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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 최경민
옆자리가 그랬다
살아있으면 유기동물 구조협회구요
죽어있으면 청소업체예요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나가면
누울 자리를 뺏긴다는 걸
그래도 가야 한다
새벽에 하는 연민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대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했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고양이는
새벽에 일어난 우리들보다
조금 더 불쌍하다
그래도
다 보고 올까요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우리는 그러기로 했다
관할구역 끝까지 갔다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당선소감 - 최경민 “민원 현장 그려내… 일상, 詩 내부로 들어와”
시를 쓰는 일이 절박하지 않아졌을 때 응답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가 다만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것. 시를 무엇보다 우선했던 순간들이 빚었던 과잉들이 씻겨나가고 쓰는 행위만 남았을 때, 일상의 다른 부분들이 시의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예의’를 쓰던 당시에 나는 주변 동료들로부터 수많은 민원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 사건들로 비롯된, 채 지면에 적을 수 없는 감정들을 소화해야만 했다. ‘예의’ 외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의 과정이 있었다. 나는 일상에서 현장들을 맞닥뜨리고 그것들을 적어 보여주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시의 내부로 들어오는 생활을 밀어내지 않았다. 시 쓰기의 내부에 갇혀 있을 때의 고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일들은 아침에 눈을 쓸어내는 일, 식탁 위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 소파에 누워 평소보다 일찍 눈을 감는 일. 시 쓰기는 이들 사이 어딘가를 횡단하고 있을 뿐이다. 시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어서 나는 오래 시를 쓸 수 있었다.
제 시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시고 기본기를 다듬어 주셨던 권박 선생님, 대학 생활을 이끌어주셨던 방민호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나의 문학 생활을 함께 해주었던 대학 친구들, 이 지면에 밝힐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름을 다 밝혀 적지 않더라도 나의 정신은 이들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뒤에서 응원해 주었던 가족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또 무엇보다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아내 수진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작품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일과 시 쓰는 일을 함께 해나가겠습니다.
●1995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현재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
심사평 - 안도현·유성호 “삶의 양면성 모두 품으려는 의지 담은 명편”
202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저마다 구체적 경험과 언어를 특권으로 삼고 있었다. 참신한 발상과 언어에 정성을 기울인 시편들이 다가왔고, 그 가운데 시상의 완결성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이끌어갈 가능성을 갖춘 최경민씨의 ‘예의’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예의’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삶의 양면성 가운데 어느 것도 소홀치 않게 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명편이다. 삶과 죽음의 현상 모두를 껴안고, 그 경계를 넘어, 모두 다 품고 넘어서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임을 시인은 말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연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나아가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도 끝까지 가보는 것은, 스스로와 타인을 동시에 향하는 예의일 것이다. 행간마다 큰 공간을 유지하면서 그 안으로 삶을 향한 특유의 연민과 의지, 인내와 애호를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단단하게 들려준 시편이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써갈 잠재적 역량을 구비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판단해 본다.더불어 ‘상어에게 지느러미 달기’와 ‘유리 식탁’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는데, 비교적 익숙한 어법과 소재로 인한 참신성 부족이 크나큰 아쉬움을 주었다.이 밖에도 자신만의 사유와 감각을 개성적으로 구축한 시편들이 많았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자에게 커다란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응모자 여러분께는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챗 GPT 해설 *참고용
1. 제목의 의미
**“예의”**는 기본적인 도덕적 행동과 공감을 담은 단어이지만, 이 시에서는 의무감으로 하는 행동과 감정적 거리를 표현합니다. 화자가 경험한 상황에서 “예의”는 내키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행동, 혹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연민의 표현을 나타냅니다.
2. 주제
타인이나 생명에 대한 연민과 책임,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감정적 갈등.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반드시 선호나 감정적 동의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줌.
3. 상징의 분석
“유기동물 구조협회”와 “청소업체”: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며,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 차이를 보여줌.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삶과 죽음 모두를 마주하는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상징.
“기본 예의”: 개인의 감정과 무관하게 사회적 책임과 연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최소한의 도덕성.
“반대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했다”: 한 생명을 바라보는 연민의 감정이 극대화된 상태.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것”: 의무감과 도덕적 책임에 따른 행동.
4. 연단위 해설
1연: 화자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짓는 냉정한 현실을 듣는다.
“옆자리가 그랬다 살아있으면 유기동물 구조협회구요 죽어있으면 청소업체예요”
화자는 살아있는 동물은 구조 대상이 되고, 죽어있는 동물은 처리 대상이 되는 현실을 접합니다. 이 구절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냉혹한 태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두 가지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책임감이 조건적일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2연: 화자는 행동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내적 갈등을 느낀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나가면 누울 자리를 뺏긴다는 걸 그래도 가야 한다 새벽에 하는 연민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화자는 상황의 불편함을 알고 있지만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던
심리적.정서적 상태에서 벗어나, 불편한 현실(죽은 동물 혹은 고통을 겪는 생명체를 마주하는 상황)과 마주해야 하는 부담을 상징합니다. 누울 자리라는 것은 안전한 자기
영역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를 뺏긴다는 것은 자신이 보호받는 위치에서 나와 책임과 연민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이는 감정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책임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나타냅니다. “새벽에 하는 연민”은 순간적인 감정의 충동이나 의무감을 암시합니다.
3연: 반대편 상황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낀다.
“반대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했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고양이는 새벽에 일어난 우리들보다 조금 더 불쌍하다”
반대편 상황에서 생명을 대하는 감정의 강도가 드러납니다. 여기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하다”**는 말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 극대화된 상태를 표현하며, 고양이가 인간보다 더 불행하다는 인식은 인간이 느끼는 도덕적 책임과 한계를 암시합니다. 이는 인간이 동물의 고통에 대해 가지는 감정적 유대와 죄책감을 나타냅니다.
4연: 화자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행동에 나선다.
“그래도 다 보고 올까요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우리는 그러기로 했다 관할구역 끝까지 갔다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화자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회적 도덕과 책임에서 오는 “기본 예의”라고 생각하며 행동에 나섭니다.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라는 구절은 삶과 죽음 모두를 직접 마주함으로써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책임을 나타냅니다. 이는 인간의 의무감이 행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5. 이미지의 연쇄
1. “유기동물 구조협회”와 “청소업체”: 생명과 죽음을 구분짓는 인간의 냉정한 태도.
2. “새벽에 하는 연민”: 순간적인 감정과 도덕적 의무의 충돌.
3. “반대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하다”: 극대화된 연민과 책임감의 인식.
4.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삶과 죽음을 모두 마주하는 인간의 도덕적 행동.
5.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것”: 의무감과 책임의 본질.
6. 결론
이 시는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의 연민과 책임감을 묘사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책임으로 행동하며, 이를 “기본 예의”로 정의합니다. 시는 인간이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과 불편함을 통해, 연민과 책임이 꼭 감정적 동의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도덕적 행동의 의미와 그 내적 갈등을 탐구하며, 도덕적 책임이 감정과 무관하게 수행될 수 있음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
최경민의 시 **「예의」**를 보면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떠오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윤리와 책임을 철학적 중심으로 삼은 사상가로, 그의 철학은 이 시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레비나스와 「예의」의 연관성:
1. 타자에 대한 책임:
레비나스는 타자(타인의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책임을 느끼며 윤리적 의무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살아있거나 죽은 고양이(타자)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윤리가 발생한다는 개념과 부합합니다.
2. 불편한 책임과 희생: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윤리는 스스로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희생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시의 화자가 새벽에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고양이를 확인하러 가는 행동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자에게 응답하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특히, "누울 자리를 뺏긴다"는 구절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를 위해 나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희생하는 윤리적 실천과 일치합니다.
3. 예의와 윤리:
레비나스는 윤리를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시에서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라는 구절은, 윤리적 행위가 반드시 기쁘거나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동반하는 '책임감 있는 실천'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를 위한 책임의 윤리와 긴밀히 연결됩니다.
4. 타자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민감한 반응을 윤리의 출발점으로 봤습니다. 시에서 "불행히도 고양이는 새벽에 일어난 우리들보다 조금 더 불쌍하다"는 구절은, 고양이(타자)의 고통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며 그들에게 응답하는 책임의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5. 결론:
이 시에서 나타나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각, 그로 인한 불편과 희생, 그리고 윤리적 책임감은 레비나스의 철학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따라서 「예의」는 레비나스의 철학적 세계관, 특히 타자 윤리학의 실천적 측면을 떠올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