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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격 조사
이 홍사
계를 모았단다.
아내를 비롯하여 여편네들 다섯이서 매달 얼마씩을 내서 미얀마에 가자고 모은 것인데 그게 벌써 삼 년이라고 했다. 홍랑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
순전히 미얀마를 여행하기 위해서 계를 모은다?
홍랑은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좀 당황했었다.
지독한 여편네들이군!
그 얘기를 꺼낸 건 홍랑에게 여행 계획을 짜보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미얀마여행을 하고 싶으면 그때 돈을 내서 오면 되지? 계를 모을 게 뭐람?
홍랑의 의아해했으나 아내는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계를 모은다는 것이 결국 제 돈을 내는 것이지만, 목돈의 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모으고 나면 공돈이라는 기분이 들고 매달 모여서 여행지의 얘기를 하며 미리 정을 돈독히 다지는 것이라고 했다. 혹시 중간에 그곳을 다녀오거나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은 중간에 빠지고.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공돈? 인간의 심리란 그렇게 희한하면서도 간사한 것이다.
처음에는 여섯 명이 모았다가 중간에 하나가 빠지고 다섯이서 지금까지 모은 거라고 했다. 홍랑이 들어보니 여행을 하기에는 모자라지 않을 금액이었다.
“그럼 패키지로 다녀오지. 요즘은 미얀마도 패키지가 많이 생겼는데?”
홍랑이 무심하게 그 말을 했는데, 아내는 삐치고 토라져서 사흘간 말을 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그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인가?
알고 보니 아내의 속셈은 여행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홍랑이 미얀마에서 주택사업을 하며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미얀마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여행을 빙자해서 지은 집도 구경하고, 같이 오는 여편네들에게 뭐라고 콕 찍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며 은근히 자랑도 좀 하고 또 그렇게 음식 솜씨가 좋다고 듣기만 했던 가정부에게 뭔가 한두 가지 음식도 가르쳐주고, 뭔지 모르지만, 안주인 행세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미얀마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집안의 재정이 이 꼴인지 그것도 슬쩍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의? 그게 아내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홍랑은 다 좋은데 마지막 항목이 마음에 걸렸다.
도대체 사업을 어떻게 했기에 집안 꼴을, 이렇게 빚쟁이로 만들었는가?
글쎄? 왜 이렇게 되었지?
홍랑조차도 모를 일이다. 설명하자면 길다.
시기적으로 운때가 맞지 않았다고 하겠다. 아직, 장사가 끝난 게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잘해도 본전에는 못 미치지 싶다. 미얀마가 군사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양되면서 시장경제를 채택하자 환율이 급등했다. 급하게 땅을 매입하고 한참 공사를 하는데 그런 일이 순식간에 생겼다. 거기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생긴 문제였다.
아내에게 그걸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택경기가 부진해져서 분양실적이 저조해진 것이다. 주택가격은 물론이고 월세까지 가격이 내렸다. 남들은 집을 비워두느니, 세라도 놓으라고 하지만 홍랑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손님이 있으면 세입자가 있고 세입자가 나가면 또 분양받을 사람이 사라지고 없는 악순환은 예상하지 못하고 하는 말들이다.
먼저 지은 것은 몇 세대 팔아서 공사비에 재투자했고 마지막 연립주택 한 동은 기초공사를 마치고 중단해둔 상태인데 아내는 다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홍랑이 이제는 큰돈이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갔다고 얼렁뚱땅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내는 미얀마에 왔다.
다른 여편네 셋을 동반해서 넷이 온 것이다.
홍랑이 미얀마에 앉아서 마중을 나간 것이 아니라 동안에도 홍랑과 동행을 했다. 홍랑이 한국에 머물다가 나오는 길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여행 날짜를 잡고 모든 준비와 세부계획은 홍랑이 세워야만 했다.
건기이고 겨울 방학이다.
날씨가 선선하다는 성수기의 동남아 여행시즌이라 직항으로 오는 항공은 가격이 엄청 올랐다. 인터넷으로 가격을 검색하고 깜짝 놀랐다. 홍랑이 혼자서 이용하면 별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이용했던 가격인데 여럿이니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홍랑은 아내와 그 무리의 여행이 숙제처럼 여겨졌다.
계획을 세우면서 보니 직한을 이용하면 항공료에 부담이 가는 금액이라 하노이를 경유하는 베트남항공을 이용했다. 그것도 홍랑이 혼자서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여행박사인 덕기선배에게 SOS를 때려서 구매한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홍랑이 미얀마에 있었다.
미얀마는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고 또 홍랑은 그걸 인터넷으로 완벽하게 소화할 정도로 인터넷 구매에 밝지 못하다.
당신이 다음에 들어갈 날짜를 잡아서 진행하라고, 일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항을 아내는 홍랑에게 미루었다. 카톡으로 하는 무료 전화로 불쑥 그렇게 말을 했다. 한국에 들어가려면 한참 남은 시점이었다. 날짜가 가고 임박해지면 항공료는 더 올라가는 이치였다. 홍랑은 미얀마에 앉아서 여행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졸지에, 생각지도 않은 막중한 과제를 짊어진 기분이었다.
이것도 일복인가?
어머니께선 살아생전 일복을 자주 들먹이셨다. 자신은 유독 일복이 많은 분이라고 하셨다. 빨래를 널어놓은 마당에서 빨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빨랫줄이 터지면 다시 다 빨거나 헹구어야 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마루에 걸터앉은 어머니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복 많은 년이라 잠시도 쉬게 그냥 안 두는군!
“얘야! 이런 일복은 절대로 물려받지 마라.”
홍랑이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미얀마에 앉아서 선배와 연락을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항공권을 일찌감치 예약하는데 진이 다 빠질 정도였다. 한두 번의 카톡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배가 여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을 자주 다니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선배이고, 남의 여행에도 관심이 많은 데다가 인터넷에 워낙 박식한 인물이라 맨입으로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여권 사진을 카톡으로 받아서 일일이 선배에게 카톡으로 날려주고 선배가 보내주는 여정과 가격을 듣고 홍랑이 자신의 일정과 겹치도록 항공사와 날짜를 결정한 것이었다.
여행스케치?
굳이 따지자면 둘이서 그린 밑그림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한다?
그게 말은 쉽지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라는 걸 홍랑은 알고 있다.
이름에서 영문으로 된 철자 하나가 틀려도 낭패를 본다. 정확하게 몇 번이고 확인해야 한다. 한 명이 틀리면 전부를 다시 입력시켜야 한다. 선배는 노구에 돋보기기를 끼고 입력시켰다고 했다. 다음에 들어가서 한 잔 사겠다고 얼버무려 예약확인서를 메일로 받아서 프린트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한데, 그걸로 부탁의 끝이 아니었다. 예약확인서를 받고 난 다음에 한 명이 못 오게 생겼다. 한 여편네의 남편이 취중에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팔목이 부러지고 어깨의 인대가 늘어나는, 육 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는 바람에 도저히 동행할 수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는 이미 한국에 들어가서 예약확인서를 나누어 주고 또 현지에서 바꾸어서 들어간 미얀마 화폐까지 준 상태였다. 침대에서 떨어진 그 양반은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 양반은 중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퇴임하고 나서 우울증을 달래려고 술을 배웠는데 이젠 술 없이는 못 사는 양반이 되었다고 들었다. 도저히 병원에 혼자 두고 가지는 못 하겠다고 여행 일자가 임박해서 연락이 왔다. 홍랑에게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직접 사과의 전화를 해왔다. 며칠간 병원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숙고하고 내린 결정인 티가 역력했다.
난감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선배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하고 한 명 취소를 요청해야만 했다. 홍랑이 예약한 게 아니기에 인터넷이 잘 터지는 한국에 있었지만, 또 부탁할 수밖에 없는 이치였다.
엉뚱한 이름을 취소하면 일은 더욱 복잡해진다.
정말이지 꼬이려면 이상한 데서 꼬이는 법이다. 취소할 여편네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아내에게 다시 정확하게 묻고 선배에게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하여 취소요청을 했는데 위약금을 떼고 얼마가 들어올지 아직 통장에 찍히지 않았다. 그렇게 취소하면 보통 보름 정도가 걸려 상황이 종료된다는 선배의 설명이었다.
눈이 밝은 선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혼자서 해약 처리를 하지도 못하고 그 한 명의 금액은 포기할 처지였는데 선배가 구제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선배는 또 경비를 아껴준다고 단체 할인을 받아 구매한 항공권이라 해약절차는 더욱 복잡했다.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비롯하여 네 명의 늙은 아줌마부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새벽 시간에 집에서 나와 버스터미널에 모여 공항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미주알고주알 홍랑이 나서야 했다. 공항에서 탑승권을 발급받는 데스크조차도 찾지 못하는 아줌마들이었다.
미얀마까지 와보니 홍랑이 동행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찾아오라고 항공권을 던져주었다면 결국 국제 미아가 되었으리라. 하노이에서 환승을 하는 절차는 고사하고 환승구를 찾아가는 길조차도 모르는 여편네들이었다. 영어로 안내판을 표기해놓고 화살표를 그려두었지만, 모두가 까막눈이었다. 홍랑은 너무 쉽게 생각을 했다. 홍랑은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동행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재차 실감했다.
아내는 예전에 혼자서 미얀마에 와본 적이 있다.
초창기에 미얀마에서 일을 벌이며 사업자를 내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둘 이상 지분을 가르는, 합작이라야 가능하다고 해서 아내를 불러들였다.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불러들인 게 아니라 홍랑이 동행해서 들어왔지 싶다. 나갈 적에는 혼자서 나간 것이 확실히 기억이 난다. 공항까지 배웅하고 탑승자 서류를 작성해서 주고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혼자 돌려보낸 기억이 난다. 그때 약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여행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키는 대로 서류에 사인만 하다가 돌아갔다. 혼자 돌아가는 것도 직항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아마도 그즈음에 들어가서 미얀마 얘기를 하다가 죽이 맞는 여편네들끼리 계를 모은 모양이다.
홍랑이 지난번에 나왔을 적에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이곳 미얀마에서 이동할 차량까지 예약을 해두었다. 엊그제 공항에 도착하니 차량을 데리고 가이드인 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차를 타고 들어와 집에서 자고 어제는 맛보기로 양곤 시내 여행을 돌렸다. 가이드라고 구한 톤은 정식으로 양곤 외국대 출신에 가이드 자격증이 있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학원에서 한국어를 갓 배운 아가씨인데 한국어가 상당히 서툴다. 하지만 전문 가이드보다 훨씬 싸고 친절하기에 지난번에 섭외하고, 만나서 받지 않겠다는 선금을 얼마 주고 남이 낚아채지 못하도록 발목을 묶어두었다.
일행이 도착하여 집에서 하루를 자는데 홍랑은 사무실로 만들어둔 거실에서 자야만 했다. 이 층에는 방은 두 개인데 가사도우미 퓨퓨가 방에 침대를 두 개씩 들여놓았다. 처음에는 홍랑이 사용하는 큰방에는 세 명이 쓰기로 했지만 하나가 빠지는 바람에, 그 소식을 접한 퓨퓨가 그렇게 잠자리를 정한 것이다.
아내는 도착해서 집을 둘러보고 참 쓸모 있게 지었다고 하며 이런 집이 몇 채가 남았느냐고 물었다.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아마도 아내가 제일 궁금했던 사항인 모양이었다.
“감사하러 나왔어? 주는 대로 먹고 놀다가 가!”
홍랑은 식탁에서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감사가 아니고, 남편의 사업인데 알아야죠. 우리도 궁금하구만.”
나이가 제일 많은 여편네가 아내를 두둔하고 거들었다. 홍랑은 그 여편네를 두고 대놓고 ‘할마씨’라고 부를 정도로, 오래전부터 알았고 친한 사이다. 아내보다는 무려 여섯 살이나 많은데 여태 정확한 나이를 몰랐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카톡으로 보내준 여권을 보고 나이를 파악하니 역시 할머니였다.
남편의 사업? 그런가?
깨갱, 홍랑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장자가 그렇다면 그게 맞는 말이다.
지은 집이 다 이런 집이 아니라, 이렇게 생긴 단독주택도 있고 연립주택도 있다고 하며 가까이 있는 집은 짬이 나면 보여주겠노라고 했다.
남편‘의’ 사업!
중요한 것은 바로 조사다.
소유격 조사!
아내의, 여기에서 조사 ‘의’가 매우 중요하다.
아내‘의’ 남편!
남편‘의’ 사업!
그 남편‘의’ 집에서 일행이 머문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의’라는 조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게 아내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의’라는 조사의 주도하에 여행의 좌우가 전개된 것이다.
어제는 여독이 덜 풀린 것 같아서 차량을 좀 늦게 오라고 일렀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그 점을 고려해서 그렇게 일정을 잡았다. 첫날은 맛보기로 양곤 시내를 둘러보도록 돌린다는 계획이었다. 미리 알아서 움직이라고 여행 계획도 일정과 시간대별로 분류하여 프린트해서 항공예약권을 돌릴 적에 이미 다 돌렸다.
계획대로 움직여야지만 일정을 소화할 수가 있는 일이다.
아침에 가이드인 톤에게 양곤 시내 어느 파고다와 어디, 어디를 다녀오라고 했는데 어제저녁에 아내는 들어오며 부엌에 쓸 살림살이를 한 보퉁이 사서 들어왔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
“이게 다 뭐야?”
“보면 몰라요?”
“이삼 년 하다가 집을 다 팔고 사업을 종료하면 다 버려야 할 물건인데 이런 걸 왜 사?”
“이삼 년이 아니라 하루 이틀을 살더라도 있을 건 있어야죠.”
겨우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사이에 주방에 필요한 것인 무엇인가, 눈여겨 살펴보았던 모양이다. 프라이팬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그릇을 씻어서 물이 빠지게 하는 개수대, 컵에 이르기까지 잔뜩 사 온 것이다. 손님이 여럿이 왔으니 그릇이 모자라는 것이지 혼자 생활하면 남아도는 살림살이인데 헛돈을 들인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의’라는 조사가 심리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의’라는 조사를 중요시하는 여편네가 와서 달라진 점이라면 홍랑의 수저가 반들반들 윤이 난다는 점이다. 홍랑은 이곳에서도 놋수저를 쓴다. 손님 누가 오더라도 홍랑의 수저는 정해져 있다. 물론 한국에서 공수한 것인데 퓨퓨는 놋수저를 닦는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고 아내는 그게 눈에 엄청 거슬렸던 모양이다. 놋수저를 닦으면서 어떻게 닦는 것인지 퓨퓨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겠다.
어젯밤에는 집에서 맥주 파티를 벌였다.
미얀마 맥주가 맛있다고 가이드북에 기술되어 있다. 일본의 식도락가들이 미얀마에 오면 엄청 찾는다는 맥주다. 그 계의 총무에 해당하는, 나이가 제일 적은 지혜 엄마는 이미 가이드북을 보고 온 모양이다. 사전에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제법 아는 게 많았다. 맥주를 들먹인 것도 그 여편네였다.
“여기 맥주가 맛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미얀마 맥주에 토종 땅콩을 안주로 하면 죽인다면서요?”
저녁을 먹고 나서 어디서 구했는지 아래층에서 땅콩을 볶고 나가서 맥주를 사 오고 난리를 떨었다. 홍랑은 그렇게 나다니는 게 마음에 좀 걸렸다.
이 나라에서 외국인이 숙박시설이 아닌 곳에서 자려면 출입국 사무소에 신고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홍랑은 이곳에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장이라는 옆집 아줌마를 통해서 신고했지만, 하루 이틀 머물다 갈 사람들을 신고하는 건 번거롭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웃에서 고발하거나 문제로 삼지 않으면 별일이 없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인데 홍랑은 골목 안 이웃을 잘 사귀어서 별일이야 없겠지만 여편네들은 그런 원칙이 있다는 걸 모른다. 그걸 얘기하면 괜히 주눅이 들까 봐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홍랑의 집에는 많은 한국의 지인들이 묵고 갔다.
같이 이번 여행의 예약을 도와준 덕기선배도 보름이나 있다가 갔고, 후배인 시인 P가 다녀갔고, 친구들도 여럿이 다녀갔다. 전부 다 호텔로 보내지 않고 홍랑의 집에서 묵도록 했었지만, 말썽이 생기거나 누구도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모두 하나나 둘이 와서 메인 캠프로 삼고 조용히 여행하다가 갔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인원이 좀 많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는데 그 심정을 알 턱이 없었으니 눈치가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어젯밤에는 아래층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홍랑은 끼이지 않았다. 같이 마시자고 했지만 홍랑이 정리할 것이 있다고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홍랑은 위층에서 인터넷을 연결해서 국내에서 돌아가는 검찰의 인사에 관한 뉴스를 더듬고 있었다. 이번 정권을 수사하던 검찰이 인사로 완전히 공중분해가 되었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여자가 임명장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자행한 무리한 인사였다. 언론에서는 대학살이라고 표기했다. 그 인사를 목적으로 서둘러 장관을 임명한 것이고 장관 임명장을 받은 여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서둘러 인사를 강행했다. 누가 보아도 저의가 빤하게 드러나는 무리한 인사였다. 이제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심판하겠지.
홍랑의 눈은 인터넷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아래층으로 열어두고 있었다. 위층에서 들어보니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는 걸 홍랑은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그놈의 ‘의’가 아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모양이다. 거기다가 여행이라는 들뜬 분위기에 더 고무되었으니 목소리 더울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물을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전부다가 들뜬 분위기로 떠드는데 홍랑은 나무랄 수가 없었다. 오직 이 여행을 하기 위해 삼 년이나 계를 모았다니, 그 분위기에 좀 떠들지 말라고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눈치를 보니 맥주가 떨어졌는지 맥주를 더 사고 수박을 사자는데 합의를 한 것 같았다. 한국에도 이젠 겨울 수박이 나온다. 좀 비싸긴 하지만 겨울이 되면 온실재배를 해서 당도가 떨어지는 반면, 여기서는 수박이 제 철이다. 당도도 좋고 가격도 엄청 싸다. 아내는 위층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수박 어디서 팔아요?”
“잘 모르겠는데, 퓨퓨를 데리고 나가봐!”
다행히 바로 앞 골목에서 야단을 차려놓고 마이크에 대고 불경을 외고 있었다. 그 소리에 묻혀 집안에서 떠드는 소리는 이웃에 잘 들리지 않았을 거다. 가만히 보면 버마족은 스피커를 되게 좋아하는 민족이다. 어떤 가게에서는 종일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음악을 틀어놓는 가게도 있다. 그래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이 보름인지 내일이 보름인지 모르겠다.
보름은 한국과 가끔 다른 달도 있다. 어쩌다 보면 한국보다 하루가 늦은 날이 보름이란다. 두 시간 반의 시차 때문에 그런 모양인데, 보름이 가까워지면 골목 하나를 막고 무대를 차린다. 보름날 밤에 큰 스님을 모셔다가 법회를 하는데 그 사나흘 전부터 밤새도록 스피커에 대고 누군가 불경을 왼다. 밤새도록 그 소리가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바로 앞 골목이다.
스피커 소리가 대단했다.
미얀마에 처음 왔을 때는 밤새도록 울리는 그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장가로 여기고 귀를 닫고 홍랑은 잘 잔다.
맥주를 사러 여편네들이 우르르 나가는 것을 보고 홍랑은 잠자리에 들었다. 퓨퓨를 데리고 나갔는지 여편네들만 나갔는지 모르겠다. 나가서 법문하는 광경과 거기에 모여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기도하는 인파를 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법회를 한다고 결정이 되면 그 골목은 차량 통행이 금지다. 한데 누구도 불평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없다. 알아서 차에서 내려서 걸어간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행사가 아니라 매달 보름이면 그런 행사가 있다. 법회는 골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한다. 화물차량을 꽃으로 꾸미고 여러 사람이 분장을 하고 적재함에 타고 광란의 춤을 추며 차가 대여섯 대씩 줄지어 다니는데, 미얀마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볼거리가 된다.
미얀마에 들락거린 지가 여러 해가 되지만 저렇게 해서 도대체 무얼 먹고 사나? 아직도 홍랑은 그 질문에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내 날짜를 잘 잡았으니 아내 일행도 오늘이나 내일 다니다가 보면 그런 광경을 분명히 보게 되리라.
지난밤에는 술자리가 끝나는 걸 보지 못하고 홍랑은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기 전에 조사 ‘의’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의’라는 조사는 희한하게도 책임의 올가미를 지닌 조사다. 어떤 명사에 붙여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주방에 빈 맥주병이 여러 개가 식탁 밑에 줄지어 있었다. 여편네들이 객기를 부린 모양인데 미처 퓨퓨가 처리하지 못한 것이었다.
홍랑은 동이 터기 전에 여편네들을 깨웠다.
홍랑이 코를 고는 소리와 밤새 울리는 스피커 소리에 잠을 설쳤다고 여편네들 모두 투덜거렸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바간으로 보냈다. 여편네들이 씻기도 전에 이미 차와 가이드인 톤은 아래층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출발해야지 바간의 일몰을 볼 수가 있다.
바간을 돌아보고 다음은 만달레이 그다음이 인레호수다. 그렇게 돌아야지 거리가 단축된다. 차를 가지고 가면 그렇게 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만달레이부터 먼저 간 다음 바간으로 가야지 교통이 편리하다.
바간을 보고 나면 비싼 여행이라고 여기지 않을 거다.
그렇게 동선을 정하고 삼박사일의 여정으로 보낸 것인데 아내에게 홍랑은 현지 전화를 하나 주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주었다. 주의사항이란 파고다에서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예법이었다. 그리고 덧붙인 것은 절대로 전화를 끄지 마라! 전화가 잘 터지는 곳도 있고 기지국이 없는 데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전화를 끄지 말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자.
홍랑은 여편네들이 여행을 다녀올 동안 일을 해야 한다.
하는 일이란 부동산 에이전트들을 만나고 주택의 시세를 알아보고 다른 매물을 둘러보는 것이다. 한국처럼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이 있는 게 아니다. 흩어져 있는 현장 부근의 동네 아줌마들이 그 중개사 노릇을 대신한다. 매니저를 데리고 그 아줌마들을 찾아다니면서 눈도장을 찍는 게 일이다. 그게 쉬운 일 같지만, 그녀들의 눈빛과 어투마저 다 읽어야 하기에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하루를 돌아서 다 돌 수가 없다. 양곤 시내를 다 훑어야 한다.
여편네들은 들뜬 기분으로 출발했다.
차량은 일본제 제일 고급스러운 승합차를 구했다. 지난번에 들어왔을 적에 직접 눈으로 보고 시승을 해본 차량이다. 아마도 전부가 처음 타보는 고급스러운 차일 것이다. 연일 장시간 타야 하니 편안한 차량이 필요했다. 값이 싸다고 어지간한 차를 구해서 돌아다니다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에는 그런 낭패가 없다. 한국처럼 바로 다른 차로 대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견인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꼼짝없이 길에서 차를 수리하도록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나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도로 사정도 엉망이고. 혹여, 그런 일이 생기면 여행은 망친다.
다른 곳에서는 경비 절감을 생각했지만, 차량 대여에는 아끼지 않았고 홍랑은 엄청 신경을 썼다.
“고마워요. 당신의 덕에 이런 차도 다 타보고.”
차를 보고 놀란 아내가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며, 그 말에도 ‘의’라는 조사를 넣어서 홍랑에게 멍에를 씌웠다.
보내긴 했는데, 돌아오는 날이 문제다. 인레호수를 구경하고 그곳에 투숙하는 게 아니라 바로 양곤으로 와야 하는데 기사인 민쏘는 야간 운전을 열두 시간 넘게 해야 한다. 여편네들이 인레호수에 보트를 타고 들어가면 차에서 자라고 운전을 할 민쏘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지만, 그게 마음에 걸린다. 민쏘도 일정을 알고 있으니 그 각오를 하고 있겠지만 걱정된다.
인레호수를 서둘러 둘러보고 일찌감치 출발해서 자정쯤에는 도착해야 한다.
새벽에 도착하면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과속을 하라는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여행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적에도 홍랑이 동행을 해야 한다. 한국에도 할 일이 태산이다. 설도 앞두고 있고 부가세 날짜도 다가온다. 들어갈 적에도 인천공항으로 가는 직항이 아니다. 호찌민을 둘러보고 하루를 묵고 밤 비행기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연결편이 맞지 않아서 그렇게 표를 끊었다. 호찌민에서는 홍랑이 직접 가이드 노릇을 해야 한다. 그게 또 숙제처럼 여겨진다.
그건 여편네들이 다녀오면 생각할 문제이고 우선 일을 해야 한다. 매니저인 때쑤는 보름이라고 아침에 파고다에 들렀다가 온다고 했으니 좀 늦을 거다. 오늘 쉐다곤 파고다는 새벽부터 미어터질 것이다. 전부 가까운 파고다에 들렀다가 출근을 하는 보름이다.
보기에 엉성한 현지식이 까탈스러운 여편네들 입에 맞지 않겠지만 사나흘은 어쩔 수가 없다. 챙겨가라고 했으니 밑반찬은 챙겨갔겠지.
이번에 왔다가 가면 아내는 몰라도 다른 여편네들은 두 번 다시 오겠는가?
누구 남편의 덕에 미얀마여행을 잘 했다는 말을 두고두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남편‘의’ 덕에.
저 여편네 남편‘의’ 덕분에
이 소유격 조사가 홍랑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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