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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和殿 (德壽宮의 正殿). 보물 제819호 - 잡상10개
▲ 仁政殿 (昌德宮의 正殿), 국보 제225호 - 잡상 9개
▲ 勤政殿 (慶福宮의 正殿). 국보 제223호 - 잡상 7개
▲ 明政殿 (昌慶宮의 正殿) : 국보 제226호 - 잡상 5개
잡상의 설치 시기는 중국의 송대(宋代)에 나타난 잡상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임진왜란이후에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잡상장(雜象匠)에 대한 법전을 보면 조선경국대전 공전(朝鮮經國大典工典)에 잡상장은 와서(瓦署)의 소속으로 4명을 두었으며 와장(瓦匠)은 40명으로 직종을 구분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 잡상 11개 -잡상이 제일 많다
景福宮慶會樓 : 국보 제224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건물.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잡상은 어떤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가? 잡상은 모든 기와지붕 위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전건물과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 한정된다. 또한 궁전건물 중에서도 양성으로 되어 있는 내림마루와 귀마루에만 배치되고 기와로 마감된 기와마루에는 배치하지 아니하였다.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는 正殿, 왕의 寢殿, 宮城의 正門, 都城의 城門, ,宮闕 안의 樓亭, 王陵, 王妃陵, 園墓의 丁字閣, 宗廟, 成均館, 東闕 등으로 한정되며 民家, 寺院, 書院, 地方鄕校에는 잡상을 설치하지 아니 하였다.
덕수궁 자경전 - 잡상 4개
景福宮慈慶殿 : 보물 제809호.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사업을 하던 고종 4년(1867년)
대왕대비 조씨를 위하여 지은 전각으로, 화재로 불탄 것을 고종 25년(1888년)에 다시 지었다
잡상은 무엇의 형상이며 어떤 뜻으로 설치하였을까? 건축은 기능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고에 의한 장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암막새 숫막새의 와당에 상징적인 조형이 생겨 나고 보다 더 높은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취두(鷲頭) 치미(鴟尾) 용두(龍頭) 잡상(雜像)등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취두와 치미는 큰 건물의 용마루 양끝에 설치하며 용두는 취두나 치미를 설치하지 않은 작은 건물의 용마루와 취두를 설치한 용마루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내림마루에 설치하였다
창덕궁 돈화문 - 잡상 1,2층 모두 7개씩
敦化門 : 昌德宮의 정문. 보물 제383호. 중층의 다포식 우진각지붕의 건물.
1412년(태종 12)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창덕궁이
복구되면서 문도 함께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이때 세워진 것이다.
창덕궁 숙장문 - 잡상 5개
昌德宮肅章門 :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하여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덕수궁 중화전 - 잡상 10개
德壽宮中和殿(1905 중건), 덕수궁의 정전, 보물 제819호
중국 송대에 편찬된 영조법식(營造法式)에 치미(鴟尾)에 관한 글이 있다. "柏梁殿이 화재를 당한 뒤에 월(越)의 무당이 말하기를 바다속에 어규(뿔 없는 용)가 있는데 꼬리로 솔개처럼 물결을 치니 곧 비가 내렸다고 하니 그 형상을 지붕에 만들어서 불의 재화를 진압하였다. -중략- 담빈록(譚賓錄)에 동해(東海)에 어규가 있어 꼬리로 솥개와 같이 물결을 치니 곧 비가
내려서 드디어 그 형상을 옥척(屋脊 : 용마루)에 베풀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경복궁 수정전 - 잡상 6개
景福宮修政殿 : 보물 제1760호.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건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곳,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되면서 건물 명칭이 바뀌었다.
목조건물은 화재가 가장 두려웠고 화재예방을 위한 주술적인 뜻으로 치미를 용마루에 올려 놓았던 것이 취두로 바뀌고 이러한 연유에서 잡상도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건축기법에서 살펴보면 용마루는 기와를 여려 겹으로 포개서 쌓고 회삼물을 발라 기와의 마모를 예방하는데 이것을 양성이라고 한다. 양성은 길고 기와가 겹겹이 포개져 있기 때문에 육중한 취두를 올려 용마루가 기울어지지 앓도록 하는 마무리의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장식적인 효과도 있다.
취두와 치미의 사용시기는 부여서복사지출토치미, 월성기림사출토치미, 경주황룡사지출토치미, 안압지출토치미등에서 삼국시대(6 - 7세기)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청연루 - 잡상 3개
慶福宮淸燕樓 : 자경전 오른쪽에 있는 누마루로 여름 거처
건축문화에 있어 같은 영향권에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의 잡상에 대하여 살펴 보자.
중국건축에서 잡상을 설치한 건물은 우리 나라의 건물과 비슷한 양상으로 보이나 다른 점은 사원과 민가에도 잡상을 설치한 점이다. 중국의 잡상의 명칭은 우리나라와 다른바 우리나라의 대당사부에 해당된 것을 선인(仙人)이라 하고 잡상군을 주수(走獸)라고 한다. 중국건축의 잡상의 명칭을 보면, 1) 선인(仙人 2) 용(龍) 3) 봉(鳳) 4) 사자(獅子) 5) 기린(麒麟) 6) 천마(天馬) 7) 해마(海馬) 8) 어(魚) 9) 해(소와 비슷한 神獸) 10) 후(吼) 11) 후(猴:원숭이) 이다. 용두는 수두(獸頭)로 표기된다. 물론 잡상의 수는 모든 건물에 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건물 규모에 따라 다르다. 잡상 형태는 매우 성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건원릉(이성계의 묘) 비각 - 잡상 2개
東九陵에 있는 건원릉健元陵과 신도비각神道碑閣
- 碑閣은 비석이나 신도비를 보호하는 집으로 정자각 동쪽에 있으며
神道碑는 능 주인인 왕과 비의 업적을 기록한 일대기가 있다-
일본건축에서는 치미((鴟尾))는 있으나 잡상(雜像)은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용두에 해당되는 장식물은 귀면(鬼面 : 鬼瓦 : 오니가와라)으로 되고 귀면위에 도리후스마를 올렸다.
일본의 고대건물 가운데 치미가 있는 건물로는 당초제사금당(唐初堤寺金堂 奈良소재), 등대사대불전(東大寺大佛殿 2세기 奈良소재)등이 있고 평등원(平等院 12세기 京都소재)의 용마루에는 새의 형상인 봉황을 올려놓았다. 중세건물인 동조궁(東照宮 17세기)의 정문 용마루에는 사자상(獅子像)을, 희로성(姬路城)의 천수각(天守閣 16세기 兵庫縣소재)에는 호(범고래)의 형상을 거꾸로 올려놓았으며 이 밖에도 기물(豈物 : 훈)이라는 귀면을 우리나라의 치미 형상으로 하여 용마루를 장식하였다. 일본의 고건물에는 기와마루의 마감에 있어 중국이나 한국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양성을 하지 않고 기와로 마무리 한다.
* 알아두기 (1) *
잡상은 모든 기와지붕 위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전건물과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 한정된다. 그런데 예외로 사찰지붕에 잡상이 설치된 곳이 있다. 바로 선조의 부친 덕흥대군의 묘(덕릉)를 관리하던 수락산 흥국사의 대웅보전(5개), 만월보전(4개), 영산전(1개)의 잡상이다.
(上)흥국사 영산전 -잡상 1개 / (下) 만월보전-잡상 4개
水落山興國寺는 599년(진평왕 21년) 圓光법사가 창건하고 절 이름을 水落寺라고 했다.
1568년(선조 원년)에 선조가 그의 아버지인 덕흥대군의 願堂을 이곳에 지으면서 興德寺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그 후1626년(인조 4)에 절 이름이 지금의 흥국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흥국사는 조선중기 이후 왕실의 원당으로서 발전했으며 1790년(정조 14)에는 봉은사, 봉선사, 용주사, 백련사
등과 함께 오규정소(五糾正所) 가운데 한 사찰로 선정되면서 사격(寺格)이 더욱 높아지기도 했다.
(오규정소는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동시에 관할 사찰들을 관리하던 곳)
* 알아두기 (2) *
잡상 11개 - 경회루
잡상 10개 - 중화전
잡상 09개 - 인정전,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2층은 9개, 1층은 8개)
잡상 07개 - 광화문, 흥례문, 중화문, 신무문, 대한문, 돈화문, 창의문
잡상 06개 - 수정전
잡상 05개 - 홍하문, 숙장문, 인정문, 동십자각, 흥국사 대웅보전
잡상 04개 - 팔달문, 자경전, 흥국사 만월보전
잡상 03개 - 청연루, 영휘원의 정자각
잡상 02개 - 건원릉 비각
잡상 01개 - 흥국사 영산전
雜像에 대하여 個別的으로 살펴 보기
우리나라의 잡상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살펴 보자.
우리나라의 잡상은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三奬法師, 孫悟空, 豬八戒등의 명칭을 붙이고 있다. 건축이나 공예의 장식에서 사용되는 문양에는 四神像(靑龍 白虎 朱雀 玄武), 十二支神像, 十長生 (해 산 불 돌 소나무 달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사군자, 연꽃등이다. 그럼에도 삼장법사 손오공등이 건물의 마루에 등장한다.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조선조에서 궁전이나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의 지붕 위에 불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유기의 등장 인물과 짐승들의 형상을 잡상으로 했었던 점이 의문시 되나 잡상들의 개체에 대하여 살펴 봄으로서 그 이해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1) 대당사부 (大唐師父) = 三奬法師 玄奬
대당사부는 잡상의 첫순위 (맨 앞자리)에 놓인다. 대당사부는 당(唐)나라때 현장(玄奬)이라는 승(僧)으로 법명이 삼장법사(三奬法師)이다. 삼장법사는 천축(天竺)으로 佛經을 구하러 가는 길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데리고 간다. 천신만고 끝에 불경을 구하여 당나라로 돌아 오는 이야기를 엮은 소설이 서유기(西遊記)이다. 대당사부는 실제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2) 손행자 (孫行者) = 손오공(孫悟空)
손행자는 孫悟空이라고도 한다. 돌원숭이인데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삼장법사를 호위하며
길동무가 되었다. 서유기라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는 조화(造化)의 영물이었다. 손행자는 원숭이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삿갓을 쓰고 앞발을 버티고 앉아 있다.
3) 저팔계 (豬八戒)
저팔계는 손오공과 갈이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에 갔던 멧돼지이다. 저(豬)는 돼지이고, 팔계(八戒)는 부처님이 가장 싫어하는 여덟 가지의 음식물을 뜻하기도 한다. 얼굴의 모양은 돼지의 형상이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4) 사화상 (獅畵像) = 사오정(沙悟淨)
사화상(獅畵像)은 사화상(沙畵像)이라고도 한다. "獅"자는 사자이고 "沙"자는 서유기에서 나오는 사오정(沙悟淨)의 '沙'자로 풀이하면 사오정 역시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호위했던 괴물로, 원래는 옥황상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수렴지기를 했다는 짐승이라고 한다. 얼굴 모습은 사자상을 하고 있으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5) 이귀박 (二鬼朴)
우리 나라의 용어에는 보이지 않은 단어로 불교의 용어를 빌려 풀이하면 '二鬼'는 '二求'의 다른 음(音)으로 보아, 二求는 중생이 가지고있는 두 가지 욕구인데 낙(樂)을 얻으려는 得求와 낙을 즐기려는 命求이다. 생김새는 허리의 앞과 뒤에 뿔이 난 짐승의 형상이다.
6) 이구룡 (二口龍)
입이 둘이어서 이구룡(二口龍)이라고 했을까? 머리에는 두개의 귀가 나있고 입은 두 개로 보인다.
7) 마화상 (馬畵像)
마화상은 말(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서유기에는 '필마온(弼馬溫)이라 하여 "馬"자를 쓴 것과 출세마왕(混世摩王)이라고
하여 '摩'자를 쓴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 사용된 용어에는 음으로는 같으나 한자(漢字)가 다르게 마화(馬畵)
魔畵 麻畵등으로 표기 되어 있다.
8) 삼살보살 (三殺菩薩)
살(殺)은 살(煞)과 같은 의미이며 삼살(三煞)이란 세살(歲煞) 겁살(劫煞) 재살(災煞)등으로 살이 끼어서 불길한 방위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보살은 불교에서 위로는 부처님을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이다. 이 두가지의 뜻으로 해석하면 삼살보살이란 모든 재앙을 막아주는 잡상이라고 생각된다. 잡상에서는 대당사부와 같이 인물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위에 팔꿈치를 받치고 허리를 꾸부려 앉은 모습이다.
9) 천산갑 (穿山甲)
인도 중국 등지에 분포된 포유동물의 일종이다. 머리 뒤통수에 뿔이 돋혀 있고 등이 다른 잡상보다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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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토두 (羅土頭)
나토두의 형상은 상와도에 그려져 있지 않다. 나토라는 짐승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나티"의 다른 표기라고 생각된다.
나티는 짐승같이 생긴 귀신으로 작은 용龍의 얼굴형상 또는 검붉은 곰의 형상이라고 한다.
* 알아두기 (3) *
최근 <세대공감 1억 퀴즈쇼>라는 SBS프로그램에서 '어처구니'가 지붕 추녀마루 또는 내림마루에 설치되는 '잡상'을 의미한다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또한 그 밑에 문화재청산하 '숭례문복구단'에서 자문을 받았다는 자막까지 나왔다. 공중파에서 소개되면 일반인들에게 잘못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 바로 잡고자하는 어떤 분이 문화재청에 답을 구하였더니, 결과는 한마디로 방송국이 임의로 그렇게 했다는 내용의 답변이었다.
항간에는 '잡상'의 어처구니 설 뿐 아니라 '맷돌의 손잡이'도 어처구니라 부른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 문헌 어디에도 '어처구니'가 잡상이나 맷돌의 손잡이란 말은 없다.
'어처구니'의 어원(語原)
ㅇ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사전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어처구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처구니 : 명사, (주로 ‘없다’의 앞에 쓰여)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ㅇ ‘올바른 우리말 활용 사전(2005, 예담)’에 실린 ‘어처구니 없다’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뜻한다. 19세기 말에 발간된 『한영자전(韓英字典)』(1897)에는 ‘어쳐군이’로 표기되어 나오며,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놀랄 만한 기계’라고 기술되어 있고, 20세기 초의 『조선어사전』(1938)에는 ‘키가 매우 큰 사람의 별칭’으로 기술되어 있다.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류에서는 엄청나게 큰 기계를 ‘어처구니 기계’, 엄청나게 큰 굴뚝을 ‘어쳐군이 굴둑’으로 표현해 놓았고 어떤 소설에서는 ‘어처구니’가 ‘증기기관’과 같음을 특별히 지적하고 있다.
* "아니 양대 금광에는 어처구니 기계가 있다는데, 대관절 어떻게 생겼기에 어처구니라나요?" (이기영-'두만강')
* 신호항이 그득하게 들어선 미네소타호는 이만여 톤 용량을 무슨 짐으로 다 채웠는지 어처구니 굴뚝이 백 개나 합친 듯한 연통 속으로 연기가 집채같이 나오면서 이물 고물에 기관 도는 소리는 육칠월 장마에 천동하는 소리 같은데.....(육정수-송뢰금)
* 허부령은 큰사랑 아랫목에가 안석(案席)을 의지하고 거만하게 앉아서 흰떡가래 같은 여송연(呂宋煙)을 어처구니 굴뚝에 연기 나오듯이 피고 앉았다가... (이상협-재봉춘)
이로 보면, 20세기 초까지도 ‘어처구니’가 ‘엄청나게 큰 기계나 물건,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을 지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문헌 어디에도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나 지붕 위의 장식 기와라는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어처구니’를 ‘맷돌의 손잡이’, ‘궁궐이나 성문 위의 기와지붕에 있는 장식 기와’ 그리고 ‘바위를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 부분’ 등으로 부르는 것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출처- 국어대사전 / 문화재청 답변
연자맷돌 (1910년)
맷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