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02) 손권의 진짜 속샘
형주에서 유비를 만나고 돌아온 노숙이 주유에게 다녀온 결과를 보고한다.
"잘 살펴 보았는데, 유기는 이미 병이 깊어져 짧으면 삼 개월, 길어 보았자, 반 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가 되어 우리가 다시 형주를 요구하면 유비도 거절하지는 못할 겁니다. "
"약조를 지키지 않으면 어떡하오?"
주유는 그의 성격대로 집요하게 사안을 물고 늘어졌다.
그때였다. 장수 하나가 뛰어 들어오며 아뢴다.
"대도독! 주공께서 합비로 지원을 와 달라고 명하셨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주유는 물론이고, 정보(程普)를 비롯한 장수들 모두가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모두 할 말을 잃고 놀라고만 있을 때, 노숙이 먼저 입을 열어,
"대도독, 주공께선 자세한 언급은 없으셨으나, 분명 곤란한 상황에 계실 것이오. 만에 하나, 일이라도 생기면 ..."
하고, 말하면서 노장 정보 장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보는 주유를 향하여,
"대도독, 유비가 유기 사후에 형주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면, 지금은 주공을 지원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유는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주공인 손권의 지원 명령의 우선순위를 뒤로 물릴 수 없음을 깨닫고 노장 정보를 호명한다.
"정보 장군."
"예"
"지금 당장 모든 전함과 장군 휘하의 병사들을 이끌고, 합비로 가서 주공을 도우시오."
"네!"
"장군, 감녕은 파릉군을 지키시오."
"예!"
"능통은 함양군을 맡으시오."
"네!"
주유가 각기 장군에게 명을 내리자, 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는다.
"대도독, 대도독은 합비에 가지 않으실꺼요?"
그러자 주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가서 주공께 전하시오. 나는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시상구(柴桑口)로 돌아가서 요양할 것이라고. "
주유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나간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능통이,
"며칠 전 남군성을 공격할 때는 요양 하신다는 말씀이 없으셨는데, 합비에 간다고 하니, 갑자기 요양을 하신다는 걸까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정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하!... 대도독이 요양을 하겠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때문일세."
"그렇다면 그 마음의 상처는 누가 낸 것입니까?"
여몽이 분연히 묻는다.
그러자 정보가 고개를 흔들며,
"제갈양이지."
하고, 말하자, 노숙이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만든 상처지요. 자, 장군들..이젠 대도독의 명 대로 준비를 하시지요."
노숙도 이같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
이러한 소식은 얼마 후에 유비에게 전해졌다.
유비가 공명을 찾아가 말한다.
"선생, 공명 선생! 낭보요!"
"무슨 일 입니까?"
공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비를 향했다.
"강동의 주력군이 남군성에서 철수하였소. "
"뭐라고요?"
"왜 그러시오? 우리가 바라던 일 아니오? 선생은 기쁘지 않은 것 같소..."
그러자 공명이 정색을 하며 반문한다.
"주공, 지난번에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뭐 말이오?"
"오후가 어째서 직접 합비를 공격하느냐고 물으셨죠?"
"어? 그랬지요. 선생께서 노숙에게 묻겠다고 하지 않으셨소? "
"물어 보았으나, 얼버무리더군요. 그가 간 뒤, 계속 생각해 보았는데,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후가 억지로 주유를 철수시킨 것인데, 좋지않은 징조입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오?"
"현재 손권과 주유의 관계는 복잡 미묘합니다. 강동에서 주유의 위엄과 명망은 손권을 능가하지요. 손권이 주유를 제압하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강동 사이에 마찰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에게 형주를 다스릴 시간을 주셨지요. 허나, 유기 공자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
"음!... 의원에게 물어보았소. "
"아!... 뭐라 합니까?"
"아마도..며칠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 하오."
"아!... 이거 참!..."
공명의 말을 듣고, 유비는 걱정이 쌓였고, 유비의 말을 들은 공명 또한 걱정이 쌓여버렸다.
...
주유의 명을 받고, 손권을 지원하기 위해 남군성에서 철수한 노장군 정보는 노숙과 함께 삼만에 이르는 병사와 전함 모두를 거느리고 합비의 손권 진영에 도착하였다.
손권은 이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소 영문 밖까지 나와 있었다.
이것을 본 노숙과 정보는 말을 멈추고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손권 앞으로 달려갔다.
"주공! 어찌 여기까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노숙과 정보는 두 손을 모아 올리며 황감해 하였다.
손권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선생께서 강동을 위해 큰 일을 하시는데, 몸소 마중을 나오는 것이 도리지요."
"주공, 대도독이 그의 성격 때문에 합비로 함께 오는 것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아, 어제 서찰을 받았으니 염려마시오. 자, 들어갑시다."
"예!"
장중으로 들어오자 노숙이 손권에게 용서를 구한다.
"주공께서 맡겨주신 임무를 다 이행치 못했으니, 뵐 면목이 없읍니다. 주공, 대도독이 요양을 한다고 했지만 감녕과 능통의 부대를 남겨 두고 철수를 했으니, 아마도 다시 기회를 보아서 형양을 칠 것으로 보입니다."
"음,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주 장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소. 그를 여기로 데려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소? "
"이리도 마음이 넓으시다니, 존경할 따름입니다."
"지금 내 관심사는 주 장군과 마찬가지로 형주에 있소. 유비와 조조가 과연 언제 싸움을 시작할 지 모르겠소."
"주공, 조조는 적벽은 물론, 남군에서도 패했지요. 형주를 빼앗으려면 적어도 반 년은 군마를 정비해야 합니다. 유비 역시 그동안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한 단계 발전할 겁니다."
"어떻게 말이오?"
"아마도 유비는 형양을 얻었으니, 기세가 올랐을 겁니다. 허나, 형주는 작고, 조조와 강동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이니, 공격받기가 쉽습니다. 유비가 대업을 이루려면 세력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제후가 될 수가 있지요. 하여, 그는 병사와 군마를 확장하기 위하여 장사(長沙), 계양(桂陽), 무릉(武陵), 영릉(零陵) 등을 취하려고 할 것 입니다. 그 땅은 지금 조조의 땅이죠."
"음! 그렇다면 자연히 조조와 부딪칠 기회를 스스로 만들겠군요."
"그렇습니다, 주공... 그러니 유비가 어떻게 하는 지는 좀 더 지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소, 선생의 예상은 항상 다른 누구 보다도 훌륭하였소. 그럼 유비의 움직임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형주에 사람을 은밀히 보내 두도록 하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노숙은 이렇게 대답한 뒤에,
"솔직히 말해, 손책 장군께서 돌아가신 후, 강동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반 년동안 주공을 곁에서 모시며 지켜본 결과, 주공께서는 손견 장군이나 손책 장군 못지 않게, 훨씬 잘하고 계십니다."
"허!.. 나는 힘도 약하고, 강동을 이끌어 갈 마땅한 계책도 없는데, 어찌 그 분들과 비교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주공께서는 앞으로 널리 그 이름을 떨치며 천하를 손에 넣게 되실 겁니다."
노숙의 이같은 손권에 대한 칭찬은 실제를 바탕으로 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고, 기뻐해야할 손권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선생, 나는 그대가 충신인 줄로 알았는데, 어찌 이같은 대역 무도한 말을 하는거요!"
손권은 노숙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따지듯이 나무란다.
노숙이 손권을 올려다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손권의 꾸지람이 이어진다.
"한나라의 대신으로써, 천자께서 허창에서 박해를 받고 계시는 것을 잊었소? 역적 조조의 손에서 천자를 구하지 못하는 것도 불충이거늘, 어찌 나에게 딴 마음을 품으라고 하시오! "
"아! 주공!..."
노숙이 장중 가운데로 달려나와 손권 앞에 무릅을 꿇는다.
"신이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조는 황실을 찬탈할 것이고, 유비는 황실의 사람으로써, 역시 제왕의 자리를 노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공께서 천하에 뜻이 없다면, 조조, 유비와 다툴 것이 없지요. 허나, 그들과 다투지 않으면 어찌 강동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
노숙은 역시, 지금까지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향후의 염려를 애절한 눈으로 호소하듯이 손권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물끄러미 노숙을 내려다 보다가, 어느 순간, 눈을 몇번 깜박이더니, 노여움이 풀어지며 입을 연다.
"선생, 내 그대의 마음을 잘 알겠소.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니, 말을 조심 하시오...유비는 정통임을 내세우고, 조조는 천자를 끼고 호령하고 있소. 허나,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그저...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하지 않겠소? ..."
"하!... 하!..."
노숙은 그제서야 손권이 자신을 나무란 이유를 알아 차렸다.
그리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럼, 주공께서는 진작부터 천하에 뜻을 두고 계셨던 거군요!..."
하고, 감격어린 얼굴을 해보였다.
그러자 손권은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노숙에게 손짓을 하며,
"보시오. 또 그 애기로군!"
하고, <퉁>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