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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사랑 드려야 할 우리 본분 (갈라디아서 2:20) 2024년 2월 18일 주일연합예배
설교 : 김성현 감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기도>
하나님 아버지, 종이 입술을 열 때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입술에 기름부어 주시사 말씀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있게 하여 주셔서, 오직 하나님의 것을 말하게 하여 주시고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으로 종의 입술에 얹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던 그날부터 우리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보통 바뀐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모든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규모와 중요성, 그리고 이 시한적 효력, 이런 것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의 취미나 기호를, 어떤 추구하는 바를, 이념을, 철학이나 사상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운명을 바꿨다는 것의 특별한 의미는 죽어야 할 자들이 이제 죽지 않아도 되었다는 놀라운 안도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사 나를 살려주신, 멸망에서 구해주신 그분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성격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 믿는 날부터 시작된, 출발한 그 삶인데, 많은 사람이 그때부터 하나님에게서 뭘 얻어내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라 믿고 시시때때로 우리의 필요에 대해 간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궁핍함없이 이끌어 주실 것이란 생각은 늘 바탕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인생은 주님으로부터 무언가 받아내기 위해 애간장 태우거나, 주님 앞에 호소하거나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안되겠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제는 받아내도록 어떻게 해봐야 되겠다!’ 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힘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에 있는 그 책에 우리의 이름을 써 주셨습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너, 저를 잊지 않았지? 잊지 않았지?’ 하고 기억시키십니다. ‘절대 잊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여기 와서 ‘사랑하는 내 아들, 여기 있네?’ ‘내 딸, 여기 있네?’ 하고 구원해 내려 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우리를 만나는 순간은 그의 결단이 재확인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인간처럼 ‘어?! 하려고 그랬더니 안되네?’ 하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앗! 실수! 내가 좀 마음이 변했어.’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던 날은 하나님께서 ‘내가 구할 내 사랑하는 자녀, 내가 이끌어 주리라.’ 하고 결단하신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예수 믿는 날부터 신앙생활을 통해 무언가 얻어내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거 잘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 온 바가 있습니다. 교회에 왔습니다. ‘아, 하나님으로부터 뭐 좀 받아 내야지. 능력 받아 내야지. 축복, 받아 내야지. 하나님이 우리를 언짢아 하시는 것 같다. 어떻게든 이 전세를 역전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좀 받아내야 되겠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낼 날이 언제인가.’ 하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수년 간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뭘 받아내야 되는데. 나는 부족해.’ 교회 다니면서도 항상 이런 생각입니다. ‘받아내야 되는데. 내가 받아낼 능력이 없구나. 그럴 자격이 없네.’ 신앙생활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에 무언가 챙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애착을 얻을까?’ 하고 고민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식으로 나가다는 내 신앙생활, 망치는 것 아닌가?’ 하고 왠지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운 것일까요? 왜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할까요? 신앙이 잘못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가 쓰여졌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만 했어야 합니다. 자기 관심을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구한 주님의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매일 했어야 합니다. 자기를 구원해주신 데 대해 감사함으로 ‘이제부터는 내 주님이 내 속에서 일 하시옵소서. 나는 당신의 손입니다. 발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하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만 당신의 뜻이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주시면 당신을 위해 쓰임 받겠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있습니다.’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년 동안에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얻으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위합니다. 그러다 전에는 같은 교회의 형제 자매로써, 같은 성도로써 운명을, 교회 생활을 오래 같이 할 것으로 기대했던 자들이 많이 떠나 갔습니다. 지금도 그런 옛 동료 성도들의 얼굴이 기억이 납니다. 충격적이어서 그것이 머리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세상의 유명 회사에서 기획 일을 잘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본업이었습니다. 기획을 잘 합니다. 그때는 우리 교회에서 행사 같은 열려 할 때, 기획을 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발 좀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가 하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는 ‘나한테 맡겼으면 이제 간섭 마시오’ 하는 식으로 가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이거 됩니까, 안 됩니까?” 하고 말에 간섭 받는 것이 싫다며 하던 일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요만큼도 자기가 귀찮음을 받기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 일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면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빚진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저 ‘아이고, 이런…내가 이런 죄인이었다니…’ 하면서 이제는 주 앞에 기쁨이 되기 위해 그에게 사용되는 데 신경을 써야 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든 주님께 가치가 되기 위해서, ‘주님, 내 나머지 인생을 맡아 주시옵소서. 주여! 내 영혼을 맡아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강도처럼, 스데반처럼 ‘주여, 내 영혼을 거두시옵소서.’ 할 뿐입니다. ‘잠깐, 주님! 내게 5년만 주시옵소서. 내 삶을 위해, 내 자녀를 위해 챙겨둔 것이 없습니다.’ 하는 자세 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때에 주를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을 챙기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이 우리 본분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오르시기 전 제자들에게 “내 계명을 들어라. 내 말을 듣는 자가 나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떠나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대대손손이 이렇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을 다 행하게 하라. 너희 사도들이 이제 가르쳐야 될 것이다. 너희를 통하여 하는 모든 말들이 내 말이니 모두가 지켜서 해야 될 것이다(요 14:21, 23).’
교회에 온 사람들이 할 일은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말씀을 피해 다닙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하나님만 사랑한다 합니다. 어떤 노래 가사에 ‘나는 하나님만 사랑해~” 하는 내용이 있는데, 제 귀에는 그 가사가 마치 ‘나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밖의 모든 인간들은 싫어.’ 하는 식으로 들려서 노래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사랑해.’라는 말에는 어떤 전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 사랑해.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다 사랑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하나님 사람이야! 이 교회, 성락교회, 덤벼!”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합니다. 자기 뜻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 생활은 자기가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고, 자기 탐욕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하나님, 하나님이 있다. 음…’ 그런 자세, 필요 없습니다. 나가서 섬기는 자가 하나님 섬기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오전에 예수 믿기 시작했으면, 오늘 여러분이 주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생명을 잃는다 해도 주와 함께 주님의 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챙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런 주님으로부터 뭘 얻어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를 드려서 섬기는 데 있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좀 극단적이고, 우리와 비교하기에는 우리 모습이 부끄럽고 힘들긴 합니다. 그들의 생애를 되새겨보면, 그들이 다 주님을 위해 순교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 또 그들의 믿음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더 강력하게 되고,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성령의 인침을 받고 나니까, 그들이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능이 내게 있구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는 타락했고 다른 제자로 채웠는데, 어쨌든 이 오리지널 열한 명의 사도들을 통하여 온 세계에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죽었습니다. ‘주님의 수제자정도 되면, 주님께 훈련받은 제자 정도 되면 이제 조금 누려야 될 것도 있고 그들에게 조금 영광스러운 것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내내 고생하다 갔습니다. 그들이 내내 고생하다 갔다는 것은 꼭 이 세상에서의 영광이 궁극적인 즐거움을 대표하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주님의 가장 사랑받은 자들 열한 명은 다 순교했습니다. 이 세상 기준으로 말하자면 인생을 피지 못하고 피살당했습니다.
우리 교회 전체가 하나님 앞에 뭘 받아 내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슬펐습니다. 교회 전체가 받아내야 된다는 데에서 완전히 각인돼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무언가 얻어내는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좌로나 우로나 지옥 쪽을 향해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을 도와주실 것이고, 내 자녀를 지켜주실 것이고, 내 영혼을 영원토록 보살펴 주시고, 내 영혼이 잘된다면 내 자손의, 비록 내가 부족할지라도, 부모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내 자녀의 영혼도 주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다.’라고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록에 어떤 사람의 인생은 70년, 어떤 사람은 50년, 어떤 사람은 110년이 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는 그 기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간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무언가 얻어내기 위해서 서로 씨름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주께서 필요할 때에 쓰여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그렇게 필요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하다가 우리 교회를 우롱하고, ‘아니, 왜 내 일에 자꾸 관여하고, 내가 일하는데 왜 이렇게 간섭을 하냐’는 종류의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그렇게 여기고 있나 봅니다.
교회는 형상화된 우리 주님의 분신이라고 나는 보여집니다. 주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머리가 명쾌하지 않아서 항상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라도 여기는 하나님이 다니시는 곳이라는, 좌우 어디에든 계신다는 걸 봐야 알아야 합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당신의 목숨을 내 놓고 저들의 삶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귀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길러 주시고, 먹여 주시고, 영혼을 훈련하시는 엄연한 그의 사역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도 받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지 ‘저기 강단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하는 것은 볼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영적인 눈이 어두운 것입니다. 제가 강단에 서 있어도 저의 가장 큰 소원과 가장 큰 자신감은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통하여서도 이 목적에서만은 하나님이 귀히 나를 사용하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 자다. 오늘 이 시간의 하나님의 숨소리를 전달하는 자다. 오늘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자다.’ 하고 저는 서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그가 주시는 대로, 그의 거친 음성이든 사랑이 풍부한 따뜻한 음성이든 저는 그저 전할 뿐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개인에게 이익이 없으면 교회를 떠납니다. 제가 이제는 하도 속아서 많이 좀 포기가 됩니다만, 그래도 사회적인 어떤 포지션이 있고 그러면 “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수년 간 기다립니다. 그런데 영향력이 커 질 때 자기가 불편해지면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 교회 사랑해 줘야죠. 우리 교회에는 그리스도 없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 없습니까? 그를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나’라는 종을 통해, 나를 주님의 cctv같이 사용하셔서 그에게 축복하고, 그에게 기대하고, 그의 신앙에 신호가 오기를 원했지만 떠나갑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떠나도 되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 되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님을 믿는 것은 어느 교회에 소속해서, 마치 매표소에 줄을 서는 것처럼, 저쪽 창구는 사람이 줄을 많이 섰으니까, 이쪽 창구에 있는 사람은 쌀쌀 맞으니까 다른 창구로 가듯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는 삶과 죽음의 현장입니다. 그렇게 싸구려 같이 이 세상의 사람들 같이 하는 그렇게 되지 말고, 누가 보든지 말든지 간에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말씀에 보면, 우리 인생의 목적은 주를 위해 사는 데 있습니다[1]. 예수를 믿는다고 삶의 형편이 막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예수 믿는 날부터 은행의 잔고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힘이 솟아서 10살이 젊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생을 소망하는 자들, 영생을 꿈꾸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현실을 당긴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믿음이라는 틀 안에서 앞으로 당겨서 주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을 믿으시기로 작정하신 분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가정을 이제부터 돌보실 것을 믿으시기 원하시는 분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늘려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내 교회, 내 사랑하는 교회, 내 주님을 사랑하듯이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여기 현장에 있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현장에 있는 주님을 외면하고 떠나시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에서 누구를 버리듯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특별히 괴로울 때, 특별히 힘들 때, 교회와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힘들 때 ‘나는 좀 떠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기 바랍니다.
이제는 신앙생활을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사랑을 드리리라고 결심하시고, 그리하여 새로운 신앙의 성격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자들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부족한 이전의 삶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의 모든 이해를, 모든 생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 삶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애초에 주님이 명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교회를 기쁘게 하고 주님의 교회가 어려울 때 나를 희생해서라도 살리며 사랑하겠습니다. 우리를 받아 주셔서 신앙의 이 부분만은 명확하게 하여서 도무지 신앙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걷는 일이 없도록, 그리하여 우리 영생의 길에 흠이 되는 일이 없도록, 성공하는 우리의 신앙 인생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영원한 나라를 우리 속에 품으시며 그 나라를 약속하시고 이제 주를 위해 살도록 명하셨사오니 오늘 우리가 이 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생각대로 그렇게 헛된 것을 구하고 우선 될 것을 버리지 않고, 나중 된 것을 먼저 구하지 않고,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우선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자꾸 자꾸 사라지는 이제 꺼져가는 시간이오니, 우리가 그것을 소중히 여겨서 일생일대의 후회 없는 주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새로 설계하고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한 가족이고, 서로 사랑하고 아껴줘야 될 우리의 운명, 하나님이 정해주신 우리의 운명이니, 우리의 운명을 같이 하는 한 몸 된 우리들, 주께서 함께 동시에 역사하시고 함께 우리가 서로를 향해 사랑을 나타내고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