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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서무친재(庶務親裁)의 명령으로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고종! 그러나 그에게 기다리는 건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마누라 명성황후였다. 누가 봐도 고종보다 똑똑했고, 정치적으로 명민했던 명성황후는 빠르게 조정의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이 와중에도 명성황후가 놓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여자'로서의 본능과 질투였다. 아니…. 여자로서의 본능과 질투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남편… 아니 전하가 세컨드를 만들게 해서는 안 돼! 다들 알아들었어?"
"저기 저희가 무슨 수로 바람피우겠다고 작정한 남자를… 아니 전하를 말리겠습니까? 전하를 고자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이것들이 멀쩡한 남편을 내시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나…. 야! 아예 바람피우겠단 생각을 없애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뭐냐니까요?"
"이것들이 궁궐 생활 원 투 하나…. 딱 보면, 견적 안 나와? 옆에 이쁜 것들이 왔다 갔다 해 봐. 바람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도 몸이 먼저 반응 할 거 아냐!"
"아…"
"아는 무슨 아야? 당장 전하의 행동반경 안에 있는 나인, 무수리… 상궁 등등의 미모 심사에 들어간다. 만약 평균 이상… 아니 평균적인 미모를 지닌 애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당장 보직 변경 시켜!"
"어디로 보낼까요?"
"수라간이나 침방 같이 전하 눈길이 닿지 않는 쪽으로 내 몰아. 괜히 눈에 띄는 곳에 애들 박아 두면…. 네들 죽을 줄 알아. 이게 다 조선의 미래를 위한 일이야. 알았어?"
"에이, 괜히 질투 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갖다 붙이시긴…"
"죽을래? 만약에 후궁 소생으로 왕자라도 태어나 봐.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 가뜩이나 뒤숭숭한 정국인데, 후계구도를 정리해야 해. 그래야지 내가 속 편하게 정치를 하지. 알겠어?"
"정치는 원래 전하가 해야 하는 건데…."
"확 묻어버리기 전에 안 튀어나가? 이것들이 그 동안 얼차려 안 했더니 빠져가지고… 안 튀어 나가?"
그랬다. 명성황후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그리고 여자의 본능을 위해서 고종 주변의 여자들을 전부 박색으로 교체했던 것이다. 시앗은 돌부처도 돌아 앉힌다 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중전이라는 '정치적 포지션'에 앉아 있는 명성황후로서는 고종의 새 여자에 대해 '병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미 영보당 이씨(永保堂 李氏)에게 한번 당했던 상황(오죽하면, 완화군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을까?)이었기에 명성황후는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건은 늘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법이었다.
"중전마마… 전하의 행동반경 안쪽에 있는 여자애들은 전부 폭탄으로 채워놨습니다."
"확실해?"
"휴전선 155마일에 깔아놓은 지뢰보다 더 촘촘하게 박아 놨습니다. 완전 인간 지뢰밭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고종의 행동반경 안쪽의 모든 여자들을 폭탄으로 교체 해 놓고, 한 시름을 놓았던 명성황후!
"엄상궁"
"예, 마마."
"난 말이야.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네처럼 참하게 생겼으면 좋겠어. 얼마나 좋아?"
"예, 제가 좀 참하죠?"
"그렇지, 자네처럼 수더분하게 생기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아. 밤길 걸을 때도 무섭지 않고, 설사 강도가 덤벼들어도 자네는 얼굴만 들이밀면 되잖아?"
"그렇죠? 제 얼굴이 한때는 대량학살무기라고 불린 적이 있었으니까…."
"아냐, 지금도 충분히 대량학살무기가 될 수 있어…. 아니 학살무기지! 그 얼굴 들이밀면, 어느 남자가 도망을 안 가겠어?"
"저기 마마, 그래도 나름 강남 가서 튜닝 한 얼굴인데…"
"그게 튜닝한 얼굴이야? 그럼 튜닝하기 전 얼굴은 어땠다는 거야?"
"은하계 말살 병기?"
당시 명성황후가 나름 귀여워했던 상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엄상궁이었다. 1854년 증찬정 엄종삼의 장녀로 태어난 다섯 살이 되던 해 궁궐에 들어왔던 엄씨…. 엄씨는 나이 서른이 돼서야 상궁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때까지 왕들은 엄씨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왜? 그 얼굴 때문이었다. 대량살상무기, 혹은 은하계 말살 병기라 불릴 정도의 박색이었던 엄상궁! 엄상궁은 그 얼굴 때문에 남자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얼굴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 특히나 명성황후에게는 총애를 넘어 편애를 받을 정도였는데,
"너 앞으로 내 지밀상궁(至密尙宮 : 대령상궁이라고도 했다) 해라."
"마마, 지밀상궁은 완전 킹왕짱 자리 아닙니까?"
"그러니까 너보고 하라는 거지, 이건 언제나 전하와 마주칠 확률이 높은 자리잖아. 너 정도 인물이 아니고선 맡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야. 알지?"
상궁들 직책 중에서 요직 중의 요직이라 할 수 있는 지밀상궁의 자리를 줄 정도로 엄상궁을 아꼈던 명성황후…. 그러나 이런 총애는 곧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니….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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