비(선생)들에게는 '이방인'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었습니다(59:5).
따라서 본문에서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고임'으로서 복수인 바, '이방인들' 또는 (이방인들이 사는) '나라들'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
'유다' 왕국을 침공한 바벨론을 중심한 이방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2)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라'는 '나할'(물려받다, 상속받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상속된 것', '상속 재산', '소유물' 등의 뜻입니다.
이런 이미에서 본문의 '주의 기업'이란 흔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74:2;출 34:9;신 4:20).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란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
보다 좁게는 예루살렘을 함축하고 있습니다(Tate).
따라서 본문은 전문(前文)과 연결해 볼 때 이방 나라들의 이스라엘 침공을 뜻한다 하겠습니다(왕하 25:1-7).
(3)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살륙을 행하며 성전의 기구들을 훼파한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74:6,7; 왕하 25:13-17;겔 9:7).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곳을 떠나신 결과 임한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겔 5:11;8:6).
*겔5:11,8:6 “[5:11]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8:6]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2) 살육이 심히 컸습니다(2~3절)
(1)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줍니다(2절).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이방 대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길에 방치되어 새들과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만 상황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생존자들은 너무도 창졸간에 침입을 당하였기에 그리고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미처 그들을 온전히 매장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을 커다란 불행, 저주로 생각했었습니다(신21:23;사14:18, 19).
한편 본문의 '성도'('하시드')는 '인자한', '경건한 (자)', '선한 (자)' 등을 의미합니다.
혹자는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30:4).
(2) 그들의 피를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습니다(3절).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피'란 육체의 생명과 직결된 것으로 간주되어집니다(레17:11,14).
따라서 본문은 대적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을 살륙하여 무참히 죽게 한 것을 나타냅니다.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3)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4절)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이웃'이란 유다 또는 예루살렘 내의 이웃 거민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여러 민족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비방거리'는 '모욕(侮辱)', '치욕(恥辱)'등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그의 패망됨을 듣고 보고 그들을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한 것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영광이 타민족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 처참하게 되어 오히려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애 2:15, 16).
*애2:15,16 “[15]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16]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이런 표현은 44:14에서도 나타납니다.
*시44: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2. 열방에 주의 분노를 쏟으소서(5~7절).
1)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5절)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포로 초기라고 해도 벌써 몇 해는 지난 것 같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포로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래도 이것은 과거의 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낌이요, 거기서 놓임을 받자면 철저한 회개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정하신 때 안에 그 백성의 단련을 위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저들을 시련시키신 후에(약1:12) 인도해 낼 것이요 분국으로 귀환하게 할 것인데, 저들에게는 너무 견디기 힘겨워 부르짖음인 것 같습니다.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 여기서 '주의'란 본절 서두의 '여호와'를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질투(嫉妬)'란 하나님이 죄에 대해 공의의 분노를 나타내는 한 표현인 바 '진노'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2) 열방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6~7절)
(1)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아 달라 합니다(6절).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 - 성경에서 흔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것을 뜻합니다(4:1;17:6;20:9;31:17;50:15;사 26:13).
따라서 개역 성경은 본문과 같은 렘10:25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베쉬므크 라 카라우)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단순히 기도의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하겠습니다(창 12:7, 8;13:4).
이런 점에서 주석가 알렉산더(Alexander)나 앤더슨(Anderson)은 본문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은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7절).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한편, '열국'이란 원어상 1, 6절의 '열방'이란 말과 다른 '맘라카'로서 '말라크'(다스리다, 통치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왕국', '땅','통치' 등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복수로서 제일 첫 번째 의미로 사용되어졌습니다.
3. 이스라엘을 보존하소서(8~13절)
1)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8절).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여 달라하십니다.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 '죄악'('아온')은 '아와'(구부리다, 왜곡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왜곡됨', '사악함', '불의', '불법' 등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열조의 죄악이 현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영향을 미쳐 불미스러운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저자의 깊은 탄식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임하도록 간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 '가련하게 되었나이다'에 해당하는
'달랄'은 '연약하다', '낮게 되다'의 뜻인데, 이는 어떤 힘이나 지위의 측면 모두에 적용됩니다.
원문에 의하면 본문은 '키 달로누 마드'(왜냐하면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로서 본절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으며 후문(後文), 즉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의 원인을 나타냅니다.
2) 주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하소서(9~12절)
(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하시고 건지소서(9절)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구원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언약적 차원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언약적 호칭입니다(18:46;88:1;사 17:10).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 '이름'이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외적 호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또는 그분의 신격(神格)을 대변하는 것입니다(창 25:19-26강해, '이름 짓기' 참조).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피조 된 세상 만물의 존재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구속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문에는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앙심이 표출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이 간주는 자신들에게는 도움이나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하소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파르'는 '덮다'의 뜻이며, 여기서 '속죄하다'(레9:7;신 21:8), '용서하다'(65:3;78:38)의 뜻이 유출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에 근거하여 죄를 덮으심으로 사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이방 나라들이 조소하지 못하게 하소서(10절).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하여 달라고 호소한 이유입니다.
(3) 포로의 탄식을 들으소서(11절).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여 달라 하십니다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 '갇힌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시르'는 '매인 자', '포로'라는 뜻의 단수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체를 단수로 취급한 집합명사입니다(Anderson).
이들은 아마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이들의 탄식, 즉 포로 생활의 고난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포로 된 자들과 같은 이스라엘이라는 유기체적인 존재로서의 동질 의식을 갖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 '죽이기로 정한 자'란 원문에 의하면 '베니 테무타'로서 '죽은 자의 아들들'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고대근동 지방에서 흔히 죽어가는 사람들 또는 죽이기로 정죄되거나 예정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관용어로 통용됩니다.
여기서는 전문(前文)의 '갇힌 자'와 병행 구절로서 역시 포로되어 죽을 운명에 처해진 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능력'('제로아')은 기본적으로 '팔'(10:15;98:1;창 49:24;신33:20, 27;대하 32:8)이란 뜻이며, 여기서 비유적으로 '힘'(71:18), '권세'(욥 22:8)란 말들이 파생되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취해진 말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팔'을 '능력(能力)'으로 비유 표현한 것은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묘사법입니다(겔 1:3).
(4) 원수의 비방을 갚으소서(12절).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게하여 달라 합니다
'우리 이웃'이란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여러 민족들을 뜻합니다
비방한(하라프) - '급히 벗다', '노출하다', '모욕하다' 등의 뜻입니다.
이는 4절의 '비방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어원(語源)입니다.
이로 볼 때 본문은 4절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입니다.
칠 배나 갚으소서. - 히브리 사상에서 7이라는 숫자가 완전을 뜻하는 수인 바(출 29:30, 37;레 12:2, 5;13:5;14:9) 철저한 보응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갚으소서'(슈브)는 '되돌아가다', '되돌려 주다'란 뜻입니다.
3) 서원입니다(13절).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입니다
주의 목장의 양.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양육을 받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 즉 의존 받는 자와 의지하는 자와의 관계를 잘 표현해 주는 말로서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 즉 왕과 백성간의 관계를 암시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80:1).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성도의 영적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요10:1-18).
주의 영예(테힐라테카) - 직역하면 '당신의 영예'입니다.
여기서 '영예'란 히브리어로 '테힐라'로서 '할랄'(빛나다, 빚을 밝히다, 칭찬하다, 찬송하다, 대상 23:5;대하 5:13;20:19)에서 유래되었으며,
'찬송', '찬미' 등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 특히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 행하신 사역을 칭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시인은 주의 기업에 들어와,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주의 도성을 파괴하며 주의 백성을 살육한 이방 나라들의 악행을 낱낱이 하나님께 아룁니다(1~4,13절).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변명이 아닙니다.
죄악을 묵인해 달라는 요구도 아닙니다.
시인의 고발(告發)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내리신 징벌일지라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기억해 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들의 횡포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고 하나님을 떠나지는 맙시다.
염치없어도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어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2) 이방 군대에 주의 백성과 거처가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제 분노를 멈추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5~10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무능을 조롱하는 열방을 치시고,
주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진노를 거두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고는 이 죽음의 현실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오랜 반역의 역사를 끊고 주의 명예를 드높이는 본연의 소명에 충성하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나님의 명예와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시인의 기도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기도는 아닙니까?
3) 시인은 이방 나라들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고발하며 그 악행에 보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8~11절).
동시에, “갇힌 자와 죽이기로 작정한 자”와 같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의 능력으로 보존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회개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만이 살 길임을 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절망하지 않을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4) 시인은 보복의 간구에서 멈추지 않고, 주의 이름을 대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12,13절).
주의 이름은 우리가 영원히 감사하고 찬양할 이유와 대상입니다.
내 마음과 인생을 다 드려 삶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