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세례 1
지금까지 기독교 교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세 부분(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이것 외에 두 가지(세례와 성만찬)를 더 다룰 텐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장하신 성례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성례전 전체에 관해 간결하고 명료한 가르침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성례전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제껏 사람들은 이런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첫째 주제는 세례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발을 들였습니다. 세례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요한 대목이 나오면 중간에 끊고 자세히 보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다만 이단이나 분파 주의자(재세례파)들이 주장하는 세례와 비교해서 어떻게 대항해야 할 것인지는 신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겠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말씀에 근거한다
우선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의 근거가 무엇인지, 세례와 관련된 진술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미리 답을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마태복음 맨 마지막 장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가복음 16:16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새)막16:16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제정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을 보이는 것으로 바꾼다
그것이 성례전이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과 제정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세례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고안해 내거나 조작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와 똑같은 예를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 신조(사도신경), 주기도 역시 사람의 머리로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제정하시고 거기에 진심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른 길이 아닌 세례를 통해 구원받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는 저에게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간 새 망토 두르는 것처럼 세례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가장 중요하고 존귀하며 드높여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는 세례가 논쟁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분열을 획책하는 자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기를 세례는 그저 외적인 형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런 외적인 형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들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하나님께서 그 형식 안에 말씀과 계명을 담아 놓으셨고, 그 위에 세례를 세우시고 보증하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을 우습게 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지푸라기 한 올보다 더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귀하게 여겨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은 이제껏 교황의 편지와 면죄부 그리고 교회 당국이 발행하는 보증하는 서신과 인장 찍힌 종이 따위를 아주 굉장한 것으로 받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례를 더 높고 귀한 것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명령하시고 베푸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가서 세례를 베풀라. 그러나 너희 이름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라’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일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세례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의 손을 빌려 세례를 줄지라도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서 각자 아주 간단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는 사람이나 칭송받는 성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공로가 아니라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높은 차원의 것입니다. 그 누가 하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악마는 헛것으로 우리의 눈을 가려 진실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일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이내 우리를 우리 자신의 공로로 끌고 갑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야말로 눈에 돋보여서 아주 값지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의 금욕행위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모두 다 자기 공로와 성취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것을 가르칩니다. 아주 멋지게 번쩍이는 수도사들의 모든 공로를 한데 모아 쌓아 올린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이 볏짚 한 올 주워 올리는 것만큼도 고상하거나 선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 존귀하시며 최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행하시는 이가 누구인가에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을 성결의 물로 변화시킵니다
세례의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담긴 거룩하게 구별된 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성한 성결의 물입니다. 물 자체가 특별하고 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간악한 행위이며 악마가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 ‘새 영’을 받았다고 떠벌이는 자들(직통계시)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이 정하신 바는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그저 샘에서 솟아난 물만 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도대체 이 한 줌의 물이 무슨 영혼을 도울 수 있는가?’ 맞습니다. 말씀과 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면, 물은 그저 물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당신의 말씀을 물과 결합시키고 담아서 분리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이것이 물속에 담긴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크고 고귀한 보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