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사논평>
성은 허물어져 빈 터인데...
1. 1975년 어느날 심수봉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황성옛터"를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 심수봉은 박 대통령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 전 해에 육 여사를 잃은 박대통령은 그 후로 유난히 눈물이 잦아졌다.
2. 때는 서슬퍼런 유신 시절, 이른바 박정희 독재의 절정기, 그러나 "독재자 박정희는 아무도 모르게 자주 울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총성과 함께 단군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땅에 찾아왔던 득의의 시대, 박정희의 시대는 끝났다.
3. 나는 박정희 앞에 붙는 '독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곪은 상처에 부치는 고약을 떠 올린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독재를 보는 내 눈과 창은 다르다.
4. 무엇보다 박정희의 독재는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독재였다. 따라서 당시 일반 국민들 중 박정희가 독재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혹독한 법률, 과중한 세금 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뭉개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랭이가 찢어져야 그게 독재다. 그러므로 박정희의 독재는 독재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박정희 하면 독재부터 떠 올리는가?
5. 정치가 그를 그렇게 부르도록 만들었다. 상처에 고약 붙이듯 그의 이름 앞에 독재자라는 고약을 붙이고 악을 빡빡 쓴 사람들은 90%가 정치하는 자들이었다. 정치 먹물에 물든 자들이었다.
6. 김영삼, 김대중을 필두로 논두렁의 황소 개구리처럼 왈왈거린 그들의 정체는 알고보니 권력욕에 찌든 정치꾼들이었다 김영삼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급기야 IMF에 나라를 말아먹었다. 김대중은 고사직전의 북한을 살려내 오늘날 핵무기 하나로 한국 알기를 발가락 때만큼도 안 여기는 깡패국이 되게 만들었다.
7. 그 뒤를 소위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주도한 민주화 세력들은 초지일관, 박정희의 피가 마르고 뼈가 드러나도록 그를 독재자로 몰아부쳤다. 민주화 세력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박정희가 의도하는 나라와는 정반대의 나라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8. 만고불변의 국가이성(국가의 존재 이유)은 국태안민(國泰安民)이다. 순서로 치면 민주화는 그 다음이다. 박정희의 國泰安民은 미완성이었지만 단군이래 처음 시도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은 박정희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든 무조건 독재의 프레임을 씌워 밟아 뭉개버렸다. 깔아뭉갠 것 중에는 國泰安民도 포함되어 있다.
9. 1987 민주화 이후 35년 동안은 박정희 시대 전체를 all,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독재의 역사로 대못을 박아버린 역사였다. 그리하여 박정희를 독재자로 부르지 않으면 무식한 놈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눈치도 없이 박정희의 공을 논하며 바른소리 했다간 얼뜨기 먹물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 쉽상이었다.
10. 그런 세월이 짧아도 벌써 30년 째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 덕분에 배고픈 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사는 세대들이 다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1980년 이후 태어나 배고픔이 무언지 모르는 세대에게 박정희란 존재는 그저 독재자로만 알려져 있을 뿐.
11. 그리고? ... 역설적으로 박정희가 아니었다 라면 절대로 권력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자들, 박정희의 피를 빨고 뼈를 갈아 오직 그 분노와 원한을 무기삼아 권력을 쥐게 된 자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한지 30여 년! 개, 돼지들이 민주화 시대라고 부르며 찬미하는 그 30여 년 세월.
12. 그 결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그것이 전부다. 박정희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낸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이 실로 허망하다.
13. 그래서 심수봉이 부른 "황성옛터", 그 가사가 오늘따라 전혀 새롭게 와 닿는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박정희는 이를 미리 알고 심수봉의 노래를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