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 치타 리베라가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30일(현지시간) 딸의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딸 리사 모르덴테는 고인이 짧은 투병 끝에 뉴욕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토니상을 두 차례 수상한 그는 70년 가까이 무대에 꾸준히 선 것으로 이름높다. 가장 유명한 배역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니타와 '바이 바이 버디'의 로즈 역할이었다.
고인은 1933년 워싱턴 DC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빠가 집의 지하실에서 기획 제작한 쇼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성악, 피아노, 발레 수업을 들었는데 춤을 가장 좋아했다. 뉴욕에 있는 조지 발란신의 아메리칸 발레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3년 간 수업을 들었다.
1952년 콜미마담이란 공연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고 취직했다. 그리고 10개월 동안 공연을 다닌 뒤 뉴욕으로 돌아와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의 수석 무용수 대역을 한 것이 첫 브로드웨이 경험이었다. '캉캉'의 합창단 배역과 '미스터 원더풀' 같은 뮤지컬 배역을 따냈다. 1957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아니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스타덤에 올랐다. 곧이어 딕 반 다이크와 '바이 바이 버디'에서 완벽한 연기 호흡을 선보여 토니상 후보로 처음 지명됐다.
'바주르'(Bajour, 1964)의 아냔카, '시카고'(1975)의 벨마 켈리 역할로 연이어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그녀는 영화로 만들어진 '달콤한 자선'(1969)에도 얼굴을 내밀었고, 카바레 연기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링크'(The Rink, 1984)로 마침내 첫 토니상 수상의 감격을 누렸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에서 그녀가 마치 '채찍으로 유유히 사자를 길들이는 조련사'처럼 관객들을 압도했다고 평가했다. 1985년 그녀는 '제리의 딸들'로 브로드웨이에 돌아왔다.
고인은 수많은 세월 브로드웨이 히트 공연들에 노래와 춤, 연기 세 박자를 고루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라틴계 여성으로도 괄목한 성과를 안았다. 1986년 자동차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었고, 다시는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았다.
몇개월 재활 훈련 후 그녀는 우려를 딛고 크루즈 선상에서 카바레 연기를 하며 쇼 무대에 돌아왔다. 1993년 브로드웨이에 복귀해 '거미여인의 키스'에 오로라 역을 맡았다. 열정적이고 관능적인 연기는 리베라에게 두 번째 토니상을 안겼다. 그가 토니상 후보로 지명된 것만 여덟 차례였다. 그 뒤 '방문'(The Visit, 2001, 2008), '나인'(2003) 재공연, 그리고 자전적인 작품 '치타 리베라 : 댄서의 인생'(2005~06)에 나섰다. 생애 마지막 브로드웨이 출연작은 2015년 '방문' 재공연이었다.
고인은 케네디 센터상(2002),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2009)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케네디 센터상 수상은 라틴계 여성으로는 처음이었다. 2018년 토니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지난해 자서전 '치타: 회고록'을 출간했는데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뽑혔다.
배우 제이슨 알렉산더, 미아 패로, 토니상 위원회 등이 소셜미디어에 고인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렸다.